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너무 소중한 분...할/아/버/지

지금부터 전...지난 10월... 제가 겪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웠던 힘든 시간들에 대해 적을까 합니다. 아마 독자들 중에는 형민이의 출산으로 인해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을 저희 가정에 무슨 위기가 있었을까?...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형민이의 출생을 비롯한 일련의 일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느끼게 한 시간들이었습니다만  선화의 퇴원 후 딱 일주일 뒤....또 다른 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지난 몇 주동안 이번 일을 요약해 보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큰 감정의 굴곡이 있었기에....담담하게 적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민이와 관련된 글을 이 홈에 올리면서도...정작 제 맘에는 더 중요한 일을 가슴에 파 묻어 두고 공개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형민이의 출생처럼 모두가 축하해 줄 만한 일이라면 어렵더라도 용기를 내어 적어 볼 수 있었겠지만...이번 일은 많은 이에게 알리기에도 망설여지는 일이기에 더더욱 적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사태를 요약해 보려 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아울러 다른 지체들에게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고민거리를 나눠 드리려고 합니다.

10월 16일....월요일...선화가 처가에서 몸조리를 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 날 아침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그 때... 조용한 집 안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형민이 출산 후 지난 한 주동안 선화의 출산과 이동으로 인해 여기 저기 다니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지쳐 있던 제게 들린 소식은 그야 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김해에 계시는 숙모님의 다급한 음성은 할어버지가 토혈(피를 토하는 것)을 하시고 쓰러지셨으니 급히 와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희 집의 기둥이십니다. 지금도 김해에서 내동 가정의학과 의원을 개원하고 계시고 하루에도 5-60명의 환자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벌써 78세의 연세시지만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움직이십니다. 결혼전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한 집에서 함께 살아왔기에 저희 남매에게는 할아버지의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이셨지요.. 손자들의 주민등록번호까지 따로 적어 보관해 두시는 자상한 할아버지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안정되고 자랑스러운 느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존경하는 인물을 말하라는 질문을 받으면.. 전...언제나...."할아버지입니다."라고 얘기했었습니다. 어린 제 눈에도 이순신 장군보다... 아침 일찍 나가셨다 저녁 늦게 소독약 냄새를 풍기면서 집에 들어오시면서.....늘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할아버지가 훨씬 존경스런 분으로 다가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테니스를 즐겨 하십니다. 70세가 넘어서도 테니스 코트를 떠나지 않으셨지요...늘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훈아...난 아무리 뛰어도 숨이 안 차..끄떡없어...." 당시 부산의대에는 테니스 코트가 있었습니다. 전 학생시절...그 테니스 코트에서 아침마다 운동하시는 할아버지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경기를 하더라도....이 쪽 사이드 라인에서 저 쪽까지....달려가 공을 받아 넘기는 기민함을 보이시는 나이 드신 분이 우리 할아버지이신게 너무 자랑스러웠지요.. 제가 섬기는 서부산교회의 은퇴장로님이시기도 한 할아버지는 말 수가 적으시지만 신앙의 중심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조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한 때 할아버지,할머니를 포함한 전 가족이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가정예배 시간마다 늘 고정된 찬송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찬송가...."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널 미워 해치는 원수라도 언제나 너그럽게 사랑하라.." 할아버지는 늘 예배 시간에 이 찬송가를 부르자고 말씀하셨고 우린 어릴 적부터 이 찬양을 유독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자라왔습니다. 누구에게도 섭섭한 말을 하실줄 모르시는 분....교회의 화평을 위해서라면 어떤 부당한 대우도 참으시는 분...그 분이 할아버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진 것을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약 5년 전부터입니다. 이전에 개업하시던 장림을 떠나 김해로 가셔서 삼촌이 개업하고 있는 산부인과 건물에 입주하셔서 내동의원을 시작하시던 시절 근처부터...... 식사량이 많이 줄어 드시고 상복부가 아프다는 얘기를 가끔 하셨습니다. 몇 년 뒤에는 심지어 변에 피가 함께 섞여 나왔다는 얘기까지 들렸습니다. 소화기 내과를 전공하는 제가 이런 얘기를 듣고 그냥 지나갔겠습니까? 할아버지께 내시경 검사를 여러 번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위궤양임을 잘 아시는 할아버지는 내시경 검사를 굳이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완강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금식과 함께 유동식으로 그 때마다 그냥 지나갔습니다. 의사들은 자신의 몸에 생길지도 모르는 질환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입니다.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오히려 오진과 진단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쨌든 할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위기감이 시작된 것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누구도 할아버지가 나쁜 병에 걸리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의 그 분의 삶을 볼 때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는 깨끗한 삶을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혹시나...'하는 생각이 들었더라도......'우리 할아버지가 설마...' 하는 생각으로 지나온게 사실이니까요.......

