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대환난(?)의 끝

우리 가정에서만 사용하는 '7년 대환난' 이란 단어는 아직 어리던 삼남매를 기르던 시절을 일컫는 말입니다. 첫째 형민이부터 줄줄이 이어진 출산으로 인해 주일 예배 한 번 제대로 드리기 어렵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음껏 바깥 출입 하기도 힘들고 매일 밤 젖병을 씻고, 기저귀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삼남매를 기르며 힘든 시간보다는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이 훨씬 더 많았지만 아이들에게 매여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 어려운 선화의 상황을 보며 우린 이 기간을 '7년 대환난' 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곧 끝날 힘든 시기라며 서로 격려할 때 사용하던 말이었죠. 그런데 2000년 10월 5일 형민이의 출생으로 시작된 이 기간은 2007년 3월 5일 막내 성은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돌아오는 월요일부터는 오전에는 우리 집에서 아이들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들 유치원이나 학교로 출근(?)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줄어든다거나 훨씬 편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과정을 끝내고 그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이기에 분명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첫째 형민이는 내일 포항동부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2003년 가을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온 뒤...예명 어린이집에 보내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년이 흘러 초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형민이는 이제 꼬마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학생 티가 납니다. 아빠, 엄마에게 말 못하는 비밀이 있을 정도로 커 버렸습니다. 형민이는 누구보다 엄마, 아빠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형민이는 첫 돌을 비롯해 두 번째, 세 번째 생일을 모두 카자흐스탄에서 보냈던 아이입니다. 우리 가정의 카자흐스탄 생활은 말 그대로 가족 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아빠, 엄마와 하루종일 함께 지내던 형민이는 양산, 부산, 포항을 1년간 거쳐가며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우리 가정의 대표 선수죠.

형민이는 아직 어립니다. 아직 모르는 말이 많아 자주 물어 봅니다. 새로운 단어는 그냥 바로 접수해 버립니다.

형민:"엄마..그..죽는다의 어려운 말이 뭐예요?"

아빠:"돌아가시다?"

엄마:"사망하다?"

형민:"아...맞다. 사망하다."

 

혼자 집에 남아 있을 수도 있는 형민이지만 아직 무서운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사람이 속에 들어가 움직이는 인형 모형입니다. 아이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형민이는 그게 무서운가 봅니다. 2년 전 부산 벡스코에서 놀러 갔다가 키 큰 인형을 본 적이 있는데...그 때 깜짝 놀란 이후로 이와 유사한 인형만 보며 바짝 긴장하고 울어댑니다.

얼마 전에 경주에 갔다가...그런 인형이 어슬렁거리는 걸 보고 아빠 품에 안겨 울고 있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그 인형이 뭐나면 더 웃깁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아래 사진을 우측에 보이는 인형...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뽀로로' 인형을 보고도 이렇게 자지르지게 울어댑니다. 정말 아이는 아이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형민이는 동생들을 무척 잘 돌봐주는 아이입니다. 시은이와 성은이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만나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걸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수요예배에 갔다가 강도사님 아이들과 함께 논 적이 있습니다. 3층 방에서 놀다가 아직 어린 강도사님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강도사님 사모님이 "응...다녀 와"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머뭇거리고 있다가 화장실로 향했는데 그걸 보던 형민이가 "불이 켜져 있나?" 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랍니다. 화장실 앞 복도가 어두워 불을 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잠시 후 사모님이 화장실에 갔다가 형민이가 그 아이가 화장실에 잘 갈 수 있도록 복도 불을 켜 주는 걸 보며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동생들을 잘 살피는 아이는 처음 봤다는 거죠. 하지만 형민이로선 늘 하던 일을 했던 것 뿐이죠. 항상 시은이와 성은이를 보살피고 있으니까요.  

 경주에 놀라 가서 동생 성은이를 태우고 전동 자동차를 타던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오빠가 그러니까....'덩벙왕' 시은이도 동생을 태우고 달리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성은이마저 이런 전동 자동차를 혼자 몰고 다녔죠. '차분왕' 답게 신중하게 몰더군요.

 

7년 대환난이 끝나면서 시은이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제일교회 유치원 2년차가 되는 시은이는 처음 유치원에 가는 동생 성은이를 챙겨야 하니까요. 지금까지는 오빠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젠 동생을 데리고 유치원에 가야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형민,시은,성은 모두 포항제일교회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아침마다 성은이와 함께 유치원 버스에 올라야 합니다.

 

성은이는 작년 하반기부터 "내년에는 유치원에 가야 된다..."는 세뇌(?)를 계속 받아 왔습니다. 이제 유치원에 가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오는 월요일부터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성은이는 시은이와는 달리 엄청 차분하고 '제 할 일을 잘 하는 아이' 이기에 유치원 생활을 잘 하겠지만 성은이의 유치원 적응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세 아이가 엄마 품에서 독립하는 시기에 맞춰 선화에게 많은 일이 주어졌습니다. 사실 선화는 포항으로 온 뒤로 남편 못지 않은 외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선교단체 '인터콥' 의 비젼스쿨 찬양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인터콥의 월드 미션 반주, 충진교회의 충진선교학교 찬양 반주 등을 맡아 거의 매일 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받은 인터콥 비젼스쿨 훈련이 선화의 삶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하기 전 교제를 하던 시절에 장래의 우리 가정의 모습을 떠 올리던 그림 중 하나는 찬양단 활동을 함께 계속하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선화는 건반 반주자이고...우리 둘은 모두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고 사모하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의 재능을 이 분야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요즘 딱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기 충진선교학교가 개강되면서 선화와 함께 찬양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으니까요...충진선교학교 얘기는 다음에 할께요.

 

 삼남매를 지난 7년동안 길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이 귀한 생명을 우리 부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잠시 맡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로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부모인 우리가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 분만이 전부임을 깨닫기 위해 쥐고 있는 것을 하나씩 버리며 고난 가운데서 기뻐하는 훈련을 감사히 받으며 부부가 서로 세워주며 사랑하는 가정이 되길 소원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 9:9)"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를 기억합니다. 입학식도, 첫 소풍도, 첫 여름 방학때 얼음을 사러 가며 먹었던 박하사탕 맛도, 교실 뒷 편에 액자로 걸려 있던 나의 시(詩)도 기억합니다.

먹고 먹고 먹어도

먹고 싶은 건

언제 언제 언제나

수박 한 덩이

보고 보고 보아도

보고 싶은 건

언제 언제 언제나

엄마의 얼굴  (1976년 부민초등학교 1학년 3반 이성훈)

 형민이도 아마 평생...지금의 순간들을 기억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형민이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리고 7년 대환난을 지나 우리 가정을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쫒아가는 우리의 여정은 이제 제 2막을 올리는 것 같아 무척 기대가 되고 즐겁습니다. 그 길이 선화와 함께 하는 길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2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