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일기 (내심 기다리던 편지....)

 3월 12일 월요일 (#17)

'육군 체력 기준'이란 것이 있다. 1500m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팔 굽혀펴기의 3종목이 측정되고 1500m의 합격판정은 7분 30초 내에 들어와야 한다. 3년차 10월에 결혼해서 체중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4년차 내내 책상에 앉아 있었으며 올해 1월 시험 전 보름동안 서울생활 하면서 무거워진 몸을 갖게 된 나로선 과거의 경력만 믿고 '그것 쯤이야!'라고 무시할 형편이 못된다.

여기와서 1주 전부터 매일 영내를 1바퀴씩 돌고 있지만 속도를 조금만 내면 숨이 찬다. (한 바퀴는 700M) 두바퀴에다 100M를 더 뛰어야 하는데..... 오늘도 다시 뛰어본다. 첫바퀴를 전력 질주한다. 500M를 지나면서부터 몸에 무리가 왔고 두바퀴째는 겨우겨우 뛰어서 2바퀴 (1.4km)를 7분에 겨우 통과했다. 이럴수가....... 이전보다 무거워진 몸은 이전부터 누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달리기로 측정하는 분야에서 고전하긴 처음이다. 달리고 난  후,  쏟아지는 땀을 흘리며....... 3층 샤워실에 살짝 가서 더운 물 샤워를 한다. (샤워실 출입 금지지만)

하나님은 원래 내게 빠른 발과 날렵한 몸을 주셨지만 이것을 잘 관리하지 못한 건 내 책임이다. 어느 목사님은 크리스챤은 어떤 식으로라도 매일 땀을 츨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은 땀을 흐리며 땅을 갈아야 하는 벌을 받았기에 문자 그대로 땀을 매일 흘려야 한다고 얘기 하신다. 여기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매일 땀을 흘린다는 건 어떻게 보면 축복받는 일인 것 같다. 여길 나가더라도 앞으로 매일 땀을 흘 리는 육체적 활동을 하고 샤워를 한 뒤 말씀보는 생활이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3월 13일 화요일 (#18)

이 곳 군의학교에서 760명에 달하는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면서 23만원이라는 급여까지 주는 이유는 단한마디로 유사시에 의무 중대장으로 투입시켜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예비역 대위를 양성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8주후 임관된 뒤 예비역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궁중보건의사나 국제협력의사로 일하는 것에 관해선 이곳 군의학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장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목들을 이수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더 큰 관심사일뿐........

오전에는 군인이 되기 위한 관문인 집총제식훈련 (총을 가지고 취하는 여러 자세와 경례에 관한 훈련)평가가 있었고 오후에는 '동원업무', '규정 및 방침'에 대한 학과 수업이 있었다.

'동원업무'를 통해 유사시에 어떤 절차를 거쳐 국군의 숫자를 늘이고 전쟁에 사용될 물자와 인력을 동원할 것인지를 상세히 알 수 있었는데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용어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무반에서는 5천원씩 모아 기금을 조상하고 농구공를 PX에서 구입했다. 저녁식사후 요즘은 내무반원들과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면서 비지땀을 흘리는데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도 꽤 오랜 전이다 싶어 기쁜 맘으로 뛰고 있다.

내무생활을 하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있다. 저녁 8시가 되면 행정담당 후보생이 4소대로 배달된 편지를 가지고 들어오는데 이 시간이 되면 모두가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길 기대한다.  누구든지 이름이 불리고 편지가 전해지기만 하면 내무반원 전체가 부러운 눈빛과 함께 함성을 지르게 되고 저마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되는 우스운 시간이다.

나 역시 전에는 이렇게까지 편지를 기다린 적이 없었는데 여기와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을 길게 빼고 혹시 내 이름이 있는지 기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왜 편지가 안 오죠?"라고 물으면 "아-예. 제가 답장하지 말라고 적어 보냈어요...."하고 이야기 한다. 사실이니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은 여전하다.

그런데, 오늘 내 이름이 불리워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 보니 내무반에 전달된 편지 하나의 겉봉에는 '이선화'란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고 순간 내 맘은 벅찬 감격에 잠겼다.

