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 단기선교여행 1 타직인 그들은 누구인가?

2009.6.5-13 타지키스탄 후잔 일대에서 선린의료원 팀(Tdco, CEK포함) 의 일원으로 의료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카자흐스탄 국제협력의사(2001-2003) 이후 매년 카자흐스탄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중앙 아시아의 역사, 인종,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죠. 실크로드, 중앙 아시아 문명사에 있어 카자흐스탄은 거의 빈 깡통이나 마찬가지라면.. 실크로드 중심 도시인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안디잔, 페르가나 등이 있는 우즈베키스탄과 중앙 아시아의 페르시아계 민족이 사는 나라, 타지키스탄 은 보물 창고와 같은 지역입니다.  

금번 타지키스탄 의료선교여행은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를 경유할 수도 있어 중앙 아시아를 항상 생각하던 제겐 좋은 기회였습니다. 우즈벡 사람, 타직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으니까요.

타쉬켄트에서 후잔드까지는 버스로 달리면 5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중간에 타직 - 우즈벡 국경선이 있기에 통관 절차를 따지면 따지면 6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구글 어스 같은 위성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처음 방문하는 곳의 지형을 알 수 있어 좋습니다. 타쉬켄트에서 후잔드로 들어오는 길은 거의 평지이나 사이에 놓인 산줄기를 피해 살짝 돌아야 하지요.

후잔드 오른쪽에 있는 분지가 보이시나요?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페르가나 분지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지역인 이곳은 중앙 아시아에서도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죠. 우즈베키스탄의 대우 자동차 공장도 이곳 안디잔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 상인들은 서쪽으로 가기 위해 이 페르가나 분지를 자주 이용했는데 파미르 고원으로 이어지는 다른 고산 지대보다 이곳이 비교적 넘어 가기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실크로드 길은 이곳을 지나 사마르칸트로 향했습니다.

조금 확대해서 본 사진입니다. 흰색으로 표시된 이 동네 국경선 참 복잡하지요? 후잔드 옆의 갈라꿈 호수까지가 타지키스탄 영토이고, 그 옆 페르가나 분지는 우즈베키스탄 영토입니다.

 갈라꿈 호수는 시르다리야 강물을 막아 만든 인공 호수로 이곳에서 수력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타지키스탄의 전력 사정은 좋지 못합니다. 여름에는 그럭 저럭 전기가 들어오는데 겨울에는 후잔드는 물론 수도 두샨베를 포함한 전 국토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싼 가격에 전기를 사 오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서민들은 전기 공급이 되지 않아 추운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타지키스탄은 어떤 곳일까? 선교여행 중 정탐여행을 떠날 때 묻는 3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  

이번 타직 단기선교여행의 여러 얘기들을 나누기 전에 그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까 합니다.  

 타직인들은 제가 지금까지 봤던 카작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카작인들은 큽착 그룹의 부족을 근간으로 해서 튀르크계와 몽골계가 섞인 민족이라  한국 사람이랑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지키스탄은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페르시아 창을 구성하는 페르시아 계(이란계)입니다. 물론 1천 5백년을 지나 오며 튀르크계와 혼혈이 되긴 했지만 확실히 카작 사람과는 다른 유럽 느낌이 나는 사람들입니다.  우즈벡 족  혈통 속에도 소그드인 같은 인도, 이란계 혈통이 섞여 있지요.

타직 족의 조상은 박트리아 인과 소그드 인으로 봅니다. 박트리아는 북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고대 왕국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타지키스탄에 있는 타직 족보다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타직 족 숫자가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타지크' 란 본래 아랍의 일부 부족을 일컫는 중세 페르시아 어입니다. 7-8세기 경 중앙 아시아 튀르크 인들이 이들을 '타지크' 라 불렀습니다.    