숙모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고 김해까지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부산 전국 체전 홀짝제 운행 때문에 제 차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급히 달려가 할아버지 병원에 도착했을 때.....할아버지는 수액을 맞고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달려 오기 전에....먼저 할아버지의 순환 혈액량 유지를 위해 수액을 주사할 것을 부탁했었는데 간호사가 이를 시행했더군요...

할아버지는 토혈과 함께 어지러워 걸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진료실에 들어가시다가 쓰러지셨답니다. 수액이 정주되면서 할아버지의 혈색이 돌아오고 의식이 좀 돌아오자...그제서야 그 동안 그렇게 내시경 검사를 거부하시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고 느끼셨는지...내시경 검사를 받겠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수액을 맞으면서... 부산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내시경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파업 중이지만 전임의 선생님 몇분이 응급 내시경 검사는 시행하시기 때문입니다....파업 전에는 저도 내시경 실에서 하루 15-20여개의 내시경 시술을 직접 하고 숱한 조직 검사를 시행했지만 할아버지께서 내시경 검사를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고 불안하더군요...

78세...토혈...이렇게 말하면 소화기 내과 의사라면 누구나...위암을 먼저 떠 올리기 때문입니다. '설마.. 우리 할아버지가 그런 병에.....' 할아버지가 뱉어 놓으신 피묻은 화장지를 보면서...좀 더 일찍 억지로라도 계속 내시경 검사를 권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면서....'그래도 검사를 해 보기 전에는 모르지....' 하고 스스로를 달랠 뿐이었습니다. 계속 재발되는 양성 궤양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 없는 상황 중에서도 할아버지는 제게 김밥을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셨고... 침대에 누워 혈압을 올리기 위한 수액을 맞고 계시면서도 계속 130살까지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30살이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늘 힘에 겨운 수고를 하시면서도 정작 자신은 제대로 못 돌보신 할아버지가  지난 세월동안 늘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해 애쓰셨던 모습이 생각나 슬프도록 안타까왔습니다.

부산대학병원 내시경실에 도착한 것은 점심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전임의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내시경을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천번 여러 사람의 위 안을 들여다 본 저로서도 할아버지의 검사는 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시경 검사 전에 할아버지께 내시경 시숣 방법에 대해 설명 드리고 옆으로 눕혔습니다. 그리고 내시경을 진입시킵니다. 식도에 들어왔습니다. 정맥류와 같은 출혈의 원인은 보이지 않습니다. 위 입구로 진입합니다. 위 내로 들어가자마자 궤양을 동반한 종괴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표재성으로 확장되고 있는 불규칙한 점막 융기......내시경을 시행하는 술자와 저...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교수님...모두......"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육안적으로 볼 때 위암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조기 위암이 아니라 육안 소견으로 B-3 의 진행성 위암이라 더 안타까왔습니다.

