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들이....경주 그리고 포항

나들이....5월의 어느 공휴일 중 하루를 잡아 인근 양산이나 밀양 쪽으로 차를 몰고 나가 바람이나 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4월 중순 경 .....제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00년 4월 27-28일, 경주 현대 호텔에서 전국 내과 전공의 4년차 연수 강좌가 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입니다. 물론 각 분과별로(예를 들면 소화기,순환기,신장....) 연수강좌나 세미나가 있기도 하지만 내과 전공의 연수강좌는 내년 1월에 치루게 될 전문의 시험에 내용이 반영되기에 각 병원의 내과 4년차 전공의들은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하는 큰 모임입니다.

소가 경주라는 점이 우리 부부가 봄나들이에 대한 계획을 짜도록 만들었습니다. 작전은 이렇지요.... 제가 26일 오후에 다른 4년차 선생들과 경주로 먼저 출발합니다.  물론 이 때 제 차를 몰고 가지요.  그리고 연수 강좌가 마치는 날인 28일  아침....선화가 부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로 출발해 정오 즈음에 둘이 경주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번 계획이 가능하게 된 또 하나의 요인은 결혼 한 뒤 한번도 가 보지 못한 여동생 주훈이가 살고 있는 포항까지 들러 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 강좌는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빡빡하게 이어졌습니다. 왼쪽 그림은 27일 연수 강좌가 있는 날 점심 시간에 현대 호텔 앞에 나와 동료들과 한가로이 경주의 봄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맨 앞에 분홍색 셔츠를 입고 있는 이가 필자입니다. 각 분과별로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병원 밖이라는 들뜬 기분에 잠이 약간 오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유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경주에 있는 동안 저의 숙소는 스위스 로젠 호텔이었습니다. 거기 가 본 적이 있으세요? 전 일전에 로젠 호텔 옆의 한솔장이라는 곳에서 묵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궁전같이 꾸며 놓은 예쁜 곳이었지요....하지만 이 번에 묵게 된 스위스 로젠 호텔도 뒤떨어지지 않은 훌륭한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주에 잠시 묵어 가실 분이라면 저렴한 가격에 고풍스런 계단 손잡이가 있는 스위스 로젠 호텔을 가 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결혼하고 지난 1월달에 서울삼성병원 파견 때문에 서울에서 일주일 지내며 외박한 이후....두 번째 맞는 공식적인 외박이었는데......... 역시 좋은 곳은 선화와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틀간이었습니다.

음 경주에 도착한 것은 26일 밤이었습니다. 캄캄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길....그 날 밤....출발할 때는 괜찮더니...고속도로 상에서 큰 비를 만났습니다. 번개와 천둥도 치고......게다가 저의 자동차는 FM 99.9MHz 부산 방송에서 중계하는 롯데의 야구 경기을 신나게 틀고 있었고....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출발한 저와 제 옆자리의 현국(친한 친구임....6월 3일, 대신동교회에서 결혼 예정)이와 서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그러다 보니 경주 톨게이트 입구를 놓치고 그냥 계속 상행선을 타고 올라가 버렸습니다. 한 구간 더 올라가 다시 차를 돌려 하행선으로 경주 톨게이트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 밤 중...비 내리는 보문 단지는 꽤 운치가 있었습니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이 경주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경주에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수강좌가 마치는 28일....연수강좌가 모두 마치는 시간은 오후 1시지만....전 정오가 되기전에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습니다. 물론 나머지 한 시간도 좋은 내용이지만....바쁜 일정이 놓여 있기에 현대 호텔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는 제 마음은 설레임과 바쁜 마음으로 넘실거렸습니다. 선화는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었고...연락이 이미 온 상태였습니다.

