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낸 보름...  

지난 1월 5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서 15일간 생활을 하면서 11일과 19일 두 차례 시행하는 내과 전문의 시험을 응시하고 돌아왔습니다. 르네상스 호텔은 특급 호텔입니다. 하룻밤 자는데 30만원 가까운 돈을 치뤄야 하는 곳이지요...이렇게 말하면 "아니 그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이야?" 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4년차 마지막 시험을 위해 2년차 때부터 매달 월급을 받으면 8만원씩 따로 적립해서 기금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물론 객실료도 거의 12만원 선까지 깎을 수 있지요..몇 백명의 수험생들이 모두 한꺼번에 계약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 1021호 방을 다른 선생님과 함께 사용했습니다. 서울에 그것도...강남 한 복판..특급 호텔에서 생활한다면 낭만적인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지만...그동안 저의 생활은 그야말로....철저한 감옥살이었습니다.

8시경...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 대용으로 주어지는 김밥이 플라스틱 껍질에 싸여 제공됩니다. 아침 식사는 김밥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샤워를 하고 나서...다른 시간 전혀없이 바로 책상에 앉아야 했습니다. 12시 30분...공식적인 점심 식사 시간까지 우린 그야말로 숨소리도 죽여가며 책장만 넘겼습니다. 호텔에서는 각 방에 책상 2개를 준비해 두고 스탠드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스탠드의 밝기가 너무 낮아 우린 미리 또다른 스탠드를 준비해서 올라갔습니다. 두 개의 스탠드를 밝히고....잠시 화장실 가는 것외에는 책상에서 움직이질 않습니다. 1차 시험인 11일이 되기 전 1주일은...그야말로 체력을 다 쏟아 붓는 시간이었습니다. 오죽하면...함께 모여 점심 식사를 하러 갈 때...제대로 말할 기운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유일하게 해방감을 맛 볼 수 있는 시간이 호텔 근처 중국집이나...식당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나가는 시간입니다. 합쳐 봐야 1시간도 안 되는 이 시간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지요...우린 주로 냉이가 들어있는 된장국과 왕만두가 제공되는 4,000원의 정식이나 짜장면...가끔씩 설렁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녁은 호텔 내 직원 식당을 이용했습니다. 호텔 내 직원 식당은 4,000정도이고 식권을 사야 했습니다. 우린 이틀을 빼고 대부분의 저녁 식사를 호텔 지하 1층의 직원  식당에서 해결했습니다. 유일한 외식을 점심시간으로 한 것은 필요없는 시간의 낭비를 막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하게 되면...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이지요...

호텔은 천장에 형광등이 없습니다. 그냥 침실을 밝히는 등 뿐이지요...그래서 전체적인 조명이 어둡고 스탠드 아래에만 노란 불빛이 비칩니다. 그 아래에서 바짝 긴장해서 글씨를 보다 보니...눈이 쉽게 피로해지고...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한 낙은 저녁 식사 후 잠시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 놓고 몸을 담그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내...땀이 나고 지치기 시작하면...저녁 공부를 위해 오래하지 못하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책과 씨름해야 하는...그야 말로 감옥살이었습니다.

선화와 헤어져 있더라도 성경 정독집과 함께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가자고 얘기한 터라....저녁 목욕을 마치고 나면...잠시 앉아 역대상을 펴 놓고 성경 말씀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동안....나의 꿈과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고...다윗이 가졌을 법한 생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공부가 지루해 지면....가지고 올라간 국제협력의사 지원서를 펴 보기도 했습니다. 내게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답답한 맘을 억누르려고 했지요...그렇게 1월 5일부터 11일에 있을 1차 시험을 치루기 전까지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1월 7일 주일....2001년 첫 주일을 서울에서 맞이해야 했습니다. 역삼동 근처에는 충현교회가 있었습니다. 전 새해 첫 예배를 그 교회에서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 곳에서 드린 예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다음 글에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7일은 하루 종일... 눈이 왔습니다. 나중에 와 보니 부산에도 눈이 많이 왔었다고 하더군요...서울은 그 보다 며칠 전인 7일... 서울 사람들도 몇 십년 만에 본다는 폭설이 내렸습니다. 전 마냥 신기해 하며...호텔방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백설의 세상을 바라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주일이라... 차들도 뚝 끊기고...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힌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굵은 눈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사진은 그 날 일회용 사진기를 사서 찍은 모습입니다. 사진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눈이 왔었는지 대략 알 수 있는 사진이라 실었습니다. 그래도...그 날 내린 눈이 답답한 내 맘을 상쾌하게 해 주었고....잠시나마 기쁜 마음을 발산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선화와 전화 통화는 핸드폰을 이용했습니다. 하루에 2-3회...식사 시간을 이용해서 안부를 주고 받았지요....떨어져 있으니...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이제 마지막 시험이다 생각하고 꾹 참았습니다.

90년도 대입학력고사, 96년 의사 국가고시, 2001년 내과 전문의 시험...이 시험이 마지막 보는 국가고시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참기로 했습니다...조금만....

교회 소식도 궁금했습니다. 선화로부터 교회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장로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도 들었고...현희가 오후 예배 전 찬양인도를 대신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두고 온 교회 지체들도 보고 싶었습니다.

