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리와 알라

선린병원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외과 의사 왈리가 있습니다. 전 작년(2006년) 3월 9일 선린병원에 처음 출근했는데 왈리도 그 즈음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포항으로 이사왔던 작년 4월 25일 이전까지 저는 선린병원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냈는데 게스트 하우스 식구 중에는 왈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왈리가 오는 4월 20일이 되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1년 남짓 선린병원에서의 연수를 마치고 다시 본국으로 귀국하는 것이죠. 이곳에 있는 동안 주로 외과 연수를 했기에 수술실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는 내시경실에도 자주 들르고 있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외과 선생님들이 대장내시경이나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모든 의사들이 그렇다는 건 아닐테고...대장항문 분야를 전공하는 외과 선생님들이 대장내시경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러니까요.

왈리는 영어를 잘 합니다. 저보다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기에 내시경 증례에 대한 얘기 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나 한국 의료에 대해서도 자주 얘기합니다. 한국에서 시행하는 국민건강보험의 암검진 사업을 보며 놀라기도 하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대기해 가며 위내시경을 받는 모습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국제뉴스에서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다음 날 왈리에게 들었던 뉴스를 전해 줍니다. 얼마 전에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몇몇 도시를 점령했다는 최근 소식을 전해 주자 왈리는 실제 일부 사람들은 탈레반을 더 좋아한다며 그 뉴스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 주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선교단체 인터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행진을 벌이려고 했을 때 우리 병원에 있던 왈리에게 인터뷰를 했던 신문도 있었습니다. 신문을 봤더니 태연스레 소파에 앉아 "아프가니스탄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것" 이라는 우호적인 얘기를 했더군요.

왈리와 함께 내시경실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서울에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열리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맨날 포항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왈리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주고픈 맘이었죠. 곧(4월 20일)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요...

아니나다를까 왈리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한 번도 서울에 가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천에 도착했고 바로 김포를 거쳐 포항공항을 통해 포항으로 왔기에 서울 시내 구경을 한 번도 못해본 거죠. 부산 해운대와 안동은 한 번 가봤다고 합니다. 저도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 왈리를 데리고 서울에 가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왈리, 선린병원 내시경실 간호사들과 함께 -서울역 근처 베니건스)

왈리한 약속한 그 날 아침... 하늘은 어둡고 안개가 짙게 깔렸습니다. 포항 공항은 조금만 안개가 끼어도 비행기가 안 뜨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미 항공권을 예매해 두었지만 전화를 걸어보니 역시나 첫 비행기는 뜨지 않는다는 안내가 나왔습니다. 전날 밤 충진선교학교로 인해 자정 넘게 집에 들어온 터라... '그냥 서울에 가지 말고 쉴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기로 한 내시경실 간호사들에게 못 갈 것 같다고 알리고 병원의 외과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9시 병원 로비에 나올 왈리에게 오늘 학회 못간다고 전해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내시경실 간호사 한 사람으로부터 자동차를 타고 대구에서 KTX를 타고 가면 안되냐는 물음이 있었고 모두들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 대구에서 KTX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왈리에게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연락이 되었죠.

아침 9시 40분쯤 병원에 가보니 왈리는 말끔하게 차려 있고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간다는 기대감에 들떠...게다가 기차를 탄다는 얘기에 더욱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한국에 와서 기차를 타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왈리는 "비행기가 아니라 기차로 가게 되어 더 기쁘다" 라며 앞으로의 여행(?)에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제 차를 가지고 대구로 가서 KTX를 탔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한 뒤 인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며 찍은 사진입니다.

왈리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The Islamic republic of Afganistan" 국민답게 이 부분에선 철저합니다. 평소 병원에서 식사할 때도 잘 모르는 음식은 아예 먹질 않습니다. 혹시 돼지고기가 들어 있을지 모르니까요. 왈리와 처음 만났던 날에도 함께 김밥을 먹다가 김밥 속의 햄을 보고 다시 뱉어내던 일이 있었습니다. 모슬렘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섞어 먹여야만 했던 신촌의 뒷 골목)

해산물의 경우도 전형적인 생선 모양이 아닌 것은 사양합니다. 예를 들어 조개,인삼,낙지,장어 같이 생긴 것들입니다. 자기 눈에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요.. 덕분에 우린 왈리 때문에 항상 쇠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이 날 저녁에도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우리는 돼지고기를 먹고 왈리만 쇠고기를 먹었습니다. 우리는 삼겹살이 맛있다며 엄지 손가락을 지켜 세워지만 왈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죠.

