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송 예배 이야기

우리는 출국하기 1주 전, 세 번의 파송 예배를 드렸습니다. 포항충진교회, 선린병원, 동산의료원에서 드린 파송예배는 우리 가정을 부르신 분을 묵상하는 시간이었고 많은 분들과 우리의 비전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결코 고립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 닥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힘과 위로를 얻게 됩니다.  

1. 포항충진교회 파송예배 (2010.6.27 주일)

주일 3부 예배를 파송 예배로 드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3부 뿐 아니라 2부 예배 시간 전에도 예배실 입구에 서서 한 분 한 분께 기도 자석 카드를 나눠 드리며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박원택 담임 목사님은 1, 2, 3부 예배 설교에서 충진교회 안수 집사를 선교사로 보내는 오늘의 파송 예배를 통해 온 교회가 자신이 서 있는 선교지에서 평신도였던 빌립 집사처럼 헌신하자고 촉구하셨습니다. 아울러 우리 가정을 통해 사마리아 성에 일어났던 놀라운 변화가 카자흐스탄 알마티 에 나타나 그 땅에 큰 기쁨이 있기를 축복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세세한 형편을 잘 아시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인지라 모두의 마음 깊숙이 와 닿았습니다.

설교가 마친 뒤 우리 가정은 소개를 받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주일학교에 참석 중이던 아이들도 이 시간에 맞춰 본당으로 올라왔습니다.  먼저 선교사 소개와 키맨 소개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충진교회와 우리 가정을 이어 줄 키맨 집사님은 신재천, 이미영 집사님이십니다. 우리는 서로 안고 꽃다발과 선물을 교환했습니다.

목사님이 파송장을 주셨고..

간단한 인삿말이 있은 뒤... 최초의 선교사를 안디옥 교회가 안수하고 보낸 것처럼 ...우리 가정을 위한 안수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당회원과 교역자, 선교사님들이 우리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함께  안수를 받았습니다.

어린이 성가대가 나와서 우리 가정을 축복했습니다. 형민이도 충진교회 어린이 성가대원이랍니다. 형민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형민이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날마다 함께 예배하고 뛰놀았던 친구들이 있는 이 곳을 떠나는 것이 너무도 막막하다고 형민이는 말합니다. 형민이는 파송 예배가 있기 몇 달 전부터 앞으로 있을 이별을 떠 올리며 혼자 눈물 흘리곤 했습니다.  소리 내지도 못하고 숨 죽여 흑흑 거리며 우는 형민이를 보며 선화는 늘 소리내어 울라며 안아 주곤 했습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이젠 더 이상 친구들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 흘렸던 형민이... 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맘도 아프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해 얼마나 너를 사랑하시는지  ... 오래전부터 널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크신 사랑 너의 가는 길

우리를 향해 손을 들어 축복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형민이도 울고 우리도 울었습니다.

파송 예배를 마친 뒤 목사님, 당회원, 선교위원, 키맨 집사님과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든든한 사랑과 후원이 있기에 우리 가정도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충진교회는 출석 교인 1,000 명의 작지 않은 교회입니다.

지난 2006년, 포항으로 이사온 뒤, 2006년 10월부터 충진교회 수요예배 찬양 인도를 맡았습니다. 선화와 저는 뉴질랜드로 떠나기 직전까지 수요예배 찬양팀에서 함께 섬겼습니다. 2007년 1년 동안 수요일마다 들었던 김종원 선교사님(YM)의 강의, 2007-2010년까지 5차례의 충진선교학교 스탭으로 섬긴 일들은,  선화가 포항에 와서 인터콥 훈련을 받았던 것, 제가 선린병원에서 근무를 했던 것과 함께 우리 가정이 선교사의 길을 걷는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충진선교학교를 통해 교회 안의 많은 분들과 카자흐스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으로 단기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우리의 비전을 나눌 수 있었고 이것은 실제로 하나씩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선린병원을 통한 선교여행과 수 많은 훈련들도 소중했지만... 만일 우리가 포항충진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에 정착했었더라면... 우린 아마도 이 길을 갈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자기 걸음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예배 전, 입구에서 기도 자석 카드를 나눠 주는 우리 부부를 찍어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에겐 포항충진교회 그 자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의 현장입니다.  

