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일기(반가운 목소리들.....)

 3월 9일 금요일 (#14)

군대와서 딱 2주가 되는 날..... 2주간 군대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군대 생활이 힘드는 까닭을 차차 알게 되었다. 군대 들어오기 전 우리가 받았던 교육은 각자의 창의성을 계발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개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속에서 30년을 살아오다 이곳에서 마주친 세상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 곳은 집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개인의 다양성은 가능한 한 억제되어야 하고, 집단만이 기능한는 이 곳에서 개인은 단지 집든을 이루는 구성원일 뿐이다. 개인적인 자유가 집단의 목적을 위해 사라져야 하기에 소위 군인화  과정이라 일컫는 1-6주까지의 기간동안 우린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같은 노래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면서  줄을 맞춰 걷고 '차려'를 반복하는 제식훈련을 받고, 많은 규정과 방침으로 엄격하게 통제받고 있다. 이 곳에서의 생활은 머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아니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은 금지되어 있는 피동적인 공간으로 와 닿는다.

며칠전부터 자유시간에 저녁 조깅이 허용되어졌지만 누구든지 자유롭게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훈육장교의 지도를 받아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줄 지어 뛰어야만 한다. 4층에 있는 샤워실은 수압이 약해 세면장의 온수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사용이 금지 되어 졌다가 우리의 반발로 냉수만 사용하는 전제로 개방했는데 언뜻 생각하기로 3층과 4층이 시간을 나누어 사용하면 4층 샤워실을 폐쇄 안해도 되는데....... 건의해 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주 군인화 단계에선 내무반에서 누워서도 안되고, TV는 없고, 소포를 통한 책의 반입은 금지된다. 식사 후 한 소대가 다 모여야 막사로 줄지어 이동하고, 다 먹고 난 식판을 씻으려면 5-6명이 추위에 떨며 서 있어야 하는 곳..... 효율성을 위해 책임이 동반되는 창의성이 보장되는 바깥 세상과는 확실히 분리 된 곳...... 이 곳에 내가 와 있다.

내일은 3주차가 되는 날..... 규정에는 2주말부터 전화가 허용된다. 저녁즈음 670명이 모여 있는 이 곳에 공중 전화기가 층마다 2대씩 새로 설치되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을 다투어 전화기 앞에 줄을 지어 선다. 나도 줄 끝으로 가서 지난 2주동안 듣지 못한 음성을 그리며 20분의 기다림을 수월하게 참았다. 열흘 전이던가..... 몰래 공중전화를 시도했지만 선화 핸드폰과 학장동 집에는 전화받는 이가  없어 아쉬운 마음을 접어야 했었는데.....

마침내.... 차례가 되었을 때 큰 기댈르 가지고 선화 핸드폰으로 연락했다. 그런데...... 또 신호음은 가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의 기색을 감추며 다시 학장동으로 전화해 보지만 역시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뒤에는 많은 사람이 길 게 줄 지어 서 있는데.....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계신 부민동으로 전화 해 보았다. 신호음이 가고....

"여보세요." 약간 기운이 없어 보이는 친근한 음성. 바로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셨다. 2주만에 듣는 어머니의 음성에 긴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성훈이예요."

"그래..... 성훈이가..... 거기 어디고?"

"군대요....." 난 뭔가 복 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얘기 했다.

"그래....... 아주 가깝게 들리는구나."

"예..... 그런데 선화가 전화를 안 받네요."

"그래..... 오늘 자동차 주행 연습한다고  나갔는데....... 안 들어오는구나."

"그래요? 핸드폰 켜 놓으라고 전해 주세요. 전화한다고.....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마세요..... 여기 줄이 길게 서 있거든요..... 또 연락할께요."

철컥...... 수화기를 내리고 급히 전화카드를 뽑아 내무반으로 들어와서야 제 정신이 들었다. 너무 짧은 통화였고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집안에 별 일은 없는지....... 선화는 요즘 어디서 자는지..... 형미이는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 꼬리를 물로 떠 오르는데, 기껏해야 30초도 안 되었을 전화통화가 원망스러워졌다.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나니 맘이 약해지고 집이 그립고 선화와 통화하지 못한게 섭섭했다.

20분 뒤..... 난 다시 공중전화 앞에 늘어서 있는 줄 끝자락에 서 있다. 어머니와 다시 통화해서 궁금한 몇가지도 묻고 이곳 생활도 얘기해 드리고 싶은 맘이 날 다시 줄서게 만들었다.  

다시 30분 뒤....... 두 사람만 남겨 둔 차례인데...... 낯선 장교가 나타나 소리를 지른다.

"누가 맘대로 전화 사용하라고 했나? 누가 그런 지시를 내렸나? 다른 훈육대 후보생들이 1 훈육대만 전화 사용한다고 불평이 대단한데 알고나 있나?..........."

우린 전화기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내일부터 사용을 허가한다니...... 또 참아야 한다. '이제껏 2주 동안 참아 왔는데 하루쯤이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는 너무 길게 느껴질 것만 같다.

 

3월 10일 토요일 (#15)

오전 학과는 '군사보안'과 '참모업무'였다. 오랜만에 봄 같은 날씨가 찾아와 주말을 맞는 교육생들의 마음도 여유가 생기는 듯 하다. 무엇보다 오늘부터 매점(PX)출입과 공중전화 사용이 가능해져 그 동안 가해졌던 철저한 통제를 어느정도 피할 수 있게 된 점이 기쁘다.

