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린병원을 방문한 외국 의사들

한 동안 포항에도 심한 황사가 몰아 닥쳤습니다. 올해는 수도권보다 동해안 일대에 더 심한 황사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길가에 세워 둔 차 유리에 두텁게 깔린 녹황색의 황사 가루를 보면 매년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이 지구 범위의 환경 재해가 무섭게만 느껴집니다. 사막화되어 가는 중국과 몽골의 상황이 우리 삶을 위협하는 걸 보면 지구촌은 점점 더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지고 있나 봅니다.

그 후로 몇 번 비가 내리더니 이젠 완연한 여름 날씨로 돌아섰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30도를 넘어서더니 겨울에서 곧장 여름으로 넘어 왔습니다. 포항으로 이사온 지 일주일..우리 가정도 이곳에서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10주 째로 접어드는 병원 생활은 여전히 만족스럽습니다. 아침마다 드려지는 예배와 하나님 마음을 품고 섬기는 여러 선생님들을 통해 채워지는 그 분의 은혜들이 내 맘을 촉촉히 적시고 있습니다. 선린병원에서의 생활은 일반 병원과는 많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전 직원이 한 마음으로 예배 드리는 예배 공동체라는 점이지요.  아침 예배 시간 본문은 로마서에서 사도행전으로 넘어 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월요일 아침마다 맡고 있는 예배 전 찬양 인도가 주는 유익이 큽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끼고 찬양할 수 있다는 것, 온 맘으로 온전히 에배드리려고 준비하고 노력한다는 것, 이 것만으로도 선린병원으로 온 모든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은혜가 크기만 합니다. 병원에는 예배를 준비하는 찬양팀이 있고 제게 많은 조언과 유익을 끼쳐 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그제 아침에는 조바꿈이나 악보 크기를 키울 때 유용한 악보편집 프로그램을 다른 분으로부터 받기도 했습니다. 세상 어느 병원에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을까요...

선린병원에는 많은 기도회와 성경 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전 매주 수요일 저녁에 있는 병원과 선교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목요일 오후 1-2시에는 병원을 찾아 오는 환우들을 대상으로 육체적, 정신적, 영적 치유를 전인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끔 성경을 통해 공부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전인치유 집중과정" 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도 참여하고 있지요.

이사를 하고 난 뒤 처음 맞은 지난 주일에는 포항의 한 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포항에는 좋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린 당분간 포항의 여러 교회들을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 이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도 좋지 않지만 교회를 정하고 나면 다른 교회의 주일 예배를 참석한다는 건...불가능하기에 이번 기회가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이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근무하고 있는 외래 진료실입니다. 주로 내시경실과 이곳 외래 진료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현재 선린병원에는 외국에서 온 의사 두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외과 의사 '왈리(WALLI)'입니다. 왈리는 저와 게스트 하우스 생활을 1주 정도 같이 했습니다. 가족이 포항으로 이사오면서 저는 두 달간 거처했던 게스트 하우스를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대구에서 출퇴근 하시는 진단방사선과 배재익 과장님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왈리는 여전히 게스트 하우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왈리가 처음 포항에 왔던 날은 주일날 저녁이었습니다. 부산에서 포항으로 와 보니 보일러를 틀지도 않은 채 추위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이방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저녁 식사를 하러 포항 북부 시장으로 나갔고 이것이 왈리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왈리는 저보다 영어를 더 잘합니다. 해산물이 많은 북부 시장의 음식점을 돌아 다니다 튀김과 김밥, 나물 비빔밥 등을 시켜 저녁을 해결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 한국 음식을 억지로 먹는 그의 모습에서 측은한 맘이 들었습니다.  

이틀 뒤 배재익 과장님과 함께 왈리에게 고기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간 곳이 KFC입니다. 왈리 말로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닭고기를 많이 먹는데 조류 독감 이후로 거의 모든 닭이 살처분되어 닭고기를 먹기 어렵다고 합니다.

