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엉 훔 가는 길

2009년 여름, 우리 가정은 북부 베트남으로 결코 잊지 못할 정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충진교회 종족 입양지 최종 선정 작업의 일환으로 캄보디아 와 베트남으로 각각 단기팀이 떠나게 되었는데 저는 베트남 정탐팀과 함께 1주일간 중국 과의 접경 지역인 라오까이 주 일대를 다녀 왔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뜻깊은 그 날의 잊지 못해 당일 저녁 기록해 놓은 글이 있기에 베트남에서의 일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간의 개요를 먼저 설명드리고 므엉비 훔에서 있었던 일을 나눌까 합니다.

충진교회에서 19명이 베트남 정팀팀에 참여했고 이 중에 우리 가족이 5명입니다.

충진교회 종족 입양 최종 후보 종족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족과 북부 베트남의 소수 종족 지역입니다. 충진교회 파송 선교사가 있는 지역이라 더 맘이 가는 곳입니다.

남부 베트남에는 호치민을 비롯해 많은 곳에 교회가 서 있지만 북부 베트남에는 여전히 복음에서 많이 멀어져 있습니다. 중국과의 국경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외국인이나 사역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소수 종족 밀집 지역이라 베트남 정부에서도 외국인의 움직을 면밀히 주시하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 공화국이니까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의 종교 핍박 지수는 최상위권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상황은 무척 호전되고 있습니다.

베트남 팀은 2팀으로 나눠 가능한 한 북부 베트남의 한 주인 라오까이 주를 자세히 정탐하기로 했습니다. 라오까이에서의 정탐 첫 날, A팀은 라오까이 주의 중심 도시인 라오까이 시를 둘러 보기로 하고 제가 있는 B팀은 라오까이 주 외곽으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라오까이 의 구글 이미지입니다. 저 강을 건너면 중국입니다. 중국과 접하고 있는 국경 도시죠.

이곳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세관입니다.

도시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외국인은 모두 합쳐 다섯 손가락에 들만큼 적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제... B팀의 이 날 정탐 여행을 따라가 볼까요. 제 기록을 펼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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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엉비 훔 가는 길

출발은 7시 반.

14인승 승합차 뒤에는 짐을 가득 싣고 아이들과 함께 촘촘히 차에 올랐다.

라오까이에서 출발에서 밧산 중심부까지는 아주 도로가 좋았지만 밧삿 이후로 반포장 도로에 이어 비포장 도로가 이어졌다.

라오까이에서 므엉비 훔까지는 차로 3시간 거리다.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여서 좌석에 붙어 있기 보다는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야 했고 산 고개를 넘느라 차는 뱅글뱅글 산마루를 올라야 했기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차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므엉비 근처에 도달했을 때 시은이의 멀미가 심한 것 같아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했으나 워낙 좁은 길이라 바로 세우지는 못하고 비탈길을 지나 도로가 넓은 곳에 차를 세웠다. 잠시라도 차 밖으로 나가 공기를 쐬고 걸어 다니면 한층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모두 차 밖에 나와 도로에 나왔는데... 우연히 옆에 건물이 하나 보였다. 학교 건물인 것 같았는데..아니나다를까 므엉비 초등학교였다.

멀리 운동장과 건물 입구에 아이들 모습이 보여 아이들과 함께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지금이 방학 때긴 하지만...(베트남도 6-8월은 방학이다. 9월부터 새학년이 시작되는 방식)

교실 안에는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6-7세 아이들을 모아 놓고 철자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 수업을 받기 전에 이렇게 미리 아이들에게 말과 글자를 가르친다고 한다.

선생님은 정식 교사는 아니고 이 일을 위해 임시로 선생님을 맡았다고 한다.

선생님을 통해 중학교 까지 전국민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베트남은 아무리 골짜기 마을이라도 학교가 다 들어가 있다고 한다. 므엉비는 이 초등학교 말고 분교 2개가 더 있다고 한다.

이사랑 선생님은 전에 왔을 때는 방학이라 아무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아이들이 있다며 의아해 하셨다. 아마도 충진교회 팀에게 향후 사역 전략을 보여 주시려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나도록 해 주셨나 보다.

선생님에게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었더니 연필, 노트 등이 절대 부족하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노트를 가져오라고 해도 많은 아이들이 그냥 온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막대 사탕, 연필 한 자루씩을 나눠 주고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어 주고 함께 기념 촬영을 한 뒤 우리 갈 길을 재촉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므엉 훔 마을이니까..

므엉 훔은 므엉 비 근처 에 있다. 베트남의 60여개 도 중 하나인 라오까이 도 의 밧삿 군 산하에 므엉 훔 면과 므엉 훔 면이 있는 셈이다. 므엉 비나 므엉 훔 안에도 여러개의 마을이 있을 것이다.