궤양의 기저부에 혈관의 노출이 보였고 어려운 각도에서 힘들게 혈관을 없애기 위한 알콜 경화 요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위암이라고 진단하기 위해서는 조직 검사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조직에서 암 조직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육안으로 볼 때 암이라고 하더라도 진단할 수 없으니까요....그러나 할아버지는 현재 출혈을 하고 계신 상태라 조직 검사를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억지로 시행한다면 더 많은 출혈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일 금식한 뒤 다시 검사할 수밖에 없었지요....내시경을 빼고 할아버지를 부축해 침대로 옮겼습니다. 내시경실 밖에는 부모님과 숙모님이 결과를 궁금해 하고 계셨고....전 다시 한 번 내시경 화면을 확인한 뒤.. 다른 선생님의 의견을 묻고....내시경 실 밖의 식구들에게 할아버지가 위암임을 밝혔습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식구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가족에게 얼마나 큰 충격입니까? 내시경 실 밖의 식구들은 저마다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눈물이 맺히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믿기지 않았습니다. 3일 후에 다시 내시경을 시행하면 아마 그 병변이 눈 녹듯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암이라는 얘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인하고 싶었습니다.

침대에 누우신 할아버지께 가 보았을 때....웃고 계셨습니다. 내시경이 처음 진입할 때만 제외하고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실력이 좋다고 신기해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배우실 때의 내시경은 지금과 같이 잘 휘어지는 가는 섬유질이 아니라 곧은 쇠막대기였습니다. 전 검사가 잘 되었고 출혈하는 혈관도 잘 잡혔다고 말씀드린 뒤 10층 병실로 할아버지를 입원시켰습니다.

가족들이 이 사실을 받아 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가족 구성원 저마다 전통적인 접근으로 이 사실을 해석하려 했습니다. '내가 가진 죄가 할아버지의 병을 초래했다...하나님은 내게 회개하길 원하신다...'

입원 후 몇 가지 검사가 시행되어져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확진을 위한 조직 검사이고 위암이 얼마나 진행했는지 알기 위한 복부 및 골반 CT 촬영입니다. CT촬영의 목적은 위암이 위벽을 뚫고 나갔는지 주위 장기에 파고 들고 있는지...임파선은 얼마나 침범했는지...과연 수술은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입원 3일째 조직 검사를 위한 내시경 검사가 다시 시행되어졌고 복부 CT도 촬영했습니다. CT를 촬영하러 모시고 가면서...할아버지께 용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사태가 심각한 것을 눈치채셨을지도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조직 검사가 나와야 진단할 수 있다고 말해 놓고서 CT를 먼저 찍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CT 촬영기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할아버지를 유리 밖에서 보면서 CT가 만들어 내는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간이나 복강 내 다른 장기게 전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CT 필름이 나오자 말자 진단방사선과 교수님께 달려가 판독을 의뢰했습니다.

" 위 근처의 지방 조직까지는 종괴가 침범하고 있지만 인접 장기를 침습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고....위 주변부 임파선은 침범 되어 있고 내장동맥 근처의 임파선까지 커져 있다.....하지만 수술을 해 볼 만하다....."

CT 상 확인된 병기는 T3N2M0 ...stage IIIB 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하면 3기 말인 셈입니다. 만일 T1이라면...이것은 위벽 중 점막과 점막하 조직까지만 암 종괴가 침범하고 있는 것인데...이를 조기 위암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임파선으로 암세포가 퍼져 있을 가능성도 적고 더구나 전신에 미세 전이가 있을 확률도 적어서 조기 위암 상태에서 수술을 받게 되면 완치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물론 조기 위암은 증상이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가서 위암을 발견했다고 하면 이미 진행성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할아버지의 경우도 토혈과 상복부 통증이라는 증상을 가지고 계신 셈이지요....