KFC의 고기 맛은 최고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는 왈리를 보며 앞으로 6개월 정도 선린병원에 머물게 되는 이 친구를 잘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곧 집으로도 초청할 계획입니다. 가까운 경주도 보여줘야겠지요?

왈리는 제게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져 온 사진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입니다. 멀리 모스크가 보이는 시장 주변의 모습이네요

자신이 자랐던 마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라 합니다. 왈리의 모습 보이죠? 카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공식 명칭은 "ISLAMIC REPUBLIC OF AFGHANISTAN" 입니다. 국호에서부터 이슬람을 명기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인지라...왈리 역시 돼지고기는 절대로 먹지 않는 회교도입니다. 아무쪼록 그의 한국 체류기간이 복음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한 사람의 외국 의사는 3일 전, 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우즈벡스탄에서 온 나탈리야 아나파실로브나입니다. 고려인이죠. 월요일 오후, 병원 선교회 간사님이 이 분과 함께  "선생님! 러시아어 하시죠?"  라며 진료실로 들어 오셨지요. 나탈리야는 앞으로 기아대책이 우즈벡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운영하게 될 병원의 원장이라고 합니다. 내시경 검사, 초음파, 방사선 판독 등...내과계 분야의 연수를 위해 3개월 간 선린병원에 머물게 됩니다. 저로서도 참 좋은 기회를 만난 셈입니다. 안 그래도 작년 미션트립 이후로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은 기간이 늘어나면서 러시아어 공부도지지부진했는데 이번에 나탈리야를 통해 러시아어 학습에 큰 계기가 마련될 것 같아서입니다. 게다가 나탈리야는 매일 오전에 제가 근무하는 내시경실에서 연수를 하게 된 지라...서로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나탈리야 역시 의사 소통이 수월한 저를 만나게 되어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의학 용어들이 등장하자 제가 가진 '영어-러시아어 의학 사전"(카자흐스탄에서 사온 책이죠)  도 유익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사전을 한국에 가져 오면서 이렇게 유익하게 사용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탈리야가 포항에 온 첫 날, 저희 집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고려인이기에 우리 음식도 익숙한 분이고 남편이 목사님이기도 해 더 마음이 편했습니다. 아들 나이가 서른이라고 하던데...오늘 오전 내시경실에서 함께 근무해 보니 배움에 대한 열의도 대단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보기만 하면 눈을 반짝이며 "내게도 가르쳐 줄 거죠?" 라고 되묻는 그녀의 모습에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가서 그 곳 의사들에게 전수해 주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3개월 동안 나탈리야가 내시경 술기에 빨리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선린병원에 있으면 크고 작은 모임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 모임 중에는 선린병원 내에만 국한되는 모임이 아니라 포항 지역 사회를 품고 이뤄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난 5월 2일에는 북한 기도회가 1층 예배실에서 열렸습니다. 선린병원 직원 선교회와 한동대학교 동아리 '북한연구회(NKFR:North Korea Field Reserch)' 가 함께 주관한 모임이었습니다.

병원 내에서 북한을 품고 있는 몇몇 과장님과 한동대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련된 이 모임은 포항 땅에 북한을 향한 기도의 불이 일어나도록 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응급의학과 김강석 과장님이 열심히 준비하시는데 제게 찬양 시간을 맡기시는 바람에 저도 얼떨결에 이 모임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잃어 버린 반쪽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날 기도회를 통해 북한에 대해 잊고 살았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강사 선생님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적인 시간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는 이건오 원장님과 강사님이 참석하는 조찬 모임에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의견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린병원에 온 지 두 달 남짓이지만...많은 귀한 시간들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많이 맡기신 자에게 많이 찾겠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좋은 말씀과 경험들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이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선린병원에서의 삶을 통해 한 해 더 연장받은 열매없는 나무와 같은 내 삶에 하나님이 맺히게 하시는 열매들이 열리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06.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