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46일 남겨 둔 비 오는 날 밤에...

 1999.8.30 월요일...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오전에 내리던 빗줄기는 정오를 지나면서 더 굵은 빗줄기로 바뀌더니 하염없이 쏟아 붓고 있습니다.

소화기 내과에 들어온지도 이제 한 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제법 내시경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고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지요. 하지만 지금 적으려는 글의 내용은 이런 병원 얘기가 아닙니다.

 결혼을 당초 예정보다 당겨 가을에 하기로 생각한 것은 올 봄이었습니다. 그 날은 주일날 밤이었는데 evening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선화를 보며 내가 꺼낸 말이 시초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우리의 계획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느껴집니다.

 오늘은 저녁 5시부터 6시까지 한 시간동안 시간을 내어 결혼에 필요한 여러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 사무소에 가서 아파트 전세 계약서를 받아 이제 우리가 전입해야 할 학장동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처음 가 보는 학장동 동사무소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어서  많은 공장 지대 한 가운데에 숨어 있는 동사무소를 찾은 때는 억수 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윗 옷이 다 젖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전세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는 얘길 듣고 다시 도개공 아파트로 가서 계약서를 당초 약속했던 날짜보다 일찍 받아 다시 동사무소로 오는 길에도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전입 신고후 계약서 뒤에 확정일자를 받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 아파트의 등기부 등본을 발부받기 위해 모라동에 있는 북구 등기 사무소까지 가야 했고 6시 근무 마감시간에 겨우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내내 내리는 큰 비로 모든 차들이 느림보 운전을 하고 있었고 신모라에서 구덕터널까지 한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새우잠을 자다가 깨어 비오는 차창 밖으로 여전히 물보라를 튀기며 달리는 차들과 우산을 들고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돌아왔습니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라는 것을 생각했지만 결혼을  앞두고는 (물론 선화와 함께 살 수 있어 좋지만)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여러 가지 감정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오늘 사상구 학장동 168-19 학장동 도개공 아파트 101동 1303호에 거주하는 이성훈의 주민등록 등본을 보았습니다. 호주에는 할아버지 이름이 여전히 올라가 있지만 세대주에는 이성훈 이라는 이름이 보였고 밑의 란에도 나 혼자 덩그러니 그 큰 종이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나면 처 이선화 란 글이 쓰여 지겠지요. 이 종이 문서 하나가 나로 많은 책임감과 함께 세상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결혼 준비 과정이 버스를 많이 타야 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하면서 삶의 단면을 보게 되고 우리 앞서 살았던 부모님 세대의 삶들을 살짝 엿볼 수 있게 되었기에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것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공부와 의국 생활을 하면서 내게는 은행빚이란 것이 생겼습니다.  난 은행에 이자를 내려 갈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은행에 이자를 내려 오고 어떤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을 입금하려고 온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상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제 2의 생명이라고 하는 돈... 때로는  사람을 추하게 보이게 하기도 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돈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집을 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면서 한 가정을 꾸려 나가려면 경제적으로도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울러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얼마나 어렵게 우릴 길렀으며 우릴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희생해야 했는가를 알게 되어 슬프고 또 안타까왔습니다.

 며칠 전에는 선화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 했었습니다. 남포동의 MCA에서 선화와 함께 친구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 일은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내가 사용한 정신에너지는 대단했을 겁니다. 선화와 연합하면서 이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많은  접촉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단 선화네 가족외에도 개금교회나  학교 친구들이 내게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정신과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일들을 하나의 스트레스라고 보고 여기에 각각 가중치를 부여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됩니다. 우린 그 당시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과연 이런 일이 이렇게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부여하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요.. 부모의 죽음, 이혼, 사별 보다 더욱 스트레스 점수가 높은 것은 바로 결혼이었습니다. 결혼은 삶의 모든 사건들보다 가장 높은 스트레스 점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정신적 에너지를 얼마나 더 사용하느냐 란 점이고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혼은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란 것을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결혼...기대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린 앞으로 세워갈 가정 교회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고  함께 기도하는 기도제목 역시 이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땀이나 노력이 없이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전 비를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때 가졌던 여러 추억들과 당시 형성되었던  좋은 느낌들 때문이지요. 하지만 오늘 내리는 비는 내게 아주 현실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 험한 세대에서 내가 의지할 것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 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내게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상은 너무 힘들고 능력이 없는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갈수 있을까?........  막막해 집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집니다.

'결혼 이후...우리 가정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을 위해 살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릴 부인하고 남을 겸손히 섬기며 악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힘들고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섬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말씀보고 기도하는 생활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 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서 1: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의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