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일기(공주 32사단으로....)

3월 18일 주일 (#23)

군의학교에서 드리는 세 번째 주일 예배시간이다. 지난 주에 계획한 대로 예배 특송에 참가했다. 아카펠라로 '신자되니 원합니다'를 준비했는데 8명이 하나가 되어 찬양 가사처럼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자가 되길 원하는 맘으로 간절히 찬양했다. 글쎄.... 같은 예배시간이라 하더라도 특송자가 되면 더 예배에 집중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항상 예배에 집중해서 진정으로 드려야하는데.......내가 평생 살아가며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점심을 먹고 큰 군장 주머니에다 군화, 군복, 운동복, 방탄모, 학과가방, 개인 속옷, 개인 소지품을 넣고 소총에다 단독 군장을 준비했다. 오늘은 공주의 32사단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20kg은 될 듯한 짐을 들고 줄을 서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소대별로 오른다. 계룡산 관광, 금강산 관광이라고 적힌 관광버스에 전투복 차림으로 큰 짐을 메고 승차하면서 군인이 군용트럭에 오르지 않아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국가가 우리에게 주는 호의에 감사할 수밖에..... 헌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버스에 타서 출발할 때까지 버스안에 있는 우리 맘은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마냥 즐거워졌다. 무엇보다 3주동안 갇혀 있었던 군의학교를 벗어나 바깥 세상을 구경한다는 설레임이 우리를 들뜨게 만든다.

버스는 출발해서 자운대를 빠져나가 주변 군사시설과 충남대학교 서문, 대전 월드컵 경기장, 과수원등을 지나 보병 32사단이라고 적힌 부대로 들어갔다. 그 사이 20여분동안 버스안에 있던 우리들은 마치 세상에 처음 나온 토끼들처럼 졸음을 참아가며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못볼 세상을 담기에 바빴다.

32사단은 산 중턱에 있었고 산을 층층히 깎아 많은 건물들과 연병장을 만들어 놓았다. 자세하게 묘사하면 군사기밀 노출이라 안 되고....... 지금까지 지내던 군의학교라는 교육시설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 느껴지고 날카롭고 웅장한 조각물과 전투장비가 눈에 들어오는 진짜 군부대였다. 우리가 여기서 교육받는 이유는 군의학교에 사격시설이나 유격시설이 업는 데다가 이곳 32사단에는 신병교육대(군에 막 들어온 장정들을 4주간 훈련시켜 이등병으로 부대에 배출하는 과정)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숙소는 부대의 맨 위쪽에 있었고 촘촘히 나온 하늘과 맞닿은 계단을 올라서야 보이는 건물이다.난 4소대 2내무반이다. 군의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15명씩 3개의 내무반으로 편성되었지만 여기선 22명씩 2개의 내무반으로 재편성되어 새로운 사람들과 내무반 생활을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 건물의 창은 동쪽으로 나 있고 남북으로 길게 복도가 이어진 3층짜리 건물이다. 여기에 비하면 군의학교는 특급 호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난방으로 내무반은 춥고 화장실은 부족하고 꺼림칙해 보이고, 샤워실은 보이지 않고...... 취침 점호때 훈육장교가 들어와 지금은 3월1일이 지난 하절기 일과표가 적용되기에 온수가 공급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땐 정말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만일 온수 샤워가 안된다면 (군의학교에선 샤워실을 폐쇄했지만 살짝 다른 층의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땀이 나는 운동이나 구보를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제한이 우리에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3주간의 군의학교 내무생활은 훈육장교 말대로 니허설이었다. 이제 이 곳에서 보내는 2주가 진짜 고생하는 병영생활이 될 것이다.

오늘밤은 내가 불침번을 서는 날이다. 밤 12시에서 1시까지 이 으슥하고 추운 복도에서 첫날밤을 지킬 생각을 하니 괜한 걱정이 생긴다.

 

3월 19일 월요일 (#24)

낯선 땅에서 눈을 떴을 때 그렇게 춥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을 깼다. 그러고 보니 잠결에 들었던 땅땅거리는 소리는 라디에이터의 밸브가 열리는 소리였던 것 같고, 간밤에 어느정도 난방이 되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두 사람이 짝이 되어 군용 모포를 개는데 많은 먼지가 날린다. 군의학교에서는 창가에 있는 내가 일어나자 말자 어김없이 창문을 활짝 열었었는데 이 곳 창가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질 않아 숨이 막힌다.

기상점호를 위해 사열대에 집결할 때 혹시나 싶어 방한복 내피를 입었는데 아침기온이 생각보다 낮지 않았다. 하지만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음산하고 숩기가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에 가는 길은 산비탈을 올라 언덕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길가에서 아직 녹지 않은 눈덩이를 많이 볼 수 있었고 식당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흰 안개 속에서 여기저기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식당은 군의학교에 비해 형편없이 작아서 아침 식사하는데만 2시간 이상 걸린다.

