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일기-뜻 밖의 만남, 뜻 밖의 은혜

 3월 4일 주일 (#9)

창밖으로 맞이한 세상은 흰눈이 흩날 리는 이른 아침이다. 밖에서 점호를 취하기엔 너무 춥고 눈보라가 심해 실내에서 아침 점호를 실시하면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대전 군의학교에 들어와 처음 가게 되는 주일 예배...... 내 마음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늘 그렇듯이 낯선 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새로움으로 다기온다. 광야를 행진하며 늘 다른 곳에서 단을 쌓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눈보라가 치는 속소옆 공터, 1.2.3.4 훈육대를 합쳐 150명 가량이 교회로 가기 위해 줄을 섰고 훈육장교의 구령에 맏춰 교회로 뛰어간다. (우린 모두 670명) 눈을 뜨기도 힘드는 눈 바람 속에서 교회로 달려가는 군인들의 모습.....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교회는 군의학교 뒷편에 붙어 있는 국군 대전병원 정문에 위치하고 있어 제법 먼 거리였고 우린 숨을 거칠 게 내 쉬며 교회 앞에 정렬했다. 파란 지붕에 빨간 벽돌- 삼각형의 지붕을 가진 그림책에 나올 법한 깨끗하고 아담한 교회였다. 간판에는 '믿음 교회'라고 씌여있다.

모자를 벗어들고 긴 교회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 소령계급장을 단 2 훈육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특송할 사람 없나? 10명 정도 필요한데..... 자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라!"

마치 누구에게 끌려나가듯 그 말을 듣자말자 난 앞으로 나갔다. 모두 8명이 각 훈육대에서 나섰고 우린 예배가 막 시작되려는 교회 앞 마당에 모여 특송할 곡을 급히 정해야 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492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이 정해졌고 난 성가대에서 늘 하던대로 테너파트를 맡았다. 딱 2번 부른 뒤 이미 목사님의 기도가 시작된 교회당으로 살며시 들어가 한 쪽에 붙어 앞으로 가서 성가대 석에 앉았다.

낯선 교회에 앉아, 그것도 성가대석에서 예배드리는 기쁨은 실로 크다. 찬송 하나 하나에 실리는 형제들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지난 주일 예배도 못드린 우리들의 지친 영혼은 이미 은혜의 강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 교회 목사님은 '김신원'목사님...... 소령 계급이었다. 아마 군목도 계급이 부여되는 모양이다. 젊은 분이신데 여기 오신지 2-3주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특이한 것은 목사님은 찬송을 부르실 때 보통 사회자처럼 회중을 향해 보고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뒤 돌아서서 회중과 같은 방향으로 앞을 본 채 찬송하신다는 점이다. 앞에 계신 누군가를 향해 서서 찬송하는 듯한 목사님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니 내 맘은 더욱 뜨거워졌다.

기도시간이 되었다. 목사님은 누군가 대표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나와 함께 성가대석에 앉은 8명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고 그 분의 인도로 함께 기도했다.

특송 시간이 되었다. 8명은 회중 앞에 섰고 우린 차분하게 불렀다. 급히 불러보고 나온데다가 병영 생활동안 함성지르고 구령 붙이다 보니 매끈한 소리가 잘 안 나오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보좌 앞으로 가 있었다.

성경본문은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였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강력하고 도전적인 말씀을 선포하셨다. 맺어야 할 열매와 우리가 깨끗해야 할 이유에 대해 외치셨다.

나는 예수님을 만난 뒤로 눈물 많은 사람이 되었나 보다. 목사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은 내 마음밭에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고, 나의 안일함, 용기없음, 우유부단함에 대한 가슴 아픈 눈물이 두 눈에 맺혀 옆 사람과 인사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황급하게 눈물을 감추기에 바빴다.

예배 마치고 나올 때 교회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장병들에게 군번 줄에 매달 수 있는 철로 된 십자가를 선물로 주셨다. 선화 것도 챙겨 나오면서 군의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후에는 '아! 민주지산'이라는 국군 홍보영화를 보았는데 지난 1998년 4월 1일 특전대원들이 충청도에 있는 민주지산 (산 이름)을 오르다 갑작스런 비와 눈, 영하 30도의 강추위로 인해 6명이 사망했던 사건을 재구성한 내용이었다. 글쎄.... 이 죽음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내무반에 온 우리들은 군인정신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3월 5일 월요일 (#10)

학과 수업은 '정신 교육', '동원 업무'...... 동원 업무란 군대가 평시 체제에서 전시 체제로 편제를 바꾸는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 이제껏 몰랐던 대한민국의 군대 체제와 사단의 이름, 숫자가 붙어 있는 사단의 위치나 역할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국가 기밀이라 자세히 적을 수 없어 유감이다.)