작년 겨울 충진교회 1차 정탐팀이 갔던 곳은 므엉 비의 나안 마을 이였다. 당시 그 곳을 다녀온 1차 팀원들은 이번에 떠나는 우리 팀(3차 정탐팀)에게 그 곳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전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므엉 훔 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경,

마을 곳곳에서 말리고 있는 옥수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을 여기 저기를 둘러 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지어진 허름한 집 안에 놓인 탁자 주위로 앉았다. 한쪽에는 부엌에서 고기 손질을 부지런히 하고 있고 지저분한 벽에 붙어 있는 한국 연예인 사진이 눈에 띄었다. 나도 잘 모르는 연예인들인데...식사를 한 뒤 우리 조(박하 조)는 2개의 팀으로 나눠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곳은 므엉 훔의 중심부인 것 같았다.

길에서 주변 소수 종족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는 여자와 아이들 조는 동네 안을 돌면서 가정 방문을 하기로 했고 남자들은 차를 타고 외곽으로 다시 나가기로 했다.

목사님이 여자 조로 가시겠다고 하면서.. 이사랑 선교사님과 뛰번, 아이들과 차를 타고 달렸다.

차는 산을 올랐고 고개 마루에서 평화로운 논과 들을 내려다 보며 여기 사람들은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농사가 잘 되니 먹는 것도 풍성할 테고.. 평화로운 땅에서 만족하며 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선교사님은 옆에서 “그래도 이들에겐 소망이 없지요. 참 소망이...” 이들이 소망이 없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겠지만 사람에게 생명이 있는 참 이유를 알려 주기 위해 우리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차 안에서 뛰번 얘기를 했다. 성격이 좋다고 말을 했더니.. 성격이 너무 좋아 문제라고 했다.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까..

도로가 끝난 뒤 차가 좁은 비포장길로 들어가자 우린 “ 역시 뛰번이야... 이렇게 좁은 길로 들어가잖아..” 라며 웃었다.

이렇게 조금 들어가니 집들이 보였고 길도 그 앞에서 끝 나 있었다.

집 앞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색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분명 이곳에 살고 있는 소수 종족임에 틀림 없었다.  우리는 내려 보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한 마을 입구에는 가축 똥이 가득했고 그 주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여러 마리의 돼지들과 오리들이 집 안팎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돼지, 오리들이 귀여워 우리 아이들이 다가갔더니 이내 오리, 돼지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l

너무도 불결한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맨발로 돌아 다니는 아이들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우리는 이곳에 내려 말을 붙여 보았다. 낯선 사람의 방문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가까운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컴컴한 방 안에 몇 몇 남자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들과 몇 마디를 나누신 선교사님은 이들이 하니족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니족은 이곳에 살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이 와중에 집 밖에선 난리가 벌어졌다. 이 곳으로 들어온 차를 돌리려고 하다가 차 바퀴가 구덩이에 빠져 버린 것이다. 아무리 빠져 나가려고 해도 차는 공회전만 반복할 뿐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이사랑 선교사님, 뛰번과 함께 여러 번 밀어 보아도 꼼짝달싹 하지 않자 미끄러지는 바퀴 아래에 나무를 받쳐 보았다. 물론 하니족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 나무를 가져와야 했다. 운전사는 앞 바퀴 부위를 삽으로 파기도 했다. 그래도 차 바퀴는 더 깊은 웅덩이만 깎아갈 뿐이었다.

뛰번은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주변에서 구경하던 하니족 젊은이들에게 차를 좀 밀어달라고 요청했다. 몇 마디 말이 오고 간 뒤에 대여섯명의 젊은이들이 차를 밀기 시작했고 차는 궁덩이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니족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큰 문제가 해결되자 주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흙집에 짚을 지붕으로 엊어 놓은게 특이해 보인다고 말하니 한 번 가 보자고 하셨다.

조금 위에 보이는 집에 들어가보니 컴컴한 집 안에 켜진 TV 앞에서 십여명의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이 동네에서 TV 가 나오는 집이 이 곳 뿐이라고 했다. 베트남 어를 못 알아듣는 아이들도 있지만 함께 모여 TV를 통해 외부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모두가 TV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방문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인가 보다. 우리가 집 안으로 들어섰어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TV에 집중하고 있었고 몇 몇 청년들만 우리에게 농담조로 얘기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집중을 이끌어내고 싶었지만 좀처럼 우리 쪽으로 집중하지 않자 메고 있던 허리 가방에서 김을 하나 꺼냈다. 사탕이 있으면 좋겠지만 사탕은 가방에 하나 밖에 없었다.

김을 한 장 꺼내어 먹어 보라고 권했지만 모두 웃기만 할 뿐 아무도 선 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 중 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젊은 친구가 김을 받아 미심쩍은 표정으로 김을 입에 조금 넣더니... 이에 뱉아 내고 말았다. 모두 웃어 버리고 이내 또 산만하게 변해 버렸다.

이 때 할머니 등에 엎힌 아이가 하나 보였고 이 아이에게 하나 남은 사탕을 건넸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이 아이 얼굴에 피부병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쳐다 보니 정말 아이 얼굴에는 물집, 홍반 등이 보였다. 아마도 이 곳의 불결한 환경 때문에 생긴 세균성 질환이라 생각들었다.

가방 안에는 마침 마데카솔 연고가 하나 있었다. 아이를 업고 있는 할머니에게 이 연고를 발라 주라고 건넸다.

