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의 영웅  (23개월된 형민이)

요즘 우리 부부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면 바로 형민이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때입니다. "작년에는 이러 이러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하더군요", 혹은 "형민이가 다른 아이들하고 있을 때는 이런 행동을 하더라"하는 것 등입니다. 앞으로 한달 여가 지나면 두돌을 맞이하는 형민이..... 요즘 형민이 모습을 스케치해볼께요.

1. 깜짝 놀라게 하는 형민이...

우리는 늘 아기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인 형민이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독립 선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도 많이 자라서 가끔 우리를 무척 놀라게 하지요.

지난 7월 교회 수련회 장소였던 바라보예 문화회관 앞에는 넓은 잔디밭에 각종 들꽃들이 무성한 뜰이 있었는데 형민이의 주 놀이터가 되었지요. 조용히 앉아 뭔가를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는데 뭘 하나 싶어 봤더니 나뭇잎에다가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고 김에 말 듯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뭐 별 것 아니라고 할 지 모르지만 조그만 손으로 서로 다른 물건을 가지고 복합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가끔 과감한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데.... 하루는 놀이터에서 자기 키만한 철봉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네 타는 것 보다는 미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해서 그네를 밀다가 발을 들고 매달려서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 미끄럼틀 타는 것은 아주 능숙해 졌고....계단을 올라가는 것, 올라가서 자리 잡고 앉는 것, 타고 내려오는 것....이 모든 것을 우리의 도움이 없이 잘 해낸답니다.

2. 아빠는 나의 영웅

형민이가 5개월 때 아빠가 군복무로 3개월간 떨어져 있었지요. 그 이후로 아빠에게도 잘 안기지 않고 엄마만 찾는 심각한 마마보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돌이 지나서도 늘 엄마에게만 안겨 다닐려고 해서 우거워진 형민이를 내내 안고 다닐 수 없는 엄마와의 전쟁이 늘 이어졌었지요. 그러다 차츰 아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특히 엄마가 동생을 가지고부터는 아빠만이 자기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다는 걸 알 게 되면서 더욱 아빠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바라보예 문화 회관 앞에서

요즘은 놀다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 "아빠, 아빠"하고 말합니다. 이런 일은 아빠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빨간색의 음식은 모두 아빠가 먹는 것입니다. 그게 맵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아빠가 하는 것은 자기도 똑 같이 해 보고 싶은가봅니다.

아빠가 기타를 들고 앉으면 쪼르르 달려가 아빠 손을 치우고 자기가 치겠다고 야단입니다. 가끔 컴퓨터 전원을 켜고는 마우스를 몇 번 굴리고는 키보드 드드리면서 아빠 흉내를 냅니다. 최근에는 그것뿐 아니라 스피커도 켜고 플로피 디스켓도 꽂았다가 뺐다 하고 프린터에 종이도 놓았다가 치웠다가 하면서 진지하게 놀지요.

테니스를 치고 들어오는 아빠에게서 가방을 뺏어 테니스 채를 꺼내들고는 열심히 휘두르기도 하는데 제법 자세가 나옵니다. 아빠 넥타이, 칫솔, 허리띠도 형민이가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세차를 하러 온 가족이 나가기도 하는데 이런때 형민이의 목표는 운전석입니다. 없다 싶어 찾다보면 어느새 운전석에 앉아 열쇠를 꽂고 열심히 운전대를 돌리고 있는 형민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번씩 이것 저건 버튼도 누르고 기어에도 손을 대면서 열심히 합니다.

이렇게 좋은 아빠..... 그렇기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아빠가 외출을 할 때마다 형민이의 울음소리가 한참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한국과 달리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이 아니라 수시로 집에 왔다 갔다하면서 여러 사람을 돕고 있는 아빠의 일 특성상 아빠가 집을 나가는 모습은 하루에도 여러번 형민이에게 보여지지요. 그때마나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 형민이를 무조건 나무랄 수만도 없고..... 좋은 대안을 제시해보지만 아빠를 따라 나서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아직 없습니다.

3. 엄마, 아빠 빠이빠이....