주 시외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주차를 시킨 뒤 신문을 하나 사서 이것 저것 들쳐 보며.....낯선 땅에서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을 때.... 선화가 나타났습니다. 양호교사를 그만 둔지 사흘째였는데.... 좀 쉬어서  그런지  확실히 얼굴이 나아 보이고 윤기가 있었습니다. 선화의 얼굴에는 경주에 왔다는 기쁨이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 오빠..오는 버스가  MT 떠나는 얘들로 가득 차 있는 거 있죠?....옛날 생각이 막 나네요...."  

린 잠시 동안이나마 경주를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연애 시절....경주에는 두 번 왔었습니다. 올 때마다 별천지같은 여유로움이 감도는 이 곳이 늘 우릴 기쁘게 해 주었었는데...결혼한 지 이제 7개월....우린 다시 이 곳에 온 것입니다. 차를 몰고 보문단지로 향했습니다. 현대 호텔 뒤...보문호가 있는 산책로 다들 아시죠?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사진도 찍고 활짝 핀 꽃들도 만져 보고 걸어 다녔습니다.

화는 큰 꽃봉오리들도 좋아하지만 민들레나 이름 모를 들꽃들을 더 좋아합니다. 돌틈이나 아무도 안 보는 곳에 조그맣게 예쁘게 자란 들꽂들을 보면 손을 가리키곤 합니다. 계절의 여왕...5월의 문턱에서 본 보문호 주변의 경관은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왼쪽 사진에 나 있는 오솔길로 연인들과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이 보이고 아래 언덕으로 내려와 보문호 물가에 가 보면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도시락을 먹고 재잘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린 벚꽂 비슷하게 생긴 예쁜 꽃봉오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 숲 아래로 걸어 다녔습니다.

살이 눈부시게 밝은 정오였습니다(사실 불과 몇 일전만해도 평일 정오에 이렇게 보문호 근처에서 어슬렁 거릴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머리에 꽃을 꽂은 뒤 함께 걷는 선화의 마음도 오랜 만에 나온 바깥 세상에서.....행복한 듯 보였습니다.

지만 우리의 봄나들이가 우리 만을 위한 것이라면 오늘의 의미는 퇴색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인 여동생이 사는 포항을 방문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보문호에서의 한가로운 시간을 즐긴 뒤.....우린 차를 타고 포항으로 떠납니다. 차 안에서 선화가 부산에서 가지고 온 딸기를 먹으며  보문 단지의 어느 작은 표지판에 "포항-->'이라는 표시를 보고 차를 몰았습니다. 물론 경주 입구로 나와 포항으로 가는 큰 국도를 따라 가도 되지만 보문단지에서 시작되는 작은 지방도를 따라 포항으로 가 보고 싶었습니다. 예상대로 포항으로 가는 길은 하늘 아래 푸르게 펼쳐진 논들과 싱그런 신록....한가로운 시골 풍경들이었습니다. 그렇게..그렇게 ....포항으로 떠나는 우리의 여정은 이어졌습니다.

방도를 따라 달린 지 1시간여....포항으로 들어가는 국도와  만나게 되었고....우린 포항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내과 4년차 중에는 포항 출신이 2명이나 됩니다. 전 포항으로 떠나가기 전.....주훈이(여동생임)가 살고 있는 대해 성당 근처로 가는 길을 이들로부터 미리 들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들은 대로 포항으로 들어서자 말자 포항성심병원이 보이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서 달리다가 포항제철이 보이는 다리(overbridge)에서 좌회전을 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대해 성당을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고.....여기저기 골목길로 차를 몰다가 일전에 주훈이 집에 가 본적이 있는 선화의 눈썰미로 대해 성당을 이내 찾을 수 있었습니다.

훈이가 살고 있는 집은 일층이 칼국수 집인 건물의 이층 한쪽 편이었습니다.  근처에 주차할 데가 없어 빙빙 돌다가 도로변에 차를 세워 두고 선화와 주훈이 사는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가파른 계단이었습니다. '이렇게 가파른 데 위에 살고 있구나.....' 이층에 올라서 보니 크리스챤 휘장이 붙어 있는 작은 현관이 보였습니다.  순간....' 여기로구나.....여기가 주훈이 사는 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이내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밀려 왔습니다. 여동생 주훈이가 살고 있는 집 앞에서.....