타국에 떨어져 지내는 동안 별 재미있는 일이 없었을 것 같은 왈리를 위해 그 날 밤, 청계천에 가 보았습니다. 서울 도심 야경도 구경거리지만 도심 가운데 흐르는 천과 조명은 이 이방인에게 색다르게 다가왔음은 분명합니다.

(청계천의 야경)

왈리는 이번에 처음으로 지하철도 타 보았습니다. 8차선도 훨씬 넘는 도로를 보며 역시 서울은 대도시라며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지요. 숙소도 호텔을 사용했기 때문에 맛있는 호텔 뷔페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대접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을 테죠.

청계천에서의 산책을 마친 뒤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온누리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학회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고 주일 예배를 드리기가 여의치 않으니 아침 6시 50분의 온누리교회 1부 예배에 다같이 가기로 결정한 것이죠. 그리고는 우리 중 한 사람이 왈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왈리...우린 내일 아침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건데 같이 갈래요?"

왈리가 알아 들었을까? 왈리는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잘 준비를 마친 뒤 저는 왈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왈리...우린 내일 아침에 예배 드리러 가요. 우린 다 갈 건데...같이 갈 수 있겠어요?"  배려하기보다는... 그냥 데리고 가도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왈리는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다시 물어본 뒤....우리 모두 다 간다는 말에 자신도 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속으로 철저한 모슬렘인 왈리가 교회를 가겠다고 얘기하는 것에 적잖게 놀라며 또 한 편으로 기뻐했습니다. 내일 아침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전 모닝 콜을 듣고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움직이고 물소리를 내자 왈리도 이내 말없이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여선생님들의 숙소는 다른 곳이라 우리가 먼저 가서 그 곳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6시 10분... 도로를 가로 질러 그랜드 힐튼 호텔의 레지던스 건물 로비에 앉아 곧 내려올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왈리와 함께 소파에 앉았는데...왈리가 제게 "잠깐만...." 이라고 하더니 맞은 편 도로가 보이는 창문 앞에 가 섰습니다. 호텔인지라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죠.

왈리는 벽을 향해 서더니 이슬람의 기도 의식을 따라 서서 두 번,  반쯤 굽혀서 두 번, 꿇어 앉아 두 번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하더군요. 자세히는 몰라도 왈리가 아침 일찍 교회에 가기 전에 자신들의 법도를 따라 알라를 향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기도를 마치고 옆 자리로 돌아 오는 왈리에게 이것 저것 물어 보았습니다. 기도를 몇 번 하는지...메카의 방향을 모를 때는 기도하는 방향을 어떻게 정하는지....왈리는 제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메카의 방향을 모를 때는 어느 방향이든지 한 곳을 정하고 하면 된다고...

잠시 후 일행이 로비로 내려왔고 우리는 택시에 나눠 탄 채 온누리 교회로 향했습니다. 아침 6시 50분에 드려지는 온누리교회의 1부 예배는 참 좋았습니다. 교회당에 들어서자 회중들을 바라 보며 단상 위에 줄을 맞춰 서 있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상의는 하얀 와이셔츠나 블라우스였고 하의는 검은 바지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가대였습니다. 전형적인 가운을 입지 않고 선 채 마치 찬양집회 때의 '콰이어' 처럼 찬양할 때마다 큰 소리를 울려 냈습니다. 그 앞에는 빨간 와이셔츠나 블라우스를 입은 싱어들과 찬양 인도자가 서 있었죠.

