이슬람 문화 세계 수도(하즈라티 이맘 주마 마스지드, 코란 박물관, 바락 한 메드레세)   2009.6.14

타지키스탄 단기선교여행을 기획하면서 내심 기대했던 일은 우즈베키스탄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타지키스탄으로 가려면 반드시 육로로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통해야만 하기에 타지키스탄 비자 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통과 비자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죠.

2년 반 동안 카자흐스탄에 살면서 실크로드 관련 지식과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고 중국 서안에서 시작하는 실크로드의 주요 경유지인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같은 고대 도시 유적지를 꼭 방문하고픈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지키스탄 선교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타쉬켄트에서 1박을 할 수 있도록 선교사님과 사전 조율 할 수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모든 유적지를 돌아볼 순 없지만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수도 타쉬켄트에서 옛 실크로드 오아시스 도시 국가들의 모습을 엿볼 수만 있다면 대 성공이라 생각했습니다.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국경은 삼엄한 경비가 있습니다. 타지키스탄 아래의 아프가니스탄이 세계적 마약 공급지역인지라 타지키스탄을 통한 마약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모두가 버스를 타고 타지키스탄 출국 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저기 보이는 철문을 지나면 타지키스탄이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영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 너머에서 또 다시 우즈베키스탄 입국 심사를 받게 되겠죠.  

이곳까지 후잔드의 선민 순복음교회의 많은 사역자들이 함께 해 주시고 도와 주셨습니다. 타지키스탄 세관 통과와 출국 수속까지... 이 철문을 앞두고 타지키스탄의 사역자들과 헤어짐이 있었습니다. 빠으름 목사님 모습입니다. 무척 좋은 분이셨는데...이 때 제 사진을 보니 몹시 말라 보이네요. 힘들었나 봅니다.

이제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가서 우즈베키스탄 입국 수속을 받게 됩니다.

옆을 보니 커다란 산맥이 우리 옆을 지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산맥 건너편이 후잔드라고 합니다. 타쉬켄트 가는 길을 이 산맥이 가로 막고 있어 빙 둘러 와야 한다고 합니다.

타쉬켄트로 들어가는 길에서 기름진 농토를 보았습니다. 양이나 소, 말 같은 목축업 외에도 농업 자체가 주요 산업인 것 처럼 보였습니다. 물도 풍부하고 초원도 넓었습니다.

메마른 타지키스탄과는 그냥 대충 봐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는 영적 풍요와는 관련이 없는 듯... 순수하고 뜨거운 영적 갈망을 지난 땅 타지키스탄의 후잔드와 달리 우즈베키스탄은 현재 선교의 문이 거의 닫혀 있는 곳입니다. 최근  수 많은 사역자들이 이 땅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타쉬켄트 도심에서 보이는 뜨람바이(전기 버스)는 신형이었습니다. 투르크 어로 '돌(타슈)'의 '도시(켄트) '라는 뜻의 타쉬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입니다.

중앙 아시아에서 인구가 200만으로 가장 많고 지정학적으로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세 이후 이슬람의 성도 라는 명성을 얻은 타쉬켄트.  지금의 중앙아시아 5개국은 1990년대 초 구 소련에서 독립해서 저마다 이슬람의 정체성을 되찾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국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그려 넣은 나라는 정작 우즈베키스탄 뿐입니다. 이슬람에 깊이 훈육된 나라, 우즈베키스탄 중심에는 타쉬켄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룻 밤 묵은 숙소입니다. 이곳에서 다음 날 우리 팀을 안내해 줄 가이드를 만나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이 날 저녁도 이곳에서 해결한 뒤 호텔 내 공간을 빌려 이번 타지키스탄 선교여행 평가회를 가졌습니다. 무척 피곤한 밤이었지만... 모두들 즐거운 맘으로 함께 했습니다.  

호텔 내부와 평가회 모습입니다.

