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단기선교여행  1. 홈스테이

2008년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온 가족이 말레이지아 단기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가정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의 카자흐스탄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로 줄곧 카자흐스탄 '아스타나'로만 4번의 단기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2003,2005,2006,2007).  같은 지역(아스타나)에서,  비슷한 사역 형태로(의료선교), 그 곳에 계신 선교사님들과만 동역하다보니...네 차례의 단기사역이 지나가는 동안...어느 새 슬며시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2007년 상, 하반기에 걸쳐 두 차례의 충진선교학교 스탭을 섬기게 되면서 충진교회에서 떠나는 정탐 여행에 합류해 보고픈 맘이 생기게 되었고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선교사님을 만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확인하고 다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말레이시아 단기선교여행은  충진교회와 선린병원에서 모두 28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번 팀의 특징은 아이들이 많고 가족 단위로 많이 참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정의 삼남매(형민,시은,성은)를 포함해 초등학교 1학년 이하 학생만 여섯 명이고 막 두 돌 지난 아기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 팀은 현지 가정에서의 홈스테이와 현지인과의 접촉을 통한 정탐이 주 목적이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훌륭한 선택이었고 실제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홈스테이 기간을 빼고는 쿠알라룸푸르의 웨슬리 감리교회에서 주로 묵었습니다.(위 사진에 보이는 교회입니다.)  말레이시아는 60%의 말레이인, 30%의 중국인, 9%의 인도인으로 이뤄진 나라입니다. 말레이인들은 거의 모두가 무슬림이고 인도인은 힌두교도들인데 반해 중국인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종교 분포는 이슬람교 53%, 불교 및 중국 종교 28%, 힌두교 7%, 기독교 7%, 무교 3% 인데 기독교 인구 7%의 대부분이 바로 중국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묵었던 웨슬리 감리교회에서도 말레이시아 여성 기독지도자 모임 등..여러 기독교 모임이 있는 것 같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인들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중국 교회는 중국 본토로 선교사를 보내는 등의 활동은 보이고 있지만 정작 말레이인을 상대로 한 선교 활동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행정, 정치는 말레이인이, 경제는 중국인에 의해 독점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두 민족간의 갈등은 서로 간의 골을 깊이 패게 했고 말레이인은 무슬림이라고 단정해 버린 중국 교회는 말레이인을 향한 선교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 일을 꿈꾸고 있지만 극히 소수라고 합니다. 오히려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홈스테이를 했던 마을은 쿠알라룸푸르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지역입니다. 밀림 같은 깊은 숲을 지나 도달한 외딴 마을이었죠.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마을을 여러 모로 지원하고 교육도 하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이 참 이뻤습니다.

 이 마을은 제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열대 나무들과 과일들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마치 온실처럼 길가에도, 마당에도 위 사진과 같은 나무들로 가득했죠. 위 사진은 이 마을에서 찍은 람부탄, 파파야, 바나나 등의 열대 과일들 모습입니다.

 우리가 묵었던 집은 말레이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남매의 가정이었습니다. 큰 언니가 우리 가족을 맞으러 나왔고 함께 사는 동안 여러 도움을 주었습니다.  두 명의 남동생이 가정을 이뤄 이 집에서 함께 살아 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이곳 사람들은 우리와 의사 소통하기에 필요충분할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서로 더듬거리는 영어 수준이죠. 덕분에 그나마 말레이어를 몰라도 의사소통에는 큰 어려움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는지라 우리 가족도 이곳 풍습에 따라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2박 3일동안 지냈습니다. 여기 주식은 쌀이고 찰기가 떨어지는 쌀밥에 나물, 카레가 들어간 찌개 비슷한 음식, 쌀국수로 만든 음식, 튀긴 생선 등을 주로 먹었습니다. 거의 매 끼니 마다 바나나 튀김을 먹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고레 삐썅' 이라고 불렀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는 주전자에 담긴 물로 오른손을 씻습니다. 막내 성은이는 손으로 먹는게 더 쉬운지 금새 적응했고 우리 모두도 이틀째부터는 손으로 밥 먹는게 익숙해졌죠. 우리를 맞은 가정은 작년에도 일본 학생과 한국 방문자 등을 맞았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다섯 번 기도하는 무슬림의 전통도 이 작은 마을에선 두드러졌습니다. 이름 아침, 마을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눈을 떴고 말로만 듣던 동남아 무슬림의 생활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볼 수 있었죠.

잘은 모르겠지만 이곳 주민들도 우리를 여러 시선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우린 홈스테이 기간동안 섣불리 종교 논쟁에 나서지 말 것을 주의 받았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을 대부분 기독교도라 여기고 있고(선교사님들이 전략적으로 기독교인들을 홈스테이 마을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간동안 우리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줄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말레이 무슬림 뿐만 아니랃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크리스챤' 이라 하면 미국 혹은 미국식 문화에 찌든 사람으로 연상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국은 각종 TV, 영화, 비디오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 퇴폐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타락으로 얼룩진 '저급한 나라' 죠.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형편없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우리 가족이 그들과 함께 사는 동안 그들의 이런 선입관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참 모습을 알게 되길 기도했습니다.

 이 시골에도 홍콩 스타 TV가 들어와 있었고 청소년 수련 센터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집 사람들 중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집에 자동차가 있었는데 가끔 전화를 받고 나가 손님을 태운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TV 앞에 앉아 있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고 열대 지방인지랑 자주 샤워를 하고 수건만 허리에 두른 채 알몸으로 다니기도 했습니다.  

