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국에 들어 와서 1년......

                                                                                        1년차 이 성 훈

 

싸늘한 바람이 까만 밤하늘을 지나 가운 속으로 파고 드는 지금...... 인턴 숙소 앞 나트륨 등만 휘엉청 밝은 늦가을의 밤입니다. 하루 종일 병원 안에서 북적대던 사람들도 이젠 보이진 않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적막한 기운만이 감도는 병원 로비를 보니 아마 하루 종일 아픈 사람들의 신음과 고통 때문에 시달린 병원도 이제 지쳐 자나 봅니다. 한 해의 마지막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병원 현관 앞에는 이 밤에도 수액을 달고 멍하니 밤 하늘만 바라 보며 생각에 잠긴 환의를 입은 이들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평생 살아가면서 한 번도 안 오는 게 행복이라는 이 곳에서 보낸 1년을 생각해 볼 때 감사한 맘과 후회스런 맘, 그리고 부끄런 맘이 슬라이드처럼 내 앞을 지나갑니다.

 돌아보면 참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병동에서 볼 수 있었던 흰 가운의 사람들이 별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지던 학생 시절과 낮선 order지와 slip을  보고 당황하던 인턴시절을 거쳐 그토록 들어오고 싶어 하던 내과 의국에 들어왔지만 선배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실망하고 낙심하던 시간들이 하나 둘 기억납니다. 어떻게 그렇게 아침에 일어 나기 힘들고 검사 결과치가 기억이 안 나고 환자 파악이 안 되었는지..... 계속되는 실수를 안타깝게 보시던 선배 선생님들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subcharge 시절부터 안타까운 맘으로 자상하게 인도해 주신 2년차 선생님들의 관심과 땀이 흐르는 무더운 병동을 함께 다니면서 경험 없이 환자를 보는 우리를 지도해 주신 고년차 선생님들의 조언과 말도 안되는 실수를 범하고 미처 챙기지 못한 결과들에 대해 아시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시면서도 환자에 대한 바른 접근을 하도록 따끔하게 말씀해주시던 교수님들이 계시기에 그래도 여기까지 자랄 수 있었다는 생각이 점점 가슴 깊이 듭니다.

처음 central vein을 keep하던 날, 처음 pneumothorax만든 날, 처음 입원 환자가 사망한 날, 처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밤샘한 날, 처음 ICU에서 인공 호흡기 단 날..... 무수히 많은 처음 겪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 어느 덧 환자를 두고 제법 이것 저것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고 처방 하나 하나에 따라 바뀌는 환자 상태를 느끼기도 하고 환자 보는 즐거움이 뭔지 조금 깨달을 수 있으니 이 기회를 빌어 부족한 우릴 참고 기다려 주신 선배님들의 배려와 사랑에 감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의 전체 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고통을 덜어 줄 수 있고 활력 증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내과 의사... 그 길이 힘들고 멀어 많은 이들이 가길 망설이지만 그 만큼 자부심이 생기는 이 곳에 본받고 싶은 훌륭한 선배님들이 든든히 계시다는 사실이 내겐 위로가 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실력을  갖춘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의사가 되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이제 열심히 배우고 가다듬어 선배님들의 명성을 더욱 빛내는 의국 후배가 되는 길이 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몫인가 봅니다.

여러 학회나 의국 MGR때마다 뵙는 의국을 나가신 선배님들을 보며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리게 되며 우리에게 역사와 전통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드리게 됩니다. 아무쪼록 선배님들의 병원과 가정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며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응급실에서 호출이 옵니다. 부산대학병원 내과 1년차의 자부심을 가지고 환자에게 갈 겁니다. 약간은 어깨가 무거워 오는 것을 느끼지만 우리 일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인지 되새기며 사랑하는  맘으로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