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크질오르다 정탐여행 4. 크질오르다 소망교회와 사랑교회

2008년 현재, 크질오르다에는 한국인 선교사 2가정과 현지인 사역자 15명 정도가 교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숙소로 묵었던 집도 카작인 사역자의 교회지요.  

한국인 선교사는 크질오르다 소망교회(침례교회)와 사랑교회(장로교회) 두 군데에서 사역하시는데, 우리 팀은 이번에 장외숙 선교사님을 통해 크질오르다로 왔기에 소망교회와 더 많은 접촉을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랑교회 선교사님과 교회를 방문하는 기회도 우연히 주어졌습니다.

2008년 7월 7일 아침, 우리 팀은 크질오르다 땅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소망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교회 건물에 깜짝 놀랐습니다. 크질오르다에선 보기 힘든 세련된 건물, 별도의 부속 건물까지 갖춘 큰 규모의 교회였기 때문이죠. 모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카작인 도시에... 이런 교회가 있다니..

우리가 도착했을 때 주일 예배 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럼, 베이스, 일렉 기타, 기타 외  5명의 싱어를 갖춘 찬양팀이 인도하는 찬양 시간은 무척 은혜로왔습니다. 마치 알마티의 살렘교회나 은혜교회 같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선교지라고 찾아 온 단기팀원들은 한국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인 찬양이 이 곳에서 드려진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죠.  

 

찬양 후 장외숙 선교사님과 통역자 정 따냐가 예배를 인도하는 모습입니다. 크질오르다 소망교회는 알마티 중앙교회가 2000년 8월 파송한 안진홍 목사님 등에 의해 개척된 교회입니다.  안진홍 목사님은 2년 반 동안 크질오르다에서 사역하시다 추방된 뒤 장외숙 선교사님이 교회를 이어 받아 사역하고 있습니다. 알마티 중앙교회는 1995년 경... 카자흐스탄 선교 초기에 알마티에 세워진 교회이고, 고려인들이 있는 지방 도시에 교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크질오르다 소망교회를 짓기 시작할 때 카작인의 도시에 큰 규모의 예배당을 짓는 걸 반대하는 현지인들이 많았고 교회에는 많은 어려움이 찾아 왔지요. 초대 사역자 안진홍 선교사님이 추방된 것도 이런 분위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장외숙 선교사님과 만나면서 팀원 중 한 분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팀원은 약 3년 전 포항에서 살고 있지 않을 때, 예수전도단의 DTS 국내전도여행의 일환으로 포항에 온 적이 있다 합니다. 그 때 포항 외곽 어느 교회에 묵게 되었는데...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카자흐스탄 선교사 출신이었다 합니다. 당시는 포항의 영적 상황이나 포항 관련 정보를 듣고 싶었지만 목사님은 계속 카자흐스탄 이야기만 하셔서 '정말 카작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분이구나....' 라고 느꼈다는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때 만났던 그 목사님이 바로 '안진홍 목사님' 이셨습니다. 이 팀원이 이번에 카자흐스탄 선교여행에 참여한 배경에는 그 때 들었던 카자흐스탄 얘기가 맘 한 구석에 남아 '언젠가 한 번 카작에 가 봐야겠다.' 고 생각한 점도 작용했다는데... 하나님이 일하심은 놀라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 안 목사님과 두어번 전화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한 번은 카자흐스탄 선교사님이었다는 이유로 통화가 된 적이 있고 또 한 번은 살렘교회의 주민호 선교사님이 포항에 오신다고 해서 함께 식사할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쨋든 포항에 계시는 카자흐스탄 선교사 출신 목사님이 사역하셨던 그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그 분의 동역자를 만난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신기하기만 했지요.  

