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지난 주부터 밤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큰 변화가 생겼지요.....병원 근무 후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부산대 병원의 내과 4년차 12명 뿐 아니라 외부 병원에 계시는 전공의 선생님 다섯 분이 함께 모여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전문의 시험준비지요. 매일 두 명의 강의자가 자기 파트의 내용을 준비해서 각각 1시간 30분씩 강의를 하게 되는데 6월 5일부터 시작해서 오는 8월 중순까지 토요일,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계속하게 됩니다. ........고 3 시절로 다시 돌아가 버렸습니다.
공부가 다 마치면 밤 10시가 넘고.....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10시 30분 정도....씻고....좀 앉아 있다가 .... 가정예배 드리면 금새 자정이 넘어갑니다. 그러다가 다른 일이라도 있으면 1시를 넘기기 일쑤고 .......그 동안 안 하던 집중적인 암기식 공부를 해서 그런지...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고....무엇보다 하루에 한 번 집에서 식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전에는 아침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아침을 함께 먹진 못하더라도 저녁 퇴근 후 여유를 가지면서 부부가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밤 공부가 시작되고 나니... 저녁 식사 마저도 병원 식당을 이용해야 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선화도 제가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반찬을 잘 만들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집에서 혼자 먹을 때도 반찬이 부실하게 될테니....산모의 건강 관리를 위해서도 큰 일인 셈입니다....그래서 우린 아침에 어떻게든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자고 결의했습니다. 그러나...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밤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생긴 문제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수요 예배입니다. 수요일 예배가 7시 45분에 시작되는데 이젠 매주 수요 예배를 드리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환자에게 신뢰받는 실력을 갖춘 내과 의사가 되기 위해 3개월간의 수요 예배 공백을 받아 들이기로 했습니다.
서부산교회 금요 기도회는 밤 9시에 드리는데 한 달에 한 번 청년들이 기도회 당번이 되어 참석해야 합니다. 바로 지난 주가 청년들이 참석해야 할 기도회였습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그 전 주일날, 교회에서 청년들이 기도 안 하면서 어떻게 부흥을 바랄 수 있느냐? 고 큰 소리 치고 다니고 ...기도회 전 찬양 인도도 부탁하고 다녔는데......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요 기도회는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매 주는 어렵겠지만 청년들의 기도회 시간에는 함께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어쨋든 수요 예배 반주를 맡고 있는 선화는 이제 혼자 수요 예배에 참석해야만 합니다.
최근 선화의 배가 하루가 다르게 점점 커지고 있지만 20주가 되면 느낄 수 있는 태동이 아직 없어 이상하다 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선화는 신기하다는 듯이 자기 배 한 쪽을 가리키며 손을 얹어 보라고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짝 손을 얹어 보았지요...손을 얹고 가만히 있는데.....선화의 뱃 속에서 뭔가가 배를 '툭'하고 치는게 느껴졌습니다.
"어....이게 뭐야?" 아기가 안에서 복벽을 툭하고 치는게 분명했습니다. 양수 속에서 떠 다니기만 하던 우리 아기가 점점 커져서 그 움직임이 복벽에서 느껴질 정도가 된 것입니다. 초음파로 보면 아기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배만 부르고 안에 아기가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기에는 너무 조용했었는데....이제 아기가 배 안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고 엄마에게 노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제 할머니께서 유아용품을 사 주셨습니다. 그 안에는 아기를 싸는 포, 아기 목욕 욕조, 베넷 저고리, 턱 받침대, 젖병, 유즙기, 면 손수건, 목욕 용품(비누, 샴푸, 로숀), 조그만 바지, 웃옷....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선화는 아주 작은 아기 옷을 들어 보이며 즐거워 합니다. 자매들은 아기가 입는 옷이나 젖병을 보면 형제들보다 훨씬 좋은가 봅니다. 우리가 함께 책을 보는 방 문에는 작은 양말이 걸려 있습니다. 아기 양말이지요. 선화가 2달 전, 롯데 백화점에 갔다가 사 온 것인데...그 조그마한 양말을 방문에 걸어 놓고 앞으로 나올 우리 아기를 기다립니다.
(지금부터는 선화가 적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부부는 자리에 누워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저녁 식사하면서 혹은 가정예배 드리면서 아니면 같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참 좋지만 함께 천장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 이 때는 가끔 마음에 두었던 이야기들도 하곤 합니다. 이런 건 좀 섭섭했다.... 저렇게 하는 건 어떨까? 등등... 이것 저것 이야기하다가 좀 조용하다 싶으면 성훈이 오빠가 쌔근거리면서 깊은 잠에 빠진 걸 봅니다. 그러면 이불을 다시 잘 덮어주고 나도 잠을 청합니다.
요즘에는 밤에 내가 오빠에게 해달라는 게 있습니다. 재미있는 동화를 해달라는 거죠. 아기에게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요.( 전 오빠의 목소리가 좋습니다. 오빠가 "선화는 오빠 어디가 제일 좋니?" 하면 "오빠 목소리.."합니다.) 전엔 오빠가 '재크와 콩나무' 이야기를 해줬지요. 제가 들어도 재미있더군요. 그리고 집에 성경동화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중 에스더 이야기를 읽어주기도 했습니다.어떤 날은 제가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뭐 그런거...
아기를 통해서, 잃어 버렸던 이야기들을 다시 찾는 것 같습니다. 이젠 유치해서 별 감정없이 보게되는 동화책들.... 그러나 아기에게 들려주기위해 함께 정성들여 이야기하고 또 듣고 있으면 어릴 때 느꼈던 잔잔한 감동이 다시 느껴집니다. 예쁜 것만 먹어라... 고운 것만 봐라고 하는 임신 기간동안 자칫 잃어 버릴 뻔한 것들을 많이 되찾는 것 같습니다.
임신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아기의 소식을 제일 먼저 물어봅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맛있는 음식을 권해주시면서 잘 먹는다고 좋아하십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성훈이 오빠에게서 아기가 아니라 날 향한 관심을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묻는 말이 있지요. 아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찍 내리면서 "오빠 , 혹시 빈혈있는가 보세요..." 그러면 오빠는 "빈혈 없네.." 하지요. 하지만 잠시 동안 오빠가 눈 밑 결막 색깔을 봐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지요.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지러움증을 심하게 느낀 경험이 두,세 번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우면서 머리가 아프고 곧이어 앞이 노랗게 변하면서 식은 땀이 나는 아주 불쾌한 증상이 세 번 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오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맘이 더 큽니다.
지난 번 산전 검사때 시행한 피검사에서 혈색소가 10.9로 저의 평소 수치보다 2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아마 철분약을 먹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빠가 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