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 반포 마을에서 (베트남 정탐여행기 2)

둘쨋 날부터는 A,B 팀이 각각 3일간 다른 지역으로 나뉘어 이곳 사람들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A팀은 라오까이 주 내 라오까이 시와 인접한 사파 지역으로 향했는데

이곳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아오는 관광 지역 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파로 간 A팀 조원들은 특히 길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며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부 베트남의 수 많은 소수 민족들을 이곳 사파 지역에서도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 사파 유일의 자이족 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교회 관련 자료를 주신 선교사님 조차 방문한 적이 없는 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고 너무도 열악한 주거 공간에서 예배하는 그들을 만남으로 인해  

한국에서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편안한 예배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를...그리고 자칫 하면 얼마나 큰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인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지요.

제가 속해 있는 B팀은 박하 지역(우로 따지면 군郡 정도의 행정구역)의 반포 마을과 시마까이 지역의 깐꺼우 마을, 박하 지역의 따차이 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반포 마을에서의 메모를 소개합니다.

라오까이 숙소에서 승합차로 출발할 때의 모습입니다. 우리 숙소의 1층은 식당입니다.  

반포 마을로 가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발 아래 수 많은 산야과 눈에 들어 왔습니다. 우리는 잠시 승합차에서 내려 그 땅을 내려다 보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  이하 당일 저녁 기록한 메모를 그대로 옮깁니다 ----------------------------

오전 8시에 출발한 승합차는 2시간 만인 10시에 박하 마을에 도착했다.  어렵게 숙소로 택할 호텔을 정한 뒤 짐을 챙기고 도착 예배를 드린 시간은 11시 30분.

11시 30분에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전체 팀원이 뜨거운 태양 아래,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박하 분위기를 익혔다.

층마다 테라스가 있는 유럽식 건물로 가득한 이곳은 외부에서 온 낯선 손님에 대해 퍽 여유로웠고 친절했다. 아마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 때문이리라. 몇 몇 아이들을 만나면 막대 사탕을 건네 주었고 2살 짜리 아기를 안고 있는 22살 짜리 비엣족 엄마 집에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갔다.

날씨가 너무 더운 지라 일행을 모두 앞서 걸었고 길호 선생님과 우리 부부만 뒤쳐져서 걷고 있었다.

길을 걷던 중 귀엽게 생긴 아이를 보았고 아이에게도 막대 사탕을 건넸다. 바로 옆에는 젊은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와 인사..

그 집 문 앞에 노란 부적 같은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대화를 나누다 집 안에 보이는 제단(반터: 베트남 사람들은 누구나 조상을 숭배하는 제단이 집 한 쪽에 있다)에 너무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거기에 대해 물어 보다 얼마 전에 남편이 죽고 아들 하나와 살고 있는 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호 선생님과 우리 부부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탁자에 앉아 그 자매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대화의 초점은 아이들이었다.

우리 아이가 셋 이라고 하자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이를 묻고는 성은이를 바라보며 너무 예쁘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슬프게 들리던지..

어쩌면 젊은 부부가 나란히 자기 앞에 앉아 이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자신의 상황과 대비되어 부러워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자매를 위로하면서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하면서 기도해 주겠다고 했다.

자매의 손을 잡고 우리는 기도했다.

“하나님이 소망 없고 낙심되는 이 가정에 산 소망이 되어 달라고 기도했다. ”

기도를 마친 자매의 모습은 한결 밝아 보였다.  

자매와 작별을 하고 더운 날씨에 음료수를 사러 상점 앞에 모인 일행에게로 가는 우리 마음도 기뻤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위로하시고 회복하시리라...

점심 식사 후 반포마을 오후 3시경 출발  ---------

2시 반에 올라온 지라 몸이 뻐근했지만 순종하는 맘, 기대하는 맘 가지고 내려 감. 호텔 앞에서 정예연 권사님 기도하고 출발.

우리 승합차를 타고 가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땅을 밟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 생각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 도로를 걷기 시작..

박하 타운이 내려다 보이는 오르막을 오르며 아이들의 발걸음도 느려지고 뒤처지는 사람들도 속출했지만 모두가 담대한 맘을 가지고 걸어 갔다.

도로에서 찬양을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지 40여분...

도로에 있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건네 주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주고..

마을 입구로 진입하는 순간까지도.. 특별한 만남이나 가정으로의 초대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측 집 앞에 엄마, 아빠와 우리를 향해 미소짓는 아이들이 보였고  막대 사탕을 건네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에게 가방을 나눠 주던 길호 선생님이 갑자기 “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니.. 길호 선생님의 슬리퍼가 소똥을 질끈 밟아 버린 것이다.

