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력의사 면접

면접 전 날....

대부분의 사람은 경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구요....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예상 못한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생각해 온 협력의사를 지원하고 보니...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많은 인원이 지원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내과의사 4명을 파견하는데.... 최소 7명이 지원했고 외과의사 2명 모집에는 11명 이상이 지원했고... 1차 서류 전형 통과자는 내과 지원자 6명, 외과 지원자 10명입니다.

혹시 '신원 진술서'가 뭔지 아세요? 이번에는 면접 보러 올라가면서 신원 진술서도 제출해야 합니다. 시집간 여동생의 주민등록번호나 장모님이 다니셨던 학교 이름이 뭔지 알아야 하고....보증인 두 사람, 친구 두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란도 있습니다. 혹시 이북에 있는 가족들 이름도 적어야 하구요.. 군의관과 관련하여 전 벌써 2차례나 이런 신원진술서를 적어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적어야 했습니다. 다른 나라도 공무원 지원시에는 이렇게 복잡한 지 모르겠지만....웬지 군사 정권 생각도 나고....분단 국가의 설움도 느껴지고...국가의 경직성도 생각나더군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고..웬지 잘못한 게 있는 것 같고...이런 서류를 적고 있으면 좋은 기분은 아니더군요..

2월 2일은 2차 면접 심사가 있는 날인데...면접 및 영어 회화가 최종 합격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그 날이 다가올수록 면접에 대한 부담감....특히 영어 회화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의학을 공부하다 보면...대부분 영어 교과서를 사용하기에...독해에는 별 어려움이 없지만...생활 회화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현재 베트남에 계시는 협력의사 원혁이 형에게 메일을 보내...2차 면접 요령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혹시 상당한 수준의 영어 회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서였습니다. 1월 마지막 날 보낸 메일의 답장은  면접이 있기 바로 전 날....2월 1일 밤에 도착했습니다.

성훈아. 먼저 지원하게 됨을 축하한다. 내가 지원했을때는 면접시간이 길지는 않았고 일상적인 것이었는데 우리말로 질문하다가 중간중간에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답하면 되었었다.
"영어질문은 "협력의사에 왜 지원했는가?" 그리고 "페루를 지원한 이유는?" (당시 신청국에 페루를 적었었다) 이었는데 내가 그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만을 준비했기에 무난히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외 우리말로 가족이나 아내의 반대는 없었는지 등의 질문이 있었던 것 같고 나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질문들도 일상적인 것이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그럼, 샬롬.

 답장을 받아 보고...우리 부부는 놀랐습니다. 생각한 것 보다...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이런 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였습니다. 게다가 2월 1일까지 우리의 생활은 아주 바빴고...형민이와 함께 있다 보니 책상에 앉을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날도 자정이 넘어서야 형민이가 잠들었길래...메일을 확인해 본 것이었습니다.

일단 가정 예배를 드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와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선화도 옆에 따라 눕더군요....전...원혁이 형이 보내 준 두 가지 질문에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회화이기에...복잡한  문어체 문장을 사용해선 안되고....선화에게 한영사전을 가지고 와서 제가 말하는 단어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은 왜 협력의사로 지원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일단 기출 문제의 답을 챙기는 건 기본이니까요...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밤 1시가 넘었고...내일 아침 7시 15분 출발하는 서울행 무궁화호를 타야 하기에 빨리 서둘러야만 했지요. "선화야, 지원 이라는 단어가 뭐지? application이니?" "선화야, 목적을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reason? purpose?"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문장을 만들었지요...아직도 이게 말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I see.... I have thought about this for a long time....my purpose of application is summarized to two aspects....first, this job is accomplishment of my occupational duty and religional calling...second is my curiosity of other nations I have never been in."   이 이상 말을 이으려고 하니...말이 길어지고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더군요....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왜, 00 국으로 지원했습니까?"

"In fact, I do not have any information about 00. the only one I know is 00 is very far from here. by the way, one day I have ever seen a KOIKA Dr's homepage, he was working at 00........ most of all, I want to say whereever I go, I do not mind. I'll do my best"  제 홈을 보시는 분 중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계시는데...얼마나 우스우실까...하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영민 자매님...틀린 문장 좀 고쳐 주세요) 막상...문장을 만들려고 하니..시제 일치에서부터 3단 변화까지 쉬운게 없더군요.....