부모님과 오빠들을 떠나  험난한 사모의 길을 가겠다고 강도사님을 따라 나서 정착한 곳....이 곳 포항.....포항의 주훈이 집 대문을 열려고 하니....차마 가슴이 벅차 올라 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오빠....언니......" 하고 주훈이가 나왔습니다.  문밖에 서 있는 우릴 보고 달려 나온 주훈이가 우리 앞에 서 있었습니다.

반갑게 맞는 주훈이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주훈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전 여행을 다닐 땐 꼭 사진기를 들고 다닙니다. 주훈이를 만나는 이 기쁜 순간에 제 사진기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집 이곳 저곳을 찍고 주훈이와 선화를 여기 저기서 많이 찍었습니다. 왼쪽 사진은 그 사진들 중 한 장입니다. 주훈이가 활짝 웃는 모습이 여기에 있더군요...비록 좀 흔들려서 초점이 흐리지만....전 이 사진이 좋습니다. 멀리 타향에서 강도사님과 새로 시작한 주훈이의 삶이 웬지 힘들고 어렵게만 비쳐 늘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는 제게는 ..........사진 속 활짝 웃고 있는 주훈이의 모습은 자그마한 위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집 안 여기저기를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선화와 제가 살고 있는 집보다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집 뒤쪽에 여유 공간이 조금 있어 비슷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화가 가져 간 반찬거리를 내 보였습니다. 오이 김치, 물김치..그리고 ....

주훈이네 냉장고도 열어 보았습니다. 또 욕실에도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세면대가 없는 걸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교회에서 주시는 사택을 마음대로 개조해선 안된다는 중심으로 그냥 세면대 없이 지내는 거라고 합니다. 주어진 여건에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거지요....

집안에 들어서면 작은 거실같은 공간이 있고 왼쪽 편에 안 방이 있습니다. 왼쪽 사진은 안방에 앉아 있는 선화와 주훈이의 모습입니다. 다행히도 주훈이가 결혼하기 약 6개월 전 선화와 전 결혼을 했고.....다시 말해 주훈이는 시집가기 전 6개월 정도를 선화와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것 저것 함께 교회 활동을 하며(항상 성가대에 함께 앉았었는데....) 집안일도 서로 같이 했고........ 주훈이가 결혼할 때 준비하는 걸 선화도 챙겨 주고.....이렇게  크고 작은 일을 하며 두 사람은 정이 들었을 겁니다. 이렇게 정이 들고 난 뒤 시집 간 주훈이 집에 올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주훈이가 결혼한 뒤 제가 결혼했다면 주훈이와 선화는 지금보다 서먹서먹한 관계였을 테니까요.....(다 제 생각입니다.)

위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화장대 위에 인형이 하나 서 있는게 보이실 겁니다. 그건 사실 인형이 아니라 시계입니다. 저 시계는 제가 학교 다니고 병원을 다닐 때  늦잠자는 절 잘 깨워 준 자명종입니다. 저 자명종은 한 가지 멜로디로 사람을 깨우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소리로 사람을 깨우지요...."랄라라 라.....티디디딕 티디디딕...티디딕 ....일어나! 일어나!.......와와와아......."괴상한 잡음과 고개를 좌우로 흔들 게 만드는 독특한 리듬으로 사람을 깨우던 그 자명종이 주훈이 집에 있었습니다. 전 그 자명종이 너무 반가워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사람과 물건들의 일부가 이 곳 멀리 떨어진 포항의 어느 골목 안 집 이층에 놓여 있는 것이 내 맘을 알지 못했던 감정의 물결에 휘말리게 만들었습니다.

