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정하기

남해안에 머물고 있던 장마 전선의 북상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2006년 6월 25일 주일 아침...마침내 포항에서 출석할 교회를 정하고 등록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 만나면 끝나고 신앙 생활의 방황은 좋은 교회 만나면 끝난다."

모두가 공감하는 이 말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지역 교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지라 포항에서 출석할 교회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6개월 이상 출석할 교회를 놓고 기도했고 포항에 와서도 여러 교회를 방문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의 얘기를 들었던 것이 오히려 교회를 정하는데 있어 더 혼란을 빚은 것을 보며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 여러 사람의 의견에 귀기울였던 우리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우리 가정은 서부산교회와 양산교회를 거쳤습니다. 서부산교회는 제가 유치부 때부터 자라온 모 교회이고 양산교회는 카자흐스탄에서 귀국 후 출석했던 교회입니다. 이번에 교회를 선정하는 일에 있어 선화와 갈등을 빚은 부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제가 앞 선 두 교회와 같은 교단 교회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하다면 교단 교회로 가는 게 낫다는 제 생각은 선화가 보기에(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기준이었습니다. 선화 말을 듣고 저 역시 교단에 대한 우선 순위를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이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교단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동생이 같은 교단의 목회자 가정이라 그런건지... 선교사로 나간다면 교단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생각 때문인지...익숙한 곳을 떠나기 싫어하는 맘 때문인지... 하여간 이 문제로 지난 두 달간 우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 교단 만큼 문제 많은 교단도 없습니다. 교단이 사상초유의 빚을 지고 관선 이사가 파견되고 각종 비리로 세상 법정에 서고 병원은 도마 위에 올라 있으니까요. 교단 정상화를 위한 헌금을 하고 교단 학교 정상화를 위해 기도회를 하며 우리 교단은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지 안타까와 했지만 미워도 내 가족이라고 막상 이렇게 못난 모습의 교단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부터 A교회 목사님 말씀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던지라 새벽기도회만 3천명이 모인다는 A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어린이 주일이었지요. A교회 목사님의 말씀은 듣던 대로 무척 좋았습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성전과 수십명이 정신없이 안내하는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면서 웬지 우리 교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몇 부에 걸쳐 예배를 드리다보니 담임 목사님은 예배 후 축도를 마친 뒤에도 제 자리에 서서 문 밖으로 빠져 나가는 성도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계셨습니다.(이 모습이 이후로 오랫동안 제 맘에 남아 있습니다.) 교회당 문 앞에 나와 교인들과 일일이 악수하기에는 너무 많은 출입구와 교인들... 큰 교회도 필요하고 그 교회가 맡은 특별한 사명이 분명 있지만 지금 우리 가정이 출석할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교단 교회를 가 보자는 생각에 B교회를 가 보았습니다. 이 날은 새생명 초청주일이었습니다. 영화 bear의 일부를 상영하고 많은 예화가 곁들여진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교회 분위기와 소문은 무척 좋았지만 담임 목사님에 대해 우리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깨기 어려웠습니다.

포항 외곽에 있는 또 다른 교단 교회 C교회를 가 보았습니다. 누군가 말씀이 아주 좋다는 조언까지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선화의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가고 싶고 사모하는 맘을 주시리라 기대했습니다. 이 정도의 확신 가지고 교회를 정할 수 없었습니다.

집 가까운 교회는 어떨까 싶어 가장 가까운 D교회의 수요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선교에 대한 열심도 있고 훌륭한 예배당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가 갈 교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우리 부부 모두에게 들었습니다.

선화가 포항극동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를 아주 인상깊게 들었다는 E교회 예배에도 참석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좋았고 교회도 차분하고 열정있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기장(기독교장로회)측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예장(예수교장로회) 안에서 교회를 찾자는 옹졸한 제 견해로 인해 우리의 방황은 계속되었습니다.

또 다른 교단 교회 F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선린병원에도 교인이 있고 몇몇 사람들의 증언은 이전에 들었던 것과는 달리 긍정적이었습니다.  직접 예배에 참석해 보니 우리의 선입견과 반대로 훌륭한 말씀 증거가 있었습니다. 고집이 세고 선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어떤 사람들의 견해를 의심할만큼 설교 메시지의 내용이 도전적이고 은혜로왔습니다.

이렇게 여섯 교회를 방문한 뒤 우린 잠정적으로 F교회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화의 기준은 "차선이 아니라 최선의 교회를 선택한다" 는 것이었고 "목사님의 말씀 선포" 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선화 역시 F교회의 메시지가 지금까지 다녀 본 교회 중 가장 좋았다는 것이었죠.

