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직장여성

 결혼을 할 때 직장을 가진 여성들이 하게 되는 고민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결혼 후에 계속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두고 말 그대로 전업주부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병원에서 하는 간호사의 일이 그 어떤 일들보다 힘이 들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게 되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결혼 후 간호사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면 몇 가지 걸림돌이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불규칙한 생활이 그것이다. 밤잠이 많은 내게 night근무는 너무 힘이 들었다. 근무를 마치고 아침 10시쯤 집에 와서 잠이 들면 저녁 6시까지 자야만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유치부와 찬양대에서 봉사도 하고 매 주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지만 병원에 나가면서 그러한 것들이 단절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사실이 결코 신앙의 퇴보를 가져왔다고 보지는 않는다. 병원 생활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었고 예배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주일 근무, 피곤한 저녁예배는 언제쯤 전처럼 온전히 주일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이어지곤 했다.

어릴 때부터 간호사가 꿈이었고 또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만큼 간호사 일은 내게 잘 맞았다. 환자들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일이 주는 성취감들이 너무 좋았다. 어떤 날은 너무 바빠서 식사도 못하고 혹은 버스가 끊어진 시각에 병원을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땀이 배인 등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치면 마음 깊이 뿌듯함이 가득했었다. 물론 그런 뿌듯함 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다. 마음 상하는 상황들과 날카로운 대립, 뜻밖의 죽음 등등...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일의 즐거움들은 병원이 아니면 어디에서 채워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이 생겼다. 성훈이 오빠와 함께 할 가정과 교회 생활은 너무나 기대가 되었지만 사회 생활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것들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많이 고민했다.

결론은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 명확하게 구분이 되었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탐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내게 주어진 시간을 쏟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하면서 병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기간제 양호교사

결혼후에 낮에 할 수 있는 일들을 구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기간제 양호교사 자리를 얻게 되엇다. 엄궁초등학교.... 집에서 버스로 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이다. 2월 14일이 첫근무일이었다. 그때는 기말이었는데 봄방학이다 해서 학교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일을 처음 시작하는 내겐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일을 익히는데 좋은 시간이었다.

요즘의 초등학교는 전과 많이 달랐다. 한 반에 학생이 40명을 넘지 않고 있었고 각 교실에 있는 컴퓨터, TV, Video 등의 기자재 들이 아주 새롭게 보였다. 내가 어느 선생님께 '학교가 많이 좋아졌네요'하니까 아니라고 한다. 옛날에 비해서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요즘의 시대변화에 따라가기에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신도시에 세워지는 학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긴 아주 열악한 환경이라고 한다.

어쨌든 달라져 보이는 학교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보았던 여러 사람들과 비교해서 학교 선생님들의 얼굴은 한결 밝고 느긋해 보였다. 나도 함께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병원에서 보다 얼굴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이 느껴졌다.

 양호교사가 하는 일

개학을 하면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내게도 여러 업무들이 시달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부터 불소양치, 전염병 예방, 예방접종, 보건교육 등이 주 내용이었다. 초반에는 무료 중식 아동 관리 작업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동들을 선별해서 무료 급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단순할 것 같은데 그 절차가 아주 까다로왔다. 각 담임선생님께 추천서를 받아, 동사무소의 확인 과정을 거쳐 학교내 심의 후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게 말처럼 착착 되지가 않는다. 보고일자는 정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일을 처리하려니 답답했다. 병원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이 즉시 해결이 되는 편이었다. 물론 시간을 요하는 것도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종이가 왔다갔다 하는 이 학교일은 도대체가 너무 느리다. 차라리 혼자서 다 하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료 중식 지원 일을 하면서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많이 엿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이혼가정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놀랐다. 편부, 편모가정, 아니면 부모들이 다 집을 나가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생활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 실직 가정의 아이들 등등... 뉴스나 사회단체의 홍보를 많이 접하면서도 나의 가까이에 이런 어려운 가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4월이 되면서 일이 몰리기 시작했다. BCG 접종, 간염예방접종, 교직원 신체검사, 물탱크 청소 등 하루 종일 학교를 돌아다녔다. 정말 다리가 아플 정도로. 각종 모임에도 참여해야하고 일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사람들과 연락을 해야 하기도 해야 했다. 4월 말까지가 나의 근무기간이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은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서둘러 일을 추진했다.

요즘 양호교사는 옛날 양호교사와 다르다. 다양한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어야하고 그리고 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보건교육의 중요성도 아주 강조되고 있다. 구강건강, 성교육,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직업여성과 집안일

학교에 나가고 일주일쯤 후에 임신을 한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그동안 심한 피로감을 많이 느껴 단순히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일꺼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원인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전에 비해 집안일이 더디게 되었다. 빨래가 쌓이고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늘 아침에 먹고 난 그릇들이 그대로 있고, 어떨 때는 내일 당장 신을 양말이 없는 경우도 있고....