주훈이의 남편인 이태훈 강도사님은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교회에 결혼식도 있고 장례식도 있다고 합니다. 교회 결혼식에 지금 막 나가셨다는군요.....점심을 먹지 않은 우리에게 주훈인 점심 식사를 차려 주었습니다. 물론 선화는 주훈이를 거들었지요.

부엌에 서 있는 주훈이와 선화의 모습입니다. 주훈인 사람이 그리웠나 봅니다. 섬기고 있는 포항 충진교회에는 주훈이 또래의 젊은이가 많이 없는데다가 목회자 사모가 가지는 어려움......그래서 마음을 털어 놓고 속시원하게 얘기할 사람이 없는 이 곳에서.....오빠와 언니가 찾아 온 것이 얼마나.....반가웠을까.....주훈이는 선화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물건도 보여주고 주방도 구경시켜 줍니다. 아마 사진 속에 주훈이는 선화에게 결혼 후 친구들이 가져 왔다는 예쁜 접시나 찻잔을 보여 주고 있나 봅니다. 둘점이에게서 받았다는 예쁜 사진 액자도 보았습니다. 참 예쁜 액자였습니다.

집 중심에 있는 작은 공간에는 탁자를 하나 두었습니다. 그 탁자 위에는 작은 꽃병이 하나 있는데 장미 한 송이가 꽂여 있었습니다. 탁자 뒤쪽에 집 뒤에 위치하고 있는 주방을 연결하는 작은 창이 하나 나 있고 그 창을 통해 음식물을 탁자로 운반한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그 창을 통해 보이는 주훈이의 모습입니다. 아주 특이하고 예술적으로 나온 사진이지요?

 

잠시 후에 강도사님이 들어 오셨습니다. 강도사님도 우리의 방문이 반가우셨나봅니다. ..사실 ....지금까지 저의 삶에 결혼한 동생의 남편과의 대화라는 설정은 한 번도 없었는데 삶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에게 새로운 배역을 맡기나 봅니다.

이태훈 강도사님은 서부산교회에서 섬기신 적이 있고 이 때 주훈이를 알 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전도사님으로 알고....함께 교회에서 섬겼기 때문에.....어색하거나 서먹서먹한 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결혼한 주훈이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제게 좀 더 확실하게 심겨지려면 제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요....

전도사님이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포항 충진교회와 형산강을 구경하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모두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더군요....포항은 포항제철이 있어서 공기가 안 좋다고는 하지만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아참!  포항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이상한 풍경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차를 배달하는 찻집 아가씨들이 계속 눈에 띈다는 점이었습니다. 강도사님 말씀으로는 포항에 이사와서 놀란 것이 이점이라고 하더군요...저도 그 날 잠시 거리를 걷는 동안 5-6명은 봤던 것 같습니다.

포항 충진교회는 아주 정감이 가는 예쁜 교회였습니다. 본당은 서부산교회 보다 많은 좌석수를 가지고 있는 듯해 보였으나 이번에 교회가 새 부지를 매입하고 전 교인이 작정한 뒤 건축을 하기로 했답니다. 이제 건축이 시작되어 새 예배당이 지어지면 더 크고 예쁜 예배당을 가지게 되겠지요...

