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훈이와 선화.....그리고 형민이...

힘든 출산의 과정을 겪고 난 선화는 출산 당일... 하루 종일 심한 두통과 구역질로 인해 제대로 누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경막 외 마취 기운이 조금 남아 있어서...몸은 옆으로 조금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세에서 계속 까만 비닐 봉지에다 대고 구토를 할 정도로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마취 때문인 것 같은데....경막 외 마취에 사용되는 부피바카인, 펜타닐에 선화가 아주 민감한 모양입니다. 분만 유도시에도 경막외마취 후 계속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했었습니다. 게다가 수술이 마쳐갈 무렵 사용한 펜토탈도 지금과 같은 증상에 영향을 끼친 것처럼 보입니다. 복부 수술후 장운동이 아직 정상화 안 되어 있는 상태라 더욱 증상이 심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갑니다. 첫째 날...주로 가족들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기뻐하셨습니다. 이제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시겠지요...선화의 아픔과 눈물이 있었지만  그 후의 시간은 새 생명의 탄생으로 인한 축하로 가득찬 시간이었습니다.  입원해 있는 기간동안.....장모님은 선화가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을 때까지 병실에 계셨습니다. 주로 낮시간 동안....

전 밤에는 2인실에서 선화와 함께 잘 수 있었습니다. 파업 기간 중이라 2인실에 환자를 다 넣지 않더군요..덕분에 가족실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이불 하나 깔고 서로 마주 보며 얘기하며 잠을 청합니다. 물론 기도하고 때론 정독집도 읽고요....분만 후.... 선화와 저의 관계(relationship)는 더욱 친밀해진 것 같습니다. 서로 보고 말없이 웃기만 해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 고통의 시간을 함께 건너 온 동반자이기 때문이겠지요.... 거의 이틀동안 자지 못해 얼굴이 붓고 노랗게 변해 버린 내 얼굴을 보며 선화는 "오빠가 있어서...좋았어요..."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 보통 수술 후 5일째 퇴원한다고 합니다. 수술후 2일까지 선화는 잘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있던 선화는 새로 태어난 우리 아기가 너무 보고 싶었나 봅니다. 술 후 2일째....아프기 때문에 미리 진통제 하나 맞고 그 약기운으로 휠체어에 타고 나가 신생아실로 가서 유리창을 통해 아기를 확인했습니다. 2800g....작은 아기가 더 귀엽다고 작은 아기가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선화의 말대로 우리 아기는 작고 예쁜 아기입니다.  

병원에서의 식사는 술 후 2일까지 미음이 나왔고 저녁부터 죽이 나왔습니다. 죽이 나올 때는 미역국도 나오고....죽이 2번 나온 뒤 밥이 나오더군요....하지만 퇴원 후 처가집에서 처음 식탁을 대했을 때...병원밥과는 비길 수 없이 맛있다고 선화가 얘기한 걸 보면...병원밥은 별로 맛이 없나 봅니다...

술후 2일부터 4일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저희 병실을 찾아 주셨습니다. 새벽별의 많은 사람들과 8병동 간호사들.서부산교회 성도들이 많이 찾아 오셨습니다. 가족들 이외에도...현국이와 기욱이 부부...익진이와 상헌이...병재와 재현이 형...병득이와 영상이와 수미...성남이를 비롯한 8병동 간호사...주원이를 비롯한 5병동 간호사...강선화 간호사...내과 4년차 선생님들...아마 제가 없을 때 오신 분들은 선화가 알고 있겠지요...지난 주일에는 서부산교회의 중고등부,대학부,2청년회의 많은 분들의 방문을 받고 난 뒤....제 몸이 녹초가 될 정도였습니다.  술 후 3일째 서부산교회 목사님과 권찰님들이 오셔서 병실에서 축하예배를 드리셨습니다. 4일째에는 정한규 목사님이 방문하셔서...작명법에 관한 특강을 늘어 놓고 가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 오시고 저희 홈에 많은 분들이 남기신 축하 메시지를 본 선화는 참 고마워 했습니다.(저희 방명록에 올라온 글들을 제가 프린트해서 병실에 누워 있는 선화에게 보여 주었거든요....)

생후 8일만에 출생신고를 해야 하기에 새로 태어난 우리 아기의 이름을 짓기 위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물론 출산을 앞두고 생각은 해 보았지만 확실히 정하진 않았지요.... 할아버지,할머니께서 우리 집안의 항렬을 따라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집안에서는 "토->금->수->목->화"의 순서대로 돌림자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물론 '토'나 '금'의 단어를 바로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단어의 이미지와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면 됩니다. 우리 아기가 사용해야 할 단어는 '화'입니다. 불 '화' 이지요...그래서 불의 이미지인 빛..밝다..아침...붉다...뭐 그런 한자를 사용해야 하고... 반드시 그 돌림자를 이름의 중간에 두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부친대의 돌림자는 '수'이고 증조부 때는 '규'입니다. '규'는 '토'를 사용한 한자이지요...흙 '토'를 아래 위로 붙인 게 '규' 인 걸 보면 '규'가 '토'와 관련이 있는 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 형제의 돌림자인 공 '훈' 자도 나무 '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항렬을 정해 두면.....같은 본관을 가진 사람의 이름만 들어 보더라도 대강 .....나보다 몇 대 위인지...밑인지를......쉽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그래서 집안의 법통도 서고....

