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료봉사

지난 2000년 8월 9-10일 양일간 부산의대 여름 봉사 활동지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올해 봉사 활동지는 경남 진주시 대평리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경남 산청 일대의 마을을 중심으로 봉사 활동지를 선정했었는데 올해는 댐 건설로 집이 다  물에 잠기게 된 사람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진주시 외곽 대평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

여름 봉사활동은 부산의대 기독 학생회의 중심 사업 중 하나입니다. 저 역시 그 동안 많은 여름 봉사 활동에 참여했었습니다. 91년(예2), 93년(본2), 94년(본3), 95년(본4), 97년(1년차),98년(2년차) 때 봉사 활동에 참여했었고 94년 봉사활동 때 봉사 활동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 해 부회장으로 함께 일했던 자매가 지금 결혼해 함께 지내고 있는 선화 자매입니다.

혹 봉사 활동이 있는 주간이 서부산교회의 수련회가 열리고 그 수련회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 무거웠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 관심은 늘 여름 봉사활동에 가 있었습니다.  기대가 되는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봉사활동의 중심 내용은 의료봉사활동과 여름성경학교입니다. 물론 대민 봉사활동도 있지만 앞의 두 가지 사업이 가장 역점 사업이지요. 학교를 졸업한 뒤 수년......돌이켜 보면 기독학생회의 의료 봉사활동은 우리를 지금까지 성숙시켜 준 훌륭한 활동이었습니다.  

일단 봉사활동을 떠나게 되면 집을 떠난 낯선 곳에서 4일 정도 자면서 일을 해야 했기에 모든 것이 힘들고 불편합니다.  약 4-50명의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50명의 사람들이 먹고 난 식기와 솥, 냄비, 기타 그릇을 세척하는 것은 대작업입니다.  이 일은 맡은 형제 자매들은 5일간의 봉사 활동 내내 부엌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채소와 파를 다듬고 국을 끓여야 합니다. 밥을 여러 솥에 나눠 짓고 반찬도 준비해야 합니다. 식사 시간의 배식은 각 조에서 도와 준다고 하더라도 설거지를 마치자 말자 이내 다음 식사 준비를 해야 하지요.  이렇게 어머니 역할을 담당하는 생활 1반의 반장으로 여름 봉사 활동을 섬기면 꼭 시험에 든다는 말이 우리들 사이에는 널리 퍼져 있을 정도입니다.

이 외에도 전체 모임이나 함께 생활하는 동안 작은 일에서 서로의 희생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원 전체가 준비하는 봉사활동 기간 중에 실제로 우린, 마을 주민들이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를 더 많이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올해처럼 전국의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낸 상황에서는 의료봉사를 시작하는 날부터 함께 갈 수 있지만, 내과 전문의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4년차 전공의라 떠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전공의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자신의 파트를 공부하고 강의하는 study를 병원 밖에 나간 뒤에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 공부할 수 없게 되자 우리들은 각 전공의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17명의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벌써 병원을 나온 지 3주째,  날씨가 더운 한 낮의 시간, 오후 3시, 매일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의료계가 겪고 있는 사상 초유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계속 이렇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 오후(8월 9일)에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봉사지로 출발했습니다. 하기 봉사활동에 떠나는 저의 마음은 사실 봉사 활동을 한다는 기대보다는 졸업한 뒤 흩어져 생활하던 여러 동기들과 후배를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선화도 진주로 가고 싶어 합니다. 여름 봉사 활동지에서의 많은 즐거웠던 추억들이 우리를 여름 봉사활동 현장으로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친구인 신권이의 차를 타고 현국이 가정과 익진이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출발할 때는 해가 아직 남은 저녁이었는데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수몰 지구의 이주민들이 정착해 산다는 마을의 모습은 도시의 깨끗한 주택가 처럼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콜리 종의 개도 눈에 띄고 순하게 보이는 멍멍이도  지나 다니는 마을 이었습니다.

밤에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천로 역정이라는 공동체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라 교회 본당은 비어 있었습니다. 도착한 그 날 밤, 미리 와 있던 많은 동기들, 후배들과 함께 태성이가 새로 산 synthesizer 와 기타로 반주하면서 자정까지 찬양을 계속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봉사 활동지에서 함께 찬양할 때는 선화가 늘 키보드나 피아노를 반주하고 전 기타를 잡곤 했었습니다.