홈스테이 기간 동안 말레이인들의 전통 복장을 선물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옷을 입고 나오자 마치 무슬림 같다며 그들도 무척 좋아했죠. 아마도 홈스테이 마을 주민들은 한국 방문자들에게 이슬람 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자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도 있지요.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 9:20) "

말레이인들 역시 태국의 주류 민족 타이족처럼, 카자흐스탄의 주류민족 카자흐 족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레이시아의 상황은 카자흐스탄보다 좋지 않죠.  카자흐스탄의 경우는 다민족교회를 통해 일부 카자흐 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반해 말레이시아에는 다민족 교회가 전혀 없고 중국인 교회에서도 말레이인들을 '어쩔 수 없는 무슬림'으로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이 기독교 국가 러시아에 의해 150년간 지배받았던 것처럼 말레이시아도 기독교 국가인 영국에 의해 170년간 지배받았지만 오히려 카자흐스탄보다 더 강력한 무슬림의 견고한 진이 구축된 것을 보면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기독교 세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말레이시아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대가가 얼마나 큰 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히려 철저한 무신론인 공산주의에 의해 70년간 지배된 카자흐스탄이 더 나을 정도니까요. 무신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랑 없는 기독교입니다.

(현지 복장을 한 시은이와 성은)

말레이시아가 이렇게 강력한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은 놀랍게도 최근의 일입니다. 독립 후에도 헌법상 국가 공식 종교를 이슬람으로 표방하였지만 지금처럼 이슬람 종교법을 각 사회 부분에 적용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969년 인종 폭동 후 정부는 본격적으로 이슬람 부흥 운동을 추진하였고 그 후 이슬람 학생운동단체와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야당 PAS와 집권 여당 UMNO에 의해 계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합니다. 실제 이슬람 법은 교육, 은행, 학교, 사업 등 모든 분양에서 실행되고 강화되고 있습니다.  

 

(현지 가족들과 함께)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나 말레이인들에게는 예외입니다. 이들 말레이 인들은 나면서부터 회교도이어야 하는 헌법상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슬람의 원리를 도입한 이슬람 보험제도와 이슬람 은행을 설립하고 말레이 학생과 외국 학생들의 이슬람 교육을 전담하는 국제 이슬람 대학(1986년)을 육성하고 있으며 국제 이슬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제기구와 이슬람 개발은행의 주요 멤버라고 합니다. 작은 기도 처소인 수라우는 모든 관공서와 새로운 주택 단지, 학교에 반드시 세우도록 되어 있고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과 이슬람 교육방송은 텔레비젼을 통해 홍보되고 있습니다.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이슬람에서 허용하는 도살법을 통하지 않는 닭고기와 소고기는 할랄이 아니라 하여 수입 금지를 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초등학교 이전부터 모든 지역에 종교 학교가 있어 코란을 읽고 외우는 것을 법률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아랍어 학습을 의무화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아 아이 역시 학교에 다녀온 뒤 오후 늦게 종교학교에 가야 했고 아랍어 교과서로 숙제를 해야 했습니다.

 

 이 건물이 이 마을에 있는 모스크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도 하루 다섯 번 이 모스크의 외부 스피커를 통해 동네에 기도가 울려 퍼집니다.

 체육시간에도 어떤 아이들은 두둥을 머리에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나 남편이 허락하면 머리에 안 쓰고 나갈 수도 있다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흰 천을 머리에 두르고 달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1405년 말라카 왕국 건국(이슬람 왕국) /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 (130년간 지배) / 1545년 프라니스스코 사비에르 카톨릭 포교

1641년 네덜란드에 의해 점령(3세기 동안 점령) / 1786년 영국 페낭 섬이 동인도회사에 넘어감  / 1824년 말라카도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에 들어감 (나폴레옹 전쟁과 몇 개의 전쟁을 통해 결과적으로 영국은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수중에 넣게 됩니다)

1942년 일본에 의해 점령 / 1957년 말라야 연방이 완전 독립 /1863년 브루나이를 제외한 발레이시아 연방 발족

1874년 팡코르 협정  /1965년 말레이인 우대 정책에 반발한 싱가포르가 1965년 분리 독립

 

1824년 말레이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영향권으로 나뉘게 됩니다. 1874년 팡코르 협약 (Pangkor Treaty)을 통해서 영국은 처음으로 말레이 반도의 국가들을 자신들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두었는데  영국의 식민지는 영국인 총독이 이끌며 Singapore, Melaka, Pulau Pinang, Labuan, Cocos Isles and Christmas Isle로 구성되었고 수도는 Singapore였죠. 영국보호령(British protectorate)은 영국의 고등판무관(British High Commissioner: Governor of the Straits Settlements)이 이끌었고, States of Negeri Sembflan, Pahang, Perak and Selangor 등의 국가로 구성되었다. 이것이 말레이 연방(The Federated Malay States)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팡코르 협약을 맺을 때 영국은 말레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선교여행을 통해 만난 한 OMF 선교사님은 이것이야말로 큰 실수였다고 말씀하시며 이 전통으로 인해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인들은 흔들림없는 무슬림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일어나 이슬람 부흥 운동으로 인해 말레이시아의 무슬림은 견고한 진으로 변해 갔습니다.

 홈 스테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우린 함께 먹고 자면서 이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사역, 문화 행사를 통해 그들을 향한 우리의 맘을 표현하게 되지요. 그 얘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갈께요.  2008.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