 

후잔에 있는 역사 박물관입니다. 타지키스탄에는 2개의 주와 1개의 자치 주가 있는데 북쪽 소그드 주의 중심 도시가 바로 이곳 후잔드입니다. 이곳에는 소그드 주의 역사 박물관이 세워져 있지요. 우리는 하루 200 여명 이상 진료를 하던 일정의 끝 무렵에, 이 역사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AD 5세기 경 페르시아 근처 지형

 영어로 쓰인 글씨 보이시죠? 'Historical Museum of Sughd region" ..  소그드를 수그드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측 지도는 5세기 경 페르시아 지역 모습입니다. 소그디아나 와 박트리아 가 보이시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지금의 타직 민족의 조상들입니다.

소그디아나 즉 소그드 지역은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 양 강 상류의 중간을 동서로 흐르는 제르파샨 강 유역의 옛 이름입니다. 이란인의 고대 문명이며 페르시아 제국(아르케메네스 제국) 의 속주인 소그디아나는  비록 정치적으로 통합되지는 못하였지만 사마르칸트 가 중심 지역이었죠.

이 지도를 보시면 시르다리야 강  바로 아래에 제라프샨 강이 보이시죠?  바로 이 강 유역을 소그디아나 라고 불렀습니다. 10세기 아라비아의 지리학자 무카디시는 소그디아나를 "신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라고 불렀죠.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대부분 속해 있고 북서 일부 지역이 타지키스탄에 속해 있습니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의 도시 국가가 이 곳에 세워졌고 후잔드도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소그드 주 역사 박물관 입구에 있는 조형물입니다. 늑대 젖을 먹고 있는 아이...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이 얘기가 왜 이곳에 세워져 있는지 좀 의아했습니다.

 그럼 다시 이 역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사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는 독일 대사가 방문한다고 들어가질 못했습니다. 2시간 후에 이 곳에 다시 와서야 들어갈 수 있었지요.  

박물관 직원이 친절하게 박물관 지하로 안내했습니다. 아마 연대기적 순서로 설명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지하에 있는 큰 방에 들어가서 우리가 만난 유적들은 고대 페르시아 유적들이었습니다.

사실 고대 중앙아시아의 원주민들은 대개 페르시아인들과 같은 이란계 민족이었습니다. 제라브샨 Zeravshan 계곡의 고대  소그드인(sogdian)이나 아무다리야 강 하류에 거주했던 하레즘(kwarezm) 사람들이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중앙 아시아인들이죠. 이들은 모두 이란 계통의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소그드인들이나 하레즘 사람들은 고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Darius, BC 522-486) 의 비문에 페르시아 제국의 속민으로 묘사되어 있고 페르시아 제국이 원정을 나갈 때 함께 참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레즘(Kwarezm)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때 정복되었으나 소그드 지역은 페르시아의 통치 하에 남아 알렉산더 제국에 대항하여 투쟁했다고 알려지지요.

이 박물관 지하에서 전시된 이런 유적들은 이 지역에서 발굴된 고대 유적들이 페르시아 문명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아무다리야 강(옥서스 강) 상류의 고대 박트리아는 기원전 2000 년 전부터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고고학 복합체(BMAC) 또는 옥서스 문명으로 알려진 고대 문명에 포함됩니다. 박트리아는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령의 하나가 되고 이후 알렉산더 제국에 병합되지요.

 소그드, 박트리아 이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후잔드라는 도시도 2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인데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도시가 함락당하고 도시명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소그드 역사 박물관 지하 1층 한 쪽 벽면은 알렉산더의 일생을 나타내는 벽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알렉산더의 출생, 알렉산더가 후잔드를 공격하는 장면, 알렉산더의 죽음의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이룬 대 제국에는 박트리아(중국에서는 대하 라고 불렸죠) 와 소그디아나 지역도 포함하고 있음을 이 지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그의 제국은 4개의 나라로 분할되는데, 중앙 아시아의 상당 부분이 시리아에 거점을 둔 셀레우코스 왕국(BC 312-64) 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어 박트리아, 소그드 지역 역시 셀레우코스 왕조의 일부가 됩니다.  마케도니아 인들은 동 이란 지역에 많은 그리스 마을을 세우는데 그리스에서 멀리 떨어진 박트리아에 이렇게 많은 그리스인들을 이주시킨 것은 페르시아 왕의 신임을 얻지 못한 그리스인을 제국의 가장 먼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치 스탈린이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 아시아로 유배시킨 것처럼..