어쨋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선화와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요...그리고 자리에 누워서도 이 문장들을 중심으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또 다시 상경이다.

선화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새벽이라고 해야겠지요...6시 10분정도 되더군요...적어도 6시 45분에는 나가야...기차를 탈 수 있는데...서둘렀습니다. 선화가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 주더군요...고마운 맘으로 먹고...양복 정장에다 바바리 코트까지 걸치고...제출할 서류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저녁에 보자고...손을 흔들면서 나갔지요...

택시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서 개찰구를 통과해 좌석에 앉을 때까지.....그냥 멍하게 보냈습니다. 잠이 덜 깨어서 인지....어젯밤 외운 문장을 기억하기도 싫더군요...부산을 출발할 때 제 옆자리에는 아무 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눈을 감고 잠을 청했고....대전 근처까지 계속 잠을 잤습니다.

대전을 지나고 평택 가까이에 오니...조금 있으면 치루게 될 영어 시험(?)이 생각나더군요...그래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자리에 웬 젊은 여성이 계속 자고 있더군요...다행이다 싶어서 조금 소리를 내 가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원을 지나서부터는...익진이에게 전화 걸어서 친구 주민등록번호 란을 메꾸고 여동생 주민등록번호 란도 메꾸었습니다. 이번 서류를 꾸미면서 시집간 여동생의 주민등록번호 정도는 오빠 수첩에 적어두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외우게 되었지만....

서울에 도착한 건....낮 12시 15분이었습니다. 2시간 면접 시작이고 1시 30분까지 혜화동의 KOIKA 사무실에 가야 합니다. 서울역을 나오면서도 전 계속 영어 문장을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다녔습니다.....서울역을 빠져 나올 때....부산에서 산 좌석표를 잃어 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겐 흔히 있는 일이지요....'또 뭔가를 잃어 버렸구나....' 담담하게 검표원에게 "잃어 버렸다" 고 얘기하고 유유히 걸어 나왔습니다. 그 검표원은 "표가 없으면 여기서 살아야 한다"고 하던데....설마 그렇겠습니까?

서울역 광장에서 지하철로 들어가서 4호선을 탔습니다. 4호선을 타면 서울역-->회현-->명동-->충무로-->동대문 운동장-->동대문-->혜화입니다. 아주 가깝지요....점심은 혜화의 대학로에서 먹을 양으로 바로 지하철에 올랐지요....지하철 안에서도 이제 1시간이 지나면 있을 영어 문장 테스트(?)에 대비하기 위해...계속 머릿속에서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이때부터는 오히려 더 헤갈리고 잘 안되더군요...그 때...사람들이 우루루 내렸습니다. 저도 따라 내렸지요....그리고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역 구내를 빠져 나오다가....'여기가 무슨 역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리곤 이내...잘못 내렸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내려가 보니  동대문 운동장이었습니다. 아직 두 구간이나 더 가야 하는데....'너무 열심히 문장을 외웠나?' 전 그 자리에 서서....시계를 한 번 쳐다 보고...다시 문장을 외우고 있다가 다음에 오는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이번에는 문장을 외우면서...다음 번 역 이름을 뭐라고 하는지 장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지요...."다음 역은 충무로, 충무로 역입니다."...어!......반대 방향의 지하철이네....전....이 정도까지 사태가 엉망이 되어도 태연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든요.....다시 내려 반대쪽으로 넘어가 이번에는 제대로 타고...혜화에 내렸습니다. 지하에서 올라오니 1시 20분이더군요...머뭇거릴 시간이 없었고...점심도 못 먹고 KOIKA 건물 내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지난 1월 KOIKA 지원서 접수 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면접장에서.....

 혜화동에 있는 KOIKA 건물은 전형적인 국가기관 건물처럼 생겼습니다. 각진 외관, 굳게 닫힌 정문....내부도 그렇습니다. 길 게 늘어선 복도에 아무도 다니는 사람이 없고...차가운 철문...국정원은 한 번도 안 들어가봤지만...이런 분위기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지원서 접수할 때 한 번 와 본 곳이라 익숙했습니다. 면접 장소는 2층 봉사 사업 1팀입니다. 먼저 1층의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한 번 보고 빗질도 하고....면접장으로 갔습니다. 입구에는 핸드폰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마 지원자인 모양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20명 가까이 되어 보였습니다.  