그랬더니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젊은 친구 하나가 선교사님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아까 김을 맛보고 뱉어내던 청년이었다.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막 죽어가고 있는 노인이 있다는데요..” 우리는 일단 그 청년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조금 더 위쪽에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불이 하나도 없는 컴컴한 집 안 침대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일단 맥박을 짚어 보려고 손목을 만졌는데.. 그 사람은 부스스 일어서더니 문쪽으로 움직였다. 우리에게 본인의 질병을 보여 주려고 밝은 곳으로 옮기는 것 같았다.

그의 문제는 온 몸의 피부였다. 모든 피부가 홍반, 발적, 팽진, 가피 등으로 덮여 있었다. 이게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연고나 약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었다.

노인의 몸을 살펴 본 뒤 가방 속에 있는 진통 소염제를 건네며 온 몸이 아프고 열이 날 때 먹으라고 건넸다. 노인은 자주 가렵다고 얘기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긁는다면 이차 감염의 우려가 있어 항생제 처방도 필요할 듯 했다. 가지고 있는 항생제 연고는 더 이상 없는데.. 곤란했다.

옆에 있는 선교사님께 아까 그 할머니 등에 업혀 있던 아이에게 준 연고를 사용하면 도움이 좀 될 듯한데..라고 말했더니 선교사님은 바로 옆에 와 있다면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그 할머니도 이 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김을 먹었던 그 청년도 이 집에 사는 이었고..

그 할머니에게서 연고를 받아 이 연고를 함께 바르라고 말했더니 선교사님이 옆에서 “좀 발라 주세요” 라고 얘기하셨다.

순간 발라 주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바를 지도 미지수이고 그들에게 뭔가 해주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데카솔 연고를 짜서 온 몸에 고루 발라 주었다. 진물도 나고 상처가 깊은 곳도 있었지만 이 연고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맘이 간절했다.

팔, 다리, 등, 목.. 온 몸에 다 바르고 나니 누군가 손을 씻으라고 물을 가지고 왔다. 손을 씻으려 하자 선교사님이 “같이 기도하고 씻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뭐.. 그렇게 하지.. 함께 기도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선교사님, 뚜언, 나 이렇게 세 사람이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도록.. 비록 진통소염제와 마데카솔 연고지만 이 사람의 몸이 깨끗해 지길 구했다.

기도가 끝나고 나니 아까 김을 뱉어 내던 그 청년의 태도는 180도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온순한 양처럼 우리 말에 반응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고 하나님이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얘기하지 받아 들였다.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물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싸’, 아들의 이름은 ‘아숭’ 이었다고 할머니 등에 업혀 있는 아기의 이름은 ‘추수’ 였다.

‘추수’? 아이의 이름을 듣자 난 하나님이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선교사님 역시 추수 라는 아이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시며 우리 안에 보여 주신 이 뜻밖의 일로 인해 감사드렸다.

차를 타고 마을에서 내려 오면서 오늘 만난 ‘추수’와 가족들로 인해 먼 훗날 이곳 하니족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참 기쁨으로 회복되길 구했다. 낙천적인 뚜엔은 그 피부병이 혹시 에이즈 는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선교사님과 내 맘은 오늘 보여 주신 하나님의 일, 이 민족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기에 너무도 기뻤다. 어쩌면 뚜엔의 낙천적인 생각이 우리 차가 하니족 마을 입구 구덩이에 빠지게 만들었고 이 귀한 일을 경험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므엉 훔 마을로 내려와 다른 팀과 합류한 뒤 므엉비로 내려가는 길에서 냇가를 발견하고 아이들이 물가에서 놀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시은이는 아침부터 물놀이를 언제하냐고 물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가에 내려오자 저 상류 쪽에 발가벗은 아이들이 열심히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내 가까워졌다. 자이족 아이들었다.

물을 발에 담그고 놀다가 모여든 자이족 아이들에게 사탕이라 가방도 건네고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어 주며(자신의 모습이 바로 나오는 사진을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을 축복했다.

나중에 물가를 떠나기 전에는 가지고 간 가방도 건넸는데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기억난다.

예상보다 생각이 길어져서 므엉 비 마을은 방문하지 않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자오족 마을을 잠시 방문했다. 바나나 나무도 울창한 마을이었다. 한 가정에 들어가서 벼를 발효시켜 술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은 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날아(좌석에 붙어 있는 시간이 적으니..) 밧삿을 통해 라오까이로 돌아왔다.

우리는 오늘 아침, 아무 것도 정해 놓지 않은 채 그저 므엉 훔 마을로 떠났었다. 도로가 너무 좋지 않아 아이들은 멀미를 했고 우리들은 좁은 도로에서 그저 잠시 차를 세웠을 뿐인데 그곳에 바로 므엉비 학교가 있었고 어린 영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므엉 훔 마을 외곽으로 가 보려던 우리 자동차는 마침 하니족 마을 입구에서 구덩이에 빠졌고... 우리는 하니족 마을로 들어가 추수 가족을 만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이 모든 일을 인도하셨음이... 두렵고 놀랍기만 하다.

                                                                                           2009.7.23 / 201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