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느낄 때....

2000년 10월 1일 아침..."삐리 삐리 릭.....삐리 삐리 릭...." 전화벨 소리가 주일 아침 단잠을 자고 있던 우리를 깨웁니다. 탁자위의 시계는 AM 7:30.........한 달 전부터 몸이 무거워진 선화가 유치부 교사를 쉬게 되면서 주일 아침은 여유가 있었는데.... 난데없는 전화벨 소리가 아침을 일찍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전화 수화기를 처음 든 사람은 선화입니다.  "여보세요.....예?......예.......오빠, 전화 받아 보세요. 친구라는데....." 잠이 덜 깬 선화는 내게 수화기를 건네 주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 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였습니다. "성훈이니?...나....00야...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해서 미안하다....너희 부모님께 전화해서 그 곳 전화번호를 알아 내 전화한거야..." 핸드폰 목소리인 듯 보였습니다. 소리가 조금 흔들리고..... 그런데...뭔가 급해 보이는 음성이었습니다. "성훈아.....나 좀 만나줘야겠다.....나 좀 심각한데....나...지금....이혼 얘기.... 오가고 있다....지금 부산 내려갈 건데....네 의견이 필요해......오늘 언제쯤 시간이 날 수 있을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주일날 아침... 걸려 온 전화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한 자매의 SOS였습니다. 주일... 저의 하루는 빡빡하게 돌아갑니다. 어느 시간 하나 20분이상...여유가 없고......적어도 이런 얘기라면 대여섯 시간은 걸릴 텐데....그녀는 지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거라고 말하면서 .....부산에 도착하면 12시 되기 전일 것 같다고 얘기합니다. 한 참을 생각한 끝에.....오전 예배 마치고 바로.....12시에 시내 모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안식일에  구덩이에 짐승이 빠진다면 끌어 내지 않겠냐고...말씀하신 예수님 말씀을 떠 올리면서...한 사람의 생명을 다투는 일이란 생각에 그렇게 약속을 잡았습니다.

수화기를 내려 놓고 나자....선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삐죽거렸습니다. '...이렇게 집에 전화를 막 해도 되는 건가....내게는 대학원 친구라고 바꿔달라고 해 놓고선....' 그래도 이해심 많은 선화가 이해해 주었습니다. 내 얘기를 듣고....오히려 혹시 만나면 돈이 들지도 모른다고 2만원을 지갑에 넣어 주는 아량도 베풀어 주었습니다.

자매는 시내 모 유명 교회 대학부에서 훈련을 받았고 학생 시절에 이미 러시아 선교훈련을 다녀올 만큼 세계 선교의 비젼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OM 수련회를 참가할 수 있도록 수속해 줘서......전 많은 현지인 선교사들을 소그룹 모임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적도 있습니다. 언제가 부산에 둘로스 호가 정박했을 때 자원 봉사를 하기도 했었고.....그녀는 한 마디로 보기 드문 리더쉽을 가진 자매였고 눈에 띄는 외모와 예절바른 행동으로 많은 어른들께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결혼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저 역시 결혼할 상대인 형제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주 훌륭한 커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벌써 결혼한 지...5년이 되었는데....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 리는 두 사람이고 ....결혼하기 전에도 몇 년간 연애하면서 서로 열심히 사랑했던 이들인데......

오전 예배를 마치고....전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도로 변이기에... 이제 결혼한 유부남으로서 다른 가정의 유부녀를 단 둘이 만난다는 것이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었지만...선화가 알고 있고....또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기에 깊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 기다린 끝에 그녀를 만난 건...오후 1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반가움보다는 안타까움이 짓누르는 만남이었습니다. 서로의 가정에 대해 안부를 묻고 아기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자매는 벌써 아들 하나..딸 하나...를 가지고 있더군요...친정에 와 있는 아기가 입을 옷이라며...작고 예쁜 옷을 보여 줄 때는 예전의 어린 티가 언뜻 비치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4시간 30분동안 그녀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그 얘기들을 다 전할 순 없고....결론적으로 자매는 이혼소송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가로부터 받는 핍박 때문이었고...부차적인 것은 그것을 막아 주지 못하는 남편의 우유부단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태는 더욱 확산되어 남편에 대한 신뢰감과 사랑도 이제 상실했고.... 시집 식구들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었습니다.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이 자매가 충분히 이럴 만한 이유가 되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자매가 이제 이혼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두 아이는 자신이 키우겠다는 얘기를 할 때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결혼하기 전 형제가 가지고 있던 유순함은 이제 결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바뀌었고...아내를 보호할 줄 모르는...마마보이로 비쳐지게 되었고....결혼하기 전 시댁 식구들의 상냥함은 이제 위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고...많은 고민의 시간들을 가진 것이 벌써 6개월....이제 마지막 결정을 하기 전 .....두 사람의 결혼 전 모습을 알고 있는 내게도 찾아온 것입니다.

