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즐거워.....

까작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의 글을 적습니다. 형민이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무엇보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봅니다. 오늘은 형민이도 일찍 자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싶네요.

요즘엔 내년에 이곳에 올 협력의사 선생님이 어떤 분이 되실지 자꾸만 궁금해집니다. 새벽별 선배인 병재오빠가 코이카에 지원을 한다던데.... 병재오빠가 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내년 2월쯤 이곳으로 내정된 선생님이 뭘 준비해가야할지 우리에게 물어본다면 해 줄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도 오기전에 한 해 먼저 오신 김동환 선생님과 숙희언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거기에 덧붙여 아예 물품 목록을 쭉 적어주고 싶을만큼..... 권하고 싶은 것도, 아쉬운 것도 많은 것이 해외에서의 생활인가봅니다.

카작에 온지 만 6개월이 지나고 이제 해를 넘길려고 하고 있네요. 한국에서 계획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길로 제 삶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계획대로라면 가을부터 이곳 대학 빠드팍(언어 연수 과정)에서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어야 하고 플롯을 배우고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지금 전 아무것도 안 배우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형민이를 돌보면서 세 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거든요. 그러다보니 내게 일어난 큰 변화중에 하나는 "요리가 즐겁다" 라는 것입니다.

 

1. 김치를 담아라.

한국에서는 다른 신혼부부들도 그렇겠지만 ...... 김치를 담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양가에서 주신 김치가 종류별로 냉장고에 가득하니까요. 그러나.... 예상대로 이곳에서는 내가 하지 않으면 김치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김치없이 손님을 모실 수가 없잖아요. 알마티에서는 그래도 주위에 계신 사모님들이 가끔 주시기도 하고 '두레' 라는 한국 가게에서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이곳 아스타나에서는 배추 구하는 일부터 직접 뛰어다녀야합니다.

아스타나에서는 '쩬뜨랄리 바자르'라는 큰 시장에 가면 고려인 아주머니 몇 분이 장사를 하시는데 그 분들에게서 배추를 삽니다. 우즈벡 타쉬켄트...멀리서 오는 배추이지요. 없을 때는 갖다달라고 주문을 하구요...... 가격은 kg당 100뗑게..... 보통 큰 배추하나가 3-4 kg쯤 되니까 우리돈으로 3,4000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결코 싸지는 않지만 배추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요. 그런데.... 어제는 이 곳 큰 수퍼인 람스또르에서 배추를 봤습니다. 정말 감격적이었습니다.(Kg당 200텡게였지만요)

지난번 김장까지 아마 한 여덟 번 쯤 김치를 담은 것 같은데.... 대부분 성공적이어서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할아버지 장례식을 위해 한국에 다녀올 때친정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새우젖을 이용하니까 더욱 맛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항상 김치를 할 때는 이곳에 같이 온 한국어 코이카 단원인 미향이 언니 몫도 같이 생각합니다. 김치를 담아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게 제게는 기쁨입니다.

 

여기 무는 특별합니다. 이 글의 맨 뒤에 홍당무 사진을 올렸는데..여름에는 그런 빨간 색의 무만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왼쪽 사진처럼..초록색의 무가 시장에 나오는데 한국 무보다 훨씬 작습니다.

맛을 한국 무와 아주 비슷하지만..조금 더 매운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단점이라면 김치를 담았을 때...고추가루의 빨간 색의 효과를 경감시키는 부작용(?) 있다는 것이죠..빨간 고춧가루에 초록색의 무가 섞여 있으니까요....그래도 이 무가 있어서...이번 김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걸 이용해서 동치미까지 담궜지요....

이 무는 1Kg에 40텡게 정도합니다. 너무 무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감격적이라서 그렇습니다.

 

2. 한달에 쌀 20kg.....

지난번에 형민이 아빠가 글을 올렸듯이..... 쌀 20kg은 요즘 우리집의 쌀 소비량입니다. 학장동 시절의 두배쯤 되지요. 그건 세 끼 꼬박 집에서 밥을 먹는데다가 형민이, 그리고 가정부 마샤까지 식구가(말 그대로)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손님이 자주 오는 편이기도 한데..... 한인이 23명밖에 안되는 아스타나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희 집을 다녀갑니다.

저희가 다니는 아스타나 장로교회 김목사님 가정과는 격주로 서로의 집을 방문하면서 주일 점심 식사를 하고 있고 미향이 언니와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함께 식사하려고 합니다. 목사님과의 식사는 아무래도 더욱 신경이 쓰이는데 지금까지 불고기 덮밥, 카레, 비빔밥, 불고기, 닭계장까지 내 놓았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바닥이 난 것 같아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의 이런 음식 나눔이 한국에서보다 더 즐거운 건 아무래도 교제권이 작은 외로운 해외생활이기 때문이겠지요.

왼쪽이 우리 집의 주력 상품인 닭계장입니다. 시댁에서 전래되어 온 음식인데..사실 토란줄기나 방아 나물을 넣어야 제대로 맛이 나지요...그러나 그런 재료는 여기서 구할 수 없고...이것 저것 넣어 만든 건데..그래도 성훈이 오빠는 맛이 있다고 합니다.

