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들어가는 날

 1999년 9월 18일 토요일

함을 신부집에 가져가는 날이다.

혼인과 관계된 풍습들이나 전례들이 많이 퇴색되고 사라져 가는 추세지만 신부는 혼인예식 후 폐백을 통해 시가 어른들께 드리게 되고 신랑은 이렇게 함을 가져가는 납폐의식을 통해 신부측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게 된다고 한다.

 함을 가져 가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된 것도 아니어서 결혼을 앞둔 양가에서 의사소통이 쉽게 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일단 혼인을 하기로  정한 후에는 신랑측의 어른이 신부측의 어른께 서찰을 통해 "저의 집에 장성한 00 가 귀댁의 영애 00와 혼인하여 저의 집안의 실인으로 삼기 원한다"는 의사 표시와 함께 예물들을 신부집으로 보내게 된다.  성경에서도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만난 뒤 이삭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얘기한 뒤 가지고 온  예물들을 리브가에게 주는 장면을 보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징표를 건네주는 이러한 전통이 있는 모양이다.  신랑 집안의 프로포즈를 신부 집안은 흔쾌히 받아 들이면 예단을 보내게 되고 혼인날 폐백을 드리는 순서를 밟게 되는 것이다.

 신부도 자신을 위해 보내진 함 속에 있는 여러 정성스런 물품과   정중한 청혼의 글이 적힌 편지를  보면  시댁에서  자신을 간절히 원함을 느끼게 되고 결혼 후 시댁에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내가 가져가는 함의 내용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 얘기할 순 없지만 가져가는 물품 내역을 적은 물목과  서찰이 들어있고 성경, 찬송가가  포함되어 있다.

 친한 친구인 현국이와 원택이가 함을 지기로 하고 12시 30분 경에 모였고 출발하기 전에 할머니, 아버지, 함을 지고 가기로 한 친구들 모두 함께 모여 기도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어제 함에 물건을 넣기 전에도 목사님과 장로님이 함께 오셔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함 과 이불, 약간의 음식(떡, 고기, 과일)을 가지고 가는 일이지만 세 명이 아니었으면 한 번에 나르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은 함을 질 수가 없다고 해서 원택이가 함을 매기로 하고 현국이가 한아름되는 이불을 책임져야 했다. 출발하기 전까지 할머니는 주의해서 가야 한다고 일러 주셨다.

 개금의 주공아파트 앞에 도착한 것은 1시가 넘어서였다. 선화가 아파트 앞에 나와 있었고 잠시 후 우린  물건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드라마를 보면 함진애비들이 함을 바로 신부집에 가져 가지 않고 뭔가를 자꾸 요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절하고 함께 식사하고 집 안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은 1시간밖에 안되었지만 뭔가 큰 일을 치뤄 낸 느낌 이었다. 선화 부모님도 기뻐하셨고 원래 4식구밖에 없는 선화 집에 이 날은 교회의 집사님들이 여러 분 오셔서 음식 만드는 것도 도와 주셨고 우릴 반겨 주셨다.

마치 잔치집처럼 북적북적 떠들석하는 분위기였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너무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오자 " 그렇게 쉽게 들어오면 안되는데...." 하고 웃으시기도 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 뒤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마침 대한 췌담도학회 집담회가 부산 해운대에서 있는 날이고  그 준비 위원으로 내가 가야만  하기에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해운대에서 학회를 마치고 식사를 끝낸 시간은 9시 30분이 넘었다. 교수님이 내 차를 타고 집으로 가시겠다고 해서 난 차를 몰고 서면과 동대신동에 교수님과 일행을 내려 주고 다시 선화집으로 차를 돌렸다.

 못 다한 얘기도 듣고 느낌이 어떠했는지도 알고 싶어서였다. 밤 11시........이제는 가을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선화와 아파트 단지 않의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서 함께 마시며 오늘의 느낌을 얘기하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날  선화의 집에는 많은 방문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 날 밤 우린 이런 생각을 함께 했다. " 어른들이 이렇게 어렵게 형식을 갖추어 인사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