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까와 함께

한동대학교 선린병원에는 5월 중순부터  우즈벡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온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빅토리아... 나이는 31살, 고려인이고 4학년에 다니는 딸이 있는 엄마기도 합니다. 러시아식 이름은 애칭이 있습니다. '빅토리야' 라는 이름은 '비까' 라고 부르죠. '니꼴라이'는 '꼴랴'로, '블라디미르'는 '발료자'로 부르듯이....

비까는 2001년 우즈벡스탄에 왔던 한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기아대책이 우즈벡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운영하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최근 선교단체나 NGO의 활동을 급격히 제한하고 있는 우즈벡스탄의 상황으로 인해 이 병원 역시 '한국 의료 서비스' 라는 새 이름으로 출발하게 되었고 비까 역시 새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무료 진료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 병원에서도 무료 진료를 시행할 계획이라 합니다.

병원 이름이 '한국 의료 서비스' 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간 근무했던 한국인 의사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한의사 선생님이 3개월 정도 머물다가 가신 게 다 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원하고 한국 의약품이 제공되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병원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얼마 전, 선린병원에는 사마르칸트에서 온 의사 , '나타샤'도 연수를 마치고 돌아갔었는데(우리 홈을 통해 소개한 적 있지요?) '비까'도 바로 그 나타샤 와 함께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타샤 선생님이 비까의 한국행을 적극 추전했다 합니다.

비까는 고려인이긴 하지만 한국말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연수를 하고 오라는 말에 난색을 표했지요. 하지만 결국 그녀의 표현대로 '설득되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마르칸트에 있을 때 주로 병원 접수 업무를 보면서 각 과의 기구를 소독하는 일을 맡던 간호사였는데 이번에 한국 연수를 통해 외과계 전문 간호사로 일할 계획이라 합니다. 어쨋든 우리가 볼 때는 너무 귀한 자매이고, 귀한 기회를 통해 한국에 왔습니다.

비까가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익숙하지 않아 러시아어가 가능한 저와 자주 접하게 되었고 우리 가정은 자주 비까를 초청했습니다. 포항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가정이 출석하는 충진교회에 매주 함께 나갔고 교인들과도 교제할 수 있었죠.

 

비까를 초청한 것은 기아대책을 통해 알 게 몇몇 장로님들에 의해서입니다. 대구에 계신 분들인데 비까는 한국에 와서 첫 한 달 남짓을 서울의 기아대책에서 보냈고, 나머지 시간을 선린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국이 생각나고...특별히 두고 온 딸이 무척 보고 싶어졌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처음 만날 때부터 비까의 바램은 빨리 한국에서의 연수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마르칸트에서도 최근 들어 유괴범이 설치고 있다는 얘기까지 하며 두고 온 아이를 걱정했습니다. 타쉬켄트에 비해 사마르칸트는 비교적 조용한 도시였는데...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1. 포항 어린이 큰 잔치

언젠가 비까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 전도협회에서 주최하는 '포항 어린이 큰잔치'를 간 적이 있습니다. '마빡이'로 유명한 개그맨 정종철이 온다는 얘기에 아이들이 많이 모인 행사였는데 토요일 오후를 맞아 비까와 함께 바람도 쐴 겸 포항 실내체육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냥 자유롭게 행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입장을 원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몇몇 아이들과 함께 그룹을 만들어 노란 조끼를 입은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던, 그렇지 않던... 모든 아이들이 이 노란 옷 입은 선생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선생님은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고 몇몇 다른 아이들과 조를 이뤄 어린이 전도협회 조끼를 입고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까도 멀리서 이 모습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하게 들을 순 없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습니다.

얘기를 마친 후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습니다.  

비까에게 말했습니다. 한국도 여전히 기독교인의 비중이 20%에 불과하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들려져야 한다고...무척 놀라더군요. 한국은 대부분이 기독교인이고 대부분의 아이들도 예수 믿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비까는 이번에 들어와서 한국에서 불교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4월 초파일 즈음 서울, 포항 등지에서 본 수 많은 연등 행렬을 얘기했습니다. 어린이 전도 협회의 노력들도 비까가 본 또 다른 한국의 모습이었겠지요?

행사를 위해 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줄 지어 서 있는 노란 조끼 입은 선생님들의 모습입니다.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해병대 의장대의 멋진 시범에 모두가 큰 박수를 치며 즐거워 했죠.

실내 공연이라 너무 음향이 커서 좀 힘들었지만 비까와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이 날 특별 손님으로 초청된 '마빡이' 정종철 씨의 간증이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작은 키와 그리 예쁘지 않은 얼굴을 주셨어요. 하지만 전 실망하지 않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만 있는 특별한 재능들을 알 게 해 주셨어요 . 그 재능을 통해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었어요.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예요. 우리 어린이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재능과 기대를 가지고 계셔요."

집회가 마치고 우리는 기념품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우즈벡스탄에 있는 비까 딸의 선물도 챙겼지요.