저도 F교회가 좋았습니다. 그런데...맘 한 구석에서 B 교회에 대한 맘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많은 분들이 B교회를 바라 보며 '아주 좋은 교회' 라고 입 모아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선린병원 아침 예배 시간에 터키 쿠르드족을 향한 단기선교팀 파송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팀원 중 B교회 담임 목사님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열린 분이라고 해도 평신도와 함께 팀을 이뤄 단기선교여행을 떠나기 쉽지 않은데...이렇게 함께 하는 그 분의 모습을 보며 B교회에 많은 점수를 주게 된 것이죠. 그래서 우리 부부는 B교회를 한 번 더 가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교회를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메시지는 우리 맘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이 짧은 기간에 교회를 정하는데 있어 '목사님의 메시지 내용'이 중요한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 맘에 그런 감동을 주실 거라고 믿었고 B교회를 한 번 더 방문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간 것이 지난 주일이었습니다. 그 날 본문은 엡 1:3-6 이었습니다. 설교 제목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였습니다. 이 날 설교를 들으며 우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설교 내용 중에 목사님이 스스로를 간증하시는 내용이 너무도 맘에 와 닿았습니다. " 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사이면서도 너무도 낮은 영적 자존감에 괴로워 했습니다. 목사가 이래서 되겠나...이렇게 연약한 목사가 기도한다고 병이 낫겠나 생각했습니다. 좀 더 경건하지 못한 내 못난 모습을 보며 큰 정죄감에 억눌러 살아 왔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탄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기도 전인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넘어지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습을 보시지 않고 우리의 모습과 상관없이 우리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 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라보시는 우리의 신분은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입니다."

supercalvinist 의 입장을 취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 목사님의 설교는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목사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우리의 편견을 일순간에 씻어 내린 설교였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 날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수요일 밤 ...선화가 얘기했습니다. "우리 충진교회에 등록합시다." 선화는 지난 주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이 교회다.." 라고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선화의 맘에도 목사님의 설교는 큰 은혜로 다가 온 것입니다. 우리가 찾던 교회를 발견한 것입니다. 목사님에 대한 신뢰도 생겼고 함께 세워 나갈 공동체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사인을 주신 것입니다. 저 역시 이 날 예배를 드리며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낮아진 사람을 통해서만 일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충진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유치부 예배도 11시였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는 양산교회 때처럼 유치부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교회를 정하지 못해 어른 예배를 함께 드려야 했는데 오늘은 막내 성은이까지 엄마와 떨어져 유치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원래는 영아부에 가야 하지만 언니, 오빠를 따라 유치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삼남매 모두가 엄마 품을 떠나 주일 예배를 드린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충진교회 시대를 맞으며 세 아이 모두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유치부 예배가 시작하기 전,  선화가 예배실에 앉은 세 아이에게 "엄마는 2층에 있을 테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예배 드리라" 는 당부를 하는 모습입니다.  

 

충진교회 본당 예배 모습입니다. 충진교회는 전에 출석한 양산교회보다 크지 않습니다. 500명 정도가 출석한다고 합니다. 오늘 예배 본문은 롬 8:5-8 이었고 제목은 '승리의 삶' 이었습니다. "솔직히 여러분! 승리의 삶을 원하십니까? 성공적인 삶을 원하십니까?" 로 시작된 목사님의 메시지는 지난 주의 연속판이었습니다. "승리의 삶이란 내 안에 예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방해물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의를 내세우려는 것, 하나님을 향한 그릇된 열심입니다. 성도 중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이란 말은 예수님을 알기 전 단계의 일이나 신체의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이곳에서 사용된 의미는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보십시오. 바울은 그 문제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성도'라고 호칭하지만(고전 1:2) 그들을 향해 '육신에 속해 있다(고전 2:3)'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출석할 교회가 충진교회임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 후 회중 앞에 서서 등록 인사를 했습니다. 예배 후 새신자실에서 목사님과 여러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충진교회는 2000년 5월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제 여동생 가정이 바로 포항 충진교회에서 3년 반 동안 강도사 생활을 했었기에 그 누구보다 충진교회의 모습과 담임 목사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0년 5월, 충진교회 앞에 저희 부부와 여동생 부부가 함께 선 모습입니다. 충진교회 요람을 보니 여동생의 남편 이태훈 목사님은 지난 1999.12.19부터 2003.4.13까지 충진교회에서 강도사로 시무했었습니다. 저희가 카자흐스탄 가기 직전까지 충진교회에 있었고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 여동생네는 밀양 대평교회로 옮겼습니다. 충진교회는 2003년 1월, 새로 건축한 이동의 새 건물로 옮겨 갔습니다. 이 사진은 건축 전 교회 앞에서의 모습입니다.

 담임 목사이신 신진수 목사님도 이태훈 목사님 가정의 오빠라는 얘길 들으시고 무척 반가워 하쎴습니다. 새 건물로 옮겨올 때까지 계셨던 많은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이주훈 사모의 큰 오빠' 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 오셨습니다. 여동생은 결혼한 뒤, 태어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 포항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는데 당시 저는 연고 없는 포항에 가서 외롭게 생활해야 할 시집 간 여동생이 그렇게 안 되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포항에 와 있으니...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모습은 참 놀라울 뿐입니다. 충진교회 앞에서 찍은 이 사진이 훗날 다시 사용될 줄 꿈에도 몰랐었는데 말이죠.

여동생 가정이 3년 반이나 사역했던 충진교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 가장 좋은 최선의 결정을 한 만큼 포항 충진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된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가 포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좋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카자흐스탄에 계신 선교사님까지 메일을 통해 교회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나타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인도하심을 찬양합니다. 저희 가정의 기도제목을 읽으시고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로 정한 교회에서 예수님이 우리 삶을 통해 사시도록, 그저 그 뿐께 내 맡기는 훈련을 계속해 가길 소원합니다.     2006.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