하지만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완치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암 덩어리를 몸 밖으로 가능한 완전히 분리해 내는 것입니다. 만일 위암이 주변의 간이나 대장이나 췌장으로 침범해 들어간다면 수술적 방법으로 암덩어리를 완전히 분리해서 들어 내기 불가능합니다. 할아버지의 경우는 다행히 위벽을 다 침범하고 위 주변 조직까지 진행했지만 주변 장기를 침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요 덩어리를 제거할 수 있고....현재 나와 있는 가장 좋은 치료법인 수술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위암의 경우는 방사선 치료와 약물 화학 요법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물론 술후 보조적 화학요법을 주로 시행하고 있고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틀 후에 나온 조직 검사는 signet ring cell carcinoma였습니다. 위암 중 성상이 나쁘다고 알려져 있는 종류입니다. 10월 16일에 입원하신 할아버지는 19일 날 퇴원하셨습니다. (16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 1주년이 되는 날이고 18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나 선화나....이런 날들에 대해 축하할 정신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우울한 기념일들이었습니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 진단은 이루어졌고 수술에 필요한 기본 검사도 시행했습니다. 문제는 가족들이 78세의 할아버지가 위전절제술이라는 큰 수술을 받으실 수 있도록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김해의 병원이 궁금하셨는지...퇴원한 다음 날에도 환자를 보셨습니다.

10월 21일 토요일....전국에 흩어져 있는 삼촌들이 김해에 모이셨습니다. 제가 온 가족들에게 할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가장 유효한 치료법은 수술임을 말했고...만일 그대로 둔다면...곧 주변 장기의 침습으로 인한 증상과 통증이 발생할 것임을 알렸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말씀은 이영훈 전도사(동생입니다.)가 전했습니다. 십계명 제 일 계명이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우리의 도움이 전적으로 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 것임을 전했습니다. 모두가 진지하게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영훈이가 얘기하더군요..."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아버지께 아뢰라.....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함께 기도했습니다. 누군가가 기도 시간에 소리 내어 울더군요....우리 가족은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지만....성숙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 말을 듣고 수술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언하셨습니다.... 뼈와 앙상한 가죽밖에 남아 있지 않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제 마음은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인 10월 23일.......전 고신대 병원에 있습니다. 일반외과의 박영훈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박교수님은 할아버지와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이제 은퇴가 다가오는 노교수님이시지요...송도제일교회 시무장로님이시기도 하시고.....할아버지와 같은 동문이고 할아버지는 박교수님의 실력을 믿기에 몸을 맡기기로 하셨습니다.  전 CT 필름과 조직을 가지고 가서 보여 드리고 여쭈었습니다.

박교수님도 CT 필름을 가지고 고신대 진단방사선과에 가서 의논하시고 난 뒤....일단 수술할 수 있을 것 같으니....근치적(radical: 남아 있는 암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목적으로) 수술을 시행해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5동 1105호에 입원하셨습니다. 송도 바닷가가 보이는 병실입니다. 그 동안 할아버지는 음식량이 작고 운동량이 많으셨습니다. 아마...암조직도 제대로 자랄 수 있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제대로 자라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수술을 받기 전에...체중을 불리고 몸을 만들고 나서 수술날짜를 잡게 될 것입니다.

이 즈음에 전......제대로 전문의 시험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적 재앙인 잘못된 의약분업 시행으로 인해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 있는마당에 언제 치룰 지도 모르는 시험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힘들었고.....형민이의 출산 후...처가집에 가 있는 선화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개금으로 차를 몰아야 했고....시시각각 변하는 할아버지의 검사 소견과 식구들의 불안한 맘을 떨치기 위해 송도 고신대병원을 밤낮 할 것없이 출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다녀오는 드럼 학원에서의 시간이었습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체중도 줄고 얼굴에 살도 빠진 기간이었습니다. 어쨋든 이때는 차를 몰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간효소치 상승으로 수술이 연기되다가 11월 1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전날은 10월 마지막 날인 31일이었습니다.병원에서는 수술을 시행하기 전 보호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수술 전....찾아 오신 몇 분의 목사님과의 예배도 참여했습니다.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김해의 환자들을 얘기하시면서 할아버지는 다시 일어서야만 할 이유가 있음을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10월의 마지막 날....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아버지를 유심히 바라고 돌아 왔습니다.