오전에는 32사단 입소식이 있었는데 부사단장인 대령을 맞기 위해 군악대가 동원되고 많은 장교들이 우리 줄을 대각선까지 맞추려고 소리 지르는 걸 보면서 보병 병과의 대령은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간은 '경례'수업이 맞은 편 능선에서 있었다. 이 곳은 각 교육장이 주변 산에 널려 있고 이 산을 지나면 유격장이 있고, 저 산 능선에 각개 전투장인 그야말로 모든 시설을 다 갖춘 신병교육대이다.

황토먼지가 날리는 산속에 앉아 강의를 듣고 바로 실습하면서 흙먼지를 덮어쓰고 구르다보니 산길을 오래 걸어서인지 온 몸이 파김치로 변했다. 그러나 맑은 산 공기와 솔방울이 주렁 달린 솔내음을 풍기는 소나무 숲 속에서 깊은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은 내 삶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저녁에는 찬 물에 샤워를 하고 주변을 정리하면서 32시단에서의 첫 훈련을 정리한다. 물론 일기도 적고...... 내일부터는 본격적이로 육체적 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각개 훈련이 전개된다. 내일이 기대된다.

 

3월 20일 화요일 (#25)

각개 전투가 있는 화요일....... 하루의 시작은 여느때처럼 어둠을 뚫고 집합하는데서 시작한다. 건물 앞에는 궁중전화가 2대 있는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막상 사용하려고 수화기를 들어보면 이 전화기가 무용지물임을 금새 알 수 있다.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 공중전화를 보면서 이 곳이 신교대(신병교육대)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주변의 소나무와 메마를 가지만 높이 솟은 이름 모를 나무 꼭대기에는 까치집이 많이 모이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포악한 까치떼들이 울어대는 이 곳, 여기에서 오늘 각개 전투 훈련을 받게 된다.

잘 모르지만 각개 전투란 10명이 한 분대가 되어 가상의 고지 (높은 봉우리)를 탈환하기 위해 개인 전투력 향상에 필요한 포복과 장애물 통과등을 훈련하는 것이다.

이 곳 32사단에는 여기저기 둘러싼 산 언덕에 흰색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 '백룡 신교대'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전투 교육장으로 가는 길에서 자세히 보니 흰 돌들을 모아 언덕 전체에 글자 형태로 배열해 놓은 것이었다. 작은 묘목 하나에도 관리자 명찰을 붙이는 세세함과 신병들의 우렁찬 구호소리가 끊이지 않는 생기가 넘치는 부대를 지나 건너편 산자락에 올라가니 각개 전투장이 있었다.

우린 각개 전투에 필요한 포복을 배우기 전에 '위장 크림'으로 안면부(얼굴) 위장을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위장이란 적이 자신의 얼굴을 쉽게 알아채지 못하도록 군복이나 주변 경치와 비슷한 색으로 얼굴에 채색하는 것이다. 위장 크림은 검정색, 짙은 녹색, 갈색의 세 종류이다. 마치 마사지 크림처럼 손으로 찍어 얼굴에 바르면 된다. 전시에는 이런 크림을 쉽게 구할 수 없기에 종이를 태운 재나 먹지를 사용해서 위장하기도 한다. (이건 군사 보안 사항이 아니겠지......)

포복을 배운다기에 우리 내무반은 미리 무릎과 팔꿈치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대를 준비하고 그걸 내복 위에다 착용했다. 하지만 높은 포복시에 작은 돌멩이가 오른쪽 무릎에 깔리는 바람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고 지금도 절룩거리고 있다. 만약 무릎 보호대 없이 이런 자갈이 깔린 산등성이를 포복 (팔꿈치와 무릎으로 전진) 했다면 아마 무릎이나  팔꿈치가 다 상처 입었을 것 같다.

우리가 배운 것은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약진이다. 오전내내 산비탈을 기면서 현역으로 군대가서 각종 훈련을 다 소화해 낸 사람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중에는 35살이 된 사람도 있기에 조교나 교관이 봐 주면서 훈련을 진행하지만 20대 초반에 신교대에 들어온 장정이라면 우리가 받은 교육내용에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훈련을 받을 테니 군대 다녀온 영훈이(남동생) 생각이 자꾸 나면서 더  잘 해 줘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오후에는 황토가루를 씹으면서 (입에 자꾸 들어오니까) 누런 흙더미가 된 전투복을 입고 300고지 점령을 위한 각개 전투 실습에 들어갔다. 철조망, 지뢰밭, 외나무 다리, 탄흔지, 교통로 등지에서 적의 총탄을 피해 고지의 정상까지 분대장의 지휘아래 올라가는 법을 익히며 구르고 기고 달렸다. (군대 갔다온 사람은 알겠지....)

우리야 한번 해 보는 정도지만 실제 신교대에서 교육 받았던 현역 장정들은 3일 동안 각개 전투를 한다고 하니...... 그 노고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쨋든 파김치가 되어 위장한 얼굴로 막사에 내려올 때는 모든 훈련을 다 받은 것 같은 피로에 젖어 걸음을 떼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저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될 뿐이다.

                                                                                                                                 (병영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