외과 지원으로 보이는 한 선생님이 '족보' 라면서 영어 면접에 관한 자료를 읽고 있더군요...모두들 궁금해 하지만 끝까지 보여 주지 않더군요...모두들 나눠 주는 면접 명찰을 착용하고...2시가 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여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과테말라의 조직폭력배나 지진...등의 얘기도 했고...면접 내용에 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잠시 후 담당자가 들어와 긴장을 풀어 주면서 궁금증을 물어 보라고 하더군요....한 사람이 외국인이 면접관이냐고 묻더군요...그 말에 담당자는 당초 native speaker를 부를 계획이었으나...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내부의 반대가 많아 KOIKA 활동에 초창기 활동에 관여하신 두 분을 면접관으로 모셨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덧붙여 말하길...."여긴 영어 잘 하는 사람 뽑는 곳이 아니예요" 라고 하더군요...그 날에 모두 안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생애에 한 번 뿐인 국제협력의사를 가기 위해 몇 년전부터 계속 문의해 왔으나...막상 그 선생님이 가야 할 해엔 그 선생님의 전문 과목은 파견하지 않게 되어 못 가게 되어 많은 전화 연락에도 불구하고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얘기....어떤 분은 이렇게 군복무 대신으로 가게되는 국제협력의사로 못 가게 되자....몇 년이 지난 뒤...협력단 계약 의사의 신분으로 기어이 해외 봉사를 떠나더라는 얘기.... 였습니다. 글세요...그런 얘기를 들으니까...더욱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면접을 위해 온 다른 선생님들은 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계시지만...전 부산에서 올라왔기에...이렇게 면접 보는데만 해도 시간과 경비가 더 소요되기에(이번에 6만 5천원 들었음)...더욱 최종 합격되었으면...하는 맘이 간절했습니다.

잠시 후....면접은 시작되고 내과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전 내과 02 번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면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씩 면접실로 안내 되었고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귀가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선생님이 면접실로 들어갔고...약 5분 뒤...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가방과 바바리 코트를 들고 부속실로 들어가 짐을 놓은 뒤...면접실로 들어갔습니다.

"똑..똑..." 문을 열고 들었을 때..눈에 들어온 것은 중년의 나이가 지나 보이는 신사 두 분이셨습니다. 편안 자세로 앉아 계셨습니다. 전...공손히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앉으라는 말을 하기까지 서 있었지요...

"앉으세요..." 전 목례 후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산의대 출신이구나.....나, 알아보겠어?"  말씀하시는 분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누구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그 말을 하신 분은 다른 면접관에게....."내가 왜...전에 부산의대에서 강의했다고 했지?" 라고 얘기를 하시더군요...그 말을 듣자 순간 머리에 번쩍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의사 출신으로 군에 진출하신 분 중 가장 높은 계급이 다신 분이 별 두 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부산의대 출신이시고...약 7년전..부산의대 강의실에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었지요.....그러고 보니...이 분이 바로 그 때 그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다시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저의 학교 선배님이시지요...."

"그래....왜 내가 5년 전인가....국제협력의사에 대해 강의도 했었지.....자네도 그 강연 자리에 있었나?"

"예...."

사실 그 강연 자리에 제가 있기는 했었지만....그 분이 국제협력의사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지 그 분이 의사가 여러 방면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요지의 강연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되더군요....

어쨋든 뜻 밖의 장소에서...뜻 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욱 고무적이었던 것은 그 분이 동문 후배인 제게 아주 우호적으로 대해 주셨다는 것이었지요.....아마도 학교 후배가 자신의 강연을 듣고 협력의사에 지원한 사실에 아주 기분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네 글씨가 아주 예쁘군....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던 게 분명하군......"

"아버진 뭐 하시는가? ...할아버지는.....응 그래? ..의사 집안이구나...그래 됐어..."

