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

 4월 5일부터 선화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도 계절이 바뀌는 때면 감기로 늘 고생을 했었는데 올 봄도 다시 그 행사를 치르는가 봅니다. 주로 코감기를 많이 하고 머리가 아파오는 게 특징입니다. 제 경우에는 온 몸이 욱신거리고 안구통(눈이 아픈 것)이  심하면서 두통이 생기지만 코감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아마 선화의 체질과 관계가 있는가 봅니다. 알러지성 체질이고 하품을 하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눈물을 흘리는 체질이거든요...

저희가 사는 학장동 도개공 아파트는 공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구덕 터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낮에도 자동차 매연이 느껴지고 특히 비가 오는 날이나 날이 흐려 저기압권에 드는 날이면 나쁜 공기가 그 일대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내려 앉기 때문에 주일 저녁에 집으로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눈이 따갑고 코가 아프고 머리가 아플 정도입니다. 그래서 마음껏 베란다 문을 열지도 못합니다. 결혼 하기 전 이 집을 고를 때는 산자락 밑이라 공기가 좋을 것 같고 앞 시야에 들어오는 구덕산의 푸르름이 너무 좋아 선택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장점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선화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군복무 한 뒤 다시 부산으로 들어올 땐 공기 좋은 데서 살자.......해운대나 광안리....아니면 양산.." 이제 약 10개월만 있으면 어떤 식이든지 군입대를 하게 됩니다.  군 복무로 3년을 보낸 뒤 2004년 다시 부산으로 들어오게 되면 정말 공기 맑은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하단은 어떤가요?  그러고 보니 본가가 있는 부민동 근처가 참 공기가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늘 새소리를 들었고 집 밖을 나서면 맑고 뚜렷한 풍경과 함께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으니까요......부민동에는 아파트가 없고 아주 비싼 빌라만 있는데....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자동차 매연과 사상 공단의 나쁜 공기가 내려 앉는 이곳에서 살다보니 선화의 호흡기를 자극하는 물질들이 더 많아 졌나 봅니다. 천식이나 알러지성 비염 같은 알러지성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서 그 증상을 일으키는 물질을 피해야 하는데 이 곳은 너무 많은 물질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광활한 대륙 중국에서 날아 오는 황사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라....임신한 채로 초등학교에 출근해야 하는 선화로선 이런 나쁜 물질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지요.

선화가 임신한 후 ...전 선화의 집안 일을 도우려고 애를 씁니다. 방도 닦고 이불도 펴고 설거지도 하고....하지만 4년차가 되어 전문의 공부 때문에 퇴근하는 시간이 늘 9시가 넘어야 되고 주일 날은 둘이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지난 주 같이 주일 오후 교사 세미나라도 있는 날이면 집에 자정이 다 되서야 들어오기 때문에 집안 일이 밀리게 되지요. 세탁기에 넣어 놓은 빨래감이 차게 되고 새로 신고 나갈 양말도 없어지고 와이셔츠도 다시 빨고 다려야 합니다.

4월 3일 월요일.....집에 들어온 시간은 10시가 다 되어서입니다.  학교에서 근무한 뒤 집에 온 선화는 혼자서 이 많은 집안 일을 했나 봅니다. 전 날 양산에 있는 부전 기도원에서 밤 늦게 까지 무리를 해 놓고 그 다음 날인 그 날......온 집안 청소와 빨래...를 혼자 다한 것입니다.  분명 전 날...월요일에 같이 하자고 말했었는데.....눈은 발가스레 충혈이 되 있고 말소리에도 힘이 없고 쉬고 싶어하는 선화를 보니 너무 안 되 보였습니다. 자매들은 일상에 부담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만들게 되면 기본적으로 하게 되는 가사 노동이 있습니다. 식사를 만드는 건 ....아무래도 자매가 해야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번씩 형제가 할 수도 있지만 그건 한 차례 지나가는 해프닝이지....늘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 형제가 집에 늦게 돌아올 때면 그 동안 집안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없나 봅니다. 당장 입을 내의나 옷이 바닥 났기 때문입니다. 선화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을 때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는데(오전에 이런 일을 하고....좀 자고 나면 몸이 낫다고 합니다.) 이제 학교 교사 일에다 임신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일들은 너무 무리가 됩니다.

4월 4일 화요일은 오후부터 계속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이 날은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친한 친구 신권이가 부산에 내려 온 날이었고 새벽별 (부산의대기독학생회 학사모임) 동기들과 함께 오랜 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과 식사를 하게 되고 볼링도 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선화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선화가 받더군요..아침에 나오면서 이 모임을 함께 하자고 청했지만 선화는 "오빠 동기들이 모여서 놀 때마다 제가 가는 건 별로 좋지 않네요...눈치도 보이고....오늘은 오빠 혼자 다녀 오세요...." 라고 얘기했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선화의 목소리는 힘 없이 들렸습니다. "오빠, 몸이 별로 안 좋네요...아마 감기에 또 걸렸나봐요...." 선화에게 빨리 간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동기들과의 모임을 두고 중간에 나오기도 힘들었습니다. 모임이 시작한 시간이 늦은 시간이 거의 11시가 넘어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아파트에 들어와 보니 선화는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이마에 손을 대어 보니 열은 안 나는 것 같은 데 얼굴이 빨가스레 상기되어 있었고 숨소리가 거칠었습니다. 분명 감기를 시작한 게 분명합니다. 며칠 전부터 콧물이 나기 시작했었는데....주일(4.2)과 집안일을 많이 한 월요일(4.3).....그리고 출근한 화요일(4.4).....감기에 든 겁니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식목일인 내일 부산 노회 CE  주최 교회대항 체육대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비가 오면 취소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화가 아픈데... 저 혼자 체육대회에 가서 달리면 뭐가 좋겠습니까? 힘 들어하는 선화에게 " 내일 백화점에 가서 봄 옷도 사고 오후에는 온천에도 가자고......" 얘기하면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오는 밤을 보내었습니다.

