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dance?

지난 2개월 동안 전 한 가지 일에 묶여 있었습니다.  바로 내과 4년차 족보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부산 시내에 있는 600여명의 내과 전공의 4년차 들이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꼭 봐야만 하는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전국의 각 병원에서 만든 문제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매년 새로 정리하는 작업은 항상 부산대학교병원 내과에서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당 700-1000문제 가까운 각 문제들의 해설을 다는 작업이니만큼 내용도 방대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라 병원 생활을 하며 이 일을 하려면 각자의 가정 생활이나 여가 생활을 다 포기하고 여기에만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서......지난 2개월 동안 집에 들어갈 때는 늘 무거운 책가방을 지고 들어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들어서면 으례히 선화가 한 마디 합니다. "오늘도 가지고 왔네."

사실 그렇다고 매일 열심히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날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뭘 좀 먹고 주변을 정리한 뒤 정신을 차리면 자정이 가까워져 포기할 때도 있고 가끔 손님이 찾아 오기도 하고.......무엇보다도 다른 전공의들은 토요일이나 주일에 많이 하는 편이지만 전  그렇지 못하지요...하지만 지난 2개월동안 이 일을 해야만 하기에 매달려 왔었습니다.

드디어 2000년 5월 21일...그 일이 마쳤습니다. 내용이 담긴 디스켓을 들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전 선화에게 오늘 저녁은 밖에서 '일품 완스'를 먹자고 얘기했습니다. 그 동안 제대로 외출 못 해 보고 집에 있어야만 했던 선화에게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일품 완스는 대학병원 응급실 쪽에 있는 중국집 '산동성'에 나오는 요리 메뉴입니다. 주재료는 닭고기인데 아마 밀가루 반죽 한 뒤에 기름에 튀겼나 봅니다. 얼마 전 우연히 맛을 본 뒤로 선화는 일품 완스만 찾습니다. 벌써 두 달전부터 이렇게 얘기했지요.

"오빠! 일품 완스는 언제 사 줄거예요..." 또는 " 도대체 일품 완스는 언제 먹나요?" .......언제나 다음 달 월급 받으면 꼭 사 먹자고 얘기하지만 막상 그 날이 오면 잘 움직여지지 않고 ....조금 있으면....돈이 모자라고.....뭐 그런 악순환을 계속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이 날도 우리의 재정 상태가 넉넉한 건 아니지만 눈 딱 감고....일품 완스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날은 하루 종일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이제는 '새 봄' 이라는 단어보다 '한 여름' 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때가 되었나 봅니다. 정리 작업을 마치고 나니 여유가 생기고 병원 일과가 마친 뒤 선화와 한 약속이 기억났습니다. 아침에 나가면서 저녁 6시 정도 되어 병원으로 오라고 했기에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데.....호출이 울렸습니다.(요즘 호출기(삐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호출기가 필요한 사람들일 겁니다. 모두가 핸드폰을 소지하는 이 때에 병원에 근무하는 우리들은 병원 내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하면 안 되기에 호출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화의 메시지였습니다.

"오빠...여기 서면이예요...오늘 어머니와 만나 임신복을 샀거든요...이제 거기로 가려는데....한 15분 후에 도착하겠네요....좀 있다 제 PCS로 연락 주세요...."

서면에서 오고 있는 선화에게 곧 나가겠다고 연락을 한 뒤....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하는 외식을 병원 앞 중국집에서 하는 것 보다는 남포동에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자갈치에서 만나자고 얘기했습니다. 함께 시내(downtown)에 나가 본 게 몇 달 된 것같기 때문입니다.

처음 몇 달은 월급을 받으면 꼭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서너달 후부터는 시간도 안 나고....재정도 허락치 않고...몸도 무겁고....해서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같이 부담 없는 날 선화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래 ... 그 동안 공부한다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는데.....'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퇴근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 때, 옆에서 공부하고 있는 창원이 형(함께 근무하는 전공의)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아..그래...그래 무슨 영화가 좋다구?....아, 미션 투 마스...그리고 또 뭐야.....셀 위 댄스....그리고..."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별 관심이 없을 텐데 ...선화와 시내에 나가기로 했기에 영화 제목이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창원이 형에게 물었지요..." 형, 어떤 영화가 좋다던가요?" ........ 전 형으로부터 '셀 위 댄스' 라는 생소한 제목의 영화가 좋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속으로 오늘 그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 선화와 둘이서만 본 영화는 모두 6번입니다.(그 중에 5번이 연애 시절입니다. 1번은 더 어릴 때.....)

