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매의 요즘 생활

포항으로 이사온 뒤 아이들의 생활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가끔씩 "광안대교 보고 싶다" 고 얘기하는 형민이의 말을 들을 때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이사해야하는 우리의 상황이 안타까울 때가 있지만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포항에서의 새 생활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가 포항에서 함께 유치원에 다니고 막내 성은이가 엄마에게 달라붙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말을 많이 하고 있다는게 요즘 상황의 요약이죠.

만 5세 8개월의 형민이는 날이 어둑해지면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배구공으로 축구하길 좋아하고 무거운 농구공을 던지고 싶어 하는 아이입니다. 2006 월드컵 얘기가 넘쳐나면서 형민이의 관심도 축구에 쏠려 있지요. 대표팀 선수 이름도 대여섯명은 외우는 것 같고 아빠가 병원에서 돌아오면 거실에서 슈팅 연습하자고 손짓합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구구단(2단)도 외우고 싶어 하고("아빠, 이 칠 십오(2X7=15) 인가요?") 마법 천자문 덕택에 한자도 제법 익혔습니다.(3권까지 마스터했지요.) 게다가 알파벳에도 관심이 있어서 부산은 B로 시작하고 대구는 D로 시작하고 현대는 H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통해 한글 자모음을 영어 알파벳과 연계시키는 작업을 거치고 있습니다. 우리 어릴 때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로 달라져 버린 아이들 세상입니다.

가정 예배 시간에도 엄마, 아빠와 함께 유창한 솜씨로 성경 본문을 읽어 내려갈 정도가 되고 엄마가 공을 들이고 있는 하나비 성경암송도 열심히 합니다. 선화는 형민이에게 고린도전서 13장을 외우게 하는데 거실 벽에 적혀 있는 요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을 보며 저도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시은이도 시편 1편을 제법 외우고 성은이도 영문도 모른채 찬송가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를 열심히 부르는 시끄러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형민이가 유치원 다녀와서 매일 하는 일 중 하나가 피아노 연습입니다. 저나 선화나 감수성이 예민한 형민이가 피아노를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인데 형민이의 실력이 제법입니다. 사실 전 피아노 코드나 좀 잡을 줄 알지 연주할 줄은 줄 모르는데 형민이는 벌써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노는 단계(?)의 손가락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주변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는지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는 요즘이지만 선화나 저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익히게 하고 가정과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이 가운데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해서 그들의 길로 접어들 수 있도록 도울 뿐이죠.

우리는 삼남매의 기질이 각각 다르다는 평범한 사실에 너무도 놀라워하며 재미있어 합니다. 형민이는 꼼꼼하고 끈기가 강합니다. 집중력에다 감수성도 예민해서 인문분야의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과학 분야도 괜찮겠고... 시은이(만 3세 6개월)는 정반대입니다. 잘 못 참고 덤벙대고 조심성도 없지요. 하지만 시은이에겐 다른 둘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시은이는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고 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은이는 다른 아이들은 얘기하지 않는 일상의 조각들을 잘 표현합니다. 시은이에게 귀 기울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묻어 나고 박장대소하게 됩니다. 너무 재밌는 아이입니다. 성은이(만 2세 5개월)는 시은이와는 반대입니다. 한 살 많은 언니 시은이가 아직도 입에 음식을 묻히는 것에 비해 성은이는 벌써 오래 전부터 절대 음식을 흘리지도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형민이와 닮은 점이 더 많아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꼼꼼하게 자기 일에 몰두합니다. 단지 아직 어리기에 엄마에게 너무 많은 질문과 동의를 구한다는 것이 약간 시끄러울(?) 뿐입니다.

 

비가 온 어느 날...우리 거실에서 보이는 영일만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에는 아이들이 심어 놓은 나팔꽃,금잔화 화분들이 놓여 있죠. 비록 낡은 아파트에서 살아도 아이들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셋째 성은이와 첫째 형민이가 예배 놀이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성은이는 글자는 모르지만 찬송가 몇 개는 외워 부른답니다.

 

아파트 뒤에는 장성 시장이라는 재래 시장이 있지만 집 앞 슈퍼마켓에도 자주 나갑니다. 해가 지고 나면 자주 '굴럇찌'도 나가지요. '굴럇찌'가 뭐냐구요? 러시아어로 '이리저리 거니는 것, 산책'을 말합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살던 시절...특별한 볼거리나 놀거리가 없음에도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집 주변을 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여유있고 소중한 시간들이다 싶더군요. 그래서 우리도 해가 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산보하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굴럇찌'를 즐깁니다. 물론 매일 할 순 없지만 심심하다 싶으면 출동합니다.

형민이에겐 한복이 있습니다. 유치원 생활을 하다보면 생일 잔치나 발표회 등으로 인해 한복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그동안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던 시은이에게도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한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날, 교회 경로 잔치에 유치원 아이들이 나가 발표를 하나 봅니다. 선화는 시은이에게 사 줄 한복을 구하러 죽도 시장에 나갔습니다. 죽도 시장은 포항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입니다. 마치 부산의 자갈치 시장같은 분위기입니다.

시은이가 한복을 입었습니다. 한 때 머리카락이 없어 '황비홍'으로 불렸던 시은이...이제 아리따운 숙녀로 자라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성은이도 언니가 입은 예쁜 옷이 입고 싶어졌습니다. 선화가 말했죠. "시은아, 동생에게도 한 번 입어 보게 해 주자..."

성은이도 한복을 입었습니다.

언니 몸에 맞춘 큰 한복이지만 성은이에게 입히니 앙증맞고 귀여운 아가씨가 보이네요.

2006년 6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과의 삶은 그들이 보여주는 진실함과 순수함으로 인해 삶의 힘겨움조차 비껴 가는 것 같습니다.   200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