8일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자...온 몸에 감기 몸살 기운이 도는 걸 느꼈습니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닥쳤습니다. 책상에 앉았지만 집중이 되지 않고....'이러면 안되는데...' 위기감 마저 느꼈습니다.  이럴 때면 펜잘 한 알 먹으면...좀 나아지는데...이 날은 펜잘로도 별 효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늘 그렇듯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몸은 무거웠지만...기도 후에 내 맘이 알 수 없는 안도감에 싸이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몸이 회복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등 아래 놓인 성경책을 바라 보면서...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11일 아침...1차 시험 치루는 날...6시에 기상해서 김밥을 얼른 먹고...6시 40분까지 3층 호텔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전세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시험 장소는 부천에 가까운 유한 공고와 유한 대학입니다. 우린 1시간을 흔들 리는 차 안에서 김이 서린 차창 밖으로 동이 터오는 서울 시내의 새벽을 보며 달려야 했습니다. 호텔을 나오면서...선화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드디어 출발.." 잠시 후 선화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벌써요..담대하게 치루세요'

1차 시험은 객관적으로 볼 때 좀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예년과 달리 모두들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모두들 쉽게 나왔다고 하던데....' 하지만...전 한 가지 시험이 마쳤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더욱이 선화가 서울까지 위로 방문을 와 주었기에 더욱 기뻤고..선화와 전...다음 날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2차 시험을 앞두고 전보다는 긴장이 많이 되진 않았습니다. 아마...1차 시험을 치루고 나니 긴장한다고 잘 보는 시험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차 시험은 슬라이드 시험입니다. 1차 시험은 주관식 40문제..객관식 80문제였지만 2차 시험은 슬라이드가 주어지면서 슬라이드 내용을 바탕으로 객관식 50문제, 주관식 100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각 슬라이드 사이에 주어지는 시간은 아주 짧고 따라서...많은 분량의 슬라이드를 보는 게 중요했습니다. 우린 하루 종일 슬라이드를 보고 또...강의를 해야 했습니다.

2차 시험은 서울 중앙병원에서 있었습니다. 역삼동에서 가까워..여유를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2차 시험은 전반적으로 쉬웠다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시험은 알 수 없는 법...떨어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에...불확실한 상황속에서 결과를 모르는 불안감은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2차 시험을 치루기 전에 1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물론 선화와 가족들과 감사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1차 시험 합격은 2차 시험을 두 번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2차 시험에서 2번 탈락하면...다시 1차 시험을 봐야 하는 거지요....

어쨋든 시험은 끝났습니다. 가끔씩 불안감이 찾아 오기도 하지만....마음을 비우고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잘 사용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 동안 시험 공부 하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겁니다. 먼저 형민이의 백일 잔치가 있습니다. 사실 돌 잔치가 중요하지만 형민이가 한 돌이 될 때면...저와 제 식구들이 외국에 나가 있을 것 같아...이번 백일을 맞아 목사님과 교우들을 모시고 잔치 아닌 잔치를 열기로 했고 어제... 백일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날아갑니다. 이번 전문의 시험을 보면서...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내 나이가 31살이 되는데...그야말로 인생의 상당한 시간이 지나가는데...지금까지 난 무엇을 했고...앞으로의 남은 내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가올 황금빛 미래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만일 누군가가 처음 의예과에 입학하면...본과에 있는 선배처럼 빨리 진급하고 싶어하고 본과에 이르면...지옥같은 시험들을 통과해서 의사가 되어 빨리 인턴 생활을 시작하고 싶고.... 인턴이 되면 레지던트가 되어 환자를 담당하고 싶어하고... 레지던트가 되면 전문의가 되고 싶어 하고 전문의가 되면 또 그 다음 단계를 꿈꿀 겁니다. 언제나 지금의 상황을 악조건으로 생각하고 탈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 버리려고 쫒기듯이 다가올 미래를 그리며 달려가는 거지요.....그러다가 어느 덧 시간은 지나가고 자신의 나이가 어느 덧 중년에 접어 드는 걸 느끼겠지요....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달려왔다면...그가 바라던 곳에 서 있더라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고...지난간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허탈해 하며...삶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거라고...한숨 짓겠지요...

전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선화와 제가 가꾸는 삶은 현재의 단계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감사의 제목을 찾아가는 삶이길 원합니다. 이후에 내가 더 나은 위치에 이르러서 할 수 있는 일을 꿈꾸는 삶이기 보다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많은 일을 벌이는 작업이 될 수도 있고 황당한 일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지금 나의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가장 좋은 방법들을 찾고 싶습니다.

국제협력의사를 지원하는 일이나...이 홈을 가꾸는 일이나...선화와 형민이와 함께 지내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부족한 우리 집에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들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말을 듣지 않는 중 1반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밥상을 대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타이르는 부질없는 일도....이젠..어느 덧 고참이 된 성가대 테너 파트 한 쪽에서 노래하는 것도....지금 내가 느낄 수 있는 보람입니다. 내게 교사, 찬양팀으로 불러 주신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달란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험을 치루고 난 나의 삶은 좀 더 구체적인 일들을 실천하는 삶이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합격하게 되고 협력의사로 떠나게 되면...난 내가 처한 조건에서 하나님 나라에 유익되는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비단 선교사를 도우는 일이 아니라....내가 파견된 병원에서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 것....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예배 드리며 살아 가는 것...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형민이를 기르면서 생각합니다. 형민이도 쏜살같이 빠른 속도로 지금의 내 모습까지 자라올 거라고....형민이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기 보다는....내 삶이 악하고 게으른 종의 삶이 되지 않기 위해...귀한 나의 삶을 값지게 사용하기 위해....힘을 다해 충성할 거라고 다짐합니다. 그것이야말로....또 다른 30년 아니 50년 후....다가올 나의 죽음의 순간 앞에 섰을 때....감사드리며 내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 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사히 시험을 치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선화와 가족들...그리고 여러 지체들께 평안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