할아버지의 담당 교수님은 전공의 파업으로 병원에 의사가 부족하니...수술 후 첫 날밤은 제가 옆에서 지켜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제게 할아버지 곁을 지켜 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저 역시 내과 의사로서 술 후 첫날 밤을 새우며 할아버지 옆에서 경과를 지켜 보기로 했습니다. 술 후 1일이 가장 위험하고 그 후에는 일주일 째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11월 1일 할아버지의 수술 날......4년차 공부방에서는 슬라이드 공부가 이어졌습니다. 제가 슬라이드 강의를 해야 했고 마치는대로 고신대로 향했습니다. 오전에 수술이 무사히 마쳤다는 전갈을 이미 받았습니다. 보통 4-5시간 걸리는 수술인데......2시간도 안 되어 마쳤다는 얘기를 들었고 박영훈 교수님이 깨끗하게 잘 되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침대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수술 후 이틀 정도는 수술 부위의 통증으로 인해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고 보통 소변줄을 통해 배뇨를 유지하는데....할아버지는 소변줄을 빼라고 말씀하시고...일어서셔서 소변을 받고 뇨량을 기록하고 계셨습니다.

수술 후에는 소변량의 유지와 기본적인 생체 징후(혈압,맥박,체온,호흡수)의 모니터가 필요합니다. 술 후 신장 기능이 악화되는 것이 흔하기에 소변량은 특히 중요합니다. 만일 술 후 복강 내 출혈이 발생한다면 혈압과 맥박에 변화가 올 것입니다. 소변줄을 거부하셨기에....밤에도 일일이 일어나서야 했고.... 마취가 풀림에 따라  점점 심해지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소변을 받아 요량을 측정해야만 했습니다. 소변량의 유지를 위해 수액이 많이 들어가야 하기에 소변 횟수도 많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할아버지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기에 고통 중에서라도 원하시는대로 해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당 30cc의 소변이 유지가 되지 않으면 여러 조치가 취해져야 함에도 소변줄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고....3시간 마다의 나오는 뇨량을 그냥 초조하게 지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4시까지 3시간에 75cc 정도의 소변이 배출되었습니다. 약간 걱정이 되는 수치였습니다. 좀더 많이 나와야 하는데.......다행히 아침 6시에 120cc가 나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전 그날 밤.....처음으로 할아버지가 아파서 말씀을 제대로 못하시고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간호사가 가져 오는 진통제를 기다리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얼마나 큰 고통일까요? 선화의 제왕 절개를 지켜 본 저로선....위를 다 절제해야 하는 큰 수술을 시행받으신 고령의 할아버지의 고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할아버지를 곁을 지킨 안산의 삼촌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성훈아...그래도 너도 복을 받았고 할아버지도 복을 받았다......성훈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처음 받으신 분이 할아버지신데......이제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몸을 직접 손으로 받으신 손자에게 맡기셨으니....아브라함의 축복이 아니겠니......"  그 말을 듣고 눈을 감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뵈니 눈물이 났습니다.

'날 세상에 태어 나도록 도와 주신 의사 선생님이 할아버지였는데....이제 내가 할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토혈하시며 입원하게 된 때에 내가 부산대학병원.....그것도 소화기 내과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과 그렇기에 위급한 순간에 특별한 절차 없이 내시경실에서 바로 시술을 받을 수 있었고......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제가 직접 주치의가 되어 섬길 수 있었다는 것......이 모든 것이 내게 주어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가 수술 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경과는 아주 좋습니다. 어떤 이는 할아버지의 연세도 있으시니...이제 위암으로 인해 수명이 단축되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체내에 미세전이가 있다고 봐야 하지만 체력에 문제도 있으니 다른 치료를 추가하는 것은 힘들거라고 얘기합니다.  