 

구분

날짜

영화제목

 비고

어릴 때

 1994. 7

스피드(speed)

의료 봉사 준비기간에 함께....

연애 시절

 1998. 5

호스 휘스퍼러 (horse wheesperer)

넓은 초원에 사는 멋진 남자가 나오는 영화

 1998. 8

뮬란

만화영화

 1998. 10

벅스 스토리

만화영화

 1999. 1

이집트 왕자

만화영화

 1999. 3 

용가리

만화영화나 마찬가지임.

결혼 후

 1999. 11

Six sense

소년의 연기가 너무 멋짐...

 1999. 12

Happy end

가정의 중요성(?)

 2000. 2

박하사탕

독특한 구성

얼마 전 마음의 글에 선화가 쓴 영화 이야기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세요?...선화는 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흑백 영화도 좋아하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수','슬픔은 어느 별 아래','로마의 휴일'.....뭐 그런 제목들을 다 쏟아냅니다. 모두 제가 못 본 영화들이고...별로 보고 싶은 맘도 없는 게 사실인데......이런 영화들에 대해 얘기를 하면 선화는 눈이 초롱초롱해집니다. (선화의 영화에 대한 얘기를 지금 읽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누르세요)

자갈치 역에서 선화를 만났습니다. 선화가 새로운 임신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친정 어머니가 사 주신 거라는 군요..원피스 같은 임신복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바지와 상의가 구분된 예쁜 임신복은 처음 봤었지요...어쨌든 선화는 임신을 하니까 옷도 생기고 참 좋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렇게 우린 남포동 지하 상가를 거쳐 극장거리로 올라왔습니다.

물론 전 선화에게 두 개의  option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일품 완스 먹을래?...아니면 먹는 건 간단하게 먹고 오랜 만에 영화를 볼까?" .......선화의 대답은 영화입니다. 제가 '셀 위 댄스' 라는 영화가 좋다는 소문이 돈다고 얘길 했고 우린 함께 부산극장 앞에서 극장 간판을 보고 서 있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 지금 딱 시작하는 시간이라 우린 극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정말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창원이 형의 말만 들었다 뿐이지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포스터에 적힌 일본 220만 관객을 감동시킨 화제작-이라는 글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극장 앞에 가서야 이 영화가 일본 영화인 걸 알았습니다.

간판에 그려진 남자 주인공이 중년 신사로 보이는 것이 맘에 들었습니다. 일본영화를 혹시 보신 적이 있으세요? 전 선화와 비디오로 '우나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주연을 맡은 중년 배우의 연기가 참 좋다고 느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나타나는 그의 연기는 현실감도 있고 친근감도 있었습니다. shall we dance 의 주연 배우가 중년의 남성인 것이 제게 이 일본 영화를 보게 만든 요소였습니다.

선화는 일본어 학원을 결혼 전 두 달, 결혼 후 두 달...다녔습니다. 제가 일본어 학원은 왜 다니고 싶냐고 물어보면...선화는 "왜? 일본어를 배우려고....일본말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애서...조금이라도..." 라고 말하고 그냥 다녔습니다. 이 일본 영화를 보면서 일본말이 그래도 말로는 들린다는 선화의 얘기도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을 좋게 한 요인입니다.

이 영화에는 남자 주인공이 나옵니다. 이름은 '스키야마'입니다.  스크린에서 보는 그의 인상은 참 좋은 인상이지요...영화의 앞 부분에서 이 남자가 참 성실하고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사람임을 강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인보다 먼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출근하고 절대로 집에 늦게 들어오지 않는 딸과 부인을 배려하는 남자입니다. 그는 이제 나이가 사십이 넘었습니다. 결혼하고 딸도 있고 최근에는 집도 마련했습니다. 이제 주택 부금만 갚으면 되는 .....그야말로 자리를 잡은 일본 사회의 중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완성한 뒤....웬지 모르는 상실감과...허전함에 시달 리는 자신을 보아야 했습니다.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인지...그는 지쳐 보이고 말 수도 줄었고 .......그의 부인도 그런 남편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일 본 사회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 생활이나 거리...시장....뭐 그런 것들입니다. 일본 역시 '사교 댄스' 에 대해선 '나쁜 짓' 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풍기를 문란하게 하고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이죠.....이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영화는 의외로 이 부분을 소재로 택하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싫증을 내기 시작한 스키야마씨는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지하철 역 밖으로 비치는 댄스 교습소를 우연히 보게 되고(위 그림처럼) 그 교습소 창가에서 넋이 나간 듯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에 이끌려 댄스 교습소에 발을 들여 놓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 영화가 유부남인 이 남자가 댄스 교습소의 그 여자와 불륜으로 치닫게 된다면 그야 말로 삼류 영화로 곤두박질 치겠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함과 신선함을 잃지 않고 주제의식에서 빗나가는 장면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댄스를 시작하게 된 남자는 정말 댄스가 좋아지게 되고 아마츄어 경연대회까지 나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마이'라고 불리는 한 여자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려지게 됩니다.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마이'(아래 그림)입니다.

