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가는 길

이번 주는 특별한 주간입니다. 바로 예비군 훈련이 있는 주간이기 때문이죠...물론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전.. 아직 예비군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구요?  

밤에 함께 공부하는 4년차 전공의들 중 5명이 예비군 훈련 3박 4일 일정에 참석하게 되어 몇 달째 계속 이어오는 밤 공부를 이번 주는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레지던트 과정은 의대 졸업 후에 인턴 과정을 수료하고 군복무를 먼저 마친 뒤에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4년차 12명 중 이렇게 이미 군복무를 이미 필하신 분이 5분이지요.... 모두 저보다 최소한 3살은 많은 형님들입니다.

덕분에 군대 구경을 하지 않은 전공의(보통 이들을 Kim's라고 부릅니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군의관의 적정한 공급을 위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Kim's plan이란 것을 작성했고...이 제도가 지금까지 군의관 수급의 큰 틀이 되고 있지요. 이 plan에 해당되는 군복무 하지 않은 전공의들을 Kim'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반대는 Non-Kim's이지요...) 들은 좋은 시간이 생긴 셈입니다. 이전에 밤공부를 하지 않을 때에는 병원 근무만으로도 힘들고 피곤하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밤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아주 좋은 세상이 갑자기 온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하지요...

화요일 오후...병원의 Kim's 들은 화요일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열리는 롯데:LG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아시는 분은 다 아시죠?


신혼 여행 가서 둘쨋 날(1999.10.19)은 1999 프로야구 플레이 오프 6차전이 열 리는 날이었습니다. 꺼져 가는 불꽃을 되살린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을 향하는 저의 응원은 이 날도 어김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마침 그 날 숙소는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이었고 그 날 중계는 KBS 위성 2TV로 이루어졌기에 전....경기의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습니다.

1999년 플레이 오프는 말 그대로 각본없는 드라마였습니다. 7전 4선승제 즉, 7경기를 해서 4경기를 먼저 이기는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고 이 경기에 매직 리그 1위 삼성과 드림 리그 2위 롯데가 플레이 오프에서 맞붙었습니다. 롯데는 4차전까지 1승 3패로 몰려 있었습니다. 이제 한 게임만 더 지게 되면 한국 시리즈 진출의 꿈은 무산되는 거지요....그러나 롯데의 신들린 듯한 드라마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0월 17일 부산 사직 구장에서 열린 플레이 오프 삼성과의 5차전...패색이 짙어가는 가운데 9회말 1사 1루, 2루. 터질 듯 터질 듯하면서도 침묵했던 호세의 역전 3점 홈런이 터졌습니다..... 호세의 끝내기 3점 홈런의 상대는 삼성의 한국 최고의 마무리 전문 투수 임창용이었습니다. 아!...그 날은 주일 날이었습니다. ..주일 날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 차 안에서 PSB 중계를 들었지요... 3-1로 지고 있는 9회 말 공격...1사 후 박정태 선수가 끈질기게 투수의 공을 받아 치더니...마침내 1루로 진출하는 장면을 끝으로 롯데가 지는가 보다 하고 라디오를 끊었지요....그런데 그 날 밤 스포츠 뉴스 시간에 롯데의 9회말 역전 파노라마가 보도되는 것이 아닙니까?..롯데는 파죽 지세로 2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고 바로 그 3승째를 거두는 장면을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박석진의 눈물 겨운 투구와 롯데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경기 모습을 제주도에서도 선화와 함께 봤습니다. 선화는 스트라이크 3개면 아웃이라는 것도 모르는 아가씨였지요...단지 오빠가 참 좋아하는 야구니까...함께 봅니다. 혼자 보거나 다른 사람과 보면 재미 없지만 저와 함께 보면 재미있다고 말하면서....(물론 진짜겠지요....)

세쨋 날...역사적인 플레이 오프 7차전(마지막 승부, 1999.10.20)가 있는 날....우린 제주도 중문 단지 근처에 있는 풍림 콘도에서 묵었습니다. 그 날 대구에서 열 리는 경기 중계는 iTV였습니다. 그런데...그 마지막 승부....7차전...그 날 묵은 풍림 콘도는 iTV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iTV..iTV를 찾으러 시내로 나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신혼여행 가서 그럴 수는 없지요....물론 스포츠 뉴스 시간에 하이라이트는 볼 수 있지만 ...이 날은 경기를 생중계로 보지는 못해 안타까웠습니다...하지만 ...신혼여행이 더 중요하니까....후회하지는 않습니다.(?)

