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이 현실이 될 때  (보안상의 문제가 제기되어 2010.3.13 내용 일부를 삭제하고 수정합니다.)

2006년 초, 포항 선린병원으로 올 때 우리 가정은 3년 뒤 장기 선교사로 나가기로 이미 결단한 상태였습니다. 포항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은 충진교회, 선린병원 공동체 속에서 우리 속의 예배를 회복시키시고 해외 선교라는 소명도 잊지 않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충진선교학교, YM 김종원 선교사의 수요특강, 인터콥 비전스쿨, 경북의료선교훈련원, 6차례의 해외단기선교여행, 교회 및 병원 파송 선교사들과의 교제)

 만 3년째가 되는 2009년으로 접어 들면서 우리는 기도하며 '장기 선교사' 라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주님 앞으로 가져 갔습니다. 당시 우리 부부가 가진 유일한 불일치점은 사역 기간에 대한 생각 뿐이었지만 그것 마저도 올해 들며 일치되면서 선교사 준비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장기 선교사로 나가기 더 어려워질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고 있으니까요.  

국제협력의사 시절 가졌던 선교지 경험으로 볼 때 삶을 나눌 팀의 존재가 절실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파송하고 돌볼 선교 단체를 정해야 했습니다. 지난 3 년간 충진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님들이 모두 WEC, INTERSERVE 선교사님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 두 단체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접근성과 자율성, 필요한 훈련 등을 감안할 때 인터서브(INTERSERVE) 선교회가 우리에게 가장 맞는 옷 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걸렸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2009년 3월 말, 우리는 한국 인터서브 선교회에 장기 선교사로 지원한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충진교회는 4기 선교학교 준비로, 선린병원은 새로 시작되는 선린미션과 월요찬양예배 준비로 무척 바쁜 나날 속에 허입 과정은 진행되었습니다.

돌아보면 5월-9월에는 사역지로 카자흐스탄과 알마티로 결정되는 과정(인터서브 현지에서 허입 결정), 10월에는 알마티 동산병원에서의 사역을 위해 동산의료원과 연결되는 과정,  ISK(한국인터서브) 국내 허입 과정, 11월-12월에는 선린의료원에 공식적으로 알리고 동산의료원과 조율하고 선교훈련지를 선정하는 과정이 우리 앞에 당면 과제로 다가왔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로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지요.

 이 속에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강력한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마치 나갈 때가 되었다는 듯 모든 문제를 놀라운 방법으로 단 번에 해결해 주시는 주님!  이 놀라움 속에서 두려움 없이 주님이 보여 주시는 곳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알마티 동산병원은 전혀 생각도 못했던 사역지였고, 후임 소화기 내과 의사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극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남지에 계신 부모님의 거처도 이렇게 빨리 찾게 될 줄 몰랐으며 동산의료원과 선린의료원이 우리 가정을 파송하기 위해 협약을 맺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난 12월 19일에는 10년 만에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홈 커밍데이가 열렸었는데.. 마치 우리 가정을 위해 준비된 일 같았습니다. 이 날 때문에 내년에 선교사로 나간다는 사실이 많은 선후배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 카자흐스탄 알마티 ?

우리는 인터서브에 장기 선교사로 지원하면서도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나가는 문제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은 국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 곳이 카자흐스탄보다 의료 환경이 열악하고 선교사도 적은 곳이니까요. 그래서 지난 5월에는 타지키스탄 유일의 선교병원 츠칼레스카 병원을 보기 위해 직접 선교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어디로 보내시려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곳을 우리가 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서브에 선교사 지원서를 보내면서도 사역 국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중앙 아시아' 라고만 적었습니다.  인터서브 현지(Central Asia Region) 배치 담당자에게 이에 대한 별도의 메일을 보낼 정도로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우리는 중앙 아시아 어디라도 한국인 의사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그리로 가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의존해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것도.. 반대로 가지 않는 것도.. 모두 다 문제가 있다고 느꼈기에... 그냥 인터서브 소속 중앙 아시아 배치 담당자가 연결해 주는 곳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 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중앙 아시아' 라고만 적고 그 아래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그외 CIS 국가, 러시아 내 자치 공화국  포함' 이라고 장황하게 적어 넣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터서브를 통해 우리 가정의 사역지를 보여 주시도록 내어 맡겼다는 사실은 이내 우리에게 큰 평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더라도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라고 하신 지역일 테니까요.