다음 날 아침.. 기대에 찬 모습으로 타쉬켄트를 둘러 보았습니다. 저녁에 한국 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지만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타쉬켄트는 기원전후부터 '차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오아시스 도시로 자연 환경이 좋고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농경과 교역이 다 같이 발달했습니다. 이곳에는 일찍부터 여러 종교가 들어와 공존하고 있었는데 7세기 초부터 이슬람의 영향권 안에 차차 들어가게 됩니다. 705년 중앙 아시아의 서단 메르브에 입성한 이슬람 군대는 불과 10년도 채 안되어 파죽지세로 시르다리아와 아무다라아 두 강 사이(트란스옥시아나) 전역을 점령했고 당시에 이미 당나라의 세력판도 내에 들어 있던 타쉬켄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고선지가 이끄는 당군과 이슬람 대군이 부딪히는 그 유명한 탈라스 전쟁(751년) 이 발발하게 됩니다. 석국은 이슬람 쪽에 가담했었고 이 전쟁에서 당군이 패하는 바람에 이슬람은 비로소 타쉬켄트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11세기 카라한 조 시대에 이슬람 문화가 본격적으로 개화하다가 13세기 몽골군의 침입으로 된 서리를 맞고 도시는 여지없이 파괴되었다가 15세기에 티무르 제국의 출현을 계기로 이슬람은  본격적으로 '르네상스' 룰 맞이합니다. 이후 타쉬켄트는 중앙 아시아  이슬람의 심장부로 부상하게 되는데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적, 유물들은 티무르 시대(1405-1500) 와 그를 이은 샤이바니 시대(1505-98)에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가이드의 안내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중심지를 가 보기로 했습니다. 선교여행 직후 이뤄지는 방문이니만큼 우즈베키스탄의 영적 주소를 알 수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버스에 내리니 웅장한 규모의 모스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곳은 Mausoleum of Kaffal-ash-Shashi, Madrasah of Barak-khan(바락 한 메드레세), the Namazgoh mosque,  the 'Tilla Shelkh' mosque and the Museum of the Usmani Qoran(우스만 코란 박물관) 등의 건물들로 이뤄진 복합단지입니다. 이 곳은 타쉬켄트에서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광장이며 1000년 이상되는 우즈베키스탄 무슬림 문화 중심지로 평가되는 곳입니다.

 

2007년에 ISESCO 에 의해 이곳이 이슬람 문화 세계 수도로 선언 된 후 모스크와 코란 박물관 등을 새로 건축했다고 합니다. 제 뒤로 보이는 이 건물이 바로 새로 지어진 '하즈라티 이맘 주마 마스지드' 입니다. 워낙 큰 건물이라 건물 전체를 사진에 담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양 쪽 미나렛(미나라)를 다 나오게 하려면 멀리서 촬영해야만 가능하겠죠.

'하즈라티 이맘 주마 마스지드'  

'주마' 는 아랍어로 금요일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주마 마스지드' 라고 하면 금요일에 집단 예배르를 행하는 큰 마스지드(예배당)을 말합니다.  

주마 마스지드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메카 방향으로 전 세계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네요.

말레이시아에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를 봤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세계 이슬람 무슬림 문화 수도로 지정될 즈음에 지어진 건물이라 하니 분명 인테리어도 매우 신경 썼음에 분명하겠죠?

기둥이나 건물마다 자연 무늬로 수놓은 건물이었습니다.

유리문 안으로 넓은 예배 처소가 보입니다.

지붕과 처마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양쪽으로 높이 솟은 미나렛(미나라)이 보입니다. 모스크마다 이런 미나렛이 2개, 4개, 6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중앙 아시아의 미나렛은 크게 3가지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첫째로 예배 시간과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일. 둘째로는 넓은 사막 길을 횡단하는 대상들에게 바다의 등대와 같은 역할. 셋째는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는 망루의 역할입니다.  

주마 마스지드를 보고난 뒤 이 복합 단지의 안쪽으로 향했습니다.

복합 단지 내에는 푸른 지붕을 가진 수 많은 모스크들이 보였습니다. 무리 지어 있는 이렇게 많은 모스크를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놀라왔습니다.

세계 이슬람 문화 수도라고 불릴 만한 모양새였습니다. 복합단지의 여러 건물 중 관심을 끄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스만 코란 박물관과 바라크 한 메드레세(신학교)입니다.

지금 우리 팀 뒤쪽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이 코란 박물관입니다. 그 뒤로는 바락 한 메드레세가 보이고 있습니다.

이 코란 박물관에는 이슬람 문화 유산 중 가장 두드러진 문화재로 불리는, 칼리프 우스만 이븐 아판이 표준판으로  공표한 원본 '우스만 코란' 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기록문화유산에서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 이 경전 사본은 이른바 '오스만 본(일명 이맘 본)' 이라고 하며, 1,400 여년 동안 사용되어 온 이슬람교 경전의 유일한 정본입니다. 이 경전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모하멧 사후 1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 시대에 처음으로 코란이 만들어졌고 그것을 2대 칼리프인 오마르가 보관하고 있다가 3대인 오스만 시대(644-636)에 이르러 경전의 결정판을 다시 완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스만 정본이다. 오스만은 이 정본을 4부 필사해 터키의 이스탄불, 이집트의 카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 이라크의 바스라에 각각 보내 보관토록 했다. 그 후 이 보물은 권력자들의 기호나 정략적 수요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14세기 후반 중앙 아시아의 패자 티무르는 이라크를 정복하면서 바스라에서 이 정본을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애첩을 위해 세운 사마르칸트의 비비하눔 사원에 보관했다. 지금도 그 사원의 안뜰에는 이 정본을 전시했던 커다란 대리석 전시대가 남아 있다.  그 후 1869년 러시아 장군 카우프만에 의해 상뻬쩨르부르그의 에르미따쥐 박물관에 옯겨졌다가 러시아 혁명 후에는 모슬렘들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타타르스탄의 수도 우파로, 그리고 다시 타쉬켄트의 쿠겔다슈 마드라사로, 또다시 이곳의 레닌 역사박물관으로 이관된다. 그러다가 우즈베키스탄이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인 1989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 (실크로드 문화 기행 - 정수일 저 中에서