 

2. 죽도 시장

우즈벡스탄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곳이죠. 올해로 2700년 이상 되는 고대 도시 사마르칸트에서 온 비까는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포항에 와서 생전 처음 보는 해산물들을 보게 되었죠. 비까는 점심, 저녁을 병원에서 먹습니다. 선린병원 식당은 비교적 다양한 먹거리가 제공되는데 비까가 처음 보는 것들도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포항에는 유명한 죽도 시장이 있습니다. 울릉도와 동해안의 주요 해산물들이 모이는 곳이죠.

그래서 우린 비까에게 죽도 시장을 보여 주기로 했습니다.  

비까는 생선 말고 다른 해산물들이 무척 징그럽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징어, 문어 같은 것들과 개불, 해삼, 멍게, 조개류 등은 최악이라더군요. 아귀도 이상하게 생겼고 멸치는 우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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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시장에서 우린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특별한 해산물들과의 만남을 딸에게 보여 줘야 하니까요.

물론 비까 뿐 아니라 우리 삼남매들에게도 죽도 시장은 재미있는 곳입니다. 고래 고기도 그렇고 어마어마하게 큰 문어도 있습니다.

선화는 죽도 시장에서 비까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데도 이곳을 꼭 가야 한다며 거미줄같이 연결된 시장 바닥을 샅샅이 뒤졌죠.

그 곳이 어디냐 하면....'한복 파는 집'입니다. 죽도 시장에도 한복집이 모여 있더군요. 선화는 비까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의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비까가 고려인이라 더 그런가 봅니다.

 

3. 상옥 영일교회에서

우리 가정이 출석하는 충진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영덕과 포항 상옥에 있는 미자립 시골 교회를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주일 오후, 비까와 우리는 이 모임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포항에서 상옥을 가려면 내연산을 넘어야 합니다. 경북 내륙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1시간 반이나 달려야 도착하는 외딴 곳이죠.

이전에 카자흐스탄의 '자미라, 까밀라' 자매와도 한국의 농촌 마을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비까와 함께 간 상옥 마을은 멀리 산이 보이고 들판이 확 트인 곳이었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강한 오후였죠.

비까가 서 있는 뒤로 상옥 영일교회가 보입니다. 비까는 영일교회가 너무 작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서울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 사랑의 교회 같은 큰 교회 건물들만 봤는데...이렇게 작은 교회도 한국 교회의 모습이란 사실이 충격적인 모양입니다. 자립이 안 되는 열 명 남짓의 작은 교회였으니까요.

충진교회 봉사팀은 의료팀, 미용팀으로 구성됩니다. 미용팀은 이렇게 밖에서 미용 봉사를 하고 마당의 한 쪽에서는 피부 레이저를 사용한 시술도 이뤄집니다.

교회 당 안에서는 간단한 진료와 함께 약국, 골밀도 검사, 수지침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영일교회를 방문하는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째 계속되다 보니 기도팀으로 참여 하시는 권사님들이 방문자들이 지난 주에 교회에 나왔는지 체크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진료 시간에는 약만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소개하고 복음 전하는 일이 이뤄집니다.

엄마, 아빠가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모님을 따라 온 아이들은 자연학습 에 들어가게 되지요. 교회 바로 옆이 논, 밭이고 깨끗한 개울이 흐르고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아이들이 개울가에서 뭔가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청개구리네요. 형민이와 남자 아이들은 울음주머니가 볼록한 청개구리를 잡아 요구르트 병에 넣습니다. 물론 나중에 놓아 주겠지만...성은이는 개울 바닥에 죽어 있는 뭔가를 발견하고 연신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사실 지금까지 영일교회는 저 혼자 왔었습니다. 그런데 비까에게 보여 주려다가 가족들도 오게 되었는데...함께 오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최근 비까는 그토록 바라던 우즈벡스탄으로 예정보다 빨리 가게 되었습니다. 딸을 보고 싶어하며 기도하던 자매의 기도를 들으셨는지 오는 7월 3일 항공 편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하마터면 8월 6일 비행기를 타야 할 뻔 했거든요. 이제 선린병원에서 함께 지낼 시간은 딱 2주 남았습니다.

비까는 한국어를 잘 알지 못하지만 매일 아침 선린병원 예배 시간에 참석합니다. 지난 한 달 남짓 항상 그 자리에서 예배 드렸습니다.  "오늘은 목사님 말씀 좀 알아 들었어요?" 라고 물으면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제법 많이 알아 듣는 걸요" 라고 웃습니다. 앞으로 우즈벡스탄에 돌아 가더라도 한국어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네요.

어제 비까는 선화와 이마트에 다녀 왔습니다. 우즈벡스탄에 가져 갈 물건들을 미리 사 두기 위함입니다. 우리 집에서 봤던 아이들의 공작 재료 '아이 클레이' 세트도 사고 딸에게 줄 롤러 스케이트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선린병원에는 이렇게 선교지의 많은 의료인들이 다녀갑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선린병원에서 의료 기술 뿐 아니라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돌아 가지요. 아무쪼록 비까의 이번 한국 방문이 그녀의 삶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남길 바랍니다. 비록 딸이 보고 싶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녀의 삶에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찬양하며 간증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2007.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