그 날 아침 틀에 박힌 예배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온 정성을 다해 드릴 수 있는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아마도 타지에서 드려지는 예배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2000년 초 선화와 함께 경배와 찬양 집회에 참석한다고 목요일 밤 이 교회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우리 홈에도 그 내용이 있죠. 잘 찾아 보시면...)

나중에 왈리에게 예배가 어땠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왈리는 말했죠. "특별했지만....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내용을 알 수가 없어요..."

어쨋든 왈리는 동시대, 한국에서 드려지는 개신교 예배를 직접 목격한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왈리는 예배당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몇 번 참석했습니다. 선린병원 아침 예배에 참석한 적도 있고 한동대학교 채플에 들어가보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런 부분은 문화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입니다. 그가 가진 종교적 정체성은 이슬람이기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학회 첫 날은 '한일 소화기내시경 심포지엄' 이었습니다. 왈리는 한국어와 일본어 통역(동시 통역기 사용) 으로 이뤄지는 국제 심포지엄이 힘들었지만 여러 시술들이 live 로 이루어지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둘쨋 날은 대한소화기내시경세미나였는데...저는 왈리를 위해(?) 학회를 빠지고 -왈리는 이제 곧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야 합니다 - 서울의 몇 군데를 보여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왈리를 데리고 간 곳은 세 군데입니다. 경복궁, 남대문시장, 용산 국립박물관. - 이곳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한국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국가이며 놀랍게도 수천년동안 불교 문화를 유지해 왔고 기독교는 불과 20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소개했습니다.(개신교는 100여년) 고구려,신라,백제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했죠. 고구려,신라,백제....

왈리는 경복궁에 남아 있는 '왕의 세간' 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전통 문틀이나 책상...경복궁 앞의 수문장 교대식도 재미있어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왕도 지금 살아 있다며....아프가니스탄 근세사를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번데기를 줘 봤지만...벌레 씹은 표정을 짓기에 저 혼자 먹었습니다.

남대문 시장을 돌아본 뒤 점심 때가 되어 삼계탕 집에 들어갔습니다. 왈리는 닭을 좋아합니다. 특히 삼계탕도 좋아하는데 의혹이 가는 물질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맘에 든다고 합니다. 물과 닭 그리고 약초만 들어있으니까요. 삼계탕이 나오기 전...조그만 조롱병에 인삼주가 나왔습니다. 전 재미로(정말 재미로...) 조금 따른 뒤 왈리야 한 번 맛보라고 권했습니다.

왈리는 조금 삼키더니 이내 오만상을 지었죠. 전 웃으며... 아마도 약간의 알콜이 들어 있는 것 같다 했죠. 그랬더니 화들짝 놀라며 화장실로 달려가 입을 씻고 왔습니다. 자신은 술을 먹으면 절대로 안된다며....왈리는 이슬람 사회에서는 술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외국인들이 있기에 술이 거래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을 멀리 하고 자기를 지킨다 했습니다.

왈리와 1박 2일 함께 지냈지만 왈리가 믿는 신앙은 깔끔하고 철저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왈리가 선린병원에 오게 된 데에는 아마도 어느 선교사님의 연결이 있었겠지만 1년 간의 선린병원 생활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그의 신앙은 여전히 그를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Mission Exposure를 보면  '선교의 동역적 관점'에서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형태를 '보내는 자, 선교 동원가, 손대접하는 자, 중보기도자, 나가는 선교사'로 분류합니다. 이 중 '손대접하는 자'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미전도종족의 사람들을 환대함으로써 그들이 복음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일을 합니다.

왈리와 며칠 있어 보니....물론 이틀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대접하는 것으로 한 사람이 바뀌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결국 이 일에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없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시경실에 와 있는 왈리를 오랫동안 배려해 줬던 저의 대한 태도에서도 이렇게 단호함이 느껴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죽 할까요.

이슬람교도든, 기독교도든... 자신의 믿음에 대한 철저함과 신뢰는 그 뿌리가 깊어 보입니다. 누가 이 깊은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기에 나면서 무슬림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이며...이 선물을 왈리가 받아 누리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은혜와 사랑이 필요한지...자꾸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200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