BC 3세기 경, 셀레코니우스 왕조는 원주민들의 봉기로 중앙 아시아 서부 지역에서 밀려나게 되었으며 이 지역은 카스피해 남동쪽에 위치한 고대 이란족 유목민들의 국가인 파르티야(Parthia) 왕국(BC 247-226) 이 계승하게 됩니다.

한편 셀레우코스 왕조가 프톨레미우스 왕조의 공격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박트리아는 총독에게 독립을 선언하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을 창건하게 됩니다.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국은 BC 140-30 년까지 100 여년 동안이나 중앙 아시아 원주민 국가 파르티아 왕국의 공격을 막아내고 존립하였고 이후 북서 인도에서 발흥한 이란계 쿠샨(Kushan) 왕조에 의해 멸망하게 되지요.

그레코 박트리아 왕국 당시 사용되던 금화입니다.

BC 2세기부터 AD 4세기 중엽까지 북서부 인도와 중앙 아시아 일부를 통치한 쿠샨 왕조의 통치 기간은 중앙 아시아의 문화,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간다라 미술로 유명하죠. AD 4세기에는 쿠샨 왕조의 통치를 받던 백훈족(White Hun), 터훈족(Ak Hun) 이라 불리는 이란계 국가 에프탈리테(Ephthalite)가 박트리아 지역을 공격하여 쿠샨 왕조를 격퇴시키고 이 지역을 지배합니다.

 이 지도는 돌궐이 중앙 아시아의 패권을 잡기 전이라 유연과 철륵 부족 연합체가 보입니다. 천산 산맥 왼쪽에 '애프탈' 이라고 적힌 게 보이시죠. 바로 에프탈리테 입니다.

에프탈리테는 이후 세미리체(Semirechye) 지역에서 원정한 돌궐 군대에 의해 붕괴되어 흑해에서 만주 지방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장악한 고대 튀르크 제국인 돌궐 제국에 복속되지요. 바로 이 때부터 중앙 아시아 서부(서 투르키스탄)에는 에프탈리테 등 이란계 원주민을 기저층으로 한 튀르크 민족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게 됩니다. AD 6세기 말, 돌궐 제국은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리되었고 서 돌궐 즉, 중앙 아시아 지역은 아랍 이슬람에 정복됩니다.

한 편, 다리우스 대제 때에 새겨진 비스툰 비문(기원전 519년)에도 언급되는 소그드인 들은 파미르 산맥 서쪽의 건조지대, 즉 북쪽의 시르다리아 강과 남쪽의 아무다리아 강 사이에 점재하는 오아시스 도시들에 살던 정착민들로,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수공업과 상업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멀리 중국이나 인도 혹은 서아시아 각지로 나가서 국제무역에도 종사했습니다.

이들은 중국 문헌에서도 '호상' 이라는 이름으로 후한 대 즉 1세기 이후  중국 측 문헌에  “장사하러 오는 호상들이 매일 변경에 온다”는 기사로 나타납니다.

          낙타 위의 소그드 인

                              소그드 인들의 교역 네트워크와 거주지 분포

1세기 당시에는 소그드인들은 쿠샨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중앙아시아~인도~중국을 연결하는 교역로를 장악했던 인도나 박트리아 출신 상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아직 활동의 정도는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세기에 들어오면서 북방에서 히온(Chion)이라든가 에프탈(Hephtal)과 같은 유목민이 대거 남하하고 약탈하면서 오늘날 아프간과 인도 서북부 지방이 황폐해졌고 종래 인도와 연결되는 교역망이 파괴되었고 이 혼란으로 틈타 국제무역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소그드 상인들입니다.
 
