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 단기선교여행 2 3 일간의 진료 : 후잔드, 츠칼롭스크, 빨라스

이번 선린병원 타지키스탄 단기선교팀의 주된 활동은 당연히 진료입니다. 선린병원은 지난 4년 간 기아대책 타지키스탄 지부를 맡고 있는 이종분 선교사님(순복음)과 의료 단기선교로 동역해 오고 있습니다. 2003년 선린병원이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를 떠날 때 후잔드에서 우연히 만나서 동역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해마다 진료 지역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거의 일정한 지역에서 계속 동역하고 있습니다. 이번 진료 지역은 후잔드, 츠칼롭스크, 빨라스.  모두 후잔드에서 30분 내 위치한 곳입니다.

지도를 보면 타직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후잔드가 보입니다. 그 남동쪽에서 츠칼롭스크, 북동쪽에 빨라스가 위치합니다.  

 후잔드

우리 팀이 동역하는 이종분 선교사님의 거점이 바로 이 후잔드의 선교센터입니다. 2개의 동으로 이뤄진 이 건물은 타지키스탄 선교 초창기에 선교사님이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건물이라 합니다.(지금으로선 어림없는 일이죠.) 건물을 받자말자 바로 내부 수리를 해서 지금은 완전히 다른 건물로 변모되었습니다. 우리 팀도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는데 물 사정이 안 좋아 그렇지... 건물 내부는 깔끔합니다.

 우리 팀은 6월 6일 토요일 새벽 4시 경에 타지키스탄 후잔드에 도착해서 잠들었는데 3시간 만에 다시 일어나 아침 7시 반에 QT를 하고 8시 식사 후, 9시에 소그드 도(후잔드가 도청 소재지에요) 보건국에 우리가 왔음을 알리고 10시부터 후잔드 선교센터에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6일(토), 8일(월), 9일(화) 이렇게 3일간 후잔드, 츠칼롭스크, 빨라스에서 진료한 인원은 각각 170명, 184명, 207명으로  총 561명입니다.

 

 의료 선교의 목적은 지역 교회가 지역 주민들과 좀더 가까워져서 복음의 수용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의료 사역으로 이슬람 권 주민들과 교회 간의 담이 무너지고 주민들의 고정 관념이 깨지게 되지요. 후잔드 선교센터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실  진료라곤 하지만... 기본적인 문진과 약품을 나눠주고 치료 방침을 알려 주는 일이 다입니다.

 때로는 한국적인 상황과 맞지 않는 이곳에서 타직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진료 방침을 알려주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타직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곳은 한국에서 흔히 보는 기본 장비나 진료 인력을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MRI도 없고, 심장초음파 기계도 없고... 각 분야의 전문의도 없습니다. 이미 카자흐스탄 사역을 통해 우리 홈페이지에 그 실상을 공개한 바가 있지요?(여기를 클릭!) 타지키스탄은 카자흐스탄보다 더 열악하다고 보면 됩니다. 콩팥에 물혹이 있어도 수술해야 한다고 하고, 초음파 상 쓸개 모양이 조금만 이상해도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는 의료 현장이죠.

 이곳 후잔센터 에는 지역 교회인 선민순복음교회 예배당이 2층에 있고 부설 신학교도 갖춰져 있습니다. 바로 이 신학교를 통해 많은 타직인 목회자들이 양성되고 있는데 이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이 후잔드를 중심으로 원근각처에서 20 여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 사역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키르키즈 지역까지 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진료하고 있는 동안에도 많은 신학생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거나 약품을 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기도해 주고 있었습니다. 후잔드에서는 바로 이런 동역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습니다.

선린병원 의료팀이 와 있는 1주일 동안은 이곳 현지인 사역자들에게도 특별한 기간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교회 일을 잠시 미뤄 두고 모두가 진료팀을 따라 다니며 진료 준비와 진료 과정을 도와 줘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지금껏 이렇게 진료팀을 잘 돕는 현지팀을 본 적이 없습니다. 늘 2-30명의 스탭들이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 다니면 도왔습니다. 진료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진료실을 셋팅해 놓고 기다렸고, 진료가 마치면 어김없이 뒷정리를 맡았습니다. 이렇게 진료 전, 후를 맡아 도와 주니 진료 자체도 힘이 덜 들고 즐거웠습니다.

 후잔드 선교센터 마당에 심겨져 있는 살구 나무입니다. 6월은 이곳에선 살구의 계절이죠. 이곳 말로 '아브리코스' 라고 부르는데 정말 달고 맛있습니다. 중앙 아시아는 강렬한 태양과 고온으로 과일이 달고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죠.

 포도도 유명합니다. 중국 신장의 투르판 일대도 포도로 유명하지요. 이렇게 투르키스탄 전역에서 달고 맛있는 포도가 열립니다. 씨 없는 작은 포도도 있지요.  

