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6백 Km를 넘어

 

그러니까 5개월 전 쯤의 일입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일하고 있는 국제협력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교통사고로 인해 목숨은 건졌지만

당시의 응급 수술로 인해 안면에 흉터가 심하게 남은 청년이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알마티의 김현두 선교사님 교회를 섬기는

신실한 신자의 아들(고려인)이라는 설명과 함께  

안면부 모습을 찍은 사진 파일을 동봉해 왔지요.

 

성형외과 권오상 과장님께 보여 드렸더니

우리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고 싸게 해 줄 수도 있지만

한 번이 아니라 1년 동안 6-7차례 수술이 필요하기에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왔다갔다 하며 치료 받기 힘들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1달 전..한국으로 오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성형외과 과장님께 알렸고 과장님도 들어오면 보자고 하셨죠.

 

1인 항공료만 100만원이 넘는 거리를 날아오기에 내심 부담도 되었지만

선린병원이 선교병원이라는 소식을 듣고 오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곧 입국 비자가 나왔고 서울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고

마침내 4월 21일(월) 저녁에 포항 공항에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포항에 도착하는 날...

병원에 오면 입원시키면 되겠다 생각하고

월요일 오전 성형외과 외래를 찾아 갔는데

그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성형외과 과장님이 모레(수요일) 병원을 그만둔다는 것입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일도 생기지만  

5600Km 떨어진 카자흐스탄에서 날아 오는 환자는 어쩌나 싶어...

너무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성형외과 과장님은 일단 환자를 만나 보자고 하셨지만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것도 염두에 두셨습니다.  

울산에서의 개업 준비로 무척 바빠 보이셨습니다.

분명 지금 수술한다면 과장님 스케줄도 문제가 생길 게 뻔해 보였습니다.  

 

월요일 저녁, 무거운 맘으로 포항 공항에 나갔습니다.

제가 마중나온다는 소식을 듣질 못했기에

두 사람은 무척 반가와 했습니다.  

 

아버지는 성도 답게 온화한 이미지의 좋은 분으로 보였고

이제 18살 된 하나뿐인 아들이 바로 그 환자였습니다.

우측 눈 주변에 흉터가 심해 늘 썬글라스를 쓰고 다녔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고 북부해수욕장 근처 모텔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성형외과 선생님에게 생긴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 밤, 성형외과 선생님 집도 찾아가고(우리 아파트 아랫층이죠.)

울산에 계시는 선생님과 통화도 했습니다.  

주께서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염려도 많이 되었지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는 말씀만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화요일 아침,

모텔로 가 두 사람을 만나 성형외과 외래로 갔습니다.

 

세르게이를 본 선생님은 무척 고민하셨습니다.

이런 성형 수술은 처음 시작한 의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의사-환자의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성형외과 선생님은 매달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올 수 있는지...

1년동안 믿고 따라올 수 있는지 물어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래... 한 번 해 봅시다.. "

 

내일 병원을 그만 두시는 선생님이 오늘 수술해 주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던지...

혹시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옮기시더라도 저를 통해

계속 치료해 주겠다고 하셔서 더 감사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시술비는 받지 않겠다고 하셨죠.

 

일단 급히 입원 수속을 시켜

오전 11시 경 세르게이를 수술방으로 보냈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고 528호실에 입원했습니다.

말 안 듣는 철 없는 아들인데도

수술을 끝낸 아들을 바라 보는 아버지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한국에서 치료받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차와 가재도구도 팔았다 합니다.

 

이제 겨우 첫번째...앞으로 1년 동안 1-2달 간격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언제나 따뜻해 보였습니다.

 

원무팀장님의 도움을 얻어

601호 1인실(특실)로 옮겼습니다.

이런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어 저도 기쁘고

아버지도 무척 고마와 했습니다.  

 

성형외과가 없어 졌기에

이젠 이 두 사람이

선린병원에 수술 받으러 오진 못할 것 같습니다.

 

이 특별한 병원에 대한 그분들의 감사를

대신 전해 드립니다.

 

앞으로 추가 수술을 위해 1-2달에 1번 한국으로 들어와야 하지만

선린병원이 아니기에 사실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성형외과 권오상 선생님과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위 이야기는 지난 2008년 4월 22일 선린병원 찬양팀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세르게이는 병원에 입원한 지 4일째 되는 지난 금요일 퇴원했고

실밥은 퇴원 후 3일이 지난 오늘, 성형외과 선생님 집에서 풀었습니다.

(성형외과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우리 병원에 출근하시지 않습니다. )

 

퇴원 후 세르게이 부자(父子)는 그동안 북부 해수욕장 근처 발렌타인 호텔에서 4일간 묵었습니다.

하루 숙박료가 6만원인 트윈 룸이었고 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습니다.

 

세르게이는 교통 사고 이후 입맛을 완전 잃었다 합니다.

아버지와는 달리 한국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초밥 종류만 간신히 몇 개 먹을 정도였죠.

"알마티에서도 늘 이랬다.." 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애처롭습니다.

 

성형외과 선생님으로부터 다음 수술은 3개월 후에 하자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정이 바쁜 성형외과 선생님과 카자흐스탄에서 또 와야 하는 환자의 입장이 배려되었다고는 하지만..

올 가을 학기에 대학에 들어가려고 준비중인 세르게이로선 하루 속히 수술 일정이 끝났으면 했기에... 다소 실망스런 내용입니다.

이렇게 흉터 있는 얼굴로 공부할 자신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배려해 준 성형외과 선생님이기에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늘 오후, 누군가가 제 진료실 방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 왔습니다.

"누구세요?"  처음 보는 아가씨였습니다.

" 저기... 그 분들 퇴원했나요? 카자흐스탄에서 오신 분들...."

알고 보니 우리 병원 여성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였습니다.

머쓱한 표정으로 몇 마디를 물어 보더니...제게 봉투 하나를 내 놓았습니다.

"그 분들께 전해 주세요.."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고 그 분들을 돕고 싶은 생각이 들어 며칠 전부터 찾아 왔는데 그 동안 만나질 못했다고 합니다.

고맙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습니다. 제가 잘 전달하겠습니다."

2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녁에 호텔로 찾아가 이고리(세르게이의 아버지)에게 건넸더니... 그 역시 감격해 했습니다.  

"다음 번에 올 때 꼭 찾아 뵙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글쎄요... 다음 번에도 이 부자(父子)가 포항에 올 것 같진 않습니다.

성형외과 선생님이 개업하실 울산으로 가야 할테니까요.  

 

지난 주말 저도 심한 몸살 감기를 앓았습니다. 마음 고생을 좀 했나 봅니다.

저도 그런데 타국 땅에 온 이 두 사람은 오죽할까요?

 

지난 주일, 우리 가족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두 사람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국말은 전혀 못 알아 들을텐데...

 

성형외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카자흐스탄 현실에 함께 안타까워했고

한국 대형마트 주차 안내원들의 친절한 매너에 신기해 했고

어디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한국을 보며(튤립 축제 보여 준다고 선린대학에 갔었거든요) 신기해하던  두 사람은 이제 내일 떠납니다.

내일 오전 09:55 발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포항을 떠난 뒤 18:10 에 인천에서 알마티로 떠나는 아시아나 비행기를 탑니다.

 원래는 5월 2일 출국 항공권이었는데 29일로 변경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수술이 끝났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성형외과 선생님이 없어 한국까지 찾아와야 하는 카자흐스탄 사람들...

우리가 있는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선린병원이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릴 환대하는 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2008.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