점심식사를 마치자 말자 막사로 들어와 다시 공중전화기 앞에 줄을 섰다. '혹시 오늘도 선화와 통화를 못하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세 번째 시도를 하기로 했다.

어제 설치한 전화기 2대중 1대가 벌써 고장이 나 전화기 하나에 십여명이 넘는 줄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다시 선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호음이 5번이나 들려도 받지 않는다. '그냥 끊고 다시 본가로 전화를 해 볼까?....'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 때 "여보세요?" 드고 싶은 음성이 들렸다. 선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내 귀에 들릴 때........ 그렇게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음성이 들릴 때....... 뭔가 그 동안 오래 막혀 있던 것이 시원하게 열리는 느낌과 함께 시간이 멎는 것 같았다.

"선화야......." 그렇게 불러 보고 싶은 이름이었는데..... 이제야 불러 보았다.

"오빠......" 수화기 너머로 차마 말을 잊니 못하는 선화의 목소리가  흐느끼며 말 끝을 흐릴 때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오빠, 그동안 연락이 잘 안 되었죠?"

"그래........ 요즘 어디서 지내니?"

"예.... 월요일부터 수요일 예배전까지는 개금(친정)에서 보내고 목요일부터 주일까지는 시댁에 와 있어요....."

"그렇구나.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나도 전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빠 없이도 자동차 학원 다닌다면서......"

"예, 오빠......" 선화는 또 말 끝을 흐린다.

"그래, 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 또 같이 살자...... 조금만 기다려라..... 전화기에 줄이 많이 서 있어서...... 또 연락할께......."

"예, 오빠....."

계속 흐느끼는 선화를 위로하면서 차마 수화기를 들고 있을 수 없어 지체없이 전화를 끊고 나왔다. 부부는 헤어져 지내는 것이 큰 고통이다. 이후에는 다신 안 헤어지리라.......

선화와 결혼을 전제로 다시 만나기 시작한 게 1998년 5월 8일....... 그때부터 단 이틀도 서로의 음성을 듣지 않고 지나간 적은 없었는데..... 평생 기억할 만한 고통스런 값진 경험을 나누고 있다. 그렇게 떨어져 있으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우리 앞에 다가 오더라도 둘이 함께 있다면 능히 뚫고 나갈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선다.

 

3월 11일 주일 (#16)

오늘같은 휴일은 7시 기상이니 9시간이나 자는 셈이다. 두바퀴 구보를 실시하고 아침을 먹은 뒤 종교행사에 참여하려고 사열대 앞에 정렬한 뒤 지난 주 처럼 씩씩하게 교회로 향한다.

예배시간에 특송을 하려다가 다른 후보생 중에서도 하고픈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양보하는 마음으로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나중에 특송자들을 보니 지난 주에 나갔던 멤버들 그대로였다. 다음 주에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 믿음교회(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교단 월간지인 '월간 고신'3월호를 발견하고 이 교회가 예장(고신) 소속인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의 성함을 보고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희택 목사님'(소령, 고신 군종 목사단장)  이 분은 '월간 고신'에 <군화신고 달려온 복음의 길 20년>을 연재하고 있는 글의 주인공이다. 설교 본문은 야고보서였지만 주된 내용은 주어진 바로 오늘!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리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일로 미루고 다음에 잘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자신의 신앙 경험을 웅변하는 말씀이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내무반은 8명이 양쪽에 배치되어 마주 보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1평도 안 되는 공간에 관물대(물건을 진열해 두는 곳)에 군화, 군복, 내복, 수건을 가지런하게 정렬해야 하고 모든 옷의 끝선이 일직선으로 일치해야 한다. 2개의 서랍 안에는 세면도구와 함께 양말, 내의가 똑같은 모습으로 동그랗게 말아 보관되어야 한다.

세면대에서 내의와 양말을 빨아 빨래줄이나 라디에이터에 올려 말려 입는데 학과 시간이나 점호시간에는 내무반에 빨래를 널어 놓지 못하게 한다. 밤새도록 라디에이터가 돌아가기 때문에....... 자고 나면 목이 따갑고 입이 말라 있을 정도로 건조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어 자기 전에 늘 내무반 바닥에 흥건하도록 물을 뿌리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바짝 마른 바닥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교육생들이 감기에 걸려 기침하고 목이 붓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고 현국이도 인두가 부어 힘들어 한다.

내 자리는 8명중 가장 안쪽인 창가이다. 지금도 왼쪽으로 창문을 열어둔 채 어두워지는 산 위 하늘에 무지개 빛의 석양이 드리워지는 걸 본다.

"임 선생님, 저것 좀 보세요...... 너무 예쁘죠? 정말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보이죠?"  옆의 사람에게 이야기 해 본다.

별이 반짝이는 초저녁 하늘 빛은 산 위로는 옅은 코발트 빛이다가 천구의 꼭대기에는 짙은 남색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색이다. 어둑어둑한 바깥에는 여기저기 창마다 비치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늘 하루도 끝이 남을 알리는 어둠은 동료들의 웃음소리가 시끌법석한 내무반 밖으로 서서히 내려 앉는다.

이 곳에 온 지 3주째가 시작되는 주일...... 이제 7일 동안 이 곳에서 생활하고 그 후 2주는 공주 32 사단에 훈련받기 위해 떠나게 된다. 이 곳에서 7일도 빨리 지나고 어서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고 싶다.

                                                                                                                            (병영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