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시련- 성은이의 입원 1

성은이가 열이 난 것은 지난 주일 저녁(06.10.29) 부터였습니다. 그 날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의 김명희 선교사님을 모시고 부산-양산-포항을 다녀야 하는 바쁜 날이었고 밤이 되서야 성은이가 열이 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전 날 선화는 삼남매를 데리고 1박 2일의 인터콥의 비젼 캠프를 다녀왔는데(한 달에 한 번씩 치악산 근처 원주에서 모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달리 아침 일찍 사람들이 일어나 떠드는 바람에 성은이가 잠을 푹 자질 못했다고 걱정했었습니다. 우리는 성은이가 무리한 것 같다며 월요일은 푹 쉬자고 얘기했지요. 감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열이 오르는 건 아이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열은 해열제로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선화는 다음 날 바로 성은이를 데리고 소아과 의원을 방문했고 그 곳에서도 별 이상 없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고열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화요일부터는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부루펜 시럽으로도 조절되지 않았습니다. 선화는 불안해졌습니다. 급기야 저녁 6시 경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그 시각 병원에서 세미나 중이었지만 선화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바로 집으로 와... 온 가족을 데리고 선린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응급실로 가는 길에서도 우린 그저 수액 정도 맞고 집으로 돌아 올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에 시은이도 열경련을 하는 바람에 응급실에 갔으나 곧 좋아져 수액만 맞고 집으로 돌아 온 적이 있으니까요. 응급실 침대에 누운 성은이에게 인턴 선생님이 다가 왔고 간단한 병력 청취가 끝난 뒤  피검사와 X선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정도는 확인해야겠지요.  

검사 후 형민이와 시은이를 데리고 응급실 앞 마당에서 놀면서 당직 소아과 선생님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소아과 선생님이 오셨고 우린 응급실 밖에서 선화와 소아과 선생님이 대화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대화가 길어지는 걸 보며...'소아과 선생님이 참 꼼꼼하시구나...' 라고 생각했죠.

소아과 선생님이 간 후 선화는 우리 쪽을 가리키며 들어 오라고 손짓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별 일 아니라는 얘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그게 아니었습니다.

"폐렴이래요...입원하라고 하네요... 좀 큰 아이들에게 생기는 폐렴 같다는데 위의 아이들은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구요..."

폐렴!...아이들을 데리고 진료실로 올라 와 성은이의 X선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성은이의 우측 폐에 폐렴 소견이 보였습니다.

지금껏 세 아이를 기르며 수 없이 열이 나고 감기가 지나갔지만 폐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놀랍고 걱정스러웟습니다. 일단 폐렴인 걸 안 이상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고 일단 바로 입원하기로 하고 집에서 옷가지만 챙긴 뒤 선화와 성은이를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는 밤 늦게 엄마가 병원에 가는 불안하고 무서운 상황 때문에 울먹였지요. 일단 아이들을 안심시킨 뒤 다음 날 아침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하는게 제 임무였습니다. 항상 엄마가 유치원 차에 태워 보냈는데...이 날은 아빠가 나가야 했지요. 사상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양산에서 장모님이 오셨습니다. 선화는 성은이와 함께 병원에 있어야 하니 누군가 아이들을 챙겨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입원 다음 날...아이들과 함께 성은이가 입원한 소아과 병동을 찾았습니다.

