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일기(내가 당긴 첫 방아쇠....)

 

3월 21일 수요일 (#26)

32사단 훈련 3일째.....오늘부터 3일동안 사격 훈련을 받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M16A1소총의 기계적 설명을 듣고 사격자세, 조준, 격발에 대한 이론 강의와 실습이 이어졌다.

오전 교육 후 전 후보생이 오후 훈련과정이 시작되는 13시부터 15시까지의 일정을 보이콧하고 내무반에 집결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유는 '엎으려 쏴'자세 연습 도중에 후보생 한 명이 천식발작으로 쓰러져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데도 교관이 나머지 후보생들에게 훈련 및 평가를 계속 진행하려 한 데서 빚어졌다. 어제도 훈련 중 한 사람이 실신을 하고 쓰러졌고, 또 한 사람이 외나무 다리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훈련이 심해서라기 보다 이 곳에 와 있는 공보의로 내정된 의무사관후보생들의 체력과 질병상태가 현역으로 군무할 영천에서 훈련받는 의무사관후보생들보다 취약하게 때문이다.

난 국제협력의사로 선발되었기에 신체등급 1급이라도 현역복무가 필요없어 이 곳에서 훈련받고 있지만 다른 대부분의 후보생들은 사병이라면 면제받거나 4,5등급을 받을 신체 검사 결과 때문에 이 곳에 와 있고 대부분의 후보생들의 나이가 31-35살이기에 우리를 교육시키는 교관이나 조교보다 8-10살 많은 나이여서 여기서 하는 작은 강도의 훈련이라도 후보생들에게는 힘드는 일이다. 게다가 이 곳에서 우리를 교육하는 교관은 대부분 중사이거나 중위여서 우리가 훈련후 달게 되는 대위계급보다 낮은 계급이이게 단기간 훈련을 마친 뒤 자신들보다 상급자가 되는 우리를 좋지 않게 볼 게 뻔하고 그래서 일부 교관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우리를 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쨋든 한 중위의 사려깊지 않은 처신과 교육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신교대 교관들이 난처해지는 상황이 생겼고 전체 사기가 떨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태는 일단 훈련은 계속 받기로 하고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에 대한 조치와 훈련강도 조절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기로 하고 일단락되었다.

사실 몸도 정상이 아닌 이 후보생들이 무리해 가며 훈련을 받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군의학교와 32사단에서 받는 훈련 성적이 어떤 식으로든 공보의 임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만일 몸의 조그만 이상 때문에 훈련을 열외한다면 그 만큼 성적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결혼했고 처자식이 있기에 향후 3년동안 원치 않는 낙도나 교통이 어려운 곳으로 배치된다면 가족이 힘든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역으로 교관들은 모든 활동시 점수에 반영한다며 이를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만일 훈련도중 건강이 나빠지거나 다치게 되어 열외나 의무실 입실을 하게되면 더 큰 점수를 잃게 되기 때문데 대부분의 후보생들은 견디기 어려울 때까지 참고 훈련을 받는다. 그러다가 정말 크게 다쳐 5일이상의 훈련 결손이 발생하면 장동 퇴교 조치가 이루어져 내년에 다시 훈련을 받아야한다. 지금까지 우리 소대에서만 2명이 퇴교했고 들리는 소문에 지금 영천 3사관학교에서 훈련받는 현역 복무 예정인 후보생들 중 30여명이 자진 퇴교했다고 한다.

서른을 훨씬 넘겨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려고 군사 훈련을 받는 우리 나라의 현실이 여러모로 서글프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빨리 통일이 되어서 동포들끼리 총을 겨누는 연습을 그만 두어야 할 텐데..... 하나님을 언제 이 일을 하실런지........

 

3월 22-23일 목요일-금요일 (#27-28)

군대에서 들은 몇가지 금언이 있다.

군인정신은 제 정신이 아니다. --> 이기주의가 만연한 요즘 세상에 군대에선 여전히 전우애와 이타심을 강조하고 있음을 빗대서 이르는 말이다.