장사라고 하면 다른 민족에게 뒤지지 않는 중국인의 눈에도 이 소그드인의 상재(商才)는 거의 천부적일 정도로 비쳤던 모양이다. ‘신당서(新唐書)’라는 역사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아이가 태어나면 사탕을 물리고 손에는 아교를 잡게 하는데, 이유인즉 그가 커서 달콤한 말을 하고 돈을 손에 쥐면 딱 달라붙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법을 익히고 장사에 능하며 이익을 탐한다. 남자 나이 스물이 되면 이웃나라로 가는데,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아니 가는 곳이 없다.” 그러다 보니 소그드 어는 7-8세기, 중앙 아시아의 국제 공통어가 되었습니다.

 박트리아, 소그드... 이 나라들은 모두 타직 민족의 조상들입니다.

 BC  2세기 서역을 개척한 장건이 여행한 경로입니다. 대완은 타쉬켄트 근처의 나라이고 대하는 박트리아입니다. 안식은 파르티아를 일컫는 말이죠.

애프탈리테는 돌궐에게 패망합니다.

 6-7 세기 초 돌궐제국의 모습입니다. 부하라 일대가 돌궐 제국에 들어 와 있는게 보이시죠? 소그드와 박트리아도 서돌궐에 포함됩니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고구려 시대였죠. 고구려는 돌궐과 동맹을 맺고 수, 당 나라와 대항했었죠. 고구려는 돌궐 뿐 아니라 중앙 아시아 오아시스 국가들과 적극적 외교 활동을 펼쳤는데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그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7세기 소그드 아흐르만 왕의 궁전 벽화인 아프라시압 벽화는 1965년에 발견되었습니다. 3년간에 걸쳐 발굴된 '사신도(使臣圖)'에는 단아한 체구에 새 깃털 같은 것을 두 개 꽂은 관(조우관)을 쓰고 M자형 장식을 단 칼집에 들어있는 긴 환두도(環頭刀)를 찬 두 명의 고구려 사신이 중국·유럽·아랍 사신들과 함께 서 있습니다. 그림의 가장 우측에 서 있는 두 사람이죠. 이 벽화는 바르흐만 왕 재위기(650∼670년)에 제작됐으며 당시 나·당 연합군의 압력을 받던 고구려가 당을 견제하기 위해 초원길을 따라 멀고 먼 서역으로 사신을 파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천 Km 떨어진 소그드 지방과 우리와의 오래된 인연을 알 수 있는 벽화죠.

 타지키스탄의 후잔드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 광장 한 쪽에 커다란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AD 8세기 초, 아랍인들은 호라산(Khorasan) 총통 이븐 무슬림(Ibn Muslim)의 지휘 하에 중앙 아시아에 진입합니다. 705년부터 715년에 걸쳐 부하라, 사마르칸트에서 시르다리야 일대를 지나 페르가나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아랍군 야전 사령관 이븐 무슬림은 하레즘의 역사와 언어를 알고 있는 모든 학자를 남김없이 죽였고 이로써 중앙 아시아 원주민들에겐 이슬람 이전 역사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반 세기 동안 돌궐(튀르크) 부족들의 강한 저항에 있었으나 결국 중앙 아시아는 아랍 영향권에 들 게 되었고 이슬람과 더불어 아랍어를 전파했습니다.

8세기 초, 유라시아 판세를 그린 지도입니다. 아랍 세계가 당 나라 영향권에 있던 소그드 지방의 오아시스 도시를 공격했을 때, 소그드 지역의 왕들은 당나라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는 국내 사정으로 그들을 돕질 못했지요.

아랍 세력의 중앙 아시아 공략이 시도되고 있을 때, 중국 당나라에서는 713년 현종이 즉위하여 서역으로의 팽창 정책을 추진합니다. 당시 돌궐 제국이 쇠퇴해진 틈을 타서 아랍과 중국의 양대 세력이 각축을 벌이게 된 셈이죠. 745 돌궐 제국이 붕괴되고 위구르 왕국이 건립될 무렵, 747년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 장군의 지휘 아래 파미르 고원으로 원정군을 보내 토번을 견제하게 합니다.

