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크질오르다 정탐여행 3. 크질오르다 도시 풍경

 정탐여행을 떠나기 전 들었던 강의 내용 중 "정탐여행을 떠나기 전에 3개월 정도 준비해서 떠났다면... 다녀와서는 6개월 정도의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7월 초 카자흐스탄 정탐여행을 다녀온 후, 충진교회에서 보고회를 한 차례 가졌고 8월 말이 가까운 다음 주에야 선린병원에서의 보고회가 있으니 아직 단기정탐여행은 끝나지 않은 셈입니다. 게다가 정탐여행을 정리하는 홈페이지의 글도 10월이 지나갈 때까지 계속될 것 같으니...정말 정탐 후 3개월 이상 카자흐스탄과 크질오르다를 생각하고 얘기할 것 같습니다.

끄질오르다는 '붉은 왕국' 이란 뜻입니다. 중앙 아시아의 아랄 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르다리야강 하류에 위치한 도시로 카자흐스탄의 14개 주 중 하나인 크질오르다 주의 중심 도시로, 인구는 19만 정도이고 인근에 유전이 있어 석유 산업과 목축업, 농업 등이 주요 산업입니다. 크질오르다 인근에서 나는 원유는 다른 지역에 비해 그 품질이 우수하다고 합니다. 인구의 97%가 카자흐인이고 카자흐스탄에서도 가장 카자흐 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1924-1929년까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최초 수도였습니다. 1930년대 스탈린의 이민 정책에 의해 연해주에 살던 많은 한인들이 크질오르다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일대로 강제 이주되었기에 크질오르다에는 한 때 수 많은 고려인들이 거주했었습니다. 지금은 대도시로 떠나 버리고 약 7-8천명 정도의 고려인만 살고 있다 합니다.

 크질오르다 사람들은 얘기합니다. "조금만 재주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마티로 나가 버려요. 여기 살면서도 기회가 되면 알마티로 갈 생각만 하죠." 자본주의화 이후 대도시에 일자리가 많이 생기면서 지방 도시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이곳을 떠나고 있습니다.

구 소련의 어느 도시로 가더라도 '아타플레니야' 라 불리는 온수 파이프 라인을 볼 수 있습니다. 구 소련 시절에는 가스, 온수 공급이 중앙 공급식이었기에 이런 파이프라인을 통해 각 지역으로 난방과 온수를 공급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에도 이 파이프 라인 주변은 항상 따뜻하죠. 땅에 묻으면 보수, 수리가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도로 위로 올려 놓았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다른 지역처럼 이곳은 거칠고 메마릅니다. 좌측 사진처럼 아침에 나가 보면 지면에 하얀 소금가루가 뿌려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랄해나 카스피해가 염분을 가진 호수이고, 땅들도 소금기가 가득한 걸 보면 확실히 예전에는 모두 바다 밑이었나 봅니다. 노아의 홍수이후로...우측 사진은 숙소 앞에 흐르는 개울 모습입니다. 도시 곳곳에 이런 작은 개울이나 웅덩이가 많고 이 때문에 숙소에는 모기가 극성이었습니다. 물론 숙소 옆 돼지 막사도 한 몫 했지만...

크질오르다 주거 환경은 카자흐스탄의 다른 도시처럼 아파트 또는 개인 주택(땅집)입니다.

2008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7천불을 넘는 카자흐스탄의 빈부 격차는 날로 커져만 갑니다.

 우리가 숙소로 삼은 지역은 크질오르다 빈민가였습니다. 위 사진처럼....

잘 사는 지역에는 위성 안테나를 설치해 놓은 집도 많았고 '까떼쥐'라 불리는 별장형 주택도 보입니다.

창밖에 걸린 빨래, 벽돌만 보이는 아파트에 설치된  LG, 삼성 에어컨은 우리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함께 가신 목사님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이 곳에 와서 가장 인상적인 건... 이곳이 한국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 모습이나 사는 방식도 똑같아서 마치 우리 나라 어느 시골에 와 있는 것 같네요." 맞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점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카자흐스탄 선교를 더 어렵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허가 받은 택시만 택시 영업이 가능하다는 점과 카자흐스탄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난폭 운전이 심하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횡단보도 주변에서도 차들은 도무지 속력을 떨구지 않고 달리더군요. 교통 경찰이 많은 아스타나와 크게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도로를 걷다 보면 좌측 사진처럼 맨홀 뚜껑이 없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뚜껑을 떼어 가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덮개 없이 커다란 구멍만 뚫린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죠. 밤에 지나가다 아래로 뚝 떨어질 생각을 하니 정말 아찔합니다. 우측은 아침 일찍 도로 먼지 제거를 위해 물을 뿌리는 차 모습입니다. 무척 건조한 지역이니까요...

