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일기(쉽지 않은 군인의 길....)

 3월 15일 목요일 (#20)

오전학과는 '참모업무'란 과목이었고 3,4교시에는 대한 의사협회, 병원 협회 등지에서 위문단이 찾아왔다. 이제까지 의무사관(군의관) 후보생 교육과정 현장을 의협에서 방문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데 아마도 작년 의권쟁취 투쟁 과정에서 전공의와 공보의의 입지가 의협 내에서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전투복을 입은 어제의 전공의 4년차들이 연병장 스탠드 한쪽을 메우고 앉은 봄볕 따가운 한 낮...... 의료사태의 선봉에 섰던 김재정 의협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 하는 걸 보면서 작년 경희대, 연세대, 보라매 공원 집회등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던 지난 시절이 생각나 바람처럼 흘러가는 세월을 느끼게끔 만든다.

점심시간에는 이 방문객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배식받은 뒤 여섯명 단위로 식사하고...... 다시 줄을 기다려 식판을 씻는 건 치열한 과정이다. 난 식사하면서 '저 분들이 식판을 어떻게 씻으려나?' 궁금한 맘이 들었다. 아마도 다른 장교가 씻든지 사병이 씻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방문객중 흰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 급히 식사를 마치고 식판을 들고 식기 세척장으로 가는게 보였다.

'물밀듯이 내려오는 후보생들 틈 속에서 식판을 잘 씻을 수 있을까?'

마침 나도 식사를 마치게 되어 함께 "감사히 먹었습니다"를 크게 외치고 식판을 물에 한번 담궜다가 식기 세척대에 줄을 섰다. 그 때 아까 본 그 외부인사가 식판을 들고 어느 줄에 서야할 지 난감해 하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밀려드는 식판을 든 후보생들 틈 속에서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때 난 다가가서 내가 식판을 씻어 주겠다고 말하면서 식판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하며 식판을 건네주는 그 분께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2개의 식판과 수저를 들고 세척대 줄에 다시 합류했다.

식가를 씻으면서 한번에 2개의 식판을 씻는다고 투덜대는 듯한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졌지만 누군가의 난처함을 덜어 주었다는 뿌듯함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삶 속에서 파랗게 돋아남을 느꼈다.

 

3월 16일 금요일 (#21)

해 저무는 자운대의 전경을 보며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지나면 여기 들어온 지 딱 3주가 된다.

점심시간에 선화와 통화했는데 오전에 자동차 도로 연수를 통과해서 운전 면허증을 획득했다고 알려왔다. 선화는 1년전 연습 면허증을 받았지만 의약분업 사태, 출산, 남편 뒷바라지 한다고 마지막 과정인 도로 연수를 봇 받았었는데 이제 잠시 헤어져 있는 동안 뭔가 뜻 깊은 일을 하게 되어 나도 기뻤다.

오후에는 연대장 (중령)이 지난 3주동안 우리가 받았던 제식 훈련, 총검술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교육사열을 실시했다. 지난 3일동안 이 행사 때문에 학과 출장때마다 영내를 빙 돌면서 줄 맞춰 걷는 걸 연습했는데 팔꿈치를 펴서 앞 사람 머리까지 손을 올리고 힘있게 걷다보니 오른쪽 어깨사 뻐근해 질 정도이다. 흙먼지 날리는 연병장에서 구령에 맞춰 오와 열을 확인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나도 대한민국 군인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군의학교에서의 3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공주의 32 사단으로 옮겨 2주간의 유격훈련을 받게 된다. 그 후 다시 이곳에서 마지막 3주를 보내게 되지만 32사단의 훈련이 마치는 5주말이 되면 외박을 매주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제 곧 가게 될 32 사단에서의 훈련이 마지막 고비가 되는 셈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도수제식훈련, 집총제식훈련, 총검술을 익혔고 학과수업으로는 규정 및 방침, 지휘통솔, 참모업무, 동원업무, 군사보안, 독도법, 예방의학, 환자후송, 의무부대, 적전술, (의무군수관리, 원무행정, 국제 인도법)을 배었다. (괄호 안은 배울 예정임)

비록 임관후 현역으로 근무할 건 아니지만 군의관으로서의 소양을 갖추어서 대한민국 대위로 임관하는 과정을 거치기에 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지금까지 받은 고생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3주를 보내고 보니 정말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라는 말이 실감나면서 이제는 희망을 더 크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3월 17일 토요일 (#22)

군의학교에서 훈련받으면서 많은 장교들을 대하게 되었고 이전엔 잘 몰랐던 '그들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장교는 단기복무장교와 장기복무장교로 나뉘는데 장기는 의무복무기간이 10년이고 단기는 3-6년이며 이 시간이 다 차면 계속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각 계급마다 정년이 정해져 있고 정년이 될 때까지 진급하지 못하면 전역해야 하는데 대위의 경우 43세가 계급 정년이다.

장기복무장교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출신들이 해당되고 단기 장교들이 장기 근무를 지원할 경우 심사해서 장기 장교로 근무하게 되는데 요즘은 국방부의 구조 조정으로 장기 근무를 원하더라도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하고 쉽지 않다고 한다.

단기복무장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인되는데 3사관학교 (의무복무기간이 6년), ROTC(학군단, 의무복무 2년 4개월), 간호사관학교(의무복무 6년), 대졸자로서 시험을 보고 우리와 같은 사관후보생 과정을 거쳐 임관되는 학사장교(3년), 임용장교에 해당되는 법무(3년), 군의 (3년 3개월), 군종(3년 3개월) 장교가 모두 단기 장교이다.단기 장교들은 장기를 지워해서 군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려 하지만 진급이 쉽지 않고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요즘은 병사도 상병 이상이고 본인 생각에 군생활이 적성에 맞다고 판단되면 지원해서 소정의 과정을 거쳐 장교로 임관될 수 있다.

장교가 되면 처음 다는 계급이 소위이다. 소위를 단 뒤 1년이 지나면 중위가 되고 다시 2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경우 대위 계급장을 단다. 우리같은 의무사관후보생의 경우 나이나 사회경력을 고려해 바로 대위 계급장을 달게 되는데 이것은 형평성에 맞은 조치인 셈이다.

대위를 달고 7년이 지나면 소령으로의 첫 진급 심사를 받게 되는데 소령으로의 진급은 30-40%밖에 안되고 병과에 따른 차이가 있으며(보병병과인 경우 진급이 어렵고, 지원이 별로 없는 군의 병과의 경우는 최소 대령까지는 순조롭다고 한다) 진급심사 기준에는 근무평가, 교육성적, 표창 유무등이 포함되고 객관적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것은 장교들도 자신의 병과에 대한 교육 및 진급을 위한 능력확보를 위해 많은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소위나 중위때는 초급군사반(초군단), 대위는 고급군사반(고군반)에서 교육을 받으며 이 성적이 진급에 영향을 미친다. 영관급(소령, 중령.....) 장교가 되면 육해공군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야하고 대령이상은 국방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아야한다. 이런 교육과정에서의 성적이 진급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6개월 과정의 육해공군 대학교육을 받을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어느 직업이나 쉬운 일이 없지만 엄격한 규정과 방침 속에 조직을 우선시하는 군인들의 세계는 내 눈에 비치기에 힘든 가시밭길처럼 보인다.

                                                                                                                               (병영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