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가정이 되는 길.......

형민이를 본가에 맡기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화와 전...약간의 논쟁을 벌였습니다. 서운한 감 마저 드는 신경전이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감정과 논쟁은 꽤 여러 번 있었습니다. 우리의 부부 싸움은 보통 이런 식이지요...일의 발단은 형민이에게 있습니다. 형민이는 누워 있을 땐 항상 오른쪽을 보고 눕습니다. 아직 두개골이 다 닫히지 않은 때라...아기가 눕는 방향에 따라 머리 한 쪽이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에 대개 엄마들은 아기가 좌우로 번갈아 눕게 해서 한 쪽으로 뒷 머리가 심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하게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형민이는 머리를 움직이게 되면서부터는 왼쪽으로는 잘 눕지 않는다는 거지요...며칠 전부터 이런 문제는 선화에 의해 제기되었고 우린 형민이가 좌우로 눕도록 신경을 쓰곤 했지만...그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형민이의 오른 쪽 뒷머리가 약간 더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저희 집안이 머리 모양에 대해서는 유별나게 까다롭다는 점이지요...그 전통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집니다. 유달리 자식 사랑이 심하셨던 할아버지는 자식들의 머리 모양이 좌우 대칭...게다가 뒷머리가 안 들어가고 뾰족하게 만드는 게 육아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저 까지도 늘 엎드려서 좌우를 보게 한 상태로 잠을 재웠고..덕분에 제 뒷 머리는 들어간 곳 없이 뾰족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 집안 식구들이 아기 머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기를 보면 어머니도 아버지도...애기의 뒷 머리를 만져 보시고...이내 "아이구 잘 키웠네...." 라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확실히 다른 집보다 이 점에 대한 집착은 좀 큰 편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수요일...본가에 형민이를 맡기는 날입니다. 잠에 겨워...눈을 제대로 못 뜨다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 보고 있는 형민이의 뒷 머리를 만지신 아버지께서 "어....아기 머리가 왜 이렇게 들어갔지..."하면서 약간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는 데서 일은 출발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선 더 이상 얘기가 계속되진 않았지만....집을 나선 뒤...집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선화와의 쑥쑥한 대화가 시작된 거지요......

전 차 안에서....선화에게 제가 가진 약간의 생각(?)을 주섬 주섬 꺼냈습니다. 요지는 뭐 이런 거지요....'아기의 머리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은게 아니냐.....우리 집안은 이런 점들을 중시한다....괜히 머리가 들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나도 걱정이 되고...혹시 이것 때문에 아기 머리 모양이 나빠질까 걱정이다.' 뭐...이런 식이었습니다.

선화의 반응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사실....이제 3개월도 안 된 아기 머리가 그렇게 반듯할 수도 없고...설사 지금 조금 머리가 들어간다 하더라도...자라면서 다 해결된다....나도 머리가 동그랐다면 좋겠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된다. 그러나 나는 집착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시작한 얘기는 서로의 반응이 좀 더 과격해 지도록 불을 붙였습니다.

성훈: 만약 머리 한 쪽이 많이 들어가면...그 쪽의 뇌 반구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좁아서 대뇌 피질 위축이 생겨 문제가 되는 거 아니냐(제가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만).....또 시댁에서 이런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싶어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선화: 아기를 마치 잘 못 키우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섭섭하다...그리고 앞으로 잘 해보자고 격려해 준다면 더욱 신경쓸텐데... 이건 잘못된 집착인 것 같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뒤....약 3분 정도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거는 사람은 어김없이 제가 됩니다. "선화야....기분 안 좋지?" "예...." "아기를 잘 못 기르고 있는 것처럼 말해서 안 좋은 거지?" "예..........."

구덕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곤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차 뒤에는 옮길 짐이 좀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을 누르고 선화는 앞에 서고...전 뒤에 서 있었습니다. 밝은 엘리베이터 안.....전 뒤에서 선화를 살짝 밀었습니다....그리곤 "선화야....."라고 얘기합니다. 선화는 살짝 웃더군요. 한 번 살짝 건드리고....이렇게 우린 다시 말문을 엽니다.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얘기하고는 가벼운 설전을 주고 받습니다.  