유아교육에 관한 책을 보니까 2-3세가 되면 부모보다는 다른 사람과 외출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던데.... 요즘 형민이가 정말 그렇습니다. 이번 여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낯가림도 거의 안하게 되었고 손님을 가장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젊은 코이카 봉사단원들은 형민이와 잘 놀아주고 형민이도 아주 잘 따르곤 했는데 이젠 누나, 형아들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것은 형민이에게 즐거운 일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걱정이 되어서 따라다니곤 했는데 별 문제가 없고 또 독립심도 기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일부러 내보내기도 합니다.

지난번 알마티에 갔을 때 한카병원 식구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의사 선생님 아들인 대영이(11살?)가 껌을 사오겠다고 나섰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지루해하던차에 모두 딸려보냈지요. 형민이도 끼여서..... 몇분후 방문이 열리고 대영이가 들어오는데 줄지어 명이, 세진이, 형민이가 따라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형아들 틈에 끼여 쪼르르 따라갔다가 껌을 사는 대영이를 물끄러미 보고 다시 졸졸 따라왔을 형민이를 생각하니 신통하기만 했지요.

지난주간에는 아스타나에 새로 파견되어 오신 김대동 선생님 가족과 일주일을 같이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형민이는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8개월된 딸 나영이와 낯을 많이 익혔지요. 오늘 우연히 쭘(백화점)에서 나영이 네를 만났는데 엄마, 아빠 손 놓고 나영이 아빠를 따라 가더군요. 아빠차도 안타고 나영이와 같이 타겠다고 졸라대서 그렇게 하기도 했구요. 굉장한 변화지요....

4. 형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

아이들의 놀이단계도 하나 하나 변하는게 신기합니다. 10개월 정도까지는 모든 것이 입을 통해 검증되지요. 딸랑이도, 책도 입에 무는 용으로밖에 기능을 안하는데, 그러다가 형민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각종 버튼들.... 누르면 소리가 나는 장난감 전화기는 형민이가 제일 처음 좋아하던 장난감이었습니다. 돌이 되면서는 쌓기 놀이로만 쓰던 책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15개월쯤부터는 움직이는 동물이나 자동차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18개월쯤부터는 인형을 꼭 안아주거나 밥 먹이는 시늉을 하는 등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군요.

20개월이 되면서는 간단한 스토리가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사물과 그 이름이 적힌 책들은 말을 하지 못할뿐이지 이미 다 익힌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읽어 줘도 재미 있어 하던 책들이 이제는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2개월이 되면서 눈에 띄는 변화는 열쇠놀이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열쇠로 문마다 꽂아보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하면서 열중을 합니다. 엄마, 아빠에게 '안녕!'인사하고 문닫고 열쇠로 잠그는 척 하다가 다시 열고 '안녕!'하고..... 그리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3텡게짜리 동전을 기계에 넣어야하는데 그 작업을 형민이에게 주지 않고 그냥 했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이렇게 뭔가를 넣고 끼우는 놀이를 요즘 형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입니다.

어릴때부터 변함없이 좋아하는 놀이는 부엌에서 여러 주방용품을 늘어 놓고 노는 것입니다. 이 놀이에는 반드시 물 한 그릇이 있어야하고.... 엄마가 만지고 있는 감자나 당근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놀이의 끝은 물은 바닥에 흥건, 형민이 바지는 축축..... 이렇게 하면 다시는 물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고 끝납니다. 그러나 형민이도 알고 엄마도 압니다. 내일도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5. 놀이터에 가자...

지난 4월 보름간의 터키 여행을 통해 우리가 느낀 것은 형민이에게 바깥 활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개도 보고 양도 보고 기차도 보면서 형민이가 얼마나 신나고 신기해 했는지 모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아파트 앞 놀이터에 나갔습니다. 형민이 또래의 아이들은 주로 모래더미에 모여 놀았는데 형민이도 그 틈에 끼였습니다. 까작스딴에는 어딜가나 놀이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주위에도 대여섯 개의 놀이터가 있습니다. 좋은 것은 곳곳마다 모래를 갖다 놓아 흙놀이를 하루 수 있도록 해 놓은 점입니다. 놀이기구들은 대부분 형편 없이 낡은 것들이긴 하지만 이렇게 모래더미가 있는 것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봉지에 장난감 삽이나 호미, 혹은 소꼽놀이 기구를 들고 나오는데 하루는 형민이도 도구가 필요하겠다 싶어 집에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형민이가 안 따라 올려는 것입니다.

"형민아 ! 그러면 엄마가 집에 올라가서 가져올까?"

"네!"

"형민이 혼자 있을 수 있겠나?"