 카자흐스탄에서 의료 사역을 하는 동안에는 이렇게 강력한 현지인 사역자들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선교사님이 순복음 교단의 선교사님이라서 그런지 몰라도..이곳 사역자들도 복음에 대한 열정이 무척 뜨거워서 찬송이나 기도할 때, 또 이렇게 함께 의료 사역을 할 때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진료를 해 보면 이곳 타직 사람들도 카작이나 우즈벡 사람들보다 훨씬 순박하고 순수하지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현지인 지도자들이 있는데 후잔드에 계속 단기팀이 와야 하나요?"

하지만.. 그렇습니다. 타직 땅은 아직 미전도종족 지역입니다. 기독교인은 1% 미만이고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64% 나 됩니다. 한 번이라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36% 정도인데 이 중 자기 종족에게서 들어본 경우는 3%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아직도 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들어 와야 하고, 이곳 교회가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때까지 기도하며 섬겨야 하는 곳입니다. 이들이 자립해서 자기 민족을 책임질 때가 되면 주님은 선교사들을 떠나게 하실 것입니다.

후잔드 선교센터를 졸업한 많은 현지인 사역자들은 그들의 생활비를 이종분 선교사님께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선 교회가 자립한다는 게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지인 사역자들을 양육하고 영적 필요를 채우는 것도 선교사님의 몫이죠. 우리가 처음 도착하던 날, 국경에서 후잔드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선교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곳 현지인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다보면 때로는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영감을 주님께서 주실 때가 있어요. 아마도 이 곳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전할 필요가 없을 때까지 이곳에서 사역할 것 같아요."

6월 6일 토요일, 이 날 저는 후잔드 선교센터에서 진료하면서 모든 환자들에게 어떤 민족에 속하는지 다 물어 보았습니다. 제 눈으로는 카작, 우즈벡, 타직인이 잘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만나다 보니 오랫동안 제가 만났던 카작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는 걸 차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인도-유럽 족 혈통이 많이 섞여 있는 것 같더군요.  

이 날 진료한 인원이 약 170명 정도인데 그들의 민족 분포를 보니까...타직, 우즈벡,러시아,고려인,따따르,끼르끼즈 인 순서였습니다. 모두 6개 민족이었습니다. 카작인은 한 명도 없었고 고려인도 적었습니다. 대부분 (60%)이 타직인이었고 우즈벡 사람(30%)도 좀 만났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타직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비록 진료라는 형태로 만났지만 사람을 만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츠칼롭스크

 6월 10일 월요일 아침, 우리는 후잔드에서 남동쪽으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츠칼롭스크 시(市)로 갔습니다. 후잔드를 빠져 나오는 길에서 후잔드의 외곽 지형을 볼 수 있었죠. 과수원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특히 살구나무 과수원, 포도나무 과수원이 많았습니다. 살구나무 과수원은 퍽 이색적이었죠. 또 양쪽으로 멀리 뻗은 구름 아래서, 만년설에 덮인 산맥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히말라야 조산대가 이어지는 지역이니까요.

 외곽 도로를 따라 30 여분 을 달리고 나니 츠칼롭스크 지역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예전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군사도시였다고 합니다. 이런 도시들은 보안상 지도에도 표시를 안 하고 대부분의 생필품을 따로 공급했다고 합니다. 카자흐스탄에도 이런 도시가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스테프나고르스크  ' 죠. 우리 홈페이지에 소개한 적 있어요. (여기를 클릭!)

이곳 츠칼롭스크 시장은 예전부터 이종분 선교사님과 친분이 두터워서 스스로 자신이 선교사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입니다. 한국에도 여러 번 왔다고 하고 선린병원에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팀과 저녁을 함께 하기도 했지요.

 츠칼롭스크 교회가 있는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 1층을 수리해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진료가 바로 이 츠칼롭스크 교회에서 이뤄집니다. 지금까지는 츠칼롭스크 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는 이 곳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구 소련 지역에선 이렇게 아파트 1층을 상가나 사무실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선교사님 말로는 이 아파트는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 숙소였다고 합니다.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홀입니다.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래와 같은 예배당이 나타나지요.

 앞에 십자가가 걸려 있는 게 보이시죠? 츠칼롭스크 교회의 예배 처소로 사용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접수를 했고 밝은 빛이 흘러 나오는 문 저편에 진료실을 마련했습니다.

 바로 이곳이 진료실이죠. 흰 첫으로 구역을 분리해서 내과, 외과, 소아과 진료실을 차렸습니다.

 

 이곳은 강호석 과장님이 진료하시는 소아과입니다. 타지키스탄에는 얼마나 어린이 환자가 많은지 특히 신경계 환자와 마비 환자가 많아 강호석 과장님이 오신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과장님이 원래 소아 신경계 질환이 전문 분야시거든요. 게다가 함께 온 팀원 중 물리치료사 이민형 선생님이 계셔서 환아의 부모들에게 아이의 팔, 다리가 더 이상 굳어지지 않도록 어떻게 재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어 무척 다행스러웠습니다.