고선지 장군은 750년 쿠차에서 석국으로 들어가 왕을 사로 잡고 약탈하게 되는데 석국의 왕자가 당나라 군대의 무자비한 처사에 분개하여 당시 사마르칸트에까지 진출한 아랍 사령관 아부 무슬림에게 중국에 대한 응징을 요청하게 되지요. 그 결과 당시 압바스 왕조는 지야드 이븐 살리흐에게 대군을 주어 당나라 군을 공략하게 하였고, 드디어 탈레스 평원에서 751년 8월 더운 여름에 아랍, 돌궐, 카를룩, 티베트 동맹군과 중국-위구르 연합군이 세계사에서 중요한  결전을 치루게 됩니다. 탈레스 전투는 중국군의 패배로 끝났고 이로 인해 중국은 파미르 고원 이서 지역인 서투르키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 이후 중국의 영향력은 완전히 소실되게 죕니다.  반면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의 아랍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어 이슬람교가 중앙 아시아 튀르크계 부족들에게 전해지고 거대한 튀르크 이슬람 세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아울러 중국 서북부 위구르 인들마저 이슬람화됩니다.

 후잔드에 있는 소그드 역사 박물관 1층에는 이 지역 출신의 이슬람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자연과학자이자 철학가인 '아부 알리 이븐 시노' .. 그 당시부터 천문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울릉벡이 만들었다는 천문대 까지..  

하지만 이 시기 아랍어가 공식 언어이면서 학문 언어가 되는 반면 현지인들은 그들의 언어 - 이란계 언어나 튀르크계 언어 - 사용을 고집했고 아랍인들은 중앙 아시아 현지 주민들의 인종 구성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소그드 역사 박물관에 있는 아랍어 서적입니다.

 한 편, AD 9세기.. 위구르 제국이 무너질 무렵, 이란계 사만(Saman) 왕조(AD 874-999) 가 부하라(Bukhara) 지역을 중심으로 발흥하여 이란과 중앙 아시아를 연결하였습니다. '두 강(아무다이야와 시르다리야) 사이' 라는 뜻을 가진 마베란나흐르(Maerannahr) 즉, 트란스속시아나 지역을 영토로 하는 사만 왕조는 중앙 아시아의 인종적, 문화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데 사만 왕조 통치 기간에 타직-페르시아계 언어가 널리 퍼지고 타직족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후잔드의 역사 박물관에 있는 사만 왕조의 판도입니다. 이번에 가서 얘기해 보니 타직 사람들은 이 사만 왕조를 타직 민족 최초의 독립 국가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만 왕조의 첫 왕 이름이 '서머니' 이고 현재 타직스탄의 화폐 단위도 바로 '서머니' 인 걸 보면... 사만 왕조는 확실히 타직 민족의 자부심인 것 같습니다.

 AD 10-11 세기는 중앙 아시아에 봉건주의적 질서가 꽤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였고 이 지역에서 민족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 시점입니다. AD 9-10  세기는 중앙 아시아 민족들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타직(Tajik)  민족이 형성되었습니다. 사만 왕조 내에서 타직 계통의 언어가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직 영토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우즈벡 민족 집단이 형성됩니다. 우즈벡인들은 하레즘, 소그드인, 마사게트인, 사카인 등 중앙 아시아 고대 이란계 원주민들을 기저층으로 하여 튀르크 족이 발전하여 형성된 민족으로 튀르크 족과 이란계 원주민들과의 인종적, 문화적 상호 혼합은 11-12세기 동안에 가속되었고 후에 우즈벡인이라 불리게 된 민족의 원형도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입니다.