경계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 원래 군에서 얘기되는 것은 '작전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전쟁을 하다보면 작전이 실패할 순 있지만 적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보초를 세우는 경계근무는 절대 실패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육생들은 이를 바꾸어 배식조가 음식배분을 잘 못해서 마지막 식사조가 제대로 식사를 못하게 되는 배식실패가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우스개 소리로 얘기하는데서 이 말이 비롯되었다.

오발은 명중한다.--> 사격장에서 절대로 총기를 들고 방심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총을 쏜 날이다. M16A1소총...... 우리 병사들이 이전에 사용하던 미제 소총이지만 현재 군이 주로 사용하는 K2소총보다 정확도는 더 높은 우수한 무기이다.

사격을 앞두고 훈육장교와 교관으로부터 총을 든 채 사선에 서는 군인의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교육과 주의를 받았다. 각개 전투장이 사격장 근처에 있는지라 며칠 전 각개 전투 교육을 받으면서 창공르 가르며 크게 울리는 총소리를 들으며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기대했었는데 막상 영점 사격을 하기 위해 줄 지어 사격장으로 향할 때는 마치 어린 시절.....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강당으로 갈 때의 걱정과 불안이 생겼다. 한 가지 위안은 여기 있는 760명이 모두 총을 쏘게 된다는 사실 뿐이었다.

엎드려 총을 쏘고 있는 사수의 뒤인 대기 사수선에서 바로 앞에서 나는 어마어마한 천둥 소리에 귀가 멍멍해지는 걸 느꼈지만 나도 총을 한 번 쏴 봐야겠다는 오기가 슬며시 발동하는 것도 그 때부터였다.

내가 가진 총을 진짜 나의 총으로 만드는 과정인 영점사격..... 25M 사거리에서 생애 첫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약실 안에서 총탄 내부의 화약이 터지는 폭음과 총의 흔들림, 그리고 터지는 긴장감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사격이란게 이런 느낌이구나!'

이상하게도 직접 총을 쏠 때 들은 총소리는 뒤에서 대기할 때 들은 총소리보다 참을 만했다. 귀가 적응을 했는지..... 아니면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어쨌든 흥분과 설레임으로 맞은 9발의 영점 사격은 사고없이 무사히 마쳤다.

사선에서 들리는 중대장의 마이크 소리.....

"사수, 엎드려 쏴!", "탄창 결합!", "일발 장전!", "조정간 반작용!", "준비된 사수부터 발사!"

좌우에서 빨간 기를 들고 수신호를 보내는 교관, 총을 쏘는 등 뒤에서 탄피 방향을 지켜보는 대기 사수들, 그리고 조교의 굵직한 목소리.... 모든게 처음 대하는 모습이지만....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이었다.

사격 이틀째 날, 10발의 사격을 했는데 난 역시 총으로 누군가를 맞출 수 없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0발중 1발 명중... 내무반에서 가장 낮은 성적이다. 공보의가 아니라서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영점조준이 잘 못된 건지.... 다른 사로에서 발사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가슴을 철렁거리게 하는 천둥소리를 내는 이 기계는 내가 다뤄선 안 될 물건이지 싶다.

 

3월 24일 토요일 (#29)

오전은 유격체조를 배우는 시간이었고....... 왜 유격체조를 모두가 힘들다고 입을 모아 얘기하는 지 알 수 있었다. 특히 8번 '몸 비틀기'는 제대로 할 수 조차 없었다.