3. 다음 요리는 닭다리 겨자구이

알마티에서는 적응하느라고, 그리고 각종 모임에 참석하느라고 제대로 음식을 할 기회가 없었고 아스타나에서 정착해가면서 제대로 요리책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올 때 '이향방 요리 백과' 라는 중국요리 책을 사 왔는데 거기서 시키는대로 탕수육을 시도해봤습니다.

결과는 대성공(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요....). 이렇게 시작된 즐거운 요리는 빵, 카스테라, 피자, 짜장, 동치미, 단술, 등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요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요. 집에서 내가 한 음식을 형민이 아빠가 느긋하고 먹어 줄 시간도 없었을 뿐 아니라... 집에서 하는 것 보다 더 맛있는 요리들을 쉽게 사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곳에선 전혀 그럴 수가 없지요.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나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없던 오븐이 이곳에는 있으니까 오븐을 이용한 음식도 해 볼 수 있고 마샤나 미향언니,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기형 형제 등과 함께 나의 첫 작품을 나누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위 사진이 나의 첫 탕수육 작품을 먹는 사진입니다. 마샤와 미향이 언니와 함께 먹고 있네요...

매일 점심은 우리 부부와 마샤, 형민이.... 이렇게 네 사람이 식탁에 앉습니다. 마샤는 러시아인이지만 한국음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김치는 기본이고 된장에 청국장까지 소화해낸답니다...대단하지요? 처음엔 서툴던 젖가락질도 이젠 자연스럽습니다. 마샤는 김밥이 아주 맛있었는지... 친구들에게 '김밥'이라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나봅니다. 친구들이 한번 해보라는데 다른 건 다 있는데 김이 없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제가 김을 좀 줬는데..... 제대로 해 먹었는지 모르겠네요. 단무지를 넣고 만든 제대로 된 김밥을 먹어본다면 정말 놀랄 것 같습니다. 너무 맛있다고..... 여기선 단무지가 없어서 오이를 소금, 설탕, 식초에 절였다가 했거든요...

전 다음 요리들을 쭉 생각하고 있는데 우선 대추를 구하는대로 약식을 하고 그리고 새해에는 김치 만두를..... 그리고 닭다리 겨자구이를 해 볼 생각입니다. 한국에 가면 여러분들도 초청할께요.

 

4. 새벽 2시까지 고기썰기....

손님을 초청하면 전 보통 이틀전부터 재료준비를 합니다. 제가 아직 초보 주부인데다가 엄마 곁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형민이를 데리고 음식을 한다는 건 거의 전쟁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 형민이가 자고 난 12시쯤부터 썰고 다듬어 놓는데..... 제일 힘든 일은 단연..... '고기썰기' 입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고기를 덩어리 채로 팝니다. 돼지, 소, 닭, 모두...... 물론 람스토르에 가면 스테이크를 위해서 썰어놓은 것이 있지만 그건 한국음식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요. 보통 손님이 오시면 고기 요리를 하게되는데 쇠고기 1,2 kg을 불고기용으로 썰거나 닭 네 마리를 토막내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고기를 얇게 썰기위해서는 어느 정도 얼렸다가 해야하는데 손도 시리고 단단한 걸 한참 동안 서서 썰고 나면 어깨가 아픕니다. 닭고기 토막내는 건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전엔 부엌 곳곳에 파편들이 튀었는데 이젠 좀 크더라도 관절 부위를 이용해 절단하지요.

그리고 이곳에선 찧어놓은 마늘이나 삶아 놓은 고사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모두 스스로 빻고 삶아야하지요. 그래서 처음엔 조리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었는데 이런 작업 또한 익숙해지면서 속도도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겐 좋은 훈련인 것 같습니다.

 

5. 형민이에게 뭘 먹이지?

이곳에서 우리를 게으르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형민이입니다. 늦잠을 자고 싶어도 형민이가 깨면 우리도 깨야하고 자고 싶어도 형민이가 잠들어야 잘 수 있지요. 그리고 형민이가 낮잠자는 시간동안 여러 가지 미루어 둔 일을 하고 거기다가 형민이가 먹을 것들을 챙기다보면 하루 종일 바쁩니다.

다행히 형민이가 별다른 이유단계를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밥을 먹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밖에 다닐 때도 급할 때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줄 수 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우유를 전혀 안 먹으니 영양이 부족한 것 같고 그래서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알마티에서 8,9개월째를 보낸 형민이는 제가 처음이라 어떻게 먹여야 할 지 몰라서 주위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별히 귀여운 세 아이의 엄마인 김주은 사모님(데이빗 김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이것 저것 많이 가르쳐주시고 고기나 멸치 갈은 것도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형민이도 많이 자라서 밥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먹을려고 합니다. 숟가락을 쥐고 원하는 것을 쿡쿡 찌른 뒤 "어--" 하고 숟가락을 제게 건네 주지요. 그걸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형민이의 하루 식단을 보면 보통..... 세끼 밥과 국, 때로는 여러 가지 야채를 넣은 죽, 달걀 반숙 하나, 치즈 한 장, 가끔 조기 한 마리..... 이정도인데 다행히 밤에 우유를 두세 번 먹습니다. 이정도면 되나요? 뭘 더 보충해야하나요?