이혼은 안 된다고 얘기하기에는 그녀의 마음은 이미 너무 멀리 떠나 있었고....결혼이 남편하고만의 생활이 아니기에...되돌아간다는 것은 힘들어 보였습니다.  전...."만일 하나님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먼저 네 마음에 변화가 생기게 하실 거야...."라고 얘기하며...그녀의 편이 되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얘기가 다 마쳐 갈 무렵.....주일 오후 예배가 마쳐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선화는....제 핸드폰에 연락을 해 오더군요...선화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이젠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그 자리에서 들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이라면....아무 문제가 안 될텐데.... 

집에 돌아온 시간은 거의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선화가 좀 기분이 나빠진 게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이런 일이 10번쯤 일어나면.....나도 그 자매와 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요....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세요....중요한 건..오빠에 대한 나의 신뢰감인데...이런 일이 신뢰감에 금을 가게 해선 안되요...."

선화는 예배를 마치고 기다리면서....오빠가 자신이 아닌 다른 자매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자매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같은 여자로서 돕고 싶지만.....제가 그 자매를 만난다는 사실은 확실히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라는 거지요....

제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하더군요....즉, 선화가 결혼하기 전에 만나던 한 형제를 결혼한 후에 다시 만나게 되고 저는...밖에서 기다리는 뭐...그런 상황 말이죠....생각해 보니 저도 별로 기분이 안 좋겠더군요...선화의 말이 맞는데....그렇다고 그런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 몰라라...또는 오늘은 안 되고 다른 날 시간을 정하자 라는 식의 말을 한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요....어쨋든 이 사태는 약간의 난기류가 흐른 뒤...서로 더 잘 이해하기로 하고....잘 해결되었습니다만 선화가 섭섭했던 것은 분명하고 나 역시 결혼 전과는 달리 상담이나 대화를 전처럼 쉽게 응할 수 없고 부부가 함께 하거나....좀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만남이후 지금 제 맘은 파국을 치닫는 한 자매의 가정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차 있습니다.  그 가정도 분명히 사랑으로 시작되었고 지금과 같은 최악의 결과로 치닫도록 야기한 일차적 근본 원인도 사실 두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주변 환경...즉 시댁 식구들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이 두 사람과 양가 어른들에게 처음과 같은 마음을 품도록 해 주시는 방법밖에 없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요즘 주변에서 이혼한 가정들을 보게 됩니다. 선화의 말대로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수긍이 가지만 오빠가 다른 자매를 만나 얘기하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듯이......살아가다 보면 처음에는 작은 일에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하다가...곳곳에 수 많은 암초가 나타나게 되고 ....부부 사이에 감정적으로 점점 서로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곳으로 들어서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지요....

비록 선화가 별로 맘에 안 드는 일이었지만....이번 사건이 우리 가정에 좋은 약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젠 저도 가장 소중한 자매...선화에게 책임을 다하고 섭섭한 맘을 안 끼치기 위해 만나는 사람도 신중하게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 자매의 얘기를 듣고난 뒤 ......우리 가정도 지금은 모두가 축복해 주는 사랑스러운 가정으로 출발하지만.....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없이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커갈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크리스챤 가정이라고 하더라도.....참 하나님이 긍휼을 내리셔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인도해 주지 않으시면....우리 역시....똑같은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헤어집니다. 4쌍이 결혼하면 1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두 사람을 흔드는 수 많은 외부의 요인을 헤쳐 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 안에서 가지는 두 사람의 이해와 사랑입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요.....그 때에는 이성을 사용해서 이해하고 바꿔 생각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참 사랑하며 사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 일을 가능케 하는 것 역시 절대자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