"어......"

여기서 기다리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잠시 혼자 두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길에는 차들도 많이 다니고 또 갑자기 혼자 된 것에 대해 울음을 터뜨릴까봐 벤치에 앉아있던 학생들에게 부탁을 하고는 얼른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쓰는 통들과 뚜껑을 챙겨서 내려오니 형민이가 조용히 학생들 틈에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형민이가 울어서 데리고 왔냐고 물었더니 아니랍니다. 그냥 와서 앉으라니까 조용히 틈에 앉더라는 겁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놀이터에 갈 때마다 그 봉지를 꼭 챙겨 나갑니다. 요즘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관 앞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옷 입히고 양말 신기기가 너무 힘듭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서 단단히 무장하고 나가야하는데 놀이터 말만 나오면 당장 나가자고 봉지를 들고 조르기 때문이지요.

놀이터에서는 흙놀이 뿐 아니라 여러 동물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개 기르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좁은 아파트에서도 개를 잘 기릅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개들이 송아지만한 큰 종들인데 사나운 놈들은밖에 나올 때 재갈을 물려서 나오기도 합니다. 형민이가 이런 개나 고양이들을 자주 만나면서 점점 겁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지나가는 고양이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하고 개가 있으면 무조건 가서 만질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동물들에대해 너무 겁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나운 개을 만날 수도 있고 떠돌이 고양이들에게는 세균도 많을텐데..... 동물에 대한 좋은 감정은 좋으나 겁없이 다가가는 건 큰 문제입니다.

6. '에에'

'에에'가 뭐냐구요? 형민이가 자기를 지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형민이는 자신을 '에에'라고 표현합니다. 가슴에 손가락을 대면서요. 형민이의 기도에는 꼭 엄마... 아빠.... 에에.... 가 들어가구요... 람스또르(큰 수퍼)를 지나갈 때면 엄마, 아빠, 에에 가 같이 갔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 형민이만의 언어도 갈수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젠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되곤 하는데 "엄마! 아빠, 에에 쉬..."같은 말들을 합니다. 통역하면 "엄마! 아빠랑 형민이랑 쉬 했어요."하는 말이지요. 이 정도면 말이 트일 것 같은데 아직 그러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외국에서 러시아어, 까작어, 때론 영어 등을 들으면서 우리말만을 인지하고 따라하기가 쉽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자아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물통 뚜껑을 열었거나. 컴퓨터를 켰거나 어떤 일을 하고 나면 반드시 '에에'하면서 자기가 했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 형민이가 했어? 잘 했네..."하고 맞장구 쳐 줍니다. 그뿐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가 하고 싶어합니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전등스위치 끄기, 물통 열기, 쌀 푸기, 양념 젖기, 손톱 깎기 등등..... 온통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혼을 낼 일도 생깁니다.

요즘에 형민이가 자주 보는 비디오는 'kidsongs'라는 동요비디오인데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가면서 어느 놀이동산 모습이 나옵니다. 형민이가 그걸 보더니 자기 가슴을 가르키고 또 TV를 가르키면서 '에에'도 저기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TV에 나오는 장면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라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의 존재나 장소, 시간의 개념들이 발달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럴수록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서 형민이와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달래기도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도하고, 때로는 매를 들기도하고.....

이번주부터는 저녁 가정예배를 형민이와 함께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찬송 한 장 부르고 성경 두장 읽고(저희부부만 드릴 때는 세장씩 읽다가) 기도제목 나누고 기도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짧은 가정예배지만 정말 귀중한 시간이지요. 형민이와 드리면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이젠 어엿한 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한 형민이이기에 함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벌써 익숙해졌는지 아빠 성경, 엄마 성경 따로 놓고 자리 잡고 앉습니다. 저도 찬송도 하고 중얼중얼 성경도 읽는데 예배시간 내내 집중하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성경을 놓고 함께 앉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23개월이 되는 형민이...이제 많이 자랐지요? 이제 형민이 동생도 23주에 도달했습니다. 요즘은 동생은 어떤 아이가 나올까 기대해 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동생에 대한 형민이의 반응도 궁금하지요.

귀여운 장난꾸러기 형민이와의 생활은 이렇게 아기 자기하고 재미 있습니다.

비록 아기를 기르는 게 고달프긴 하지만 이젠 형민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멋진 아기를 맡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0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