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빗줄기와 천둥번개가 지나간 자리엔...

 1999년 9월 10일 금요일

비바람 소리에 눈을 떴다. 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금요일 아침에는 내과 MGR(부산시내 내과 개업의와 내과 의국이 모여 증례를 보고 토의하는 자리)이 있는지라  7시 20분 전에는 출근해야 한다.

시간을 맞춰 출근하려고 마루문을 여는 순간  마당에 퍼붓는 빗줄기들이 내 앞을 막았다. 20분부터 내리는 비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퍼붓는 것..그대로였다.

이내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쿠르릉 쾅....콰광" . 번개도 지나갔음이 분명하다. 난 마음 속 한구석에서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개와 천둥소리는 내 죄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MGR을 마치고 내시경실에서 근무하는 중 음성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난 내시경실 근무라 거의 하루 종일 핸드폰이나 015 무선호출을 할 수 없다. 원내에는 모두 012밖에 접속이 안되게 때문에....음성을 들어보니 후배 태성이가 친구 상헌이 홈페이지에서 나와 선화의 결혼을 축하하는 곡 가사가 올라와 있는 걸 봤다는 거였다.

 그 날 밤, 난 매일 그렇듯이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하루에 한 번은 꼭 접속한다.) 그런데 웬 일....접속이 안되었다. 이전에도 가끔 접속이 안될 때도 있지만 대개 2-3번이면 통하는데 컴퓨터를 몇 번 다시 켜더라도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메시지만 나올 뿐이었다.  모뎀 단자에 연결되는 전화선에 바로 전화기를 연결해 연결선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난 그렇게 많이 내린 비 때문에 컴퓨터 안에 습기가 차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고..내일 다시 접속하기로 했다..상헌이가 적었다는 결혼 축하곡 가사 보는 걸 연기해야만 했다.

 내 모뎀은 한솔전자에서 96년에 만든 28.8K 모뎀이다. 지금은 모두 56K PCI 모뎀을 사용하고 있지만 난 아직도 28.8K ISA 방식의 모뎀이다.

내 컴퓨터의 CPU는 Pentium 150MHz이다. 요즘은 pentium보다 나은 MMX, 그보다 더 나은 Cerelon, 그보다 나은 Pentium-II 가 나오는 시대지만 2년 반 전부터 이 컴퓨터는 부분적인 update를 거치며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최근에  Cerelon 400MHz , 32MB RAM 컴퓨터가 100만원밖에 안되는 걸 보니 96년에 300만원 가까운 돈을 줘야 했던 이 CPU도 이제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컴퓨터가 겪은 update의 내용은 Sound card가 Sound blaster 64AWE를 바꾼 것과 CD ROM driver를 8배속에서 32배속으로 교체한 것이다.  여러 차례 Mo dem을 56K로 update 하려고 생각하다 약 3개월 전에 세진에서 56K PCI 모뎀을 산 적이 있었지만  pentium 150은 PCI 모뎀을 지원하질 못했다. 물론 안정성에 있어서는 PCI보다는 ISA가 우수하지만 지금 추세는 CPU에서 모뎀을 제어하는 PCI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따라서 ISA 모뎀은 더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어 세진컴퓨터에도 없었다.

그 후 난 28.8K ISA모뎀에 만족하며 약간 늦은 접속 속도에도 불평없이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지내고 있는데............... 이제 이 모뎀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 날..........

 약간의 근심을 가지고 다시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넷츠고를 통한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만 나올 뿐이다. 제어판에 들어가 모뎀의 추가 등록정보를 확인해 모뎀에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니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 었다. 이렇게..........1시간을 보내다가.... 현주 컴퓨터에 전화를 하고 현주 AS에서 모뎀을 가지고 오라는 말을 듣고 오후에 부산진까지 가야 했다. 가져 온 모뎀을 보더니 그 직원은 28.8K  모뎀은 이제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얘기하면서 분명히 이번에 내린 비와 번개로 인해 많은 전류가 전화선을 통해 모뎀으로 흘러 들어와  모뎀이 상했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그 세찬 비와 번개 속에 내 모뎀은 전화선에 연결되어 있었다.............

 한창 정보타운에서 56K ISA 모뎀을 4만원에 살 수 있었다. 세진에서 56K PCI 모뎀이 5만원인 걸  생각하면 싼 값에 산 거다. 어차피 26.6K를 upgrade하려고 했었는데 ....잘 된 셈이다. 덕분에 56K ISA방식 모뎀을 구할 수 있었으니 ....새옹지마라고 할까....

그리고 상헌이 홈에 접속하고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비와 천둥, 번개가 있는 날은 만일의 일을 위해 모뎀과 전화선을 분리하는 게 꼭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 이번 일이었다. 새로 산 56K 모뎀 설명서 앞장에도 비와 번개가 치는 날에는 반드시 모뎀을 전화선에서 떼 놓으라는 주의가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