선린병원 소아과 병동입니다. 흉부 방사선 소견과 혈액검사 등에서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가장 의심되어 항생제 클라리시드를 하루에 두 번씩 포도당에 섞어 정맥 주사하는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진 몰랐는데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인 클라리시드는 소아과 영역에선 이렇게 정맥 점적 주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어른은 그저 하루 두 번 먹는 약으로 간단히 처방할 수 있는데... 폐렴이고 확실한 치료 효과를 위해 이렇게 정맥주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문제는...이 클라리시드 정맥 주사가 통증을 야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횟수가 늘어갈수록 주사약이 빚어내는 통증이 심해진다고 합니다. 일종의 정맥염을 야기하는 거지요. 그래서 성은이는 간호사 이모가 오기만 하면 울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씩 클라리시드 정주액을 달기만 하면 통증이 시작되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 폐렴은 금방 치료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 낙관론이 우리 안에 팽배해 있었습니다. 좀 힘들어도 열만 떨어지면 먹는 약을 처방 받아 퇴원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을 위한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는 먹는 약으로 잘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화요일에 입원한 성은이는 수요일..목요일이 되어도 좀처럼 고열이 잦아 들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3번씩 해열제를 먹도록 처방이 나 있었지만 하루에 4번씩 나타나는 39도 이상의 고열은 3-4일이 지나도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성은이는 조금씩 지쳐 갔습니다. 처음에는 "성은이 아파?", "성은아 조금 재미없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원 3-4일이 넘어가면서는 모든 것을 귀찮아했고  힘들어 했습니다. 그리고 클라리시드 점적 주사의 통증은 점점 더 해 갔습니다.

 

성은이를 위로하기 위해 병원 안의 한적한 방으로 데리고 가서 노트북 컴퓨터로 성은이가 좋아하는 "재미나라" 인터넷 사이트를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집과는 전혀 다른 환경인 병원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성은이는 오빠, 언니와 늘 함께 보던 인터넷 사이트를 구경하며 힘든 병을 잠시 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열이 오르면서 온 몸은 욱신거렸고 클라리시드 정주는 성은이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입원 4일째 흉부 방사선 사진과 혈액검사를 다시 시행하였습니다.

흉부 방사선 검사 결과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나빠져 있었습니다. 열이 전혀 떨어지지 않은 것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CRP나 ESR 같은 염증 수치와 청진 소견은 좋아졌다지만 우측 흉부의 음영은 더 나빠져 있었고 약간의 흉수도 차 있었습니다.

사태가 이정도 되자...우리 맘도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2-3일이면 퇴원할 걸로 생각했던 폐렴은 추정 진단에 합당한 약제를 사용하더라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미스테리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혈액검사는 마이코플라스마가 맞았습니다. 4일 후 다시 시행한 마이코플라스마 항체 검사는 이전보다 역가가 4배 이상 올라 급성 감염에 합당한 소견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과장님도 현재 치료약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약에 잘 듣지 않는 마이코플라즈마 균이라고 여길 뿐이었죠.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걸 보며 다른 경구용 세파 항생제를 사용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지만 담당 과장님의 치료 방침을 따라 가는 것이 환자 보호자의 역할이었습니다.

입원은 화요일에 했지만 토요일까지 39도의 고열이 하루에 4번씩 꼬박꼬박 반복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성은이는 타이레놀 시럽과 캐롤에프 시럽을 먹으며 열을 이겨내야 했고 클라리시드 정주는 계속되어 갔습니다. 성은이 해열제 시럽 먹는 걸 점점 힘들어 했습니다.  

입원 5일째인 토요일...선화와 저는 일단 성은이를 데리고 집으로 잠시 오기로 했습니다. 급하게 포항으로 오신 장모님도 주일을 맞아 일단 양산으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도 성은이를 너무 보고 싶어 하고 무엇보다 성은이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뭔가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성은이 목욕도 시킬 겸...토요일 오후 잠시 병원에서 외출을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 온 성은이는 계속되는 열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오고 싶어하던 집에 와서 어린이 찬양 CD도 크게 틀어 놓고 오빠, 언니와 함께 뛰어 다닐 수 있게 되니 기분이 좋아졌나 봅니다. 사진처럼 장난을 치며 예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몸은 좀 못 따라 가지만 평소때처럼 오빠, 언니와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마치 안 아픈 아이처럼요...

너무 즐거워 하지요? 토요일 오후...잠시 집에 들렀을 때의 삼남매를 촬영한 것입니다. 셋이 붙어 있기만 하면 이렇게 좋은데...하나가 아프니 셋 모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선화가 말했습니다.