 

2. 선린병원 파송예배 (2010.6.29 화)

충진교회 파송 예배 이틀 뒤, 선린병원 파송 예배가 있었습니다. 선린병원은 우리 가정을 포항으로 이끌어 준 병원입니다. 2005년 하반기, 부산 좋은강안병원에서 근무하던 저는, 포항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이끄심을 느꼈고 2006년 3월, 이곳으로 근무지를 옮깁니다. 당시 선린병원은 해외 의료선교사로 나가기에 무척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병원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과장들이 선린병원을 통해 해외 선교지로 나가는 것을 보았고 매일 아침 예배 시간마다 파송 선교사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을  들으며 '선린병원 파송 선교사야말로 정말 행복한 선교사'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일반 지역 교회도 이렇게 자주 선교사의 이름을 부르며 아침마다 기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정작 선린병원에서 누린 가장 큰 기쁨은 해외 선교에 대한 그 어떤 지식이나 경험보다는, 찬양팀 안에서 하나님을 매일 예배하고 찬양 집회나 선린미션을 통해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갔던 일들을 통해 누렸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 누구보다 친밀하게 느꼈던 그 사랑과 친밀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직장 안에서 예배하는 일은 엄청난 영적 전쟁 이기에 찬양팀과 선교사는 어떤 면에선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실제 찬양 인도자로 섬기다 선교사로 헌신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죠.

선린병원에서 파송을 받는 기쁘고 감사한 날입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입니다.

사실 선린병원의 경영은 요즘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병원이 어렵기 때문에 더 이상 선교사를 보내지 말고 후원금도 줄이자는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믿음을 보이려고 합니다.

선린병원 선교위원장님의 기도시간입니다. 포항충진교회 안수 집사님이시기도 한 정현식 과장님입니다.  선린병원 파송 예배는 OM 선교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7년간 사역하셨던 박종상 원목 목사님이 설교해 주셨습니다.

설교 후, 박윤근 기획실장님이 선교사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 모두를 앞으로 나오도록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소개했습니다. 포항충진교회에서 어린이 선교학교를 3차례나 수료하고, 인터콥에서 어린이 비젼 스쿨을 수료하기도 했던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비전을 나눌 수 있는 선교사입니다.  막내 성은이가 인사하고 있네요.

인사 후 사역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질 않네요.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찬양팀으로 섬기면서 이 예배실에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했던 일들을 떠 올렸습니다. 부족하기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도 드렸습니다. 병원 경영이 어려운 때인데다...두고 떠나는 찬양팀원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기만 하지만... 선린병원 안에서의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젠  또 다른 모습으로 선린 병원과 동역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지워 버리고, 더 온유하고 여유를 가진 인격자의 모습으로 직원들과 함께 환자들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4년 4개월동안 매일 아침 이 예배실 왼쪽 맨 앞자리에서 그렇게 예배하고 찬양했던 그 시절은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제가 선린병원에서 너무 찬양팀에 편중된 활동을 했다며 투덜(?)거립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가더라도 몇 번이라도 다시 그럴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운명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있었으니까요.  4년간 찬양팀 안에서 너무도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았고,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열정과 기쁨으로 예배하고 공동체를 섬겼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 병원으로 돌아오더라도 예전과 똑같은 색깔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그 때의 기억은 언제나 제 맘을 따뜻하게 해 줄 겁니다. 설사 아무리 외로운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그 때를 기억하며 일어설 것입니다.

송국현 병원장님으로부터 파송장을 받는 시간입니다. 선린병원은 제가 뉴질랜드에서 훈련받는 기간 동안에도 계속 후원할 것을 약정합니다. 세상에 이런 병원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찬양팀원들이 파송의 노래를 부릅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죠 주님 그대를 너무 기뻐하시죠. 주의 집에 거하기를 사모하고 주를 항상 찬송하는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죠. 주님을 그대를 너무 사랑하시죠. 그대 섬김은 아름다운 찬송 그대 섬김은 향기로운 기도 그대가 밟는 땅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이름 높아질 거에요--"

언젠가 도성애 선생님께 이 찬양을 파송식때 하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역시 성애 선생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찬양팀에 늘 안정감을 주셨던 선생님, 참 고마웠습니다. 여러 가지로...

모두가 함께 기도합니다. 모든 부족함과 허물을 덮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이 시간... 우리 가정과 병원 가운데 흘러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삼남매는 회중석에 앉아 이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파송 예배 후 원목사님, 원장님, 과장님들과 함께...