요즘은 간식도 많이 나오는데 오늘은 오렌지 쥬스, 스콜(과즙음료), 월드콘, 빵(크라운 베이커리)이 나온다. 정말 살 빼는 건 힘들어 보인다.

여기선 식사시간에 모자를 식탁 밑에 벗어 두는데 식사후 모자를 깜빡 잊고 나온게 3번, 세면장에 수건을 도고 온 게 2번, 칫솔을 잃어버린게 1번이다. 물건을 잘 잃어 버리는 습성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저녁에는 월급이 들어 올 통장을 받았다. 군에서 만든 국민은행 통장..... 2월달의 4일분 급여와 3월분 급여, 그리고 보너스를 합쳐 23만 5천원이 3월 10일에 입금된다고 한다. 군대에 들어올 때는 무일푼으로 왔는데 군을 나갈 때는 돈을 받고 나간다. 그래도 이 돈 안 받고 훈련 안 받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3월 6일 화요일 (#11)

오전에는 총검술 배운다고 4시간 동안 세찬 바람을 맞으며 떨었고 오후 정신교육 시간에는 '내 인생의 설계도'라는 제목으로 한 사람씩 나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내용은 따로 정리해서 올립니다.)

이곳에선 종교행사가 주일날과 화요일에 열리는데 아마도 수요일은 기존 교인들 중심으로 예배드리기 때문에 군인들을 위한 예배는 화요일로 택한 것 같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 질 즈음, 100여명이 교회로 출발했다.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어둠을 뚫은 지 몇분이나 되었을까..... 불 밝히고 있는 교회당으로 줄 지어 들어갔다.

야...... 교회당 앞에는 여러 형제, 자매들이 보이고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이 설치되고 있고, 인도하는 형제와 율동하는 자매들이 찬양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여기서 형제들이라 함은 군의학교와 국군 대전병원에 입원한 병사들을 말하고 자매들이란 간호사관학교 학생들이다.

"나의 모습 나의 소유........"로 시작된 찬양은 열흘동안 가스펠송을 불러보지 못한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드럼주자의 연주도 수준급이었고 갓 20-21살이 되어 보이는 자매들의 깜찍한(?)율동은 30대 아저씨인 우리들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흰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관학교 학생들과 전투복을 입은 병사들의 어울림 속에 우리의 찬양은 30분간 이어졌다. 원택이가 말한다.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율동하는 자매는 비슷하게 생겼던 말이야..... 얼굴도 동그스름하고....."

예배는 한 자매의 인도로 시작되었다. 마치 고등학생같이 들리는 목소리로 '예배로의 부름'에 해당하는 성경구절이 낭독되면서 예배 속으로 들어간다. 또 다른 자매의 대표기도가 있었고 한 자매의 독창이 있었다. 그 때 목사님의 갑작스런 소개가 이어졌다.

"국제협력의사로 가게 되는 선생님들이 이 곳에서 훈련 받고 계시는 줄로 아는데 이 시간에 그 분들의 소개와 함께 특송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우리 이야기를 했나보다.

'이럴 수가....... 군대에 와서 열흘 동안 특송을 두 번이나 하게 되다니.......'

어쨌든 꽉 들어찬 교회당 앞에서 이 곳에서 훈련받는 8명의 국제협력의사 중 7명이 나와 특송을 했다. 1명은 크리스챤이지만 소대장이라 화요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원래 협력의사는 10명인데 다른 2명은 경북 영천에서 훈련받는다. 아마 한의사는 아직 군의관으로 임관 안되기에 이 곳 군의 학교에서 훈련받지 못하는 것 같다.

어쨌든 협력의사 10명이 모두 크리스챤..... 어쩌다가보니 외교통상부에서 보내는 계약직 공무원인 협력의사는 젊은 크리스챤의 단기 선교 활동을 바뀐 셈이다. 지난 7년간의 협력의사 대부분은 크리스챤이고 의료인 커플이다.

특송을 하고 예배를 드린 뒤 막사로 돌아가려고 교회당으로 나갔는데 목사님의 부탁으로 다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 그곳 찬양팀과 'E-코드'로 계속되는, 율동을 가미한 즐거운 찬양으로 교제할 수 있었다.

글쎄........ 군대에 와서 이렇게 교회에서 2시간 동안 예배드리고 찬양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또 다른 기도제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의 군내 비젼과 그 성취를 위해, 대전 자운대 내에 있는 믿음 교회의 역할과 이 곳에 모이는 아픈 병사, 성도들, 목사님을 위해.........

이 곳에서 훈련받는 동안........뜻 밖의 만남과 모임들로 인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세세한 인도하심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지기에.......막사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병영 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