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항에서의 만남

포항에는 포스코 등 큰 수출 기업이 많기에 철강재나 철광석을 싣고 오는 외국 선박이 늘 포항 항만에 정박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산이나 인천과 마찬가지로 이곳 포항에서도 이런 선박의 선원의 친구가 되어 복음을 소개하는 외항선교회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선린의료원 직원선교회 산하 국내선교부 활동 중에는 외항 선교회 진료 협력이 있는데 과장들은 보통 1년에 한 번, 이 진료 현장에 참여하는데..1월 31일, 오늘이 제 순서였고  그 현장을 다녀 왔습니다.

얼마 전, 둘로스 호가 포항을 방문했을 때도 이 항구에 온 적이 있습니다. 사실 포항 항은 자유롭게 개방된 장소는 아닙니다.  입구의 사무소에서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지요. 우리 역시 주민등록증을 제출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했는데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민등록증은 사무소에 맡겨야 했습니다. 사실상 국외 지역이기 때문이죠.

겨울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입니다. 우리가 방문하는 배는 커다란 크레인이 몇 개씩 달린, 큰 배입니다.  포항을 찾는 선박들은 대부분 전 세계 항구를 돌며 물건을 선적하는 배들로 1년에 1-2차례 포항을 찾습니다. 요즘은 중국이나 러시아 배도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 철광석이나 철강 제품을 운반하지요.

우리가 방문할 배의 선장은 이란 사람이고 선원 대부분이 필리핀 사람이라고 합니다. 최근 선장이 바뀌는 바람에 선장과 1등 항해사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내용까지 듣고 배에 올랐습니다.

이 분이 포항에서 외항 선교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입니다. 포항 중앙교회 부목사님이기도 하고 외항 선교회 포항지부를 맡고 계시지요. 선교사님은 무척 밝고 웃음이 많은, 첫 인상이 상냥한 분이셨죠. 우리 팀은 저 말고도 의사 한 사람, 간호사 3명, 병리사 1명, 응급 구조사 1명 등.. 모두 7명의 팀원이 참가했습니다.

철강재를 다 하역한 탓에 배는 수면 위로 쑥 올라와 있었고 무척 높아 보였습니다. 선교사님 얘기로는 오늘같이 비도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승선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우리 팀에는 엄마를 따라 온 초등학생도 있었거든요.  

둘로스 호보다 큰 배였습니다. 울렁거리는 계단을 밟고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짜릿한 경험이었죠. 발 아래 시퍼런 바닷물은 애써 외면하고 위만 보고 올라갔습니다.

배 안은 깔끔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과거 이 배를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외항 선교를 하다 보면 어떤 배를 타게 될지 계획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떤 배가 들어올 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저 그 날 그 날 입항하는 배에 오를 뿐입니다. 그제는 러시아 선적, 어제는 필리핀 선적, 오늘은 그리스 선적..뭐 이런 식이죠.  오늘 일정은 함께 예배 드리고 생일 축하 파티와 선물 증정을 한 뒤 진료가 이어집니다.    

선교사님은 유창한 영어로 이미 친한 관계인 듯한 선원들과 함께 찬양 시간을 이끌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 만났던 선원들에게는 친근함을 표시했고, 새로 승선한 선원이 보이면 이름이나 국적을 확인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갔습니다. 우리 팀과 선원들은 모두 돌아가며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뒤 찬양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한 선원들은 주로 필리핀 인이었고 미얀마, 루마니아, 그리스에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영어와 따갈로그로 된 찬양 가사를 프린트해서 모두에게 나눠 주었고 직접 기타를 치며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대부분 아는 곡들이었지만 필리핀 노래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곡인데 필리핀 사람들은 모두 크게 불렀거든요. 찬양을 5-6곡 불렀습니다. 영어, 따갈로그 어를 번갈아 가면서...

찬양이 마친 뒤 선교사님의 복음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내용은 "십자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필리핀 선원들은 대부분 카톨릭교를 믿고 있었고  루마니아도 정교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얀마(버마)에서 온 젊은 친구는 불교였지만 분위기 탓에 쉽게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선원들 각자에게 '십자가'를 보면 뭐가 떠오르냐고 질문하셨습니다.  필리핀 선원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죽었고 예수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셨다고 답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십자가를 보면 '행복' 하다고 답하기까지 했습니다. 대단하죠?

선교사님은 십자가가 주는 의미는 내가 죄에서 죽었다는 사실임을 무척 강조하셨습니다. "you are dead" 라고 각자를 지목하자 몇몇 사람은 "I am still alive" 라고 웃었지만 선교사님이 "you are dead from sin" 이라며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1년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는 사람들에게 이 신앙 고백이 얼마나 깊이 와 닿을지 모르지만 선원들을 상대로 하는 선교사님의 메시지는 짧고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불교도인 미얀마 친구에게도 끈질기게 질문하는 열정을 보이셨죠.

설교 후, 생일 축하 파티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모든 선원의 생일을 축하하기로 결정했고,  함께 영어, 따갈로그어, 루마니아 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모두 함께 케잌을 잘랐습니다. 우리 팀원들은 미리 준비해 간 선물을 선원 모두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귤 2박스도 건넸지요.

선원 대표가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모습입니다.

진료 시간입니다. 함께 간 간호사, 병리사 선생님이 혈압, 혈당을 체크했고 저는 선원들을 만나 검사 결과를 설명한 뒤 그들의 불편한 점을 들어 주었습니다. 대부분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잦은 복통이 그들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제가 소화기내과 의사라... 전문 분야긴 하죠.  

어떤 필리핀 선원은 요로 결석이 의심된다고 해서 우리 팀이 가져 간 소변 검사 키트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혈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침이 심한 선원 한 사람은 X선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진료를 하고 있는 선실 작은 창문을 통해 내다 본 모습입니다.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이 보이지요? 이 배가 무척 커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저 말고도 가정의학과 전공의 선생님 한 분이 진료를 도왔습니다. 진료하는 장면인데... 마치 코카콜라 광고하는 거 같죠?

진료가 다 마치자 고맙다며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 해서  모두가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쌀, 스테이크, 옥수수로 된 저녁 식사와 감자, 치즈, 마카로니 등으로 이뤄진 특별 요리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3시간 내내 배가 흔들거리는 느꼈지만..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선교사님의 외항 사역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주일에 3-4일씩 이곳에 나와 선원들을 만난다고 합니다. 오늘처럼 승선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 사역을 돕는 몇몇 교회와 선린병원, 한동대학교 팀이 함께 찾아 와 이런 승선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용 봉사, 찬양팀 공연, 의료 봉사팀과 연계해서 활동하시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배에서도 벌써 이미용 봉사와 찬양 공연 등을 가졌다고 합니다.  

터어키나 중동권의 배들은 선교사님의 이런 활동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싫은 표시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처음 올라가는 배인 경우 그들을 돕고 섬기는 일만 하지 직접적인 복음 전파는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 이런 승선 예배도 허락받을 수 있는데...선장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배들도 자주 들어오지만  그들은 마음을 잘 열지 않아 무척 어렵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구 공산권 문화에서는 마음을 열고 호의를 받아 들이는 일이 무척 어렵죠. 하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역을 계속 하시는 선교사님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식사 후 배에서 내리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비바람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지만 오를 때보다는 편했습니다. 아마 땅이 보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배에서 내리는 동안 선원들은 밖으로 나와 배웅했습니다. 우리가 손을 흔들자 그들도 두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표했죠. 이렇게 포항 항을 찾는 배들은 기껏해야 3-4일 정도 머문다고 합니다. 매우 짧은 만남이지만.. 이 만남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처음 그들을 섬기고 보낸 뒤  몇 개월 후 다시 만날 때면 그들의 태도가 확 달라진다고 합니다. 조금씩 친구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배에서 내리기 직전, 필리핀 선원들은 내일은 주일이니 교회에 가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 나라 안이면서도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외항에서의 특별한 경험 -  마치 1주일간의 해외 단기선교를 다녀 온 것 같았습니다. 이 귀한 사역이 주 안에서 더욱 확장되길 기도합니다.    2009.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