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일곱 살

최근 형민이는 뭔가 큰 변화를 겪은 것 같습니다. 본래 성격이 변한 건 아니지만 몇 달 전부터 이전보다 훨씬 씩씩해지고 과잉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년에 학교에 가야 할 남자 아이 또래에게선 흔히 볼 수 있는 변화지만 늘 착하고 얌전한 형민이에게 길들여져 있던 우리 부부로선 당황스런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형민이는 우리에게 늘 착하고 조심스런 아이였으니까요. 아무 것도 모르는 시은이가 오빠 얼굴에다 집적거려도 순한 형민이는 늘 동생의 장난을 받아줄 뿐이었죠. 보다 못한 선화가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형민아, 시은이가 자꾸 때리려고 하면 네가 오히려 혼내 줘...." 하지만 이렇게 말한 뒤에도 형민이는 여전히 동생에게 맞고만 있었습니다. ."엄마...이제 내가 시은이 때릴까요?" 라면서...

하지만 이젠 사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커다란 장난감 칼을 씽씽 휘두르는데... 시은이나 성은이가 옆에 서 있다가 봉변을 다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뭔가 내부에서 강력한 힘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불만이 있는 아이처럼...마치 사춘기 아이 같습니다. 우리 말에 수긍을 안 하기도 하고 "싫어요" 라고 도망갈 때도 있습니다.

나무 꼬챙이를 휙휙 휘두르며 풀밭의 여치,베짱이 뿐 아니라 사마귀까지 잡으려고 뛰어 다니고, 조그만 병에 물을 담아다가 교회 주변 꽃봉오리에 모여든 꿀벌들에게 던지고...움직이더라도 항상 뛰어 다니고...이전보다 격한 행동이 늘어난 건 분명합니다.

그러다보니...우리 부부 잔소리도 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만나는 어른들께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 늘었으니까요...하루에 한 시간은 인터넷으로 '주니어 네이버'나 '재미나라' 같은 학습 사이트에 들어가도록 허용했지만 동생들과 함께 컴퓨터에 붙어 있는 형민이에게 나무라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웬지 엄마, 아빠 말은 잘 안 들으면서 컴퓨터에 붙어 있는게 밉게 보였다고나 할까요.

이런 행동 변화와 함께 형민이에게 찾아온 변화가 있었는데... 눈을 깜빡이는 습관입니다. 최근 몇 달새 슬며시 생긴 이 증상에 대해 선화나 저나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런 습관성 행동을 틱증(tics) 이라 하는데 특별한 목적없이 한 군의 근육을 반복적으로 수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수의적이었다가 금방 불수의적으로 바뀌는데 얼굴, 목, 어깨, 몸통, 손 등이 가장 흔한 부위입니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입맛을 다시거나 눈을 깜박거리거나 목에서 '흠'하는 소리를 내는 형태가 가장 많은데 움직이는 근육과 관련되는 긴장을 해소시키는 방법이라고 해석되며 대개의 경우는 일과성으로 시간이 지나면 소실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위의 지나친 관심은 도리어 증세를 장기화시킬 수 있어서 모욕하지 말고 놀이에 집중하게 할 것을 권하고 있지요.

언젠가 한 번 형민이에게 "형민아, 너 눈 깜박거린다는 거 알고 있니?'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괜찮아, 저절로 좋아지기 때문에 걱정하지 마..." 하고 얘기해 줬지요. 내부 에너지가 넘쳐나는 요즘 시기에 형민이가 겪는 심리적, 활동적 변화가 큰 모양입니다.

형민이의 활동을 보면 정말 '미운 일곱 살' 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형민이가 세 살 적에 '미운 세 살' 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일곱 살이 되니 이제 남자 아이의 기질이 나타나면서 정말 '미운 일곱 살' 이 되나 봅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형민이는 선화의 도움으로 하나님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엄마의 지도 아래 피아노 연습하는 것도 계속되고 있고 요즘은 두 동생과 함께 두란노에서 나오는 어린이 QT 책으로 공부하는 걸 좋아합니다. 매일 한 장씩 넘어가는 이 책에 열심히 답을 달아가며 읽고 쓰는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틈만 나면 포항 주변을 돌아 보기로 했는데 며칠 전에는 호미곶에 가 보았습니다.

한반도의 꼬리에 해당되는 부위에 있는 호미곶에는 등대박물관이 있고 바다에 설치해 놓은 손 모양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가장 동쪽이다 보니 해가 빨리 뜨는 곳이기도 하지요.  

 이 호미곶이 기억에 많이 남았는지 이 곳을 다녀온 뒤 형민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바다 위의 손' 이 자주 등장합니다.

형민이가 호미곶 다녀 온 뒤에 그린 그림입니다. 아빠, 엄마, 동생, 가족에게 따로 보내는 그림이죠. 언젠가부터 형민이는 누군가에게 글자를 적어 주거나 그림을 그려 주는 일을 즐겨 하고 있습니다. 4살이던 2003년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빠에게 보낸 그림에는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잌이 그려져 있고(아빠 생일이 10월 18일었거든요.) 엄마에게 보낸 그림에는 호미곶에서 본 '바다와 손' 이 그려져 있습니다. 동생에게 보낸 그림은 축구하는 모습인데 쟁반에 땅콩 올려 놓은 것 같은 것이 축구공입니다. 2006년 월드컵 공식구 문양을 그리려 했나 봅니다. 가족에게 보낸 그림에는 우리 식구 다섯 명을 촘촘히 그려 놓았습니다.

 

가족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남자 둘, 여자 셋입니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머리를 땋았네요. 성은이는 자기 눈에도 가장 작은 아이로 보이나 봅니다. 맨 밑에 조그만 여자 아이로 그려 놓았네요. 모두들 함지막한 웃음 짓는 사람들로 그렸습니다.

 

 

형민이는 올 가을에 누렇게 익은 벼 추수하는 걸 여러 번 구경했습니다. 콤바인이 벼를 싹둑 잘라 볏단은 묶어 내고 포대에 낟알을 담는 걸 옆에서 지켜 봤지요. 벼 이삭도 몇 개 들고 왔답니다. 얼마 전...아빠가 카자흐스탄에 간다고 했을 때 가져 온 벼 이삭을 까며 얘기했습니다. "아빠, 카자흐스탄에 갈 때 이 쌀도 전해 주세요. 자미라, 까밀라 이모야 들에게도 주세요."

주길 좋아하는 형민이... 우리 부부가 걱정하던 형민이의 눈깜빡거림도 몇 주전부터 사라졌습니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시작했다가 그냥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신도 눈깜박거림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지...이 증상이 없어진 뒤로 훨씬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아니...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눈깜박거림이 사라졌는지도 모르죠.

이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아는 형민이...엄마와 함께 인터콥 비전 캠프에 다녀온 뒤로는 쿠르드족 얘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국기도 아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세계국기백과'를 펴 놓고 여러 나라에 관심을 보이는 형민이에게 세상의 수 많은 지식들을 하나씩 알려 주고 싶어집니다. 뭔가 몰랐던 걸 가르쳐 주면 형민이는 "아!..." 하고 소리를 내지르죠. 놀랍다는 표시랍니다.

얼마 전 유황 성분이 함유된 약알칼리 온천인 포항 온천에 형민이와 갔었습니다. 포항 온천수는 짠 맛이 납니다. 그 곳에서도 '세상 알려 주기'는 여전히 계속되었죠.

"형민아, 온천이 뭔 줄 알아?"  

"큰 목욕탕..."

"형민아, 온천이 뭐냐하면... 지구 중심에는 아주 뜨겁거든...(생략)..."                                                         200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