8월 2일, 지원 서류를 중앙 아시아 현지에 보낸 뒤 2달 가까이 기다렸습니다.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답장이 늦는다는 ISK 의 답변만 반복되던 중,  9월 28일에서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S*  라는 이름이 처음 거론되었습니다.  알마티 진단센터 같은 의료 기관에도 접촉했지만 여의치 않았다며.. 알마티에서 활동 중인 ' S*' 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연락이 온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거부하면 또 다른 곳을 찾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 메일을 받고 우리 부부는 많이 생각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알마티 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습니다. 알마티에는 이미 많은 선교사들이 일하고 있는데  의료기관도 아니고 ** 단체라니... 기왕 카자흐스탄으로 가야 한다면 아예 선교사가 적은 아스타나로, 그것도 NGO 보다는 제가 KOICA 협력의사 시절 근무했던 병원(아스타나 1외래병원)이나 단기선교여행으로 섬겼던 병원(데메우병원)으로 가는게 훨씬 나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아스타나에는 우리 가정이 오랫동안 섬겼던 아스타나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 인터서브 본부로부터 'S*' 의 책임자가 우리 가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며 메일을 보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알려준 메일 주소를 통해 연락했더니 정말 잘 아는 분이였습니다. 우리가 2001년 , 국제협력의사로 카자흐스탄에 처음 갔을 때 출석했던 알마티 모 교회에서 설교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카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하시며 'S*'에선 얼마든지 함께 사역할 수 있지만, **로는 장기적인 의료 사역에 한계가 있으니 알마티 동산병원과 접촉해 보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한국의 계명대 동산의료원에서 세운 알마티 동산병원에는 그 동안 계속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도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그 시점,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뭔가에 이끌려 혼자 병원 뒤 주택가를 걸으며 하나님이 알마티로 우리 가정을 보내시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 분이 아스타나로 우릴 보내시길 원하시면 언제든지 보내실 수 있다는 점과 지금은 우리를 알마티로 보내려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알마티 동산병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2009.10.3). 이 때까지 알마티 동산병원은 애당초 별로 마음에 없었습니다. 그 날 아침 묵상했던 요한복음의 말씀도 격려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날 밤.. 선화와 오랫동안 이 부분에 대해 나눈 뒤 우리 가정의 사역지를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Nur 에는 일단 함께 사역하기로 하고 장기적인 의료 사역을 할 수 있는 곳을 계속 찾기로 한다는 메일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사역지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동산의료원 원목실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지요.

2. 알마티 동산병원 ?

카자흐스탄 내 유일한 선교병원인 알마티 동산병원은 이전부터 알마티에서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던 계명대 동산의료원 직원선교회에 의해 2000년 8월, 알마티 라임베카 거리 57번지에 지금의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카자흐스탄 의료선교의 중추 기지가 되고자 시작한 사업이지만 개원 후 지금까지 두 차례의 간호사만 단기간 파견되었을 뿐, 장기 의료 선교사가 한 번도 파송되지 못해 지난 10년 간 선교병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현재도 병원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비원, 회계사, 현지 의사의 급여가 매월 지불되고 있지만, 반복되는 단기의료선교만 진행될 뿐 현지로 나가는 장기 의료선교사가 없어 당초 세웠던 선교적 비전을 실현시키는데 큰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직원선교회 내부적으로 개원 10주년을 맞는 내년을 기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시점에 동산의료원 직원선교회에 연락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박진영 선생님을 통해 계명대 동산의료원 원목실장님과 전화 통화를 몇 번 한 뒤, 동산의료원 측의 요청으로 10월 16일, 동산의료원을 직접 방문해서 직원선교회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과 비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더욱 발전되어 동산의료원 대외협력팀 손은익 교수님과 선린병원 기획조정실장 박윤근 과장님이 중심이 되어 양 병원이 알마티 동산병원 문제를 두고 서로 협력하는 협약을 체결하기로 하였고, 11월 13일 동산의료원 대외협력팀원들이 선린병원을 방문한 데 이어 12월 18일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양 병원간 양해각서가 체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동산의료원이 세운 알마티 동산병원에 선린병원의 임상 과장인 저를 파송하는 문제를 양 병원이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3년 봄, 알마티 동산병원 모습 / 당시 방문했던 계명대 동산의료원 선교팀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네요.