"오빠... 20평도 안 되는 집안에서 온 종일 형민이를 돌본다고 팔도 아프고 피곤한데....제가 그렇게 마치 형민이를 잘 못 돌보는 듯한 얘기를 하게 된다면...나의 가치가 땅에 뚝 떨어진다구요......" "그래..오빠가 잘못했다." "(이제야 활짝 웃으면서...) 맨날....오빠가 미안하다고 하고 일이 끝나네요....."

한번도 선화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한번 쯤 고집을 피울 만도 하지만....일전에 선화가 섭섭해서 눈물을 흘린 것을 본 이후로는  무조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부산대학병원 내과 4년차는 12명입니다. 그 중 11명이 결혼을 했습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대부분 한 살이 된 아기들을 가진 아빠들이지요...하지만 각각의 아내들의 역할을 천차 만별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있고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전업 주부도 있습니다. 선화는 학교 양호교사 일을 그만 둔 이후로는 전업 주부 그룹에 들어 있는 셈이지요.....

가끔씩....12명이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의 주제가 각 집집마다 거두는 총소득에 화제가 모일 때가 있습니다.  박봉의 전공의들인데다 안주인들의 직업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끔씩 총소득 순위를 매기는 때도 있습니다.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더군요....이렇게 저렇게 따져 보면...저희 집의 총소득이 낮은 군에 속하게 됩니다. 그 얘기가 오가는 중에 전......항상 제게 든든한 아내로 서 있는 선화를 그려 보곤 합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여자라고 하더라도...내가 가진 특별한 성격과 성향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역시 선화지....' 라고 생각하면서요......

12명은 항상 같이 식사를 합니다.  물론 아침 식사만은 따로 하지요...아침 출근 시간은 다양합니다. 특히 처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아침 7시 전에도 나오는 사람도 있고...어떤 사람은 8시에 출근합니다. 대부분 차가 한 대라...출근할 때 함께 출근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요....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아침 식사를 못하고 옵니다. 두어 사람이 콘 프레이크나 빵을 먹고 출근하고 대부분은 그냥 굶고 병원으로 오는 거지요....그래서 정해진 점심 시간이 12시 반인데도 12시가 되기 전에도 배가 고프다고 빨리 식사하러 가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루는 점심 시간에 이 이야기가 화제로 떠 올랐습니다. 모두들 아침을 제대로 못 먹고 오는 것에 대한 푸념을 털어 놓고 있었습니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미혼 여성의 70%가 아침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은 꼭 여자일 필요가 없다 는 결과가 나왔듯이....심지어 전업 주부인 아내을 두고도 아침을 못 얻어 먹고(?) 오는 남편들의 하소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화는 이런 식이지요...."야...너희들 중에 아침에 부인이 먼저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는 사람 손 들어 봐라....." "야.....아침을 얻어 먹으려면....꼭 지켜야 하는 철칙이 있는데.....무조건 밥 맛이 없더라도...밥을 다 먹어야 한다는 거지.....만약 밥을 잘 안 먹기 시작하면..금방 아침을 안 차려 주거든......히히...."

아침에 먼저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는 아내.........12명 중 유일하게 한 사람의 아내만이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누굴까요......예..바로 이 홈의 안 주인 이선화 자매지요....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습니다. 아침에 선화가 연뿌리즙나 과일즙 낸다고 강판에 과일을 비비는 소리에 아침 잠을 깨고...늘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고.........

저마다 제게 한 마디 씩 하더군요.....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훈아....네 아내가 제일 좋은 아내다......" "성훈이 부인이 일등이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자신에게 맞추어 주신 돕는 배필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다르듯.....자신이 원하는 아내의 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시킬 수는 없습니다. 선화는 제게 너무나도 딱 맞는 자매임을 살아가며 느낍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고 부르신 것 같습니다.  

선화의 차분함이 제겐 너무나 필요한 부분입니다. 전 심할 정도의 집착과 꼼꼼함과 함께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덤벙댐과 건망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는 시험치는 날...책가방을 버스에 다 두고 내린 적이 2번이나 있고....고등학교 때는 소풍가면서 소풍 가방을 지하철에 두고 내린 적도 있고....대학교 때는 연속 4일동안 우산을 잃어 버린 적도 있습니다. 아침에 비오고 오후에 비가 개면 어김없이 전 우산을 잃어 버립니다. 손에 뭘 들고 있으면.....항상 없어집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없어지고 맙니다. 학력고사 칠 때도 3교시 영어 답안지를 종 치기 5분 전에 바꾸기도 했고 남의 옷 입고 다니는 건 예사고.....