10세기 말 사만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자방 세력들이 발흥하여 중앙 권력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면서 왕국은 분열되어 갔죠. 결국 사만 왕조는 튀르크 계 신흥 이슬람 제국인 카라한조와 가즈나 조에 의해 멸망되는데 이렇게 이렇게 이란 민족 세계와 인접한 지역에 두 개의 튀르크 제국이 형성됨으로써 페르시아 제국 내 튀르크 족 진출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세기 중엽 셀주크 제국이 형성되면서부터는 아주 대대적으로 이뤄지게 되죠). 이 때부터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화, 튀르크화가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튀르크인이 이슬람 정권의 고용 무사(맘투크) 가 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이슬람의 종교력과 튀르크의 무력이 결합하여 튀르크-이슬람 으로 굳어져 인도나 이란 방면으로 번져 나가게 되지요.  

 세북테킨(Sebuk Tegin Khan)은 가즈니(Ghazni) 왕조를 세웠으며 840년  위구르족에 의해 발흥한 카라한은 934년 보그라 칸(Bogra Khan)에 의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940년 카를룩의 도움으로 무슬림 협회와 연방을 건립합니다. 카라한 (Karakhan) 왕조의 영토는 중국 위구르 자치구 지역 카쉬가르(Kashgar) 와 카자흐스탄 동부 국경 지역 세미레체(Semirechye)를 포함하는데 이 시기에 중국 위구르 자치구 지역(동 튀르키스탄)과 서튀르키스탄(구소련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던 튀루크 민족 집단이 하나의 연합된 민족 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11-12C 셀주크 제국)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를 가진 카라한 왕조 통치기에는 중앙 아시아에 인종적인 측면에서나 언어적인 측면에서 튀르크적 요소들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 때 현재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투르크어가 대중어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카라한 어는 후에 차카타이어로 발전하였으면 차카타이어가 발전하여 18-19 세기에는 현대 우즈벡어의 원형을 이루게 됩니다. 한 편, 12세기 경에는 아랄해 근처에 사는 스텝 부족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투르크멘, 카라칼팍, 카작  민족 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후잔드 역사 박물관 1층에 서 있는 이 동상은 티무르말릭 이라는 왕입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징기스칸의 공격에 맞선 싸운 타직 왕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지?'

사만 왕조 이후 이 지역은 카라한조, 셀주크(11C), 가즈나조, 구리드 국, 하레즘, 카라키타이(12C) 등의 왕조들이 들어선 뒤 13세기 초, 징기스칸에게 복속됩니다. 징키스칸 이후 제국은 나눠지고.. 14세기에는 티무르 제국, 16세기에 들어서는 부하라, 히바, 코칸트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갑니다. 19세기 들어 오면서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고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격변기 동안 타직 동부 파미르 고원에 살던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이 수 세기 동안 지나 왔을지도 모르죠. 셀제로 16세기 이후 부하라, 코칸트 한국의 지배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 골짜기까지 제대로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평소처럼 그들의 삶을 영위해 왔을 뿐인지도 모르죠.

박물관 1층 동상 아래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티루르말릭 - 타직 민족의 민족 영웅"

 사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로는 이 사람이 누군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름 옆에 연대 표시도 없어.. 정확히 어느 시대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징기스칸에 맞선 후잔 일대에서 싸운 사람이라면 카라한 조나 화레즘, 카라키타이 시절에 활동했던 타직 장군인지도 모르지요. 승자의 역사만 알고 자란 우리로선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에 가서 또 하나 알 게 된 건...16세기 부하라, 히바 왕국이 우즈벡 족이 건설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타직에 사는 사람들은 타직 족이 건설한 나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부하라에는 타직 사람이 더 많이 살고 있다며 항변합니다. 역사란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어쨋든...  소그드, 박트리아를 거쳐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 있던 그레코 박트리아를 지나 간다라 미술을 꽃피운 쿠샨 왕조, 에프탈리테, 돌궐 제국, 사만 왕조, 카라한 조, 셀주크, 카라키타이, 몽골, 티무르, 부하라 한국,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의 역사를 거쳐 온 이 곳 타직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2009.7.4

참고) 중앙아시아 연구 - 최한우, 중앙 유라시아 역사 기행 - 김호동, 위키피디아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