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와 나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연약한 체격,지나칠 만큼 반짝거리는 가느다란 금발 머리에다 유행에 한참이나 뒤덜어진 스웨터

차림의 남자. 이사람이 바로 전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드이다.'               -소개의 글 중에서-

 

그는 일찍이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를 알 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때 친구

귀순이에게서 선물로 받은 책-좀머씨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톡특한 주제와 서투, 그리고 그와 유사한 분위기의 삽화가 그에 대해 무척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좀머씨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참 많을 것이다. 내가 받은 느낌은 독특하면서도 친근하다는 것

이었다. 작가의 소개글과도 아주 유사한 주인공이구나 하는 것과 함께..

 

이후 책대여점에서 콘트라 베이스라는 책을 보게되었다. 옛날 수경이 언니가 자기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면 그의 책을 여러권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나도 그렇기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작가를 가려 책을 보지는 않는다. 콘트라 베이스는 그런 의도함 없이 고른 책이었다.

 

대학 4학년 1학기의 나는 무척이나 irritable했다. 많은 실습과 report도 그랬지만 4학년이라는

이름이 나를 바쁘게 몰아갔다. 처음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것 저것 많이 손은 댔었지만

실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늘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들 다 하는 토익 시험도 쳐봐야 할 것 같았고, 운전 면허증도 따야할 것 같고, 몇장 보지 않고

꽂혀있는 일본어 책, 거기다가 국가고시라는 부담스러운 것이...

 

하나님이 내게 위로를 주시는 방법은 때로 이런 책들을 통해서이다. '상한 감정의 치유'나

'모험으로 사는 인생'과 같은 기독교 서적을 통해 힘을 얻었던 적이 있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이런 비 기독교 서적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내게 찾아 오셨는데 콘트라 베이스는 그런 고백이

있는 책이다.

 

남성 모노드라마 극본인 이 콘트라베이스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주인공은 시향소속 콘트라 베이스주자이다. 공무원으로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있다.

그는 늘 이 덩치만 크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콘트라베이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지만 저는 단 <한마디도> 음악적으로 느껴지도록 연주하지 못합니다. 그럴 뿐

    아니라 단 하나의 음도 제대로 연주해 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항상 도약을 상상하고 때려 치우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럴 수 없는 평범한 나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이 악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그리고 실제 얼마나 많은 음악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의 자조섞인 말들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단원 중 세라라는 소프라노 가수를 사랑한다. 그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고 늘

주목을 받는다. 볼품 없는 콘트라베이스와도 같은 자신과 반대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대상이다. 그런 자신없는 자아상 때문인가? 그는 자기가 가지지 못한 그러한 점 때문에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의 집에 말없이 늘 들어주는 악기에게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말을

수없이 되뇌이지만 그녀에게는 도달하지 않는 혼자만의 속삭임일 뿐이다.

 

그는 상상한다.

라인의 황금이 시작되면 그는 <세라>라고 크게 외칠 계획을 생각한다. 그리고 음악회가 망쳐질

것을 감수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책에는 그 결말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지겨운 공무원 신분에 묵묵히 콘트라 베이스를

연주하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의 절규하는 듯한 말을 들어보자.

-----그런데 제가 왜 이짓을 계속하고 있느냐고요? 그러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왜 꼭 당신네들보다 잘 지내야 하는 겁니까? 그래요. 당신네들요! 회계사, 수출

       업무 대행업자, 사진 현상가, 법률까 등등인 당신네들 보다 말입니다.-----

이 책의 매력은 사람들이 가진 위축된 내면이 사실은 얼마나 의미가 있는 지를 지적해 주는

점에 있다고 본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시금 안정된 감정상태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의 만남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향수(부제: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냄새에 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이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기상천외한 소설

깊이에의 강요--쥐스킨트의 단편집인데, 난 여러 글들 중에 '문학의 건망증'이라는 글을

    좋아했다.

비둘기--위축된 한 인간의 심리묘사가 아주 뛰어난 작품

이 책들을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물론 걸러져야 할 부분들고 많을 것이지만

그건 각자에게 맡긴다.

 

--나를 이야기 해 줘서 고맙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내가 결코 초라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 콘트라 베이스 주자를 보면서 난 그의 독특함과 정열, 무한한 가능성(공무원의 신분을

과감히 벗고, 세라를 차지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들이 아니라 안정된 공무원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그냥 바라만 보면서도 얼마든지 펼쳐 보일 자신의 내면세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너무나 순수한 인간의 내면, 내 스스로도 잘 알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적절한

표현으로 나의 말들을 대신 담아낸 것 같아서 좋다.

어제 밤에 내가 공무원 시험을 치는 꿈을 꾸었다. 함격 소식을 기다리며 한참이나 가슴

조려하는 꿈.... 이 콘트라베이스가 내게 준 인상이 강했나보다.---

                                              1996. 4. 15 내가 쓴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