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크질오르다 정탐여행 6. 투르키스탄 모스크

크질오르다에서 3박 4일 동안 정탐 활동을 마친 뒤 우리 팀은 동쪽으로 300 Km 떨어진 투르키스탄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카작 무슬림의 성지라고 불리는 투르키스탄은 도시 이름입니다.

'투르키스탄' 은 투르크인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원래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한 좁은 뜻의 아시아 지역을 일컫는 말로 쓰입니다. 동서로 나뉘는데.. 동투르키스탄이라고 하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을 일컫는 말이고 서투르키스탄이라 하면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직스탄, 우즈벡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일컫습니다. 이 일대는 원래 인도유럽 인종 또는 이란계 인종(이란의 인도유럽어족)들이 살고 있었으나 동투르키스탄은 돌궐의 지배와 위구르인의 서방 진출(9C) 이후 12세기말 경 완전히 투르크화 되었고,  서투르키스탄은 티무르 제국(1369-1508), 우즈벡족을 거치며 투르크화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아직도 이란 계열의 사람들이 남아 있고 여기 저기서 푸른 눈의 색목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우리가 방문한 카자흐스탄 남부 지역의 고대 도시 '투르키스탄' 는 티무르 제국 시대에 세워진 거대한 모스크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카자흐스탄의 수 많은 무슬림들이 방문하는 곳이고 카작인들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일컬어지죠.  

 크질오르다 숙소 앞에 우리가 투르키스탄으로 타고 갈 버스가 서 있습니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꽤 괜찮은 버스였는데 소망교회의 도움으로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팀의 당초 계획은 크질오르다에서 투르키스탄까지는 기차로 이동할 계획했으나 기차 좌석이 많지 않다고 하고 숙박비도 아끼기 위해...버스로 투르키스탄을 거쳐 쉼켄트에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쉼켄트는 큰  도시이므로 알마티까지 가는 기차편이 많기 때문입니다. 굳이 투르키스탄에서 1박 2일 할 필요가 없다는 현지의 조언도 작용했습니다.

원래는 아침 9시 출발 계획이었으나 뙤약볕이 뜨거운 점을 감안해서 좀 더 일찍인 7시 반에 출발했습니다.

 투르키스탄까지 가는 길은 반사막 내지 사막길입니다. 아무리 달려도 집 한 채 나오지 않는 곳이죠. 한국처럼 매끈한 아스팔트는 아니어도 길이 잘 닦여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반사막 지형이 보입니다. 실크로드 톈산북로 보다는 북쪽 지역이고 메마르고 먼지만 날리는 모래 땅입니다.  

 가다 보면 사막 위로 흰 빛깔의 나타날 때가 있는데 대개 예전에 강이 흘렀던 지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말라 버린 강줄기에는 염분이 섞여 있기 때문이죠.  

어쩌다가 작은 마을을 만나기도 하는데 마을 외곽에서 이런 공동 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식 공동묘지입니다.

 버스 안은 이렇습니다. 차창밖에 광선이 얼마나 강하고 따가운지...사진 속의 시은이처럼 계속 물을 마셔야 했고... 건조한 더위 속에 많은 사람들이 차 속에서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거친 포장길을 달리는 버스 소리도 시끄러웠습니다.   원래 크질오르다에서 투르키스탄까지는 버스로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 버스로 내달린 우리 팀은 약 3시간 반 만에 투르키스탄에 도착했습니다.

 사막 가운데 만난 이 도시의 첫 인상은 '먼지'였습니다. 어찌나 건조한 동네인지... 차창 밖으로 모래 바람이 끊임없이 불었고 여느 구 소련, 중앙 아시아 지역의 풍경이었죠.

 

 남쪽에서 실어 온 수박, 듸냐 등이 시원스레 보입니다. 이곳은 과일이 전혀 재배되지 않는 곳이죠.

 세워진 택시와 사람들의 모습...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 카작인들입니다.

 투르키스탄으로 들어와 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멀리 옥빛의 모스크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마...우리의 목적지가 가까운 모양입니다.

바로 목적지를 향하지 않고 일단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일행 중 많은 사람들이 카자흐스탄에서 먹은 음식 중 투르키스탄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가장 맛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식사 후 모스크로 향했습니다. 사원 주변에는 빨간 꽃이 핀 나즈막한 나무들이 많습니다.  

모스크의 원경

모스크 주변에서 낙타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스크는 티무르 시대, 서기 1395년-1404년 사이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모스크 주변은 이렇게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성벽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죠.  

 형민이가 성벽 위에 올라가 발차기를 하고 있네요.

 티무르는 푸른 색을 좋아했습니다. 우즈벡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구르 아미르'는 티무르의 무덤입니다. 티무르는 징기스칸의 직계 후예는 아닙니다.  몽골 부족의 일파인 발라스 부 출신으로 언어적으로는 이미 투르크화, 종교로는 이슬람화된 몽골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죠. 계보에 따르면, 5대조 할아버지가 징기스칸의 차남 차카타이를 섬긴 유력한 무장이라고 하나 티무르가 태어날 때쯤에는 몰락하여 겨우 소수의 하인만을 갖고 있던 작은 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그는 스스로를 '칸'이라 칭하지 않고 '지배자(아미르)'라고 불렀죠. 징기스칸 가문의 왕녀와 결혼해서 징기스칸 가문의 사위로 일컫어졌죠.

