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민

1. 늦어지는 이사

포항에 온 지 7주째입니다. 아직도 저는 선린병원 인근 게스트 하우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뒤 1년간 양산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은 좋은강안병원에서의 근무를 시작하면서 부산으로 왔습니다. 전세 계약은 2년으로 2007년 2월 말까지였죠. 현재 1년만 지난 상태이므로 포항으로 이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거나 집주인이 좋은 마음으로 전세금을 내 줘야만 합니다.

우린 작년 12월부터 집 주인에게 3월이 되면 포항으로 근무지를 오기게 된다고 얘기했고 이후로도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집 주인은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전세금을 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10원이라도 손해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 오는 딱딱한 말투는 거부감마저 느낄 정도였죠.

사실 집주인은 우리가 이사온 지 5개월도 안 지났을 무렵 집을 팔아야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물론 집은 팔리지 않았지만 당시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수 있을 거라 이해했기 때문이고 한 편으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 우리가 막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계약보다 일찍 나가겠다고 얘기하자 집주인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이 잘 나가지 않는 이유는 전세금 외에도 40만원이라는 월세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 귀국 직후 저희 가정이 겪었던 어려움을 아시는 독자들은 우리 가정이 목돈을 마련할 형편이 아니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요즘 같은 때 그 만한 월세를 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집 주인은 끝까지 월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세로는 절대 세를 놓지 않겠다는 것이죠. 심지어 월세를 올려 받겠다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선화나 저나 기다릴 뿐이었고 지금까지 그래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이 오래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5살인 시은이도 포항의 제일교회 유치원에 등록해 놓은 상태라 두 달째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다음 주 금요일 포항으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병원 사택으로 들어가더라도 전세금이 필요한데 병원 측에는 좀 더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포항으로 이사오더라도 매달 나가는 월세와 아파트 관리비는 여전히 우리가 부담해야 하기에 손해가 막심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보고 계시겠죠? 선린병원으로 온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인데 그 부르심을 따라 와 보니 생각치도 않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 사도 바울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이 건너 오라고 손짓하는 환상을 보고 아시아가 아니라 마케도니아로 넘어 갔는데 그 지경의 첫 성, 빌립보에서 큰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의 사건 아시죠? 하나님이 부르셔서 갔는데 편안하고 안정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 가정과 사도 바울을 비교할 순 없습니다. 사실 이번 어려움을 겪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뭔가 하나님 앞에 잘 못한 게 있는게 아닌지...' 라는 생각입니다. 이사를 앞두고 나가신 할머니가 가장 맘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든 시간들을 말 없이 받아 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우리 가정이 이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더 온전해지도록...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은 힘들고 난감한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온전히 의탁할 뿐입니다. 그저 답답한 것은...눈 앞에 보이는 이런 꽉 막힌 상황 속에서 자주 평안을 잃고 선화를 힘들게 하는 내 모습 때문입니다.

며칠 전 방명록에 글을 남겨 준 후배의 글이 큰 위로를 줍니다.  <주님께서 4월이 가기 전에 집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4) >

엄마가 만들어 준 하이라이스를 먹고 있는 삼남매

 

2. 너무 열심히 일하면 안된다?

선린병원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최근 내시경실을 확장하면서 검사 건수도 늘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땀이 흥건해질만큼 바빠졌지만...제게 있어서 선린병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이전 병원에서보다 기쁘고 가치 있는 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개인 소유의 병원도 아니고 선교를 위해 드려진, 하나님의 병원이기에 내가 열심히 일해서 병원 수익이 늘어난다면 그 만큼 선교사를 지원하고 하나님 나라 사업에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포항에 온 지 7주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선린병원 소화기 내과는 네 명의 과장이 있는데 이 중 한 분이 갑작스런 폐렴으로 입원하게 된 것이죠. 때문에 두 사람이 근무하는 내시경실을 혼자 책임져야 상황이 벌어졌는데 하필 이번 주부터 암 검진 내시경도 오전에 30건씩이나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월요일부터 암 검진 내시경, 종합검진 내시경, 외래 내시경, 입원 환자 내시경을 모두 합해 70건의 검사(몇 몇 검사는 다른 분들이 도와 주셨지만) 를 혼자 처리해야 했습니다. 검사에 익숙지 않은 레지던트 선생님을 가르쳐 가면서 말이죠.

이 날 뿐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 모두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칠 정도로 검사에 시달리다 보니 외래 환자 보는 것도 힘들고, 아침에 일어나서 상쾌한 맘으로 예배 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회진을 포함한 모든 진료 영역에서 이전만큼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며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한방병원 과장님 한 분이 예정에 없던 대장내시경 검사까지 부탁하시는 바람에 아침 예배도 못 드리고 내시경실로 갔습니다. 9시부터 외래 진료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8시 반에 검사를 해 드렸습니다. 예배까지 빠져 가면서 형제 사랑(?)을 실천한 셈이죠.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대장내시경 검사가 문제였습니다. 검사 도중 용종을 발견하게 되고 어렵게 용종을 찾아 용종 절제술을 하게 되면서 시간은 예상보다 많이 흘렀습니다. 때문에 회진도 늦어지고 오전 내내 검사도 엉망으로 변해 버렸죠. 급기야는 암검진 내시경 예약 담당자와 가벼운 언쟁을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이번 주를 보내면서 느낀 것은 일의 양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욕만 가지고 설쳐대다 보면 자칫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병원에서 열심히 일해 보려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쁨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며 회진하는 일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면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절 선린병원에 보내신 이유는 뭘 더 많이 하기보다는 그 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더 준비되고 성숙되게 하기 위함임을 깨달았으니까요....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마음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평안을 잃을 정도로 몸살 기운과 두통에 시달릴만큼 일한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불태우는 격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검사 스케줄을 조절하고 몇 가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제 마음가짐도 다시 한 번 가다듬었구요.

지금까지 이사를 앞두고 제가 겪고 있는 내, 외부적인 어려움을 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변함 없지만 내가 좀 더 지혜롭고 순전하게 움직여야 함을 깨우쳤습니다. 이번 일로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지...내 영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을 얻었습니다. 다시는 예배 시간을 빠져 가면서까지 일하진 않을 겁니다. 매일 아침 8시 20분부터 9시까지, 병원 1층에서 드려지는 예배 시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 무엇도 뒤로 한 채 온전히 예배만 드릴 겁니다. 그 분과 약속된 시간이니까요.  

시은이와 성은이가 큰 절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설날에 형민이는 유치원에서 배운대로 세배를 했지만 시은이와 성은이는 그저 멀찍이 눈치만 보고 서 있다 세뱃돈만 챙겼답니다. 내년부터는 꼭 세배하라는 말씀을 듣고...이렇게 때 아닌 큰 절 연습을 합니다.