아파트 1층은 대부분 상가로 사용되고 환율은 1달러에 120.5 텡게입니다.

  총 4팀으로 구성된 정탐조들은 오후에 3-4시간씩 크질오르다 일대를 샅샅이 밟고 다녔습니다. 좌측은 우연히 소망교회 전도사님을 만나 도움을 받고 있는 정탐 2조 모습입니다.

 정탐 2조는 크질오르다 경제를 알아보기 위해 은행도 방문해서 투자 상담을 신청하고 창구 직원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좌측: 시장 근처의 카작인 동상, 우측: 크질오르다 기차역

정탐 4조가 기차역에서 열차를 촬영하다 경찰에게 필름을 지우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구 소련 시절부터 보안, 감시가 익숙해져 있는 곳이죠.

 이곳은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꺼지지 않는 불꽃'입니다. 1,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들이죠. 이런 기념물은 알마티, 아스타나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구 소련 시절, 세워진 모든 도시는 모두 똑같은 용도의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학생회관(궁전), 문화회관(궁전)....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죠. 크질오르다의 '꺼지지 않는 불꽃'도 예외가 아니죠.

 자판기 앞에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물을 파는 자판기네요.

 도로 곳곳에 새 디자인을 자랑하는 상점과 나이트 클럽이 들어서 있습니다.

 좌측은 전셋집을 내 놓은 광고 문구입니다. 유모차를 몰고 가는 아주머니 모습은 영락없이 한국이네요.

 좌측은 쉬꼴라(초등교육기관), 우측은 크질오르다 종합대학 모습입니다. 크질오르다 종합대학은 고려인이 크질오르다에 정착해서 세운 고려인 학교에서 출발했고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KOICA 해외봉사단 원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지요.

크질오르다 종합경기장 전경입니다. 축구장이네요.

 이곳에서 벽돌 만드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도시 안에는 시르다리야 강물을 끌어 들여 수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수영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팀원 모두가 크질오르다 동남쪽을 흐르는 시르다리야 강가에 나갔습니다. 허물어진 다리를 따라...

수영도 하고 모래성도 쌓고... 나중에 강물에 수영했다고 하니 현지인들은 모두 기겁했지요.(물이 더럽다나요...) 하지만 너무나 즐거운 한 때였죠.

신호등도 우리와 비슷하고.. 제법 큰 건물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크질오르다에는 현재 3개의 모스크가 있는데 그 중 2개의 규모가 큽니다. 좌측은 도시 중심부에 있는 모스크(시장 근처)이고 우측은 공항에서 들어오는 크질오르다 입구에 위치한 가장 큰 모스크입니다.

크질오르다에는 7천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곳곳에서 한국말로 적힌 간판을 볼 수 있었죠. 중앙 아시아 크질오르다에 이런 간판이 있는 거.. 실감나시나요?

  식당 이름도...'코리아나' ... 쓰레기 더미를 보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은 거 같습니다.

 정탐 3조는 크질오르다 종합대학 근처에서 졸업식을 하고 나오는 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도시 곳곳에서 이곳 사람들과 만났지만 별 유쾌하지 않은 만남도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외국인 방문객들을 불시에 검문해서 돈을 뜯어내는 경찰들이 많습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여권이나 비자를 보자고 해서 혹시나 문서를 제시하지 않을 때 경찰차에 타라고 위협하며 돈을 요구합니다. 외국인들은 현지어 구사가 안 되기에 경찰이 뭘 요구하는지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알마티에는 이런 일을 대비한 각종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정탐 첫 날 아침, 다른 조원이 아직 잠들고 있는 이른 아침, 부지런한 몇 몇 팀원들이 숙소 근처를 돌다 현지 경찰들과 마주쳤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사진을 찍는 등...좋은 분위기였다고 하나(위 사진이 그 때 찍은 사진이라네요), 이내 비자를 요구했다 합니다. 그런데 하필 이들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있었고... 건수를 잡은 경찰들은 경찰차에 태운다 위협하며 돈을 요구했다 합니다. 이 상황에서 한 분이 여권을 곧 가져오겠다며 "10분만 달라.."고 얘기하고 숙소로 달려왔지요. 나머지 두 사람은 경찰과 남은 채... 이른 아침, 다급한 모습으로 숙소로 달려온 팀원으로 인해 잠시 놀랐지만 일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여행 기간 내내 배꼽을 잡고 웃는 에피소드가 남았지만 항상 여권을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는(사본이라도) 기본적인 사실을 깨우쳐 주었죠.

여권을 가지러 한 사람이 숙소를 달려간 뒤... 남은 두 사람은 이렇게 경찰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사용해 보고 싶어하는 현지 경찰을 위해, 경찰차 앞에 선 피사체가 되어야 했죠.

