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 된 깜빡이

 지난 금요일에 부산대학병원 산부인과를 찾았습니다. 지난 번 산전 방문 후 벌써 1달이 지났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출산을 대학병원에서 할 예정인데 아직 한번도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드디어 오늘 오게 되었습니다. 부산대학교병원은 2년 10개월동안 제가 근무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낯 익은 사람이 많고 병원 분위기도 제겐 익숙합니다. 한가로워 보이는 1층 로비지만..... 5층부터 시작되는 임상 병동에서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얼마나 숨가쁘게 돌아갈 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도 환자로서 병원을 방문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습니다. 약간 긴장도 되고 혼자서 진료실에 간다는게 너무나 허전하더군요. 그래서 성훈이 오빠와 회진이 마치는 오후 3시 30분 쯤.... 1층에서 만나서 함께 산부인과 외래로 올라갔습니다. 선생님은 자상하게 이야기 해 주시고 초음파도 봐 주셨습니다. 한눈에 깜빡이가 지난달에 비해 아주 많이 자라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머리가 아주 커 보였거든요. '이건 소뇌고 이건 뇌 실질이고 ..... 쭉 따라 내려가면서 척추가 보이고... 다리가 보이고...' 설명을 들으면서 보는데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봤던 손가락들이 머리 옆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붙였다가 떼었다가.... 그리고 주먹쥐었다가 폈다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사진찍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에 아기의 머리와 손이 보입니다. 손가락이 여전히 4개밖에 안보이네요...)

아기가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나 좋았습니다. 처음 임신을 알았을 때도 그랬지만 평소 생활속에서는 아기의 존재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배도 부르고 살도 찌고 또 여러 가지 불편한 증상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정말 아기가 살고 있긴 있나?'하고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보니까 살아있다고 느껴집니다.

임신이 여성에게 가져오는 변화는 정말 큽니다. 신체적 변화가 처음으로 찾아오지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알맞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몸무게가 1kg이라도 늘어나면 체중계에 달아보기 전에 이미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물이 먹고 싶어지고 열량이 부족하면 고기나 튀김처럼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임신후에 오는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들은 평소에 익숙한 자기의 컨디션이 유지 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상당한 불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임신한 여성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유산을 하고나면 몸이 아주 가뿐하답니다. 실제로는 조심해야할 위험한 상태이지만 임신으로 인한 불편감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몸이 좋아진 것처럼 느껴진다는군요. 저는 처음에는 이유없이 피곤하고 아프고 소화가 안되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산모는 입덧을 심하게 하지요. 다행히 저는 심한 입덧 없이 임신 초기를 보내었답니다.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는 똑바로 눕기가 힘듭니다. 똑 바로 누우면 골반에 있는 뼈들이 삑걱 거리는 것 같고 제대로 붙어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아프구요. 바로 누웠다가는 옆으로 두세 번 자세를 바꿔줘야 합니다. 그때 관절에서 '뻑'하는 소리가 나면서 통증이 발생합니다. 몇 번 그러고 나면 뻐들이 다시 제 자리를 잡습니다. 성훈이 오빠는 늘 그게 걱정이 되어서 자다가도 '선화야 허리 괜찮나?' 혹은 '바로 눕지마라'하고 이야기 합니다. 어떤 날은 낮에 바로 누워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는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한참동안 바둥바둥 거립니다. 그러다가 전화를 못받기도 하죠.

저는 친한 친구들 중 처음으로 결혼했습니다. 물론 빠른 결혼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친구들은 절보고 '이상하다... 신기하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도 부른 배로 친구들을 만나는 게 익숙치가 않습니다. 조금은 쑥스럽고 이상합니다. 대화의 내용도 많이 달라집니다. 졸업하고 우리의 주 관심사는 어떤 사람을 만나서 결혼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이젠 결혼 후의 생활들을 궁금해 합니다.

 옛날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와 미래의 우리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세상의 낭만과 아름다움은 모두 우리의 것이지요. 온갖 로맨틱한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때는 독신여성이 아주 멋있게 보였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안해도 인생에서 의미있는 남자가 다섯 명은 있어야 한다느니.... 40대 까지는 좋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 때 한 친구의 얘기가 기억납니다. 그 친구는 자신은 사람이 일생중에 가질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직장생활, 결혼, 출산, 육아, 새로운 가족관계 등등... 그런 것이 삶을 가장 치열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당시에 그 말은 아주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멋지게 들렸습니다. 결혼한 지금도 그 친구의 말을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평범할 수 없는 삶의 정상과정...누구도 자기 자신의 삶 만큼이나 의미있고 치열한 것은 없으니까요.

저는 요즘에 그러한 의미있고 열정적인 일 속에 있습니다.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지요. 아직 태동은 느껴지지 않지만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작은 인간... 이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가족들. 전 지금 큰 선물을 받고 또 멋진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