마이는 훌륭한 dancer였습니다. 세계 선수권 준우승 까지 올라간 적이 있던 아가씨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었고 자신의 dance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삶에 찌든 이 중년신사가 정말 dance에 빠져 들고 좋아하게 되며 진지하게 몰두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춤에 가지고 있던 열정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중년 신사를 고마워 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남편이 춤바람이 나서 가정이 깨어진다는 식의 구성을 하지 않습니다. 부인과 딸이 dance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봤다는 사실을 안 이후 스키야마씨는 dance를 그만 두게 됩니다. 그러나 부인의 도움으로 다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마이를 위한 마지막 파티에 나타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dance 장면으로 끝나게 됩니다.

사실 제 글의 내용이 "shall we dance?"의 줄거리를 소개하게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직접 보시면 저보다 훨씬 더 진한 감동과 여운을 받으실 수 있을테니까요....제가 원래 좀 감성적인데....이 영화를 본 뒤 선화와 전 자리를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오랜 만에 감동적인 영화를 봤다는 기쁨도 함께 밀려 왔습니다.

"shall we dance?" 는 원래 '왕과 나' 라는 영화에 나오는 영화 음악이라고 합니다. 선화는 그 음악을 알고 있더군요...전 잘 모르겠지만 '왕과 나'에 나오는 가정 교사 역의 여자 배우가 왕(율 브리너)에게 춤을 가르치면서 나오는 음악이라고 합니다.  스키야마 씨의 댄스 선생님인 지고한 교양을 갖춘 할머니 선생님은 '왕과 나' 의 바로 그 장면을 보고 dancer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이 양이 이 초보 dancer 중년 신사를 격려하고 가르치면서(위 그림) 인생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지만 여러 아름다운 장면들과  훌륭한 조연들의 맹활약으로 이 영화는 끝까지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선화와 전 .....너무 아쉬워....극장 직원에게 이 영화의 팜플렛을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지만 ......동이 나고 없다고 하더군요.....그래서 우린 벽에 붙어 있는 'shall we dance?' 벽보 한 장을 뜯어 집으로 들고 왔습니다.(물론 허락 안 받고...) 영화관에서는 다시 그 포스터를 그 자리에 붙여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 중 상당수는 분명 이 영화를 볼 테니까....영화관이 이익이라 생각됩니다.

집으로 와 영화 관련 사이트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지요..."shall we dance?" 에 대한 여러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문제 제기 중 하나는 일상 생활의 공허함인 것 같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달려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결혼과 가정을 이루게 되고 집도 가지고 훌륭한 직장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살아야 할 원동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무기력한 삶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dance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여러 사건 후 그는 dance를 버리고 다시 가정과 직장으로 복귀하게 되지만 dance를 만났기에 그의 삶은 다시 원기를 회복하게 되고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여기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외모와 남이 부러워 할 만한 재능을 소유한 젊은 인재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전 실패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꺼리고 지난 날에 대한 증오로 하루하루를 허무하게 보냅니다. 그러다 그녀는 이제 막 dance에 발을 들여 놓은 한 중년 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그를 지도하고 그에 진지한 열정을 보며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열정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보게 됩니다.

나와 선화는 dance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와 선화는 아기가 생기고 좋은 집이 생기고 안정이 된다 하더라도 무기력한 삶에 젖어 들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자신만만한게 아니냐구요?

dance를 통한 인생의 재발견과 재도전이 없다 하더라도  즐거운 음악과 리듬, 일주일에 한 번씩 가지는 dance를 통한 환기가 없다고  하더라도........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dance를 통해 삶을 추스리는 기간은 몇 개월 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스키야마 씨같이 자신의 삶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댄스 교습소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시는게 현명한 선택임을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시고....... 하찮은 것이라 치부하는 'dance'도 어떤 이에게는 삶에 이토록 큰 의미를 주는데...... 이 공허한 세대에서.......... 참된 생명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