 

 츠칼롭스크 교회가 있는 아파트 문에서 앞을 내다보면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산이 있는 시골 마을이죠. 그래도 이 작은 도시에 호텔도 있고 인공 호수도 있었습니다.  보리 비슷한 갈대 같은 풀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자동 카메라지만 한 장 찰칵!

 

구 소련 지역에서 진료를 해 보면 환자들이 자신의 차트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료 기관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병력, 검사 결과, 처방 등을 적은 서류를 들고 다니죠. 워낙 낡은 데다  갈겨 쓴 글씨라 알아 보기도 힘들어 큰 도움은 되지 않지요.

 츠칼롭스크에서도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진료 하러 온 이유는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지요. 이곳에서도 제가 진료한 모든 사람들에게 종족 이름을 물었습니다.  우즈벡,타직,러시아,우루무드,우크라이나 순이었습니다. 키르키즈 사람은 하나도 없더군요. 카작 사람도 역시 하나도 없고...

 아이들은 어디에 가도 많습니다.  겨울에는 전기가 안 들어오고 먹을 게 풍족하지 않은 산지 국가이지만 유달리 예쁜 아이들이 많은 이곳은 무척 정이 많이 가는 곳입니다.

 진료를 끝내고 츠칼롭스크 교회 건물 앞에서 추억을 남겼습니다. 사실 이런 선교 보고에는 팀원 사진보다는 현지인 사진이 많은 게 훨씬 더 좋은 법이죠. 그래서 팀원 모습을 많이 올리진 않지만... 이번 팀원들은 정말 best였습니다.

 

 빨라스

 6월 9일 화요일에는 후잔드에서 북동쪽은 30분 정도 떨어진 빨라스 란 마을로 진료를 갔습니다. 이곳은 현재 교회가 없는 지역이지만 이런 진료 활동을 통해 선교사님과 현지인 사역자들이 장기적으로 지역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빨라스 진료는 이곳 보건 진료소에서 이뤄졌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보건, 교육 같은 부분은 마을 단위마다 철저하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구 소련 시스템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이곳에도 허름하고 낡은 보건진료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료할 보건 진료소 입구의 모습입니다. 도착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료소에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이곳이 츠칼롭스크 시 보건소의 지소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진료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남녀 노소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진료소는 지금까지 진료 장소로 사용했던 그 어떤 건물보다 작고 협소했습니다. 복도에서 접수, 검사실을 꾸리고 각 방마다 진료실을 차렸고 큰 방에는 소아과 와 약국을 설치했습니다.

 통역을 맡은 우메드 목사님. 오늘은 검사 파트의 통역을 맡으셨네요.

 이곳은 거의 타직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어디 사람이냐고 물을 때 '파미르 사람' 이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파미르 고원 안에 사는 어떤 사람들은 명목상 타지키스탄 국민이라 하더라도 타직 말과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수 백년 동안 다른 삶을 영위해 왔다고 합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타직 사람들은 고대 소그드, 박트리아 인들의 후예이고 인도-유럽 족의 혈통인 페르시아 인들입니다. 수 백년을 지나오며 투르크인, 몽골인들과 혈통이 섞이긴 했지만 제가 지금껏 만나본 카작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라크 민족은 메대 족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 페르시아인들은 인도-이란(유럽)족에서 기원하고 있는데 코카서스 인종으로 현재 유럽 사람들과 같은 인종입니다.

 타직 아낙네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모두 비슷한 것도 눈길을 끕니다. 후잔드 도심에서는 간혹 이런 스타일의 옷이 아닌 현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니는 젊은 여자들이 보이긴 했지만, 외곽 마을에서는 여자들이 거의 다 이런 원피스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걸 뭐라 부르는지 물었더니 '앗 라스' 라고 얘기하더군요. 나중에 시장에서 이런 옷을 사려고 나갔더니 비슷한 옷은 잘 보이지 않더군요. 물어 보니 다들 옷감을 사서 집에서 만들어 입는다고 합니다. 시장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국적없는 원피스 들 뿐이었습니다.

 이번 진료 기간 내내 수고하신 소아과 강호석 과장님 모습입니다. 사실 이곳 환자들은 좀 불쌍합니다. 국가가 힘이 없고 여력이 없다 보니 보건, 의료 분야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고 의료 인력의 수준이나 진료 장비도 한국에 비해 훨씬 낙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한국의 전문의들이 이곳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진료를 하는 내내 이곳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필요없는 수술을 권유하는 이곳의 의료 현실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고 삶은 버겁기만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그 분의 땅입니다. 그리고 이 곳은, 그 분의 잃어 버린 영혼들로 인해 여전히 우리가 섬겨야 할 곳이지요.                                                      200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