사랑하는 찬양팀 식구들과 함께...

이날 특별한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맨 우측의 김정미 선교팀장님 옆에 있는 분이 방글라데시에서의 막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이한아 선교사님입니다. 함께 선린병원 찬양팀 안에서 섬기시다가 방글라데시 국제학교에서 MK 사역을 하고 막 귀국하신 분입니다. 이 날 선교사님으로부터 값진 선물도 받기도 했습니다. 이한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힘내세요^^ 파이팅! 그 옆에는 박리라 선생님이 보입니다.  박리라 선생님은 현재 선린병원 직원 신분이 아니랍니다. 1달 전 사직하고 결혼해서 현재는 창원에 살고 계시죠. 지난 4년간의 찬양팀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 분은 타고 난 목소리에다 탁월한 리더쉽으로 중탕팀을 지도하신,  열정과 실력을 모두 갖춘 멋진 분이시죠. 저희 가정의 파송식을 축복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열리는 선린병원 파송예배에 참석하신데다 축가 까지 함께 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던 김은숙 전도사님, 김필순 선생님이 보입니다.

파송식 때 우리 삼남매가 입고 있는 옷은 찬양팀에서 선물한 옷입니다. 미지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 우리는 이미 사랑의 빚을 한가득 지고 출발합니다.

3. 동산의료원 파송예배 (2010.6.30 수)

선린병원 파송 예배 다음 날에는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파송 예배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사역할 알마티 동산병원은 바로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이 10년 전 알마티에 세운 병원입니다. 동산의료원 역시 알마티 동산병원에서 사역할 선교사를 오랫동안 찾고 있었고, 이번에 저를 파송할 수 있어 무척 기뻐하고 있습니다.  

동산의료원 파송 예배 설교는 한국 인터서브 선교회 대표를 맡고 계시는 정마태 선교사님이 해 주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파송예배 전 날부터 정마태 선교사님 내외분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KTX를 타고 대구로 내려 오신 대표님과 함께 차도 마시고 아침 식사도 한 뒤 파송 예배 장소로 향했습니다. 함께 있었던 시간을 통해 인터서브 선교회 대표님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질 수 있어 무척 기쁘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파송예배가 있는 날 아침이네요. 가운데 앉으신 분이 동산의료원 대외협력처장이자 동산의료원 직원선교복지회장이신 손은익 교수님(신경외과)이십니다. 교수님은 이번에 제가 동산의료원에서도 함께 파송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도와 주신 분입니다. 제 문제로 선린병원에 오신 적도 있으시죠^^

교수님과 저 사이에 읹으신 분은 이 날 파송예배에서 축사를 해 주신 이건오 선린의료원장님이십니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포항에서 행정처장님과 함께 대구까지 오셨습니다. 이건오 원장님은 워낙 유명한 분이니까 아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에요.

동산병원은 한국 교회 초기인 1899년,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대구에 세운 병원입니다. 병원 설립 100년이 되던 해,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선교병원을 세울 장소를 물색했고 2000년에는 현재의 알마티 동산병원의 대지와 건물을 구입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간호사를 두 차례 보내긴 했지만... 이번처럼 의사 선교사를 보내기는 처음입니다.  이 날 동산의료원장님 이하 많은 보직 교수님들이 참석하셔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4. 대구에서

동산의료원 파송예배를 마친 우리는 점심 시간에 대구 동일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포항충진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오래 계시다 최근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신 신진수 목사님이 계신 곳입니다. 신진수 담임 목사님 외에도 우리 가정과 함께 포항 충진교회에서 교제했던 박남수, 이정일 목사님 가정이 이곳에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사진은 신진수 목사님과 박남수, 이정일 목사님의 사모님 두 분의 모습입니다. 이 날 박남수 목사님도 뵐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만남은 아이들간에 이뤄 졌습니다. 우리 삼남매와 이 아이들은 함께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던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길 아쉬워 하는 아이들은 언민,언지(이상 박남수 목사님 가정),하임, 라임(이상 이정일 목사님 가정) 이와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뉴질랜드로 온 지 2주... 사실 아이들이 지금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슨 계획을 가지고 떠나라고 하신 걸까요. 아브라함에게 미처 생각도 못했던 복을 약속하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분의 이야기는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201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