SOS-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저히 되지 않는다. 다행히 성훈이 오빠가 잘 이해해 주고 도와주어서 너무나 고마웠다. 저녁 설겆이며 방청소, 빨래도 같이 해주곤 했다. 특히 주일 저녁은 피로감의 최고조에 이르게 되는데 아침에 유치부부터 시작해서 오후에 중고등부 교사회를 마치고 집에 오면 머리가 띵해진다.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같이 먹고 나면 몰려드는 잠을 이기질 못한다. 그러면 9시도 되기전에 나는 깊이 잠이 들게 되고 나머지 정리는 성훈이 오빠가 해 준다. 너무나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오빠 고마워요!'라고 할 뿐....

그리고 우리 친정 엄마, 하루는 학교 마치고 장 볼 힘도 없어서 그냥 들어오는데 집에 불이 켜져있는게 아닌가? 아, 오빠가 일찍 왔나보다 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엄마가 요리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뻔히 다 아시는 것이다. 새내기 신부가 직장 다니면 집안일이 어떻게 될지를....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네. 피곤하고 할 시간도 없재? ' 하시면서 큰 솥에 소고기 국을 끓이고 계셨다. 얼른 해 놓고 나가시면서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이야기해라 하신다.

그 다음 날, 우연히 현관을 보니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신발에 묻은 흙 때문에 바닥이 얼룩이 져 있었는데 어느새 깨끗해져 있는 것이다. 전에 엄마가 보시고 '현관 한번 닦아야겠다.'하셨었는데.... 어제 오셔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가신 것이다. 그날 밤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딸 하나 시집보내고 늘 노심초사 하시고 뭐 부족한게 없나 살펴주시는 엄마, 결혼하고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려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늘 받고만 사는 자식, 그리고 늘 주기만 하는 엄마. 고맙기도 했지만 엄마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참을 울었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짧은 학교생활속에서도 좋은 사람을 많이 알 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 첫날 혼자서 식사를 하고 올라왔는데 과학 조교를 하고 있는 선생님이 양호실에 찾아왔다. 성격이 밝고 사교성이 좋아 누구나와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에 계시던 양호선생님과도 잘 알고 지었기에 새로온 나를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나와 나이도 같고 또 온천제일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챤이어서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명화(과학조교선생님 이름)선생님은 교회에서 유치부와 찬양팀을 열심히 섬기고 있었는데 손재주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유아교육을 공부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원래 뭘 만들고 꾸미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재료만 보면 아이디어가 막 생긴다는데.... 옆에서 나도 많이 보고 배웠다. 게시판 꾸미는 것, 각종 모빌, 부활절 달걀장식까지.... 아주 아기자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찬양단에서 율동으로 오랫동안 섬겨서 율동에도 아주 재주가 있었다.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율동도 많이 배우고 싶었는데....

그리고 참 좋은 인격을 가진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물론 깐깐한 교감선생님께 결재받는 일은 때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대부분 마음이 고운 사람들인 것 같았다.

 내가 만난 아이들

양호실을 찾는 아이들이 호소하는 증상은 대부분 복통, 두통, 그리고 찰과상이다. 아이들이 호소하는 복통은 주로 배꼽을 주위로해서 나타나는데 90%가 신경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지난 시간에 뭐 배웠니?'하고 물어본다. 이런 아이들은 그 증상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는데 사실 기질적인 원인은 없는 셈이다. 이렇게 찾아왔던 몇몇 아이들이 생각난다. '선생님, 또 배 아파요.' 하고 들어온다. 또 어떤 날은 '선생님 오늘은 배 안아파요'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양호실을 찾는 아이들의 특징은 아픈 아이 주위로 2-3명이 함께 온다는 것이다. 다친 아이는 대부분 울고, 옆에 있는 친구가 다친 이유를 설명한다. 누구랑 싸웠는데요, 누가 발로 찼는데요, 축구하다가요..... 미술시간에요.... 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양호실을 청소하는 아이들이 3명있었는데 이름은 은지, 지민이, 유나..... 은지는 집안이 아주 어려운 아이이다. 부모님이 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셋중에서 가장 밝고 명랑했다. 난 담임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보는 이 아이들에게 애착이 많이 갔다. 그래서 가끔 쵸콜릿도 사주고 소풍 갈 때는 과자를 사서 주기도 하고 했었는데, 이 아이들도 그게 꽤 좋았었나보다. 학교를 마치기 이틀전에 아이들에게 '모레부터 전에 계시던 양호선생님이 오실꺼야.'했더니 섭섭해 하는 눈치가 보였다. 마지막 근무하는 날 아침에 양호실 문을 열었더니 이 아이들이 폭죽을 터트리며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자기들이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듬성듬성 달려있는 풍선, 탁자위에 과자 몇 개. 그리고 셋이서 하나씩 준비한 작은 립스틱 세 개. 그 정성이 참 고마웠다.

3개월간의 학교 생활중에 몇몇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줄 수 있었다면  나름대로 잘 보낸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너무 고단하기도 했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너무 열심히 일해서 보기 좋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또한 마음이 뿌듯했다.

이제 배도 제법 부르다(?)...... 적당한 기간동안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 느껴진다.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여러 가지로 돈이 필요했었는데 그것도 채워주시고....

이제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왔다. 집청소, 밀린 빨래를 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이 일들이 전보다 더욱 소중해 보인다. 가정을 잘 세우는 것 편안한 쉼터로 만드는 것. 참 즐거운 삶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