"그냥 집에서 치료하면 안 될까요? 주사는 우리가 주고...이렇게 집에 오니 밥도 더 잘 먹고 힘도 생기는 것 같은데...."

정말 병원에서는 식사를 전혀 안하던 성은이지만 집에 오자 말자 숟가락 들고 열심히 밥을 먹었습니다.

저도 선화 말처럼 그러고 싶었지만...내가 담당 선생님이라도 그렇게 허락하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또 성은이에게 고열이 찾아 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열이 오르는 걸 보며 선화는 다시 병원으로 가야겠다며 짐을 챙겼습니다. 삼남매의 즐거운 시간도 그 때가 끝이었습니다. 저도 슬프고 형민이도 시은이도 슬펐습니다. 시은이는 떠나는 성은이를 보며 아예 엉엉 울었죠. 형민이도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저라도 선화에게 힘을 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내 맘도 힘들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선화를 가리켜 '외유내강' 이라 말합니다. 선화 역시 힘들테지만 두 아이와 저를 많이 위로했습니다. 제일 힘든 사람이 엄마일텐데...아이들을 위로하고 병원으로 돌아간 뒤 전화로 형민이와 시은이에게 QT책 본문을 읽어 주며 기도도 따라하게 했습니다. 위기 상황이 되어야만 누구의 믿음이 좋은지 판가름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다음 날은 주일입니다. 선화와 상의 끝에 형민이와 시은이를 양산의 외갓집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성은이의 치료 기간이 어떻게 될지 장담못하는 상황에서 장모님이 계속 포항에 오시는 것도 무리이고...일단 성은이가 퇴원할 때까지 아이들을 외갓집에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양산은 추억도 많은 즐거운 곳입니다. 포항에서 힘들어하는 아빠와 지내는 것보다 외갓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받으며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점심을 먹은 뒤 잠시 병원에 들러 선화와 성은이를 만나고 양산으로 향했습니다.

양산 외갓집 엘리베이터 속의 두 아이

 

양산 상북면 소토리 대우 마리나 아파트가 외갓집입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벌판에는 아이들이 "퐁퐁" 이라 부르는 놀이기구가 와 있었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가 무척 좋아하는 기구죠.

 

지난 주 내내...성은이 일로 형민이와 시은이도 힘들었을 겁니다. 형민이도 아빠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며 제 맘을 읽었지요. 구김살 없이 자라는 아이들 맘 속에는 이번 일로 슬픈 시련을 배운 것 같습니다.

 

해가 질 무렵...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저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양산에서 포항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으로 갔지요. 소아과 병동 610호가 성은이의 자리입니다.

효과가 없는 클라리시드 정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오늘까지만 계속하고 내일은 아지쓰로마이신 경구 요법을 한다고 합니다. 먹는 약으로 치료한다는 건...기쁜 소식입니다. 무엇보다 클라리시드 정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약이 들어가는 동안 성은이는 계속 "아야..아야..."하고 비명을 지릅니다. 성은이가 클라리스드 주사를 맞는 동안 선화는 성은이를 엎고 저와 함께 소아과 병동을 뱅뱅 돌았습니다.

내일부터 또 다른 치료가 시작되니 약간 희망을 가져 봅니다. 웬지 열이 잡힐거라는 기대를 가져 보는 거지요.

병명도 알고 치료법도 다 알고 있지만 고열이 계속되는 상황....이런 고통 속에서 우리 부부는 하나님만 의식하게 됩니다. 왜 이런 힘든 상황이 성은이에게 생겼을까...하나님은 무슨 뜻으로 이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을까...오늘도 주일 예배를 드리며 이 생각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들어하는 성은이를 보며 하나님만 붙잡고 기도하기보다는 그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아직도 훈련되어야 할 '나'를 보게 됩니다. 자식이 이렇게 고통을 당해도 깨어지지 않는 완악한 맘은 성은이에게 고통만 더하는 건 아닌지...