옆에 함께 계시는 면접관에게 제 편이 되어 여러 가지 얘기를 해 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다른 면접관 선생님이 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느냐고 물으시더군요....결혼한 지 1년 4개월 되었다고 얘기드렸더니...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제가 가려는 국가 아닌 곳으로 파견되더라도 괜찮냐는 질문과....100일된 아기가 함께 가도 괜찮느냐는 물음...부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얘기 중에 선배 장군님(별이 두 개니까....)이 제게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해 보라는 물음을 하셨습니다. 순간 속으로 '탈족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해설:의대에서는 탈족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예상 문제를 모아 놓은 것을 족보라고 부르고 시험 전에 외우는데...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족보 밖에서 나왔다고 탈족 이라는 말을 쓰지요....)

탈족이지만 그 정도는 해야지요....비록 하루 종일 외운 영어 문장이 필요없어졌지만.... "My name is Lee seonghun, I'm working in Pusan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I'm specialized in Internal Medicine, particulary Gastrointestinal system(여기서 사실 실수를 했습니다. Gastroenterology라고 해야 하는데....) I want to work with you, thank you..." 우습지요? 좀 이상하지만....하여간 이 얘기밖에 더 할 게 없더군요....그러자 선배님이신 면접관께서는 아니나 다를까....영어는 그 정도면 됐고...라고 맞장구 쳐 주셨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가 인맥과 학맥, 지연에 얽히는게 문제라고 하지만.....멀리 서울에서 여러 지역의 사람들을 접촉하다..모교의 후배가 올라와서 자신의 길을 따르겠노라고 올라온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면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제 얼굴은 상기되었고...다시 인사를 정중히 드리고 면접실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곤 협력단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있더군요...서울 사람들은 이젠 눈에 아예 질렸다고 합니다......전 눈 내리는 대학로를 걸어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도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우연의 일치인 것 같기도 하지만...만일 제가 협력의사로 최종 결정된다면....부산의대 출신의 장성이 면접관으로 와 있었다는 사실이 변수로 작용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하여간....그 분을 그 장소에서 만났다는 사실이...웬지 나로 하여금...'하나님이 내가 외국에 나가도록 인도하신다' 고 느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다시 부산으로

서울역으로 곧장 달려왔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기차표가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역에 도착한 것은 2시 55분....3시 부산행 새마을 호는 좌석이 없고...3시 15분 부산행 무궁화도 좌석이 없었습니다. 4시 새마을호가 다음 순서인데..좌석은 없고 자유석이 있다고 하더군요...

새마을 호 자유석이 뭐지 아세요...저도 이번에 알았는데요...5호차에 한 해 좌석을 지정하지 않고 자유석으로 표를 발매한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 5호차에 좌석이 있으면 그냥 선착순으로 앉으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거지만 ...만일 자리가 없으면 입석으로 서서 가야 한다는군요...참 이상한 제도다 싶었지만...일단 그걸로 끊었습니다. 6번 플랫폼에서 기차가 출발한다고 하는데..6번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바로 앞 기차는 3시 25분 마산행 새마을 호였습니다. 전 3시 25분 마산행 열차 개찰시에 살짝 개찰구를 통과해 플랫폼으로 내려가서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춥고 몸이 떨렸지만...부산까지 서서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30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지금의 시련(?) 쯤은 참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눈이 이제는 눈보라가 되어 역구내에 흩날렸습니다. 온 세상이 또 하얗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제 앞에 노년의 신사 한 분도 아마 저와 같은 목적으로 플랫폼에 서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떨 때는 적막한 역 구내에 두 사람만 서 있기도 했습니다. 잠시 후 새마을 호 열차는 들어오고 ...열차가 정지하자마자...우리 두 사람은 5호차 제일 좋은 자리를 재빨리 찾아 앉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역을 떠날 때까지 5호차는 반 정도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전 왜 자유석을 판매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혹시 아시는 분은 방명록에 글을 남겨 주세요...이상한 제도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울 나들이는 14시간만에 마쳤습니다. 협력의사를 위한 인터뷰도 무사히 마쳤구요...이제 이번 주에 발표되는 최종 결과 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생각하고 따를 겁니다. 아마 의외로 국내에 머물며...다른 일을 시작하게 하실 지도 모릅니다. 모든 경우에 다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2월입니다. 요즘은 저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정들었던 부산대학병원을 떠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고...새로운 길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저께는 입대하라는 영장도 나왔더군요....지금까지 그랬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앞으로의 저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늘 마음을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곧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