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전야(前夜)

밖에는 비가 많이 옵니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밖에서 크게 천둥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겨울인데도 대지가 많이 목말랐나 봅니다. 며칠 전 눈을 실컷 보고 돌아왔지만 그래도 비가 오는 게 좋습니다. 비가 와야 내 맘도 젖는 것 같습니다.

그저 그 날이 오면 가겠거니...생각하던 입영 날짜(8주 군사훈련)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형민이와 놀고...선화와 친척집을 방문하고...할아버지 병원을 봐 드리고...그러다 보니 날짜가 덜컥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실감이 나지 않더군요. 내일부터 군인이 된다는 게 믿겨지지도 않고...내가 하던 일들을 모두 제쳐 두고...8주 동안 육체적 훈련을 받게 된다는 것이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함께 입대하게 된 원택, 익진이와 만나....원택이가 뽑아 온 예상 준비물을 사러 갔습니다.

군사훈련이 마친 뒤 저를 제외한 새벽별 동기들은 모두 예비역 장교로 편입되어 공중보건의사(공보의)로 근무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 가게 될 저도...공보의와 마찬가지로 예비역으로 편입됩니다. 현역으로 분류되면...대전 군의학교가 아닌 경북 영천의 삼사관학교에서 훈련받게 되고...바로 현역 대위로 각급 부대에 배치받게 됩니다. 어제 확인한 ARS 전화에서 제가 예비역 해군 장교로 예편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비롯 바다가 있는 부산에 살지만... 해군이라니... 다른 사병과 달리 군사훈련 후 바로 예비역으로 바뀔 것이기에 육해공군..어디로 가더라도 별 상관이 없지만 해군이라니... 의외였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아마 8주 군사 훈련 후...대위로 임관되고...몇 시간 후 바로 제대가 되는 식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공보의들은 보건복지부 소속의 공보의로 병역을 대신하고....전 외교통상부 산하의 국제협력의사로 일하게 되고.....(올 해 입대하는 의사는 만 9천명 정도입니다. 이 중 6천명 정도만이 현역으로 군대에 직접 배치되고 나머지 인원은 바로 제대가 되면서...다른 역할로 군복무를 대신하게 됩니다.)

훈련소에 들어갈 때 필요한 사항을 적은 안내서에는 불필요한 물품은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핸드폰,호출기, 음식물,카세트, 오락기구 입니다. 그냥 몸만 오라고 하더군요...그래서 그냥 바로 대전 군의학교로 가면 되겠지...생각했는데... 원택이는 많은 예상 준비물들을 적어 왔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은 거라더군요...역시 수석 전공의는 다릅니다.(원택이는 이번에 시행한 44회 치료방사선과 전문의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필요한 것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원택이 말로는 서울 남대문 등지의 이런 물건을 파는 곳들은  지금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냥 물건을 구하러 가면 "24일에 입대하시죠?" 라고 묻는 다네요....

우리들은 자갈치에서 군 관련 물품 판매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필요한 걸 준비했습니다. 저도 국방색의 내의를 2벌 준비했습니다. 날씨도 춥고..혹시 빨래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해서.........우린 부산역 지하상가에서 오천원짜리 전자 시계도 구했습니다. 훈련할 때 차고 다닐 것이기에 허름한 게 필요하다고 해서입니다. 군의학교 안에는 공중전화기가 2대 있는데...둘 다 카드식이랍니다. 그래서 우린 전화카드도 마련했습니다. 혹시나 해서요......마지막으로 부산역으로 가서 대전행 열차를 알아 보았습니다. 내일 아침 6시에 출발하는 새마을 호가 제일 좋은데...이미 좌석은 바닥나 있고....5시 반...무궁화 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5시 반 열차를 타고 떠나려면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훈련소에서는 책은 원칙적으로 반입이 안되지만 종교서적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 photoshop이나 cakewalk 등 컴퓨터 관련 서적도 가져 가려고 했는데..그건 안되겠더라구요...훈련에 전념하지 않는다고 보일 것 같고...그래서 신앙서적 몇 권만 들고 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발을 했습니다. 앞머리는 3cm...다른 곳은 바짝.... 훈련소에 들어가서 이발 하려고 하다...모임 김에 이발을 하기로 했지요....미용실에 갔는데...원택이와 제가 먼저 의자에 앉아....머리를 깎았습니다. 거울로 비쳐지는.....갓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 모양으로 바뀌어 가는 내 얼굴을 보며 쓴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우린 서로의 모습을 보며...."완전 특공대다...." "야....넌 군의관인데...잘 못 가는 거 아냐?..." 90학번으로 대학에 들어오면서 만난 친구들....이제 군 입대 전 날....머리도 함께 깎습니다.