지난 월요일 (3. 19)..... 예상치 않았던 전갈을 갑작스럽게 받게 되었다. 서울에서 연락이 왔는데 국제 협력단에서 급히 나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이 소식을 듣고 옆 내무반에서 숨겨 놓은 핸츠폰을 사용하여 공중전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서울로 전화를 걸었었다. 내용인즉 과테말라에서 협력의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혹시 과테말라로의 파견이 어려워질 수 있고 이를 대비해 협력단에선 카자흐스탄과 같은 다른 나라와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력단에서는 협력의사가 최적의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하고 이것이 어렵다면 파견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대전 군의학교에 신검 받으러 가던 날에도 국방부로 넘겨진 협력의사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며 국방부에서 통화하길 원한다는 협력단의 전화를 받고 난처한 상황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이번데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긴 것이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과테말라보다 이슬람 국가인 카자흐스탄에 내가 가길 원하시는가?'...... 만약 과테말라가 아니라 카자흐스탄으로 가게 되더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일주일 내내 이에 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파견국가가 바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지금 선화가 하고 있는 스페인어 공부와 지금까지 모아놓았을 과테말라 관련 자료들이 물거품이 되고 무엇보다 마음속으로 과테말라를 그려 두고 준비해 왔던 내 마음가짐이 흔들리게 되었으니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협력단에서는 이 사실에 대한 최종 결정이 이번 주말까지 내려질 것 같다며 토요일에 전화해 줄 것을 부탁해 왔고 유격체조 중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약속된 오늘 서울의 국제 협력단 봉사 사업팀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해서 확인한 사실은 이것이다. 과테말라에는 1기 협력의사가 파견된 적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협력의사의 신변보장과 의료활동 보장에 관한 일종의 각서를 교환해서 파견할 수 있었으나 정상적으로는 양 국가간에 조약이 맺어져서 협력의사의 신변과 활동 보장에 관해 합의 되어야 파견이 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지금 과테말라 정부와 이러한 합의가 원할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어렵지 않나 생각했던 것이고, 지난 주 중에 과테말라의 복지부(우리나라식으로) 차관으로부터 파견의사를 보내라는 OK사인을 받았고 장관 결재만 나면 정상적으로 과테말라에 파견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 협력단에서 과테말라에 내과의를 보내기로 결정한 이유는 과테말라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적극성을 보여 이뤄진 것이며 현재도 대사관에서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며 아마 다음 주 중에 최종 결론이 나올거라고 알려왔다. 결국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과테말라로 예정대로 갈 가능성이 많아진 셈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과테말라를 놓고 기도하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과 보고 싶은 사람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외박가는 날짜만 세고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좀 더 절박한 외침이 내 안에 살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3월 25일 주일 (#30)

32사단에서 맞는 두 번째 주일이지만 종교행사는 처음인 주일이다. 어느새 교회간다는 말보다 종교행사가 있다는 말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한다. 사단장인 소장(별 두 개)이 교회에 온다면서 몸가짐에 주의해 달라는 훈육대장의 말을 뒤로한 채 200명에 가까운 크리스챤 후보생들은 32사단 입구에 있는 교회에까지 계속 걸어갔다.

한밭 군인교회..... 찬양팀이 있었고 성가대도 있는 부산의 웬만한 교회 규모정도였다. 아쉬웠던 것은 사단장을 너무 배려하는 부관들의 태도가 교회당 안이라 그런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점이다.

오후 1시에 국제협력의사 모임이 찬 바람이 부는 벤치에서 있었다. 향후 일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과테말라, 페루, 방글라데시에 갈 지체들을 위한 중보기도회를 가졌다. 돌아가며 기도제목을 말하는 시간에 내가 제일 먼저 지적되자 퍽 당황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기도 제목들을 내 놓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분들의 지적이 내게 필요한 것이었던 그야말로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다른 세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준비도 하고 있고 계획도 제대로 진행하고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나를 제외한 다른 협력의사들은 현재 전임자가 그 나라에서 근무하고 있고 자신이 파견될 근무지역도 알고 있엇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지만 내 경우에는 파견군이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간 데다가 전임자도 지난 3년간 파견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과테말라 어느 도시로 갈 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이 다른 선생님들과 준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 같다.

다른 협력의들과 함께 애화를 나누고 기도회를 하면서 내가 잘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고 과테말라를 위해..... 아니 더 구체적으로 과테말라에 예정대로 파견될 수 있도록 기도하기에 이르렀다. 파견국은 미리 정해져 있었지만 어느새 주변의 상황과 기도제목은 과테말라를 간절히 바라게끔 되어 버렸다.

     "하나님, 이전에 내가 기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앞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따라가기만      하겠습니다. 과테말라로 보내 주세요. 전에는 내 안에 꼭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없었지만 이곳에와서맞게  된상황들은 과테말라로      향하는 내 마음을 더욱 뜨겁게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회막 위에 걸린 구름기둥처럼 나와 함께 있기를 구합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이 나를 강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 동안 내가 간절히 기도하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세요. 이제 나로 과테말라를 보게 하시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병영 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