일부가 소실된 이 정본은 338쪽 분량이라고 하고 글씨는 누르스름한 얇은 사슴 가죽에 나무 편으로 나무 액을 사용해 썼다고 합니다. 사실 이 코란을 보러 박물관에 들어가는 것을 팀원 누구도 원하지 않더군요. 입장료도 3000 솜 정도인데...  어쨋든 다음에 이곳에 오게 되면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이곳을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은 책에서 스캔한 것입니다.)

코란 박물관 뒤에는 바로 '바라크 한 메드레세(신학교)' 가 있습니다.  

타쉬켄트 3대 마드라사(신학교)의 하나인 '바락 칸 메드레세(마스라사)'는 샤이바니 조 7대 칸인 바락 칸(1551-56 재위) 이 세운 것으로 높이 5미터의 아치형 대문 벽면에는 아름다운 아라베스크식 모자이크를 볼 수 있습니다. 윗면에는 코란에서 따 온 아랍어 구절이 가로 새겨져 있는데 이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무늬입니다.  

지금도 실질적인 중앙아시아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이곳은, 구 소련시대부터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교의 본청이 설치되어져 있던 곳이며 중앙아시아 이슬람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우즈베티스탄 이슬람협회가 자리 잡고 있으며 예전에는 4평짜리 교실에 20개쯤에 학생들은 전원 기숙하면서 이슬람 신학 공부를 했었다고 합니다. 현재 안에는 수 많은 기념품 샵들만 보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목공예품들과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치형 지붕 위쪽에는 아라비아어의 다양한 서체로 이뤄진 무늬가 좌우에는 기호로 이뤄진 아라베스크 모자이크가 보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어떠한 동물의 형상이나 사람의 형상도 사용하지 말 것을 엄격하게 명하고 있기 때문에(우상 숭배 금지) 이렇게 기하하적인 기호나 도형 모양을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사용했습니다.

7세기 무하멧이 이슬람교를 창건할 때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와 기독교를 알고 있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봤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이슬람의 둥근 기둥도 그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지도 모르죠.

강력한 이슬람 제국을 표방했던 티무르가 이런 푸른 색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후 중앙 아시아 이슬람 모스크는 이렇게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티무르의 푸른 색이라 불립니다.

바라크 한 메드레세에서 목공예를 하고 있는 젊은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중앙 아시아의 초록빛이 은은히 감도는 수 많은 자기들도 만날 수 있지요.

저도 양가죽에 타쉬켄트 구 시가지를 그려 놓은 그림 하나를 샀습니다.

 이 그림은 훗날 2010년 뉴질랜드 테아와무투 ICI 내 우리 가족 숙소 벽에도 걸려 있게 됩니다. 타쉬켄트에서 봤던 그 강한 인상을 잊을 수가 없어 늘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바락 한 메드레세의 출입문에 들어서면 코란 박물관과 주마 마드리사가 뒤로 보입니다. 이 복합단지의 가장 중요한 3가지 건물이죠.

구름 한 점 없는 타쉬켄트의 태양이 얼마나 뜨겁든지 더 이상 걷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전 이 뜨거운 태양볕이 무척 좋습니다.

실크로드의 뜨거운 태양은 언제나 제 맘 속에서 이 지역을 향한 강한 열정을 불러 일으켜 줍니다. 동양과 서양 역사를 이어 주는 물줄기였던 이곳, 아직 많은 부분들이 모래 언덕 아래 숨어 있는 이곳, 마른 사막과 황량한 반사막은 언제나 친근한 실크로드로 다가옵니다.  

사실 저는 타쉬켄트의 고대 유적지와 박물관에도 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의 생각이 저와 똑같은 건 아니죠. 팀원들의 생각을 따라 다음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가 보고 싶었던 에스키 샤카르(eski shakhar) 구, 타쉬켄트 시가의 유적지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습니다. 낮은 진흙 벽돌집과 모스크 사원, 메드레사(이슬람 학교)가 늘어서 있는 미로같은 좁고 지저분한 거리에서 구타쉬켄트의 흔적으로 볼 수 있고 16세기에 지어진 쿠켈다쉬 메드레사(Kukeldash Medressa), 15세기에 지어진 자미 모스크사원(Jami mosque) 는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겠지요.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2009.6.13/ 2010.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