편지를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하고...... 옆에 있는 동료들이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저것 봐...... 좋아 어쩔 줄 모르네....."하면서 몰려 들었다. 편지는 다른 동료들의 손에도 넘어가 편지 속에 나온 선화의 체중이나 말투가 내무반의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나이가 되었다.

편지 속에는 선화의 생활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가족들 소식, 자동차 연수, 스페인/영어 공부, 협력의사 준비 상황, 병원 퇴직금, 홈페이지, 형민이, 교회  얘기들이 빠짐없이 적혀있어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화야..... 고마워. 난 뛰어난 참모를 가지고 있어 군대에 와도 걱정이 없단다.

 

3월 14일 수요일 (#19)

지난 주말, 전화가 허용되면서부터 저녁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선화에게 전화하기 위해 공중 전화앞에 줄을 선다. 매일 선화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니 마음도 안정되고 힘든 일도 참을 수 있게 해 주는 원군이 생긴 것 같아 생활하기 나아졌지만, 한편으론 빨리 부산으로 가고 싶은 맘이 더욱 간절해진다.

저녁즈음 훈육장교가 날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훈육장교실로 노크한 뒤 들어갔다.                                                                         

"충성, 사관후보생 이성훈, 4훈육 장교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훈육장교 책상위에는 커다란 소포 하나가 놓여 있었고 내 이름과 선화 이름이 겉표지에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군의학교에서는 후보생들의 물품을 규제하고 있다. 밖에서는 어떤 물건도 반입이 허용 안되고 적발되는 경우 경위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단 소포가 배달되면 훈육장교가 보는 앞에서 풀어서 허락되는 물건만 가져가게 하고 책같이 규제 대상인 물품은 따로 보관하게 된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훈육장교 앞에서 소포를 뜯어보았다. 포장지를 예쁘게 뜯을 경황도 없어서 그냥 포장지를 쭉쭉 찢었다.

소포안에는 선화가 정성스레 보내온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1. 밀크로숀, 립크림, 연고, 일반 반창고

2. 쿠키(파리 바게뜨)

3. 홈페이지 방명록 프린트물, 베트남 협력의사인 원혁이 형에게서 온 메일 출력물

4. 책 <여호와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2.>

이 중 책을 뺀 나머지 물건들은 고스란히 받을 수 있었다. 로숀을 가져오지 않아 다른 사람 것을 빌려 쓰고 지냈는데...... 이젠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겠고, 쿠키는 내무반원들과 나눠  먹으며 인심을 얻을 수 있었다. 홈페이지 방명록 프린트물도 요즘 선화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원혁이 형에게서 온 메일의 경우는 앞으로 과테말라에 이사하는 일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글이라 다른 협력의사들도 보여 달라고 하길래 빌려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포의 내용물 못지 않게 내 맘을 애틋하게 만든 건 소포 안에 들어있는 선화의 메모였다.

   <이 소포를 검열하시는 분께---

   이것들은 의무사관 후보생 이성훈씨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로숀, 립크림 등 몇가지와 책 한권이거든요. 꼭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그 곳에서 다 조달이 가능하고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보내는 제 마음을 읽어주셔서 전달되도록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2001. 3. 9 이성훈의 아내.....>

이 글귀를 보면서 선화의 세세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고 잠시 행복감에 빠져들 수 있었다. 군대라는 낯선 곳에서 느껴본 선화..... 남자는 여자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끔 만든다.

취침시간은 10시다. 이번주 금요일에 있을 첫 번째 필기 평가를 앞두고 취침시간 후 자습할 사람을 위해 자습실을 개방한다고 한다. 나처럼 국제협력의사로 가는 사람은 이곳 군의학교에서 받는 성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공중보건의사로 가는 다른 대부분의 후보생들은 이 시험의 성적이 자신이 어느 시, 도에 배치되는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두들 자신의 연고지와 가까운 지역에 배치되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애를 쓴다. 같은 시, 도에서도 어느 지역의 보건소에 가는 지를 결정하는 시험은 나중 7주차에 볼 보건보지부에서 시행하는 시험인데 국제협력의사로 가는 난 아예 그 시험은 보질 않는다.

하지만 취침시간 후 나도 자습실에 앉아 있다.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화에게 편지를 쓰려고 형광등이 환하게 밝혀진 이 곳에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글을 쓰고 있다.

                                                                                                                            (병영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