3. 현지 배치 담당자, 언어 및 선교 훈련

현 시점, 우리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인터서브 카자흐스탄 현지 배치 담당자가  보내 주는 조언들과 아이들에 관한 부분입니다.  매년 8월, 새 학년이 시작되는 카자흐스탄 학제를 감안해 우리 가정의 선교 훈련지도 정해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을 입학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은 텐샨 MK 학교는 정책상 비영어권 MK 들을 정원의 30%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서 카작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이 최소한의 언어(영어) 능력을 갖춰 학교 수업에 따라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역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영어 공부도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실지 언어 및 훈련 장소에 대한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4. 인터서브 선교회

 

 인터서브 선교회는 150년된 국제 선교단체입니다. 1852년 인도 제나나(여성 거주 구역)에 복음을 전하고자 영국 여의사들에 의해 시작된 단체로 100년간 제나나 성경의료선교회로 일하다가 BMMF를 거쳐 1986년부터 InterServe 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90년에 한국 인터서브가 조직되었죠. 현재 본부는 말레이시아에 있습니다.

인터서브 선교회는 부산의대기독학생회 선배인 양승봉(네팔), 이대영(예멘) 선교사님의 파송 선교단체이기도 해서 학창 시절부터 제겐 무척 익숙한 단체입니다. 작년에 충진교회에서 파송한 공영수 선교사님(인도) 역시 인터서브를 통해 나가셨기에 교회에서도 익숙한 단체입니다.

 지난 2009.11.23-26일까지 3박 4일간 경기도 포천 광림 세미나 하우스에서 올해 허입된 인터서브 장기 선교사 국내 오리엔테이션이 열렸습니다. 저희 가정도 허입된 선교사 신분으로 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포항에서 버스로 대구까지 간 뒤, KTX 로 서울에 도착해서는 지하철을 타고 의정부까지 가는 여행이었죠.

아이들을 위해서도 OM 선교회에서 발행한 제작한 MK용 교재를 가지고 별도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기에 아이들에게도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숙소는 대략 이랬습니다. 욕실 딸린 방 하나.. 창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이 창을 통해 하늘로 뻗은 길쭉한 나무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죠.

 

 주변은 낮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성은이는 6살이지만 내년에 학교 가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경험을 안고 타문화권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년에 7살이 되면 오빠, 언니가 다니는 동부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이번 국내 오리엔테이션에는 모두 5 가정이 참여했습니다. 아이들도 무척 많았죠. 선린병원의 박진영 선생님도 이번에 같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박진영 선생님은 12월까지 근무하시고 1월부터 GMTC 훈련을 받은 뒤 7월 경 방글라데시로 파송됩니다.

4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파트너(선교사를 파트너라 부릅니다)의 일생, 인터서브 조직, 멤버 케어, MK , 안식관, 재정 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그 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Cross Cultural Mission, Inter-culturalist, 인터서브 선교 사역의 실제(터어키 선교사님 가정)를 자세하고 세밀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무엇보다 인터서브 라는 단체와 특징, 장점 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서 대구에서 포항까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직 장기 선교사라는 미래의 일이 크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때 장기 선교사라는 말에 대해 두려움을 보였던 형민이도 올해 들어선 엄마, 아빠와 함께 장기 선교사로 떠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제 맘 한쪽도 찡해지지요.^^

선교지로 나가는데 결정에 있어서 마지막까지 힘들었던 것이 아이들의 문제였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 주는 이 문제 앞에서 순종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함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깊이 염려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경은 염려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염려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지난 7 개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숱한 난관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겠지만... 떠나는 그 시점까지 지금처럼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아무리 높고 거친 파도 속이라도 주님 안에서는 고요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6월 말까지 한국에 있고 7월 중에 파송을 받을 계획입니다.  

앞으로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언어 및 선교 훈련지 선정, 교회와 병원에서의 파송 결정, 후원자 확보, 영어 공부 등입니다. 떠나려고 생각해 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주변에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전에 누리지 못했던 평안함 속에서 순종하며 이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누리는 자만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맛보면서요.    2009.12.27

 

 2009.12.26 설악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