포항 충진교회 본당에는 중고등학생 몇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 곳의 중고등부도 우리 교회와 비슷한 수가 모이고 있었습니다. 16-17명...... 이 지역은 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학생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자신의 성적에 따라 진학하게 되고.......이 사실은 중고등학생들에게 학업에 큰 부담을 가지게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훈이 말로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곳의 중고등학생들은 한 10년전 서부산교회 중고등부 처럼 자율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회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다 돌아가는 ......아주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포항 충진교회을 나서서 우린 형산강변으로 나갔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니 포항제철의 건물들이 보이고 그 옆으로 우리나라 영일만으로 흐르는 지리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형산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습니다. 형산강둑으로 가는 도중에 전 포철 근로자들이 데모하는 모습을 보았고.....찻집 아가씨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는 주훈이와 강도사님....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린 시원한 강둑에 올라섰습니다.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길게 나 있는 오솔길이 있었습니다. 우린 여기서 서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포항 이야기며...포항에 포항제철 이야기며....포항에 숙박업소가 많은 이유며....이름 모를 꽂들의 이름 얘기들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린 돼지고기 삼겹살을 만원어치 사서 돌아왔습니다. 고기는 주훈이네가 사고 우린 상치와 고추, 깻잎, 음료수를 샀습니다. 전도사님은 결혼 하기 전에는 삼겹살을 잘 먹지 않았는데 주훈이와 결혼하고 난 뒤 삼겹살이 맛있다는 걸 아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주훈이가..'배 터지도록 삼겹살을 먹어 보는 게 소원'이라는 얘기를 했다며.....웃으셨습니다. 하긴...영훈이, 주훈이와 함께 우리 삼남매가 삼겹살을 구워 먹은 적이 많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오빠 둘에 밀려 제대로 고기를 먹지 못했을 겁니다. 주훈이가 결혼해서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한 주훈이와 결혼하고 난 뒤에도 함께 삼겹살을 실컷 먹고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 와 솥뚜껑을 달구었습니다. 그리고 얇게 썰어 온 돼지고기 삼겹살을 얹고 우리 네 사람은 신나게 먹었습니다. 저도 정신없이 먹었습니다.(사실 주훈이를 실컷 먹게 해 줘야 하는데....또 깜빡 까먹었나 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은 빨리 흘러갑니다. 시간이 7시가 넘고 8시가 다 되었습니다. 밖은 어두워졌습니다. 강도사님도 주일 준비를 하셔야 했고 우리도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아쉬운 맘으로 우리 네 사람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골목길로 들어섰고 차가 주차해 있는 큰 길 가로 나갔습니다. 부산에서 먼 길을 달려 온 나의 은마 엑셀은 조용히 도로 한 쪽 편에 누워 있었습니다. 말없이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주훈아.....오빠야 가께...., 다음에 또 올께....." 다음에 또 온다고 했지만 언제가 될 지는 잘 모릅니다. 9월이 지나 공부방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올 수 있을지..... 캄캄한 어둠이 내려 .....주훈이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선화와 저도 주훈이와 강도사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강도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시고 나면......주훈이가 또 섭섭해서 울텐데....어떡하죠....."  이 말이 제 맘을 아프게 했습니다.

" 주훈아, 잘 지내라...오빠가 다음에 오면 또 다른 곳에 구경하러 가자......꼭 올께"

"그래.....오빠야...잘 가라........"

차에 시동을 걸고 옆을 한 번 돌아본 뒤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세상을 사는 것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건가 봅니다. 제 옆에는 사랑하는 선화가 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저의 인생길에 동반자로 저와 함께 길을 가야만 합니다. 떠나 보내야 하는 사랑하는 주훈이가 저기 뒤에 있습니다. 내 차가 앞으로 달려갈 때 주훈이는 점점 보이지 않게 멀어져 갑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과 함께 우셨고 또 웃으셨고 잔치집에도 가셨고 초상집에도 가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안타까움과 슬픔 마음도 잘 아실 겁니다.  오늘 내가 가지는 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그 분은 아주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가지는 이 마음으로 주훈이와 강도사님 가정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겁니다.  오늘 나의 이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강도사님 가정을 향하는 애처로운 중보의 기도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그것만이 제가 그 가정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그리고 가장 강력한 힘이니까요.........

포항을 떠나 경주와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곤히 잠든 선화의 모습을 보며... 이태훈 강도사님과 우리 가정이 더욱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 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가정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나와 선화, 강도사님과 주훈이의 가정을 긍휼히 여기시고 인도해 주세요......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정으로 사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