하지만...중학교 때부터...금곡동, 해운대, 태종대, 바깥 장림, 다대포 등지에서 부산대학병원 근처의 저희 집까지 자주 이유없이 걸어 다녔고...모든 것들을 자료로 남기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한 두 분야의 관심있는 영역에서는 집중력을 보입니다.

일을 여기 저기 벌여 놓기 좋아하고....관심을 두는 곳이 유별나게 많고....꿈이 많은 내겐... 선화가 적임자였음이 결혼한 뒤 1년이 지나면서 더욱 확실히 느껴집니다. 선화와 내가 힘을 합쳐서.....우리 집을 만들어 가고....함께 우리의 꿈을 실현합니다. 우린 결혼하기 전...우리가 만들어 갈 가정에 대해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언젠가 선화가 적었듯이..... 선화가 직장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했었습니다. 결혼하고....형민이도 생기고...우리 가정이 자라면서 우린 우리의 목표들을 늘 다시 상기하고....현재의 여러 어려움들을 함께 잘 통과하자고 서로 격려합니다. 우린 늘 입버릇처럼 얘기합니다. "돈이 없어서 힘드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털어 놓고 얘기할 수 있고 서로 꿈을 나누고 있다면....그런 어려움들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오늘...형민이 때문에 선화 맘이 좀 아팠던 것 같습니다. 참 미안합니다. 제가 형민이를 함께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옛날에 우리가 흔히 하던 말...'집에서 애나 보는 일'이 아주 힘든 일이라는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병원 직원은 애기 둘을 맡기는데 60만원을 지불한다고 합니다. 비단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가사 노동은 힘이 들고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반면에...아무리 하더라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

물론 의료인 커플인 저희 가정이 함께 해야 할 일중에 선화가 사회적인 역할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언젠가 개업을 하게 되면 선화가 우리 의원의 간호부장이 되겠지요(하하...)...당장 협력의사를 가게 된다면 선화의 특별한 역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도 있었다니까요....

하지만 전 선화가 저희 가정의 director로 서서 제게 지금과 같은 안정감을 주면서....우리 가정의 방향을 늘 고민하는 연구직으로 근무하길 원합니다. 얼마간의 금전적 수입을 위해 선화가 내게 베풀어 주는 정성이 줄어 든다면  전체적으로 우리 가정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마이너스적 요인이 많음을 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바쁘다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정신 없어 할 때....선화도 다른 어떤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가정에 약간 소흘해지는 것 보다 두 사람이 세운 목표가 일치한다면.....서로 세우고 힘을 한 데 모으는 것이 저희 가정으로선 유리합니다. 상황이 다른 가정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길이 있겠지만.......

모든 가정이 그렇듯이.....각 가정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훌륭한 점들을 키우고....장점을 살려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선화가 또 다른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지금은....형민이의 양육과 저의 군복무...그리고 급박하게 변하는 환경들 속에서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누군가 결혼을 준비하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이런 역할과 꿈에 대해 충분히 결혼 전 상의해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네요...(재호야...알겠지?)

선화는 지금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형민이 일은 다 잊어 버렸습니다. 지금 우린 할 일이 많거든요....우리 홈의 메인 화면에 떠 있는 사진을 20장 인화했습니다. 저희 홈에서는 늘 성탄 인사를 라이브로 하고 있으니까...몇몇  소외된 분들께 드릴 생각입니다. 선화는 카드를 만든다고 색도화지를 사서 오리고 내게 여기 저기 주소를 물어 옵니다. 그리고 태성이 준 CD의 마음대로 부르는 듯한....  듣기 편한 "징글벨" 이 울리는 밤 1시 40분에....형민이를 부민동에 보내 두고...두 사람은 열심히 자기에게 주어진 우리 가정의 일을 하면서 함께 즐거워 합니다.

 

이 사진은 지난 번 "노래를 부르세요" 에 실린 내용이었던 본 교회의 성가경연대회에서 선화와 제가 함께 찬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침 제가 노래하는 장면이군요...저희 부부가 앞으로 계속 해야 할 일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찬양의 도구가 되어 섬기는 것입니다. 선화가 가진 건반의 재능을 사용하고 제가 가진 적은 재능이 사용되기를 원해서 자주 이것에 대해 계획하고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