찬양이 끝나고 모두가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 숙소는 두 곳 뿐인데 아래쪽은 자매 숙소이고 이층은 형제 숙소였습니다. 형제 숙소에서는 몇몇 형제들이 자고 있음에도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꽂을 피우고 있습니다. 저와 선화는 살짝 병원 시트 몇 장을 가지고 진료실이 있는 경로당으로 떠났습니다. 잘 곳이 마땅하지 않아 우린 경로당에 차려진 진료실에서 자기로 했거든요.....

경로당으로 가는 길은 캄캄합니다. 여전히 매미들이 목청껏 소리 지르고 있고 간간히 풀벌레 들의 소리도 들립니다. 경로당은 아주 잘 지어져 있었습니다. 경로당 마당에는 한 형제가 자고 있더군요. 누군지는 모르겠고....오른 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제법 공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환자들이 누워 주사를 맞는 곳인 것 같더군요. 그 곳에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지난 오랜 세월.....학생 때부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낀 이 봉사지에서....올해는 선화와 함께 경로당에서 하루를 접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의 소리에 잠을 깬 것 같습니다. 해는 벌써 떠 있었고 경로당 앞마당에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창 밖을 보니 1회용 주사기를 가지고 아이들이 물총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성경학교 선생님들이 저 주사기를 나눠 줬었나 봅니다. 며칠 전 끝난 서부산교회 유치부 여름 성경학교 때....유치부 교사를 하고 있는 선화는 제게 병원 주사기 몇 개만 가져다 달라고 하더군요.  교육반으로 성경학교 여름성경학교를 몇 차례 치른 선화는 서부산교회 성경학교 때도 이게 생각난 모양입니다.

경로당 마당에는 은정이가 아침 QT를 하고 있었습니다.(귀한 자매지요?) 그리고 한 참 후 신권이가 경로당을 방문했습니다. 전 경로당에서 세수하고 선화와 함께 목사님(부산대병원 원목)의 혈압과 혈당을 재어 드리고는 교회로 향했습니다. (목사님은 아침 일찍 혈압을 재러 오셨습니다(?))

식사 후 오전 진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전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의 진료 활동에 참여 했습니다. 이제 내과 4년차 까지 되다 보니 찾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드릴 말씀이 많았습니다. 한 환자 붙잡고 20분을 얘기하고 내는 처방은 약 1종류.... 이곳에 계신 노인분들께 실제로 필요한 게 뭔지 조금씩 알 게 된 저로선 약을 나눠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얘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 봉사 활동의 최고 특징은 뭐니 뭐니해도 의사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이번 봉사활동에 참여한 의사는 모두 15명, 간호사는 7명입니다. 총 22명이지요. 전공의 사직 사태 때문에 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많은 선배들이 학생들의 의료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25명 남짓인 걸 보면....거의 50%가 의료진인 셈입니다. 정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이 곳에 계시는 분들께 드리고 가게 된 것입니다.  병원은 텅텅 비고.....

4시에 진료를 마치고 진료실을 치우는 일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많지 않기에 의사들이 모두 모여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을 따라 마을 사무소까지 책상과 의자를 날랐습니다. 덥고 힘들지만 ....원래 학생들이 해야할 일이지만.....이미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함께 모여 짐을 나르는 사태를 초래한 현실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우스워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저녁에 교회 본당에서 다시 찬양을 부르고 난 뒤,  저희들은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만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을 봉사지에서 보냈었지만 과거의 우리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봉사 활동을 보면서 선화와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 국제협력의사를 지원할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아마 이렇게 의료 봉사활동으로 3년을 보내게 되겠지요... 또 선화와 전, 태성이의 멋진 synthesizer를 보면서 적금을 부어 그런 synthesizer를 꼭 마련하자고 얘기했습니다.

사실 이제는 의료 봉사활동지에 오면 얼굴을 아는 학생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갑니다. 하지만 처음과 같은 열심을 가지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봉사지를 찾아오는 열혈 선배들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열심을 모아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학사 모임(새벽별)의 이름으로 다른 멋진 일을 앞으로도 펼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아마 오는 멀지 않은 장래에는 북한에도 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저희 모임의 귀한 자매인 은정이는 북한으로 들어가서 계속 섬기고 싶다고 합니다. 글세요...새벽별의 이름으로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오진 않을까요?  지금은 미약해 보이더라도 우리 안에 소망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시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