7차전의 하이라이트는 5-3으로 지고 있던 9회초.....공필성의 좌전 안타에 이어 대타 임수혁이 2점 홈런을 치며 승부를 5-5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장면입니다.(지금 임수혁 선수는 서울 중앙병원에서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누워 있습니다. 임수혁 선수가 다시 일어나 뛰어 주길 기대합니다.) 계속되던 연장 승부 속에서 1사 만루 위기까지 몰리지만 주형광의 대담한 투구로 벗어나고 롯데는 11회 초 임재철과 김민재의 좌전 안타 2개로 기어이 결승점을 뽑습니다. 극적인 역전승이었지요...그 때 얼마나 좋던지...야구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격입니다..제게는 한국 축구가 세계 4강에 오르는 것보다 더 기쁜 일입니다.....천국 가서 예수님 만나 뵈는 기쁨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될 정도입니다.  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출발한 롯데는 84년과 92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저력이 있는데 작년에 한국 시리즈에 통산 4번째로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올해 롯데는 리그를 옮겨 매직 리그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계속 5할 대에 못미치는 승률로 마이너 리그 2위라는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박정태와 박석진의 공백이 컸지요...그러다가 6월 들어 두 사람이 복귀하면서...롯데의 승률은 계속 오르다가...바로 우리가 사직 야구장에 가기로 한 그 날 선두  LG와 반게임 차로 2위를 하면서 71일만에 다시 매직 리그 1위로 복귀하는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있는 마음 맞는 전공의들이 함께 사직 구장을 찾기로 한 것이죠..

함께 가기로 한 5명 중 3사람이 처와 함께 가겠다고 하더군요...그래서 저도 선화를 꼬셔서 함께 야구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선화와 전 이미 올해 사직 야구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달 전 삼성과의 경기 때 3루측 관중석에 앉아 목이 쉬도록 외쳤고 롯데가 2-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5-2로 역전시켰습니다.

왼쪽 그림은 그 날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의 가운데 제 모습이 보이지요...경기 시작하기 전에 찍은 사진인데...3루측 외야 가까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 날은 거의 만원이라...자리가 내야에는 전혀 없었고....배가 부른 선화와 전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꼭 사직 야구장을 배경으로 찍고 싶다고 하니까 선화가 스탠드 중간에 서 보라고 하더군요...그리고 이렇게 찍었습니다.

이번에 사직 야구장을 다시 찾으면 1달 만에 가는 겁니다. 우린 차에 나눠 타고 즐거운 맘으로 초읍을 지나 사직 야구장으로 갔습니다. 야구장.....시원한 밤하늘에 조명탑 불빛이 싱그럽고 초록색 그라운드에 선수들의 멋진 모습.... 응원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소리를 지르고 ....점수가 나면 '부산 갈매기'를 부르고 신문지를 흔들고 하는 새로운 문화의 산실....이 곳은 정말 즐거운 곳입니다.

야구 관람료가 얼마냐구요?...5천원입니다. 요즘 영화가 6천원인 것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이지요....전 웬만한 영화를 보는 것보다 홈팀이 승리하는 멋진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몇 십배 낫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 날은 부부 동반인데다가.... 선화의 배가 많이 부른 상태라....여러 사람들과 부딪히고 불편한 자리에 앉아야 하는 일반석에 앉지 않고 지정석에 앉기로 했습니다. 프로야구 관람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이번처럼 지정석에 앉기는 처음입니다. 하지만 야구 경기를 집중력있게 보고 즐기는 데는 지정석이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이 날 롯데는 LG를 상대로 2-0으로 지고 있는 경기를 9-3으로 역전시키며 매직 리그 1위로 올라섰습니다. 1루측 관중석이 난리가 난 것 말 안해도 아시겠지요...꼭 한 번 사직 야구장에 가 보세요...즐거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롯데를 응원하는 팬으로 지내면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올 해도 롯데를 응원하면서 수 많은 실망과 허탈감....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롯데가 자주 지기 때문이지요. 야구를 보고 있으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항상 위기 뒤에는 기회가 따르고 아무리 잘 던지는 투수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내야수의 실책 하나 때문에 경기가 뒤집어 지고 8회까지 우리 팀이 지고 있더라도 마지막 9회에 역전의 기쁨을 맛 볼 수 있고...5할의 승률을 거두고 있는 롯데의 경기를 저는 시간만 있으면 다 듣는 편입니다. 물론 요즘은 밤 공부가 시작되어 듣지 못하지만 라디오를 들으면서 다른 작업을 흔히 하는 전...틈만 나면 꼭 라디오를 틀어 놓지요....PSB 라디오는 롯데의 전 경기를 중계 방송하고 있습니다. 이길 듯 이길 듯하면서 지는 경기나 마지막 실수 하나로 경기가 지는 경우를 만나면 실망감과 허탈감이 늘 따라 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야구 경기인데....이런 경기 결과를 통해서도 전 작은 실망과 허탈감을 맛보게 되었고 .....이것은 저로 하여금 작은 실망이나 좌절감 같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우습겠지만....월드컵 16강 탈락을 늘 하고 있는 한국 축구를 보며 느끼는 전 국민의 안타까운 마음...그 이상을 전 롯데 경기를 통해 느끼고 극복하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의 놀이인데도...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극복하게 하는 걸 보면 참 흥미롭지요.....97,98년 2년 연속 롯데는 8개 구단 가운데 꼴찌였습니다. 99년 롯데가 한국 시리즈에 올라갔을 때....롯데 팬들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가시죠?