소망교회는 초기부터 고려인이 중심이 되다 보니 아무래도 고려인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방문했던 그 날도 약 80여명의 성도가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이 고려인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포함하면 출석교인은 100명을 훨씬 넘을 것 같았습니다. 선교사님께 여쭤 보니 러시아인은 3-4명 뿐이고, 카작인이 오히려 7-8명 정도 출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 디아스포라 들이 이렇게 선교사의 못자리가 되고 황무한 이곳에서 예배 공동체로 살고 있음을 생각해 보니 1930년대 극동 지방의 한국인들이 중앙 아시아에 유배된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이나 젊은 사람도 많이 보였고.. 우측 사진처럼 네덜란드에서 온 선교사도 보였습니다. 이 분은 크질오르다 땅에 농업을 장려하는 NGO에서 활동하고 있다는데 농업 기술이나 관련 정보를 이곳 사람들에게 제공하면서 총체적인 선교를 펼치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를 떠날 때 " I'm from Holland" 라고 하며 인사를 건네 왔습지요. 이 분 눈에 비친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요? 수십년 전 이 땅에 유배된 한국인과 수십년 후 이곳을 찾아오는 한국인은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예배를 시작할 때 모든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교인들이 아이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갖더군요. 언젠가 우리 가족이 쌍뻬쩨르부르그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고 루터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예배 첫 머리에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 축복한 뒤 촛불을 든 선생님을 따라 주일학교로 이동하는 것을 봤는데 이 곳도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별도의 건물에서 주일학교에 참석했습니다.  

주일학교를 담당하시는 여자 전도사님이 보이죠? 이 날 처음 나온 아이들을 환영하는 시간인데..한국에서 온 단기팀 아이들 9명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갔습니다.

 어느 곳이나 찬양과 율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되게 만들죠.

본당에서는 찬송, 말씀 봉독, 성가대의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우측 사진은 소망교회 성가대 모습입니다. 모두가 고려인 아주머니들입니다. 너무 귀하기만 합니다.

선교사님의 설교 전에 우리 팀이 소개되었습니다.  

제가 간단한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우리가 처음 크질오르다 공항에 내려 도시로 들어올 때 황무지와 모래 사막을 바라보며 '도대체 이런 곳에 사람일 살 수 있는가' 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참 소망을 발견했고,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는 인삿말을 전했습니다.

찬송가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를 찬양했습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라는 가사가 맘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정말 이 곳은 메마른 땅이니까요.

설교 시간에 장외숙 선교사님은 한국어로 설교하시고 따냐가 러시아어 통역을 했습니다. 사실 선교사님의 러시아어 실력은 유창해서 심방이나 개인 접촉 시에는 자유롭게 러시아어를 사용하셨지만, 공적인 예배 시간에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통역을 사용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교사님의 이 날 설교는 출애굽기 17:8-16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아말렉 자손과의 전쟁하는 장면입니다. 영적 승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강조하셨죠.

소망교회에는 사역자가 4 분이었습니다. 전도사님 2 인(한 분은 고려인, 한 분은 카작인),  주일학교 담당 여전도사님 1 인, 통역 1 인...  이 외에도 23명의 리더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교회는 서북쪽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19시간이나 떨어진 악토베에 김싸샤 라는 사역자가 나가 있고, 3시간 떨어진 인근의 바이코누르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바이코누르 안 제 3 집단농장 안 땅집을 교회 처소로 만들고 다민족교회로 커 나가고 있다 합니다.  바이코누르 아시죠? 얼마 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김소연 씨가 탔던 소유즈 우주선을 발사했던 우주 발사 기지가 있는 곳이죠.

예배 말미에는 성찬식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한 공동체를 경험하는 시간...

 모두가 한 사람씩 나가 빵과 잔을 나누고...

 

서로의 손을 잡고 한 형제, 자매임을 나누었습니다.

 이곳 성도들은 이런 일에 익숙해 보였고 크질오르다 소망교회는 건강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크질오르다에 있는 모든 교회가 1달에 한 번씩, 크질오르다 소망교회에 모여 찬양집회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2명의 한국인 선교사, 15명의 카작인 사역자가 한 자리에 모여 예배하고 기도한다는 사실은 카자흐스탄의 다른 도시에서도 보기 드문 일인데, 카자흐스탄 뿐 아니라 모든 선교지의 좋은 모델일 것 같습니다.

 예배 후 아이들은 이곳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고

 우리도 소망교회 찬양팀원들을 만나 서로 격려하며 북돋아 주었습니다. 예배 후 장외숙 선교사님은 교회가 돌아 보는 도시 외곽의 빈민들을 함께 돌아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자들이 많아 우리 팀의 의료진이 가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의료진 위주로 팀을 꾸려 선교사님과 함께 크질오르다 외곽으로 나갔습니다.

이곳의 햇살은 정말 강렬하고 따갑습니다. 공항에서 들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크질오르다 입구에서 다시 시르다리야 강을 만났습니다.