 이발을 한 채로...본가로 갔습니다. 훈련병의 머리 차림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31살인 아들인데도...어머니는 안아 주셨습니다. "몸 건강하게 잘 다녀 오너라........."

오후 부터는 계속 비가 왔습니다. 차를 몰고 다니면서...차 정면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히고 흐르는 걸 멍하게 바라 보면서....운전을 하고...학장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머리(카락)도 깎고...국방색의 내의도 준비하고...함께 입대할 친구들과 내일 만날 것을 약속하고 나니...그냥 허전하고 섭섭해 왔습니다.

긴 인생살이에서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도 내게는 중대한 인생의 역사적 순간이기에...담담한 마음이 밀려 왔습니다. 선화는 현관문을 들어서는 절 보면서......." 흑흑흑(소리를 내며)....이제 가는 거예요?...." 라고  슬픈 입모양을 짓습니다.

선화와 함께 지내면서 최근 서로를 부르는 새로운 애칭이 생겼습니다. 선화는 제게 '잔소리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더 설명 안 해도 아시겠지요? 전...선화에게 '바가지 아줌마' 라고 하지요....그래도 애교 섞인 목소리로 서로에게 잔소리 아저씨....바가지 아줌마....라고 부르는 게 참 좋았었는데.....8주가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이제 가면 4월 21일...훈련을 마치고 바로 제대하면서 예편됩니다. 그런 뒤...바로   4월 23(월)-5.19(토)까지 4주 동안 국제협력의사 직무 교육을 받게 됩니다. 4월 23일까지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습니다. 이건 선화가 준비해 줘야 하는데...영문으로 된...각종 증명서, 이력서를 전자 우편으로 보내는 일입니다.

이제 이 홈페이지...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적어도 8주 이상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홈의 메인 화면을 보셨겠지만....지난 이틀간 ...웹 그래픽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photoshop을 혼자서 익혔습니다. 책도 사고 photoshop 6.0 도 마련했습니다. 할아버지 병원을 봐 드리면서...시간 나는대로 공부한 것입니다. 아마 8주 가 훨씬 지난 뒤...더욱 깔끔하고 정리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겁니다. photoshop 6.0에서는 인터넷에 올리는 그림 파일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작게 해서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이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군대 가기 전 날까지...이런 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8주 동안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 게 있습니다. 8주 간의 훈련을 통해 신체적으로 더욱 건강하고 강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신앙 생활을 비롯한 모든 생활은 육체적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건강이 나빠지고 몸이 쳐지면...영적으로도 연약해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번 기간 동안...결혼 전의 체격을 회복하고....다가 올...과테말라 복무에 대비해 육체적으로 준비할 생각입니다. 선화가 지금도 형민이에게 얘기합니다. '형민아...예수님...아빠 배 안 나오게 해 주세요... 기도하자..."  배을 홀쭉하게 만들어서 올 생각입니다.

신앙 서적도 가지고 들어가지만....규칙적인 시간과..나만이 갖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연락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준비되길 기대합니다. 아마도...늘 그랬듯이...이번 기간도 큰 일을 앞두고 으례히 지나야 하는 광야 생활로 다가올 겁니다. 모세도 자신의 민족을 이끌기 전...미디안 광야 생활을 40년간 했고...바울도 자신의 사역을 앞두고 유대 광야에서....예수님도 광야 생활을 하셨습니다. 광야 생활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뚜렷하게 보고 돌아오길 원합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할 나의 인생과 우리 가정의 앞 길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번 기간동안...하나님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꿈들을 설계하고...무엇보다...겸손하게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영적 무장을 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랫 동안 이 곳을 사랑해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제가 없는 동안에도 혼자 남은 선화와 형민이에게 위로해 주시고....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원합니다. 무능한 사람들이지만.....하나님 손에 붙들려 우리 가정을 불러 주신 하나님의 계획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잘 다녀 오겠습니다........그럼......

"나의 가는 길...주님 인도하시니...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하시네....주 내 인도자...항상 함께 하시네...사람과 힘 베푸시며...인도하시네..." (Words and Music by Don Mo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