안에서 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길호에게 들어와 씻어라고 했고 물가로 달려가는 길호를 보며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몽족(백몽족 마을)

바닥에 앉을 수 없는 이들의 문화라.. 의자를 내어 오지만.. 우리 팀원은 11명.

엉거주춤하게 몇 사람이 앉아 있는데 옆 방으로 건너 오라는 아주머니의 손짓을 보고 옆 집으로 넘어갔다.

역시나 컴컴한 집 안에는 몇 몇 남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의자가 적어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바닥에는 핏자국도 있고 누군가가 재를 뿌리고 있었다. 한국에도 몽족이 있냐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도 받으면서..

‘어떻게 하나...’

슬리퍼를 씻고 늦게 합류한 길호 선생님이 이런 저런 내용을 통역해 주신다.

 

탁자에 앉았는데 맞은 편에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 분이 않았고  다른 가족들은 멀찍이 않아 있었다.

가족 관계, 몽족 숫자, 자녀들이 하는 일.. 흔히 묻는 질문이 오가고 난 뒤  길호 씨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가장 연장자가 누구죠?”

바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최고 연장자임을 확인한 뒤...

그 연장자에게 어디 아픈데가 없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슬쩍 한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탁자에 앉을 때 다리를 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양쪽 엉치뼈, 무릎, 발목이 아프다 한다.

언제부터 아픈지 발끝까지 방사되는 통증인지 물어보니  아주 어릴 적부터(5-6세) 다리가 이렇다고 한다.

특히 비오는 날에 더 많이 아프다고 하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케토톱 2장을 꺼내어 아저씨가 아프다고 말하는 엉치뼈 부위에 붙여 주었다.

그리고 아플 때마다 먹으라면서 이부프로펜을 우편 봉투에 넣어 건네 주었다. 그러고 나자 아주 분위기가 좋아졌다.

길호 씨를 통해 한국에서는 약을 먹으면서도 잘 낫도록 기도한다고 하면서 아저씨를 위해 기도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물론 OK

그리고 모두에게 기도하자고 한 뒤.. 이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이 곳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함께 기도했다.

기도하기 전에 아저씨의 이름을 물었다. “ 지부”

기도를 마치고 악수하고 행복해 하고 있을 무렵...집에서 직접 담근 술이라며 옥수수 술을 권했고.. 길호 씨와 난 지부 아저씨와 톡 쏘는 옥수수 술을 2잔이나 단번에 마셨다.

옥수수 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온 몸이 뜨거워지면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에 흔틀리는 차 타고 온다고 좋지 않은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사실 그래서 1잔 더 받아 먹었다. 지부 아저씨는 양쪽 엉덩이에 파스를 붙였으니 2잔을 주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두들 인사를 하고 다시 도로 위를 걸었다. 시간을 보니 4시 30분.. 벌써 출발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셈이다.

한참을 걸어가니 마을 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여기 저기에 사탕을 나눠 주면서 걷다가 우리를 맞아 준 또 다른 가정에 들어가 옥수수 술을 만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또 앞 집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껴졌을 때 옆 쪽 부엌에서 뭔가 끓이고 있는 곳으로 팀원들은 모여 들었다.

말린 옥수수 대와 옥수수 알을 빼낸 옥수수수를 땔감으로 삼아 불을 때고 있었고 큰 솥에는 마치 콩처럼 많은 옥수수 알이 삶겨지고 있었다.

옥수수 알을 삶고 있는 부엌에서 촬영...

이후 더 걸어 올라갔다. 우측에 낡은 건물이 하나 보였는데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걸로 보아 의료기관을 보였다. 반포 마을을 담당하는 말단 진료소임이 분명했다.

진료소로 한 번 올라가 보았다. 혹 근무하는 의사를 만난다면 이 지역의 보건 의료 상황을 알 수 있는 좋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에...

건물은 두 동이었고 이리 저리 둘러 보다가 안 쪽 방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4년제 직업 학교를 마치고 이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의사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의사라는 말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듯했으나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곳에 흔한 질병, 이 진료소가 담당하는 인원, 근무 인원과 근무 시간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도 권하고 함께 기념 촬영도 찰칵! 이후 담 안에서 우릴 일행을 바라보는 가족 사진을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어 선물했고 집에서 기르는 돼지 새끼들을 신기하게 바라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이미 방학 중인 학교가 보였다.

학교 앞에서는 우리가 방문한 집들과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우린 이곳에서 예배했다. 찬양하고 기도하며 이 땅을 다스리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이미 이 땅을 통치하고 계심을 선포하며 찬양했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후 논두렁을 따라 들어가 논 사이로 흘러내려가는 냇가에서 발을 담그고 예쁜 돌도 줍고 엄지 손가락보다 작은 개구리도 잡았다.   2009.7.24/ 20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