4월 5일 수요일은 식목일, 베란다 밖이 밝은 걸 느끼게 됩니다. 시간은 제법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일어나 보니 8시가 넘었고....밖을 보니 햇빛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큰일이다....오늘 체육대회를 하면 안되는데.....'. 사실.. 축구 예선전에서 4강에 오르지 못해 서부산교회 대학부원과 청년들이 이번 5일 체육대회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렇게 좋은 날씨라면 체육대회는 시행될 테고 분명히 우리 교회 참석자는 적을 텐데.....목사님은 오늘 체육대회에 예년과 같이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줄 알고 계시고 방문하실텐데...... 선화는 자고 나서도 머리가 계속 무겁다고 얘기하며 휴지를 자꾸 집어 코로 가져갑니다.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면서 전.....체육대회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화의 몸이 너무 안 좋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그렇게 좋아하는 운동을 마다한다는 것이.....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9시 10분이 되어....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전화의 주인공은 2청년회 회장인 조영모 집사님이셨습니다. 왜 안 오느냐고 물으시고는 지금 교회에 회원들이 너무 안 온다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배구의 정족수를 못 채워 체육대회에 참여 할 수 없었습니다. 전 순간 고민하다가....집사님께 나중에 따로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는 날 물끄러미 보고 있던 선화가 말합니다. " 안되겠다...오빠 다녀 오세요...." 지난 주 체육대회 참석유무를 좀 더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올해는 사실 참가할 분위기가 조성 되지 않았는데.....빨리 식사를 마치고 지난 번 축구 예선전 때 입었던 서부산교회 유니폼이랑 운동화를 신고 선화를 뒤로 한 채 영도 고신대학교 운동장으로 향합니다. 시간은 10시가 다 되었고 혹시나 늦을까 택시를 타고 운동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체육대회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배구는 동일교회에게 준결승에서 패했고 족구는 감천 중앙교회에는 승리했지만 이어 벌어진 2영도교회와의 시합에서는 지게 되어 4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제가 안 갔더라면 배구팀이 구성되지 못할 뻔 했었지만 나름대로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경기였습니다. 오후 2시경에 서부산교회는 모든 종목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쉬워하는 사람들과 헤어진 뒤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선화는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따뜻한 물이 담긴 주전자와 컵이 옆에 있고.....오늘은 수요일이라 저녁에 수요 예배 반주자인 선화는 또 일어나야 합니다. 우린 모처럼 맞은 휴일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얘기한 뒤 함께 롯데 백화점으로 갔습니다. 세일 마지막 날....선화는 다 헤어진 내 구두를 보며 새 구두를 사 주고 싶었나 봅니다. 구두를 고르고 선화의 봄 옷도 골랐습니다. 롯데 백화점 카드가 있으니까...당장은 돈걱정 없이 물건을 살 수 있었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점심을 안 먹어 배 고파하는 선화와 도너츠를 손에 들고 수요 예배에 늦을까봐 바로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수요 예배 후 ....가정 예배를 드리고 내일과 모레 있을 전공의 휴업에 대한 자료를 모은다고 컴퓨터 앞에 있다가   둘다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전공의 휴업이 시작되는 첫 날입니다. 4월 6일부터 8일까지 대한민국의 만 6천명의 전공의 들은 휴업을 선언합니다. 물론 응급환자,입원환자,중환자실 환자들을 버릴 수 없어 그대로 보게 되지만 많은 인원이 병원 업무를 놓게 됩니다.

4월 6일 목요일, 전공의 휴진 첫날입니다.병원 업무를 놓고 8시부터 부산대병원 9층 강당에 부산대병원의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모여 올바른 의약분업과 임의 조제 근절을 위한 의지를 다지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9시부터는 전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우리의 뜻을 담은 전단을 돌렸고 10시에 병원 본관 앞에서 다시 구호를 외쳤습니다. "각성하라 각성하라 복지부는 각성하라" 이후 10시부터 헌혈이 시작되었습니다.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에 헌혈이 있다는게 '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환자들에게 미안한 맘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선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헌혈을 마치고 오후 2시...부산 메리놀 병원에 부산지역 전공의들이 거의 다 모였습니다. 물론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을 남겨두고는 다 모인 것 같았습니다. 약 5백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각 병원 대표들의 얘기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토의를 장시간 하게 되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해산하였습니다. 다음 날인 4월 7일은 전국의 전공의들이 서울대학교 병원에 모여 우리들의 뜻을 밝히는 날입니다.

이 날 밤....선화가 가장 많이 아픈 날입니다. 이제는 열도 많이 나고 눈도 제대로 못 뜹니다. 사실 약을 먹어도 되는데 선화는 아기 때문에 한사코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감기라서 곧 나을 거라며....그 날 밤....전 내일 상경에 대비한 여러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다운 로드 받으면서 한 편으로는 선화의 이마에 물수건을 얹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내우외환....며칠 전 우린 가정 예배 때 의약 분업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바른 양심과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비리나 불의와 무관하게 살 수 없는 법입니다. 아모스 시대에도 많은 불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 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4월 7일 금요일. 드디어 상경하게 됩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있었던 전국 전공의 대회와 관련된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