하지만 저나 선화는 이런 것에 얽매이지 말고 복음적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찬'(예수님 찬양), '하은'(하나님 은혜) 뭐..이런 식으로 짓는 거지요.... 그렇게 고민하기를 3-4일.....술 후 4일 저녁...

막상 이름은 쉽게 정해졌습니다. 저희 할머니께서 이름을 몇 개 지어 주셨고 전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었습니다.  불 '화'의 이미지를 따라가서 밝을 '형' 자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끝 자는 옥돌 '민'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옥돌 '민'자는 그 날 처음 보았습니다. 임금 '왕' 변에 백성 '민'자가 붙어 있는 한자더군요....결국 이형민 이 제 아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형민이란 이름을 듣고 보니...선화나 저나 그 이름이 예쁘게 들리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밝은 옥돌...옥돌을 더 풀면 왕의 백성...즉, 밝은 왕의 백성...더 나아가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백성...뭐 이렇게 확대 해석할 수도 있고....좋은 이름이었습니다. 전 이형민이란 이름으로 내일 출생신고를 할 예정입니다.

아기의 출생 이후...새로 생긴 문제점은...모유 수유였습니다. 선화는 술후 3일째까지...병실에 있었고.....신생아실의 형민이는 젖병을 통해 '아기사랑'을 마음껏 먹었습니다. 그리고 3일째...우린 선화의 젖을 아기에게 먹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젖병 젖꼭지에 익숙한 형민이는 선화의 젖을 빨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직 젖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힘이 더 드는 탓도 있겠지만...

선화의 젖도 아직 모유를 충분히 내고 있지 않기에 더운 수건으로 맛사지하고....모유를 짜서 얘기에게 먹여야 했습니다....이런 일은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된다는 것은 생각외로 많은 일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생아인 형민이는 생후 4일째 까지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빛은 감지하는 것 같은데....보통 신생아들은 태어난 직후에는 제대로 보거나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며칠이 지나야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고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생후 4일째까지는 분명히 형민이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옆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눈을 뜨지도 않고 눈을 떠 있어도 쳐다 보지 않았습니다. 생후 5일째...약간 사물의 형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눈 앞에서 손을 이리 저리 움직이니까...약간 미세한 눈동자의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도 첫 2-3일동안에는 바로 보거나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10월 10일...형민이는 선화의 퇴원과 함께 선화의 친정으로 떠났습니다. 산후 조리를 하는 선화와 함께 이제 한 6주간 처가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선화와 짐을 함께 싣고 장모님을 모시고 처가집으로 운전을 하고 갔습니다. 집에 들어가서도....초유를 짜서 먹이고 ....우는 형민이를 달래고 재우느라......바빴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학장동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매일 처가집과 학장동을 왕복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식사와 잠자리를 본가인 부민동에서 해결할 날도 있겠지만...그래도 제가 있기 편하고 이것 저것 하기 좋은 곳은 학장동 우리 집입니다.

우리에게 닥쳤던 엄청난 사건이 이제 지나가려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출산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많은 신혼 부부들과 약혼한 커플들은 이 일을 두고 미리 많이 기도하고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ps) .....선화가 입원해 있는 동안 형민이를 돌봐 주신 부민동의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밤새 잠을 설치시며...우유를 먹이고 아기를 달래야만 하셨습니다.    2000.10.10

10월 4일: 유도 분만을 위해 분만실에 입원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 오후 4시 정도....이제 누워 있다가 자정을 넘기면 유도 분만을 시작하게 되겠지요....앞으로 닥칠 일이 어떤 일인지...알지 못한 채 승리의 V를 그려 보이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10월 6일: 술 후 1일째....부산대학병원 518호에 누워 있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큰 일을 치루고 난 뒤의 모습이지요.....

이 날은 앉을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침대를 떠나 본 것은 저녁 때...아기가 보고 싶어서 진통제 하나 맞고...휠체어 탄채...신생아실에 간 것이었지요....

세수는 못하고...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사진 찍는다고 쳐다 보고 있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10월 7일: 생후 2일된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사진 찍을 때까지만 해도 이름이 없었지만.....

지금은 얼굴에 있는 붓기가 다 빠지고....생리적 황달이 조금 와 있는 상태입니다. 형민이의 사진은 앞으로 계속 보실 테니까....조금만 기다리세요...

생후 2일된 형민이....하루 중 23시간 이상을 자고 있을 때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