성은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분들이 찾아 와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침대 위 성은이의 머리 곁에는 각지에서 보내 준 선물과 형민이의 편지가 놓여져 있습니다.

"성은아, 빨리 나아서 오빠랑 집에서 놀자. 오빠는 성은이가 무척 보고 싶어. 성은아 우리 엄마가 츄렛(과자 이름)을 잘 안 사주는데 성은이가 줘서 고마워. 잘 먹을께. 사랑해 -형민이 오빠가 "

성은이는 병상에서 오빠와 언니에게 각각 과자를 보냈습니다. 이 과자을 받은 형민이가 성은이에게 고마운 맘으로 편지를 쓴 것입니다. 시은이가 보낸 편지도 옆에 보입니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시은이지만 마음만은 형민이 오빠와 똑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답답하기도 하지만 ... 이 어려운 순간에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아과 병동을 돌며 선화가 말하더군요.

"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고 우리에 양떼가 없어도 하나님만을 인해 기뻐해야 하잖아요... 감사드리며 기도합시다. 성은이가 낫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PS) 성은이가 아프기 하루 전, 그러니까 선화와 성은이가 비전 캠프에 가 있는 동안 제가 저지른 잘못이 있습니다. 그 날 토요일은 선린병원 직원 수련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수련회 준비로 찬양팀인 저는 12시까지  수련회 장소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 날 따라 토요일 오전 근무를 저 혼자 해야 했고 무척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과장님 한 분이 어떤 선교사님의 대장 내시경 검사를 제게 부탁하고 떠난 터였습니다.

그런데 약속된 피검자는 출발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1시 45분이 되어 급히 병원을 나서려는데...문제의 그 사람이 내시경실로 들어 왔습니다. 보통 검사를 10시 쯤에 시작해야 하는데 12시간 다 되어서...그것도 막 나서야 하는 시점에 나타난 걸 보며 저도 모르게 화가 났나 봅니다. 아직도 성격이 급하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내 모습...환자 앞에서 검사 예약을 맡은 간호사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습니다. "아니...검사할 사람이 11시 45분에 오면 어떡하나요. 지금 곧 나가야 하는데..."

 이 말을 하고 정말 1초도 안되어 후회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소리지르면 안되는데...그것도 선교사님이라고 하는데.... 선교사님과 함께 왔던 분도 "아무리 그래도 환자 앞에서 그렇게 소리치면 어떡하나요..." 라며 언짢아했습니다.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씻을 수 없는 잘못이었습니다.

수련회를 하는 목적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이렇게 수련회 참석 때문에 다른 사람 맘을 아프게 하다니...아무리 생각해도 실망스럽고 싫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 양포 직원 수련회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팠습니다. 찬양 인도도 있었고 악기팀으로도 섬겨야 했지만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은 김명희 선교사님을 모시고 부산,양산,포항의 교회를 돌았지만 더 괴로웠습니다. 내게 찾아 온 한 사람 하나 받아 주지도 못하면서 수련회 찬양 인도하고 선교사님을 돕는다는 게 너무도 가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날 성은이에게 열이 났습니다.

그 다음 날 월요일은 아침에는 선린병원 아침 예배 찬양 인도였고, 저녁은 포항성시화 운동 모임의 찬양 인도를 맡았습니다. 이런 맘으로 뭘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너무 힘든 나머지...저녁 성시화 모임 찬양 인도시에 지난 토요일 얘기를 꺼냈습니다. 포항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에 나왔지만 정작 내 속에는 한 사람도 사랑 못하고....성격 하나도 죽이지 못하는 육신의 사람이 가득하다고...

그리고 그 다음 날 성은이가 입원했습니다.

성은이가 열이 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깨달으라고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제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기도해야 하지만...차마 말문이 열리지 않는 내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그 분의 자비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2006.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