이 강에선 사람도...소도...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항 옆 도로를 따라 들어갔더니 강변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뻬엠까" 라고 불리는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비어 있는 '다처'('다처'는 구 소련 시절 나눠 준 텃밭이 딸린 별장입니다. 사회주의 경제 시절, 다처에 딸린 밭에 농사를 지어 반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가 많고 집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늘 술에 찌들려 있고 폭력과 절도가 난무한 무법천지라고 합니다. 실제 우리가 갔을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고, 걷지도 못할 정도로 비틀거렸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사람들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아시겠죠?

선교사님은 우릴 한 가정으로 안내했습니다.

이 집 안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말 없이 앉아 있는 아주머니 한 사람, 웃통을 벗고 있는 술 취한 아저씨 한 사람...

역시 술에 취해 떠들어대는 아저씨 한 사람... 집 안은 엉망이었죠.

이 아저씨들은 옆 집에 사는 사람들인데 이 집에 와서 늘 이렇게 죽치고 있다 합니다. 그것도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이러다가 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무법천지를 만든다네요.

 집 안에는 아주머니의 아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발생한 동상으로 발가락이 썩어 가는데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이렇게 누워 있는 걸 선교사님이 보시고 우리에게 가 보자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팀 중 에는 외과 선생님도 계시거든요. 일단 항생제와 소독이 필요하고... 병원 치료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사진 우측의 젊은이가 환자입니다. 겉모양은 멀쩡하게 보이는데 자신을 향한 모든 관심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와서 위로하면서 복음을 소개하면 맘을 잘 열다가도 가끔씩 강팍한 맘이 생기는지 이렇게 모든 걸 거부한다 합니다. 우리는 항생제를 건네 준 뒤, 악한 영의 세력이 이 젊은이를 떠나가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선교사님은 다음 날, 병원에 데려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이 젊은이의 아내였습니다. 차분하게 남편을 챙기고 위로하면 좋겠건만... 이 여자의 상태도 이 마을 사람들처럼 좋지 않습니다.

 다시 말없이 앉아 있는 엄마(아주머니)에게로 다가 갔습니다. 손을 붙잡고 있길래 만져 봤더니...아니!...팔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집에 드나들며 술주정을 부리는 남자들이 이렇게 만든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모두가 기도했습니다. 대책 없는 이 가정과 마을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외에도 간경화증으로 복수가 많은 아주머니 등.. 수 많은 환자들과 문제 있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가득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 마을에 교회가 필요하다고 하시며...매 주 교인들과 함께 이 마을을 방문하며 가정 교회를 세우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정적인 크질오르다 소망교회의 사역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복음이 필요한 이 곳 사람들을 품고 복음의 능력을 전해 주려는 선교사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언젠가 선교사님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얘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상을 나와 서울에서 경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순복음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게 됐고...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고... "만일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으면 그냥 그렇게 살았겠죠?" 라고 웃으시는 모습 속에서 평안과 기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크질오르다에는 '소망교회' 말고도 '사랑교회' 가 있습니다.

정탐 첫 날 우린 우연히 사랑교회가 있는 지역을 지나게 되었고 사랑교회 대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초청한 적도 없고, 우리가 계획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느껴졌습니다.

왼쪽 건물이 사랑교회입니다. 우측에 사랑교회 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네요. "사랑 장로교회"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교회를 보고 놀란 건... 카작인 도시 한 복판에 버젓하게 십자가를 내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로 변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입니다. 예배 시간표를 보니 중고등부(7학년부터 11학년까지) 를 "SFC" 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SFC:Student For Christ)

 이 교회의 내부는 한국 교회의 일반적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강대상이나 장의자, 스크린까지...

 교회 한 쪽 벽에는 교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교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는 마당도 넓고 빈 터가 많아 앞으로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형민이가 십자가를 보니 예수님이 생각나나 보네요.

(사랑교회 선교사님 가정과 함께)

참 신기하게도 정탐 첫 날... 사랑교회를 방문하기 몇 시간 전에 사랑교회 선교사님 가정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선교사님은 차를 타고 가시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 같다는 생각에 말을 걸었는데...그게 바로 우리 팀이었습니다. 이런 우연을 만남들을 통해 정탐 여행 내내 우리의 만남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더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2008.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