 

6. 다음에 오실 협력의사선생님이 계시다면.....

이곳에 오는 짐을 챙길 때 먹거리는 고려인들이 있다니까 정말 최소한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고려인들은 된장, 고추장을 안 먹더군요...... 솔직히 처음엔 충격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런 것들을 만들어 먹을 줄 알았거든요. 한국물건이 많이 들어와서 쉽게 구할 수는 있지만 가격이 두세배로 비싸지니까 늘 "너무 비싸다"라고 하면서 아쉬운 소릴 하게 됩니다.

다음에 오실 협력의사 선생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꼭 말씀해 드리고 싶습니다. 먹거리...... 최대한으로 가져오세요. 된장, 고추장, 국간장, 젖국은 기본, 국수나 카레, 짜장은 물론, 당면이나 참치등등등..... 여기서 지내면서 보니까 한국에선 전혀 먹지 않던 통조림들이 이곳에선 아주 좋은 반찬거리가 된다는 사실..... 특히 참치, 고등어 등의 생선 통조림은 훌륭한 재료들입니다. 여기선 거의 희귀하거나 아주 비싸니까요.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두루두루 챙겨야한다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예를들어 잡채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당면을 챙겨올 것을 권한다는 것이죠. 왜냐면 이곳에선 손님을 초청할 일이 많아서 자기 입맛만 생각할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필요없다면 주변에 나눠주면 아주 좋은 선물도 되니까요. 전 마른 오징어를 안 챙겼어요. 제가 치아교정을 하고 있었고 형민이 아빠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이곳에 와서 보니까 오징어가 훌륭한 후식감이더라구요......

 

7. 길고 추운 겨울을 위해.....

한국도 겨울이 길지만 이곳 까작의 겨울은 정말로 깁니다. 요즘처럼 아침 8시쯤 해가 뜨기 시작해서 5시쯤 지고 나면 한국의 메밀묵이나 찹쌀떡이 생각납니다.

여러 사모님들의 조언으로 저도 겨울 준비를 했는데 우선 마늘을 많이 사 놓고 김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 말랭이를 하고..... 가지는 말리다가 실패했는데 마침 그때 비가 많이 왔었기 때문인가봅니다.

그리고..... 이곳에도 감이 나오는데 한국처럼 맛있는 단감 대신 떫은 감이 나옵니다. 모양을 봐서는 한국에 약간 네모진 홍시감 종자인 것 같은데 딱딱합니다. 그걸 맛있게 먹는 방법을 배웠는데..... 껍질을 깎아서 밧데리(난방기구)가나오는 따뜻한 곳에 며칠 두면 말랑말랑해지면서 마치 꽂감과 같이 되더군요.. 저도 몇 번 했는데..... 지금까지 감을 그렇게 맛있게 먹어보긴 처음입니다.

처음에 그걸 깎아서 제일 따뜻한 작은 방에 두었는데 어느날 양이 무척 줄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이상하다...오빠..여기 있는 감이 마르면서 작아지나 봐요..전에는 쟁반 가득했던 것 같은데...이상하다.."

"몰라....그게 뭐..작아지겠지..."

하지만..오빠는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얼굴을 가만 보면 표가 다 나거든요...아니나 다를까...... 범인은 바로... 성훈이 오빠..... 쿡쿡 눌러서 말랑해 진 것을 먹고난 뒤... 아무도 모르게 배열을 고르게 해 놓은 것입니다. 들키고 나서 부터는...감을 몰래 먹고 나서는 반드시 제 입에 한 입 물려서 말을 못하게 만듭니다.  아담이 하와를 유혹하듯.....(거꾸로 됐는데...)  좀 뒀다가 겨울 내내 먹을려고 했는데..... 올해는 맛만 보고 내년을 기약해야겠습니다.

8. 시행착오를 거쳐....

이곳에서의 음식들이 다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구요. 이곳에선 더더구나 못보던 재료들을 이용해서 하다보니까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홍당무로 담근 깍두기가 대표적인 사건이구요...... 한국 무와는 아주 다르더라구요.

지난번 우리 방명록에 어느 선배가 격려해 준 것처럼 이곳에서의 제 역할은 남편과 가정을 돌보고 주변 선교사님들을 따뜻한 식사로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말도 잘 안되고 형민이가 늘 함께 있어서 자유롭지 못해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런 좋은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아직 다른 많은 것들을 이루지는 못했지만...맛있는 요리를 가족들에게 제공하고...또 요리를 통해 즐거움을 찾아가는 이 시간들이 제겐 무척 뜻깊은 시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20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