선화도 야구를 좋아하는 제게 익숙해 졌습니다. 선화 말로는 병원 생활과 교회 활동, 시험 공부에 꽉 매인 제가 롯데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면서 휴식하고 기분을 전환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사실 요즘 제게 유희나 놀이는 거의 없습니다. 비그리스도인들과 같은 놀이 문화는 제게 적당하지 않고...전 멋진 크리스챤인 박정태 선수와 최기문, 김응국,마해영,박석진,문동환,주형광,가득염 선수가 뛰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으로 제 마음을 환기하는 것 같습니다.

토요일 저녁에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야구 경기 중계를 듣습니다. 최근에 토요일 경기를 계속 지고 있습니다. 경기가 지고 나면...기분이 시무룩한 제게 묻지요.."오빠? 롯데가 져서 기분 나쁘지요?.." 전 그 말을 들으면 늘 얘기합니다. "아니....진정한 롯데의 팬이라면 지더라도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전 스포츠 조선의 롯데 자이언츠 게시판과 롯데 자이언츠의 공식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 봅니다. 수많은 롯데 팬들이 롯데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공필성 선수가 부친상을 당한 모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필성 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고...공필성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등번호 0번 인 선수 공필성...사실 롯데 팀 내나 다른 팀에 공필성 보다 더 좋은 야구 실력을 갖춘 선수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저와 많은 롯데팬들은 공필성 선수가 안타를 치지 못하더라도 비난을 보내지 않습니다. 항상 성실하게 수비에 임하고 흙먼지가 묻은 유니폼으로 지쳐 들어오는 후배 선수들의 등을 툭 치며 씩 웃어 보이고....팀 전체가 어수선하고 가라앉는 분위기에선 언제나 솔선 수범해서 팀분위기를 바로 잡고....언제나 몸을 아끼지 않는 3루 수비에....겸손하고...공이 몸에 맞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상대편 투수에게 피하지 않고...지지 않고....공필성 선수의 몸은 언제나 멍투성입니다. 부산의 롯데 팬들은 이렇게 꿋꿋하게 이어오는 롯데의 정신을 동경하고 열광합니다.

등번호 16번 박정태 선수...그는 부산의 자부심입니다. 지난해 31게임 연속 안타의 대기록을 세우고 팀의 한국 시리즈 준우승을 이끄는 동안 "작은 탱크", "악바리"라는 별명 처럼 근성있는 야구를 펼쳤습니다. 언제나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내야 땅볼을 치고 자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언제나 흙투성이가 된 그의 유니폼을 보면서...자신의 일에 저렇게 철저하게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들게 만드는 그는 크리스챤입니다. 그가 연속 안타 기록행진을 이어 갈 때 스포츠 신문에서는 앞을 다투어 박정태의 어린 시절과 어려웠을 때의 일을 보도했고...박정태가 독실한 신자인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근육 파열로 한 달이상 팀에 복귀하지 못하다가 팀이 어려움에 봉착하자 뛰지 못한다면 응원단장이라도 하겠다며 1군에 합류시켜 달라며 감독에게 부탁하는 그는 롯데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미국은 야구가 생활입니다. 할아버지가 응원하던  팀을 손자가 이어 응원합니다. 5회가 마치면 관중석의 팬들이 경기장으로 내려와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는 "photo day"도 있습니다. 다저스를 응원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문화이고 생활이지요...언제나 꽉 들어찬 미국의 메이저 리그 구장을 보면서 한국도 그런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이제 19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프로야구...프로 스포츠를 향해 정치적 산물로 치부하고 고개 돌 리는 사람도 있지만 ...롯데의 존재는 제게 작은 기쁨입니다.

오늘은 롯데가 LG에게 5-1로 다시 패했습니다. 다시 반 게임차로 LG에 이은 2위입니다. 하지만 저와 많은 롯데 팬들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롯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응원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언제가는 다시 LG를 꺾을 테니까요....만일 2000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에서 롯데가 우승했다는 걸 들으신다면 제게 축하 메일을 보내 주세요..롯데가 이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