분명히 수술을 무사히 마치신 할아버지의 몸 속에는 커다란 주된 암덩어리는 완전히 제거되었을지 모르지만 미세 전이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가족들과 할아버지가 해야 할 일은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하고 할아버지에게 허락하신 남은 시간들을 소중하게 아끼고 아름답게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항상 암세포가 생기고 있습니다. 벽에 기대고 있어도.....라돈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나오고......비행기를 타고 가도 CT의 10배에 해당하는 방사선에 노출됩니다. 아니.....그냥 이 세상을 살아가기만 해도 생활 방사선에 의해 우리의 DNA는 손상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위협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방법은 손상된  유전자를 복구하는 수많은 미세 기전들의 활동과 natural killer cell, 임파구와 같은 경찰 세포들이  우리 몸에 떠 다니는 비정상 유전자를 가진 세포를 제거하는 기능들을 통해 이뤄집니다. 어느 날....이 일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면.....우린 암에 걸리게 됩니다. 아무리 비타민 C를 많이 먹고...불에 탄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기전이 언제 어떻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병원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할아버지의 몸 속의 면역 세포들이 활성화 되어 암세포들을 사멸시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수술을 통해서...약을 통해서...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병을 낫게 하십니다.

저 역시 병원에서 수 많은 종류의 암환자를 상대로 항암 화학 요법을 시행하고 수술을 의뢰하기도 했지만....이 모든 방법을 통해  병을 낫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하나님 뿐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생노병사를 주관하십니다. 할아버지의 입원과 수술을 통해 앞으로 제가 환자를 돌보는 자세에 큰 변화가 올 것임을  기대합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여기저기 다니며 여러 검사들을 받으며....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많습니다만....그 핵심은  우리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맡겨진 환자를 돌보자는 것입니다.

아직 모든 것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할아버지는 퇴원하시겠지만.....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전 기적을 보기 힘든 사람중에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너무 기적같은 일을 두고 자주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싶으면 억지로 하나님께 들어 달라고 조르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애에서도 몇 번의 그런 모험은 있었고....그 때마다 내게 다가온 응답은 나로 하여금 평생 그 분을 위해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힘이었습니다. 전 또 다른 기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내 기도가 힘이 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해서 내가 바라는 것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할아버지.....내가 가장 존경하는 그 분을 두고 .......감당하기 힘들지만 감당해야만 할 기도제목이 이미 내게 주어졌음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선화와 저의 요즘 가정예배 본문은 욥기입니다. 욥은 그에게 고난의 원인은 죄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하는 친구들을 향해 그의 괴로운 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 동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시고 서쪽으로 가서 찾아 보아도 하나님을 뵐 수가 없구나. 북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 분을 뵐 수가 없고 남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 분을 뵐 수가 없구나.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 발은 오직 그 분의 발자취를 따르면 나는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만   성실하게 걸으며 길을 벗어나서 방황하지 않았건만! 그 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늘 마음 속 깊이 간직하였건만! "(욥기 23:8-12)

제게는 살아 있는 성인으로 보이셨던 할아버지의 위암 소식은 참으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던져 주고 있습니다. 전...할아버지 처럼 살 자신이 없습니다. 그 분처럼 이웃을 위해  바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만큼 아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때에....그 분의 입원과 수술을 통해 더 하나님을 무섭게 바라 보게 되었습니다. 전 욥처럼 자신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다고 말할 자신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게 큰 병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  언제 허락하실 수 있을까?........

할아버지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앞에 제대로 고개들 수 없는 나의 삶이 얼마나 더 조심스럽고 겸손해야 하는지......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의약분업으로 인한 혼란상이 내 앞을 스쳐 갑니다. 전공의는 병원을 전면 철수했습니다. 평생 환자를 보시며...싫은 소리 한 번 안하셨던 할아버지는 위암으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전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욥기서 끝을 미리 한 번  펼쳐 봅니다. 욥은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 욥이 주께 대답하였다.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 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욥기 42:1-6)

하나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고 그 분께 주장을 펼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욥...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 회개해야 한다는 욥의 이야기가 고신의료원 5동 1102호에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한 없이 답답해 했던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