정탐 3조는 우리 가정이었습니다. 다른 정탐조에는 통역 겸 도우미로 현지인이 한 명씩 배치되었지만 우리 조는 현지인 없이, 그냥 우리 다섯 식구가 한 조였습니다. 돕는 현지인 숫자가 모자라는 바람에, 어느 정도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우리 조에는 현지인이 배정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조는 정탐 이틀째에는 재래 시장, 크질오르다 시청 등을 방문했습니다. 도시 개요를 알기 위해 시청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고 가는 길에 환전을 위해 시장을 방문했습니다.

이동은 항상 택시를 이용했는데 크질오르다의 경우 도시 끝으로 간다해도 택시비가 300텡게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우리 소개도 하고 크질오르다 첫 인상도 말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하지요. 시장으로 갈 때 만났던 운전기사는 고려인이었습니다. 전 날, 고려인 협회와 홍범도 장군묘를 방문했던지라 이런 일을 매개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친분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한국 전통 문양이 담긴 노리개를 선물하며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크질오르다와 이곳 고려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건넸죠.

시장에서 환전하고 크질오르다 시청으로 갔습니다. 크질오르다 주의 중심 도시이기에...시청 말고 도청도 있었습니다. 우린 '크질오르다' 라는 도시 정보가 중요했기에 시청으로 갔습니다. 비교적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시청 앞입니다. 택시 안에서 성은이가 자는 바람에 시청에는 자는 성은이를 안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시청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우리의 방문 목적을 말했더니 다른 여직원에게 안내하더군요. 그 여직원은 다시 어디론가 전화해서 젊은 남자 직원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입니다. 크질오르다는 한국인이나 한국 역사에서 역사적인 장소이므로, 우리는 크질오르다가 어떤 도시인지 알고 싶었고 그래서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의 인구는 얼마이며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에 관한 정보를 얻고 싶습니다. "

그는 우리를 자기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상급자에게 안내하려고도 했으나 상급자가 면담으로 바쁜 것 같자...자신이 직접 우리 일을 도와 주려 결심한 것 같았습니다.

시청 안 사무실입니다. 한 쪽에는 선화와 아이들이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멀리 한국에서 크질오르다 시청을 방문한 손님들이죠.

이 젊은 친구가 우리를 도와 준 사람입니다. 그는 여기 저기 전화하더니 영어로 된 자료는 없고 러시아, 카작어로 된 자료는 있다면서 그거면 되겠냐고 물어 왔습니다. 영어면 더 좋지만 그런 자료가 있을 리는 만무하기에 그거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크질오르다 시청에 와서 크질오르다 자료를 달라는 한국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잠시 후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한 뒤 우리 가족 더러 함께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이곳 도서관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크질오르다 시립 도서관이죠.

이 차가 그의 차입니다. 운전 기사가 따로 있는 걸 보니...제법 지위가 높은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뒷 자리에 앉아 그가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 갔습니다.

이곳이 도서관입니다. 왼쪽에 풀장도 있고 스포츠 센터도 붙어 있는 도서관이었죠. 그 곳에서 몇 몇 직원의 도움을 받아 크질오르다의 역사와 개요를 자세히 적은 책 한 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이리 저리 살펴보던 그는 제게 그 책을 건넸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 책의 내용을 다 복사할 수 있나요?"

" 복사는 필요 없어요. 이 책은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의 눈빛은 다정했습니다. 카작인들에게 많은 친절을 받아 봤지만 이번은 좀 색달랐습니다. 시청 공무원이 이렇게 부드럽게 민원(?)을 처리하다니... 그것도 외국인에게...가슴 한 쪽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 왔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느껴졌죠. 우리 팀에 꼭 필요한 크질오르다 일반 자료는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해 보였습니다.

하도 고마워서 도서관을 빠져 나온 뒤 한국에서 가져 온 기념품을 선물했습니다. 그가 말하더군요.

"저희 어머니도 고려인이에요. 아버지는 카작 사람이지요. 어머니는 한국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내가 오늘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면 무척 좋아하실 거예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요. 한국에서 찾아온 젊은 가정을 보고.. 이 친구는 엄마가 생각이 났고, 우리를 그토록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많은 시청 직원 중에서 이 사람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놀랍기만 합니다.  정탐 여행을 통해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카작인 중에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만.... 이번에는 유독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4 개의 정탐조마다 각각의 경험과 간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4배나 되는 귀한 경험을 팀 안에서 나눌 수 있었죠. 크질오르다 일대를 샅샅이 밟으며... 이 곳 사람들을 만나는 정탐 여행은, 하나님이 만드신 귀한 영혼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그들을 사랑하게끔 만들어 준 시간이었습니다.                2008.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