 해마다 사방으로 원정하여 호라산(코라즘)을 병합하였고 동차가타이 한국을 복속시켰으며 카르토 왕조를 멸망시키고 인도에 침입하여 델리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티무르는 군사에 있어서 천재적인 인물로, 생애에 걸쳐 벌인 전투에서는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또한 도시에 대한 경제적 중요성을 빠르게 이해해 그 보호에 힘썼습니다. 그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는 여러가지 시설이 건설되고 정비되어 번영을 누렸죠. 칭기스칸과 비교하여 [칭기스칸은 파괴하고, 티무르는 건설하였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적이 저항하는 상황에서는 델리를 점령하던 시기 포로 수만명을 처형하고, 바그다드를 점령할 시기 철저하게 약탈과 파괴를 일삼는 등 외정에서는 냉혹한 파괴자이기도 했습니다.

 

 구 소련 지역에서는 결혼식이 끝나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기념비, 명소들을 돌며 사진찍는 풍습이 있습니다. 국가 유적지나 순국열사 기념비 이런 곳은 꼭 찾아가지요. 아마 이 지역 사람들에겐 이곳이 그런 곳이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 결혼식 후 신랑, 신부를 태우고 이렇게 돌아 다니는 운전사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모스크 주변 집들이 모두 단층 건물들이라 이 곳은 65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에서 가장 큰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앞쪽 출입구는 이렇게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전형적인 모양의 모스크가 이어집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죠.

 KOICA 단원 한 분이 뒷편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 출처:http://blog.naver.com/silverjun) 우리 팀은 뒤쪽에선 촬영을 못했는데... 멋있죠? 티무르 시대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입니다.

 모스크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있습니다. 영어, 러시아어로 설명이 가능한 가이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스크 안에서 영어로 설명을 들었습니다. 모스크 앞에서 통역 아저씨와 얘기하는 모습입니다.

 모스크 안에서는 모든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켜야겠지요? 모스크 안에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봤지만 사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명이 컴컴한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니 2층 건물이었고 1층 홀에는 많은 방들이 있었습니다. 홀은 지붕까지 높이 41M, 둘레는 18M, 20M 에 달했습니다.  14세기의 만들어진 각빠(문), 옥좌, 전쟁 때 사용된 깃발, 칼... 그리고 아랍어로 쿠란의 문구가 씌여진 문 등이 있었습니다. 홀 중앙에는 커다란 그릇(솥 모양)이 있었는데 무게 2 ton 에 달하고 높이 1.6 M, 둘레 2.4M였죠.

여러 방에서 많은 것들을 보았습니다.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던 부엌, 양 뿔이나 양 가죽을 넣어 놓은 방 등... 가이드를 하는 분은 이 모스크에 있는 2개의 문에 대해 강조를 많이 했고... 역사와 함께 티무르 시대 여러 부족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징기스칸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얘기였습니다. 나이만 부족 등... 여기서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를 들었는데... 카작 민족인 징기스칸의 첫째 아들 '주치'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카작인들의 뿌리가 몽골까지 뻗어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죠. 우린 일반적으로 카작인의 뿌리를 투르크인와 몽골인의 혼혈이라고 말하니까요... 사실 징기스칸 대제국 이후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 인과 몽골 인은 섞이기 시작했고 실제로 우리가 터어키에 갔을 때 터어키 할아버지 한 분에게 우리가 카자흐스탄에서 왔다고 했을 때 "카작인도 우리(터어키) 형제들이다." 라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는 더 많은 걸 설명하고 싶어하지만 쉼켄트로 떠나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어 오래 있을 순 없었습니다. 밝은 태양 아래로 다시 나왔죠.

이번 정탐여행을 통해  카자흐스탄에서 3년간 살았어도 알지 못했던 것을 많이 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특히 카작 무슬림, 러시아화 되지 않은 카작인들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알마티, 아스타나 등 대도시에 살다보니 카작인이나 러시아인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거든요. 제정 러시아, 구 소련을 거치며 카작인들의 이슬람 의식은 흔적만 남았을 뿐이었죠. 하지만 그들의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이슬람 세계의 정신적 고향인 투르키스탄을 방문함으로써 다시 한 번 카작 무슬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푸른 색이 좋아 중앙 아시아의 모든 모스크 지붕을 이런 옥빛으로 만든 티무르 제국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꼭 우즈벡스탄의 사마르칸트를 방문하고 싶습니다. 티무르의 흔적도 더듬어보고 싶고... 부하라, 페르가나 등 실크로드 상에 뿌려진 옛 역사의 파편을 확인하고 싶네요.

 몇몇 팀원들은 투르키스탄으로 가는 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메마른 사막길을 달려야 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카자흐스탄에 오는 사람은 많지만, 이렇게 투르키스탄까지 찾아 가는 사람은 극히 소수니까요.  

 

이제 버스는 투르키스탄을 떠나 쉼켄트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초원도 보입니다. 여기 저기에서 낙타떼를 발견할 수 있었죠. 이렇게 우리 팀은 알마티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쉼켄트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2008.10.12

 

 (투르키스탄 식당에서 형민이와...)

 (투르키